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베의‘어묵 인증샷’과 혐오표현 규제 논란 올해 1월,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일베)에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어묵에 빗대는 글이 올라와 공분을 샀다. 글의 작성자는 단원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채로 입에 어묵을 물고 있는 사진을 “친구 먹었다”는 글과 함께 올렸다. 작성자는 단원고 학생이 아닌 20대 남성이었으며 글을 쓴 이유를 ‘주목받고 싶어서’라고 설명했다. 온라인에서 세월호 참사를 조롱한 사례는 이 사건 외에도 많다. 세월호 희생자 비방에 대한 법적인 대처는 대체로 글의 작성자를 모욕죄나 명예훼손죄로 기소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모욕죄나 명예훼손죄는 기본적으로 개인적인 명예감정이 침해됐을 때 적용된다는 점에서 유가족들을 비인간적인 조롱으로부터 충분히 보호하지 못했다. 사실 세월호 희생자 뿐 아니라 장애인·성적 소수자·이주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증오를 담은 발언은 세월호 참사 이전부터 만연했다. 일베의 등장은 오히려 이러한 사실을 지각하고, 해결 방법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일례로 특정 집단에 대한 감정적인 증오를 담은‘혐오표현’을 법적으로 규제하자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새정치민주연합 김동철 의원은 2013년 5월‘반인륜 범죄 및 민주화운동을 부인하는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위안부 강제동원, 친일반민족행위 등을 반인륜 범죄로 규정하고, 반인륜 범죄와 민주화운동을 왜곡, 날조, 부인하는 자에게 형벌을 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새누리당 안효대 의원은 2013년 6월 인종 및 출신지를 근거로 공연히 사람을 혐오한 자를 처벌하는 형법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이후 혐오감을 표현하기 위한 목적으로 저지르는 ‘혐오범죄’(증오 범죄)에 대한 법적인 제재도 논의되기 시작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의원은 2013년 12월 출신지·인종·사상·정치적 의견에 따른 혐오감을 표현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면 가중 처벌하는 내용의 특정범죄가중처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이들 법안은 국회에서 통과된 적이 없다. 혐오표현 규제에 대한 반론은, 다른 대상을 혐오하는 것은 개인의 고유한 감정이며 이것을 공연히 표현하는 것 역시 표현의 자유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식의 논리로 제기됐다. 또한 혐오표현을 규제하자는 논의는 진보진영의 자기모순이라고 비판받기도 한다. 전 정부 에서는 미네르바 사건 등을 거치면서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던 이들이 현 정부에서 자신들에게 불리한 표현을 규제하자고 주장한다는 이유에서다. 전 대통령을 동물에 비유할 자유와 성소수자를 동물에 비유할 자유는 같은 것일까? ‘일베충’은 써도 되는 표현이지만‘유족충’은 쓰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혐오표현은 ‘나쁜 표현’과 다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적인 표현 외 에도 정치인, 유명 연예인 등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에서 우러나온‘나쁜 표현’은 많다. 만약 이 모든 표현들을‘혐오표현’으로 한데 묶고 규제한다면 표현의 자유 는 심각하게 저해될 것이다. 혐오표현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적인 인식에서 나타나는 표현으로, 표현의 형식만으로 규정할 수 없다.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이재승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혐오표현의 개념을 온갖 표현행태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사용한다면 결국 바른 말 고운 말 쓰기 운동으로 귀결될 것”이라면서 혐오표현의 개념을 명확히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혐오표현을 “부정적인 표현 중에서도 권력관계의 반영으로, 기성의 권력관계를 강화하는 표현”으로 정의했다. 그에 따르면 정치적인 사태에 대한 발언은 혐오표현이 되기 힘들다. 정치인에 대한 부정적인 표현은 그것이 형식적으로는 저급하더라도 권력관계를 거스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정치인에 대한 비판에 다른 혐오가 숨어있다면 혐오표현이 될 수 있다. 이 교수는 “현직 대통령의 정책을 보수적이라고 비 판할 수는 있지만, 비판이 여성폄하에 기초해 있다면 혐오표현에 해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혐오표현의 개념을 사회적 약자에 대한 표현으로 국한하는 입장도 이런 시각과 일맥상통한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의 상임활동가 나라씨는 “많은 사람이 바람직하다고 말하는 대상을 싫어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적다”며 “괴롭히기 좋은 사람을 미움 받는 존재로 만드는 언사가 혐오표현”이라고 말했다. 그는“표현 자체보다는 표현이 등장하는 맥락이 중요하다”며 “혐오표현이 사회적으로 만연한 것은 소수자에 대한 보호와 인정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혐오표현을 ‘차별행위’로 규정하는 입장도 존재한다. 숙명여자대학교 홍성수 교수(법학부)는 혐오표현의 개념을 “인종·종교·젠더·연령·장애·성적 지향 등 의 차별사유를 근거로 하여 개인이나 집 단을 혐오하는 표현”이라고 규정했다. 홍 교수는 “이러한 차별사유를 지닌 집단에 대한 혐오적 발언은 발언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그 집단에 대한 모욕·조롱·위협을 가하는 차별행위가 된다”고 설명했다. 혐오표현의 개념은 국제적 규범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은 “차별·적의·폭력 을 선동하는 민족적·인종적·종교적 증오의 고취는 법률로써 금지된다”는 내용 (20조 2항)을 담고 있다. ‘표현의 자유와 평등에 관한 캄덴(Camden) 원칙’ 중 ‘증오 선동’에 대한 원칙은 “모든 국가는 차별·적대감·폭력 등을 선동하는 국가적· 인종적·종교적 증오에 대한 모든 옹호를 금지하는 법을 제정하여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혐오표현의 자유? 표현에 대해서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원칙은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국제 규범이나 각국의 법률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혐오표현을 규제해야한다는 입장과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는 입장은 언뜻 상충하는 듯 보인다. 혐오표현이 아무리 기존의 권력관계를 강화하고 특정 집단에 대한 차별행위이더라도 그것을 규제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제약할 가능성이 있어 위험하지 않을까?
이에 대해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의 나라씨는 표현의 자유 보장과 혐오표현에 대한 규제가 양립가능하다고 주장 했다. 그는 “표현의 자유란 충분한 발언권을 갖지 못했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등장한 개념”이라며 “소수자의 표현의 자유가 제약받는 상황에서 혐오표현을 옹호하는 것은 소수자의 표현의 자유를 더욱 억압 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즉 진정한 표현의 자유를 위해서 소수자에 대한 혐오표현이 금지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표현의 자유 자체의 한계를 지적하는 입장도 있다. 홍성수 교수는 “표현의 자유의 한계는 물리적 해악의 가능성과 차별”이라며 표현의 자유가 무제한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물리적 해악을 야기할 직접적인 가능성이 있거나, 그 자체로 차별행위인 표현은 규제되어야 한다”며 혐오표현을 규제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표현은 표현일 뿐 행위로 이어지지 않으므로, 물리적인 해악이 없다고 생각해볼 수도 있다. 이에 대해서 이재승 교수는 “사고·말·습관·행위에는 일정한 연관관계가 있다”며 표현이 물리적인 해 악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유대인에 대한 혐오발언, 혐오감정의 표현이 유대인 학살로 이어지는 과정에 대한 많은 연구들이 존재한다”며 혐오표현의 위험성이 경험적으로도 인지가능하다 고 주장했다. 그는 “‘부정의한 국가권력 에 저항하라’는 말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기 쉽지만, ‘사회의 쓰레기(약자)를 증오하고 말살하라’는 선동은 현실형성력을 갖기 마련이다”라고 덧붙였다.

작년 동성애 반대 단체들이 서울시 시민인권헌장 제정과정에서 보인 행동은 혐오표현이 단지 표현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서울시는 작년 6월부터 인권전문가와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서 서울시민인권헌장(인권헌 장) 제정 작업을 해왔다. 인권헌장에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금지 조항이 들어갈 예정이었다. ‘건강한 사회를 위한 국민연대’, ‘청소년 건강을 위한 시민연합’ 등의 동성애 반대 단체는 이 조항이 동성애를 ‘합법화’하는 조치라면서 반대했다. 이들은 집회나 신문광고 뿐 아니라, 인권헌장 제정을 위한 공청회나 토론회에 난입하여 진행을 방해하는 등 적극적으로 자신들을 표현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혐오표현들이 난무했음은 물론이다. 서울시 인권위원회 위원장 문경란씨는 “시민인권헌장 제정을 위한 일반시민 토론회에서 이들 단체가 집단적으로 몰려와 토론을 방해했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는 “이들은 당시 자리에 앉아있던 성소수자를 바라보며 ‘당신들은 금수와 같다’는 표현을 했다”며 동성애 반대 단체들의 표현이 실질적으로는 폭력이었다는 점을 설명했다.
차별 금지에 대한 논의가 먼저 혐오표현은 소수자의 표현의 자유를 역으로 위축시키며, 물리적인 해악으로 이어지기 쉽다는 점에서 규제의 필요성을 찾을 수 있다. 규제의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우선 형사처벌이 아니라 차별시정기구를 통해서 혐오표현 을 줄이는 방법도 있다. 미국은 혐오표현에 대한 형사처벌에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스코키 (Skokie) 사건’이다. 스코키는 유대인이 많이 살던 지역으로 1977년 미국의 신나치주의자들이 이 지역을 행진하겠다고 발표한 일이 있었고, 미국의 연방대법원은 신나치주의자들의 행진을 ‘집회의 자유’를 근거로 허용했다. 대신 미국은 민권법을 통해서 인종·피부색·종교·성별· 출신국가·장애·연령에 근거한 괴롭힘을 금지하고 있다. 이 법으로 금지된 차별 행위는 형사처벌을 통해서가 아니라 차별 시정 기구를 통해서 규제된다.

다음으로는 혐오표현을 범죄로 규정하는 방법이 있다. 형법상 모욕죄는 친고죄로 모욕을 느낀 사람의 고발에 의해서 처벌이 이루어진다. 따라서 개인적인 문제에 국한되거나 일회적인 경우가 많다. 홍성수 교수는 “혐오표현의 문제는 사회구조적으로, 피해 당사자뿐만 아니라 표현을 전해들은 다른 소수자에게도 해악이 전달된다”고 설명했다. ‘나쁜 표현’은 피해자가 개인에게 국한되지만, 혐오표현은 표현의 대상이 된 집단 전반에 해악을 끼친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특징을 생각해 볼 때, 혐오표현을 범죄로 규정하고 처벌하는 방식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실제로 독일이나 영국,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 유럽 국가들도 혐오표현을 처벌하고 있다. 독일 형법 제130조 2항에 의하면, ‘일부 주민, 민족적·인종적·종교적 집단 또는 민족성에 의하여 분류된 집단’에 대한 증오심을 선동하거나, 모욕 또는 악의로 비 방한 자는 처벌받게 된다. 이는 최근 몇 년간 국회에서 발의된 바 있는 혐오표현 관련 법안들과도 유사하다.
유럽과 미국은 혐오표현을 규제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양 측 모두 혐오표현을 함부로 말하기 어려운 사회 분위기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양 지역의 시민사회는 인권 개념에 대해서 수준 높은 합의를 이루고 있다. 홍성수 교수는 “미국이나 유럽이나 혐오표현에 대해 시민사회의 차원에서 다양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노력이 진행되는 바탕 위에서 법적인 규제가 도입되는 것이다. 그는 “법적 규제도 필요하지만, 법적 규제‘만’ 도입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며, 처벌 규정 외에도 비법적·비강제적 방법이 활용되고 있는지를 더 유심히 살펴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의 나라씨는 “혐오표현을 규제하는 것을 논하기 이전에 아직 선행되지 않은 게 많다”며 표현 자체에 대한 규제 논의보다는 왜 혐오 표현이 나쁜 지부터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직 우리 사회는 인권 개념에 대해 합의를 이루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금지 조항은 결국 서울시민인권헌장에 반영되지 못했다. 또한 차별사유에 근거한 괴롭힘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 또한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한 상황이다.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과정에서 가장 논란이 됐던 조항은 “서울시민은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 지역,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용모 등 신체 조건, 혼인 여부, 임신·출산, 가족형태· 상황, 인종, 피부색, 양심과 사상,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 학력, 병력 등 헌법과 법률이 금지하는 차별을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였다. 서울시인권위원회 위원장 문경란씨는 19가지의 차별금지 사유를 명시한 이유에 대해서 “당위론에 그칠 수 있는 차별금지 선언을 차별받고 있는 사람에게 실질적으로 적용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동성애가 에이즈를 창궐하 게 할 것’, ‘동성애자는 수간을 한다’는 동성애 반대 단체의 반대논리와는 명백히 다르다.
결국 시민들의 의식이 바뀌는 것이 중요하다. 이재승 교수는 “인권과 역사교육, 시민교육이 중요하다”며 혐오표현이 잘못됐다는 점을 아는 시민을 길러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홍성수 교수 역시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합의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혐오표현에 대한 법적인 규제는 차별금지에 대한 시민적인 합의 위에서 비로소 가능할 것 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