[내레이션]
지난 10월, 서울대 홍보관 스누홀(SNU Hall)이 문을 열었습니다. IBK커뮤니케이션센터 1층과 2층에 위치한 이곳은 서울대를 찾은 관광객들에게 서울대의 역사를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몇 달 앞선 6월, 캠퍼스 내에 또 다른 역사관의 설립이 결정되었습니다. 총동창회에서 100억 원을 지원하는 ‘서울대 역사연구기록관’.
[본부 기획과 관계자]
역사연구기록관은 역사연구를 해서 역사물을 놓는 곳이고 홍보관은 서울대학교의 홍보관이죠. 다른 개념이죠.
[내레이션]
하지만 공간 특성상 차별화가 쉽지 않습니다. 역사관이라고 해도 전시와 홍보의 기능을 일부 담당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IBK 센터의 스누홀은 한 번에 2~30명을 수용할 정도로 공간이 협소하고 강의실과 연구실이 인접해있습니다. 때문에 공사 전부터 역사관으로 부적합하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총동창회의 역사연구기록관 지원이 결정될 당시 언론정보학과 윤석민 교수는 당장이라도 스누홀 계획을 재검토하자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본격적인 스누홀 공사가 시작되기 전이었습니다. 그런데, 본부 측은 스누홀 예산을 이미 상당부분 집행하였고, 두 공간의 성격이 다르다는 이유로 스누홀 공사를 계속 추진하였습니다.
처음부터 두 개의 역사관을 계획한 것일까요? 아니면 서울대 역사관을 짓는데 명확한 계획이 없었기 때문일까요?
2001년부터 5년 단위로 출간되는 서울대학교 캠퍼스 마스터플랜. 일련의 건축, 환경 분야 교수들이 연구원으로 참여하여 향후 5년간 서울대 캠퍼스 개발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문서입니다.
그런데 이 세 권의 책에는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캠퍼스 개발의 전반적인 기획을 담당하는 계획전담부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가장 최근의 마스터플랜에 따르면 2013년 이후 완공예정인 17개 동의 건물 중에 10곳이 계획에 없던 건물이었습니다. IBK 커뮤니케이션 센터도, 역사연구기록관도 계획에 없었습니다. 마스터플랜의 실효성이 의심되는 대목입니다.
[본부 기획과 관계자]
그러니까 2013년보다는 새로운 조직이 생긴 것은 아니지만 캠퍼스 마스터플랜을 준거할 수 있는 위원회가 구성이 됐고 어느 정도 시스템이 구축이 됐다는 거죠.
[내레이션]
그런데 우리는 인터뷰를 통해서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최근 5년 내 지어진 한 건물의 신축을 주도한 전 학장 출신 A교수는 “위원회는 예산을 확보해온 단과대나 기관의 요구를 최우선시 할 수 밖에 없는 위치”라고 말했습니다.
캠퍼스 마스터플랜은 “단과대학(원)별 개별 토지활용 및 개발 지양, 기존시설의 개선활용 지향 및 소규모 신규개발 지양”이라는 원칙을 중요한 목표로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본부의 조정능력이 미약한 상황에서 단과대학이나 기관 주도로 개발 사업을 추진하다보니 마스터플랜은 무력화되고, 난개발의 징후들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마스터플랜에서도 현재 관악캠퍼스가 난개발 상태임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최막중 교수]
당연히 동의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이제 귀중하게 비어있는 땅, 보호해야할 땅들이 거의 남아있지 않을 만큼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섰고요. (건물들이) 각자 삐죽삐죽하게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들어왔기 때문에 부조화되는 측면들이 많고…
[내레이션]
관악캠퍼스가 난개발 상태라는 증거는 곳곳에서 발견됐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제각기 다른 건물들의 건축 양식이었습니다. 1975년 관악캠퍼스 입주 당시의 건물들은 일관된 건축양식을 보입니다. 지금의 인문대, 사범대, 자연대는 중앙의 행정관과 학생회관, 중앙도서관 건물들을 중심으로 동일한 외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새로 들어서는 건물들의 양식은 비전문가가 보기에도 천차만별입니다.
물론 화려한 최신식 건축물들이 들어서는 것을 오히려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관악캠퍼스의 부조화는 성북구 안암로에 위치한 고려대학교 캠퍼스와 비교해보면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이 대학의 경우 회색풍의 고딕 양식 건물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최신식 건물까지도 동일한 재질의 벽돌을 사용하여 통일감을 주었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서울대 캠퍼스 건물들의 외벽은 가지각색이며 전체적인 조화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또 눈에 띄는 것은 건물들의 동 번호였습니다. 16동 사회과학대학, 그 옆에 위치한 아시아연구소는 101동입니다. 그 옆의 두레문예관은 67동, IBK 커뮤니케이션센터는 64동입니다.
서울대 학군단이 위치한 66동과 운동장, 그 주변을 둘러싼 건물들은 66동부터 142동, 29동, 141동 순서로 위치해 있습니다. 동 번호만 알고서는 이들이 인접해있을 것이라 예상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원래 관악캠퍼스의 동 번호 체계는 식당 등 편의시설 관련 건물에 70번대를 부여하도록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법과대학 건물단지에 위치한 법학도서관은 72동입니다. 반면 오래된 식당 건물인 자하연 식당은 109동입니다.
한편 난개발에도 불구하고 강의실 부족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아시아연구소는 연면적 대비 강의실 면적이 7%에 불과했고, IBK 커뮤니케이션센터 역시 13%에 그쳤습니다. 심지어 아시아연구소에는 10개의 공실이 있었고, 우정원에는 한 층이 통째로 비어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공간의 비효율적 사용 문제가 심각한 것입니다.
그에 비해 신축 건물들에는 교수 연구실이 매우 많았습니다. 물론 교수 연구실을 늘리는 것도 중요한 과제이지만, 상대적으로 학생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지적입니다.
화려하고 웅장한 신식 건물의 등장은 기쁘고 설레는 일입니다. 690억 규모의 기부금으로 지어진 국내 최대 규모의 관정도서관은 보는 이들마다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하지만 화려한 빛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캠퍼스의 급속한 개발도 마찬가지입니다. 무분별한 개발이 장기적으로는 학교의 재정 부담으로 돌아오고 나아가서는 등록금 인상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리고 있습니다.
[등록금심의위원회 학생위원]
등록금심의위원회에서 회의록에는 안 적혀있지만 학교 측 위원이 건물이 늘어날수록 그 운영비나 공공요금에 대해서는 법인회계에서 부담하는 비용이 늘어난다는 점은 확인해줬고요, 그에 대해 총운위에서 발언이 나온 것도 맞는 얘기입니다.
[내레이션]
확인결과 2012년에서 2013년 사이 법인회계 재무제표 상에서 건축물관리비가 약 205억원, 220% 가량이 올라갔으며 물, 전기 등 공공요금도 약 73억원, 33% 가량이 증가했습니다. 일부 건물의 경우 건축물관리비를 충당해야할 편의시설 수익은 기부자 측에 넘겨주는 상황이고, 공공요금의 국고지원율은 20% 이하임을 감안할 때 등록금 인상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사안입니다.
또한 대학은 기업보다 엄격한 사회적 책임의식을 가지고 자연환경과 기회비용을 고려한 개발을 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한무영 교수]
가장 중요한 것은 서울대의 이상을 반영할 수 있는 목표를 정해놓자는 것과 유지관리, 기능을 생각해서 정량적인 목표를 정해서 만드는 것, 그리고 사회적 책임을 고려해서 만드는 것…총장님이 최고 책임자가 돼야 합니다. 총장님 주재하에 전담부서가 있어가지고 힘있는 전담부서가 돼야 하고, 형식적 업무가 아닌 실천가능한 목표를 세워서 강력하게 밀고 나가야지 만이 난개발을 막을 수 있습니다.
[내레이션]
올해로 40주년을 맞은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비록 학생들은 졸업 후에 캠퍼스를 떠나지만 미래의 후학들이 계속해서 사용할 공간이기도 합니다. 이제, 난개발 문제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