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호
진지하게 나눠본 우리 고민들(2부)
대학구조조정, 근본적인 치료법일까

진지하게 나눠본 우리 고민들(2부)

빡빡한 졸업요건에서 이공계 경시와 ‘취업 깡패’의 사회 분위기까지

이번 좌담회는 이공 및 의약 계열의 단과대학 소속 학우 중 서울대학교 경력개발센터의 통계자료에 제시된 진로를 준비하는 패널들로 구성됐습니다. 좌담회는 <서울대저널> 기자가 크게 다섯 가지 테마의 질문을 던지고, 패널들이 각자 답변하고 서로 질문을 하며 대화를 이어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좌담회 일시 : 2015년 5월 6일(1차) 및 7일(2차)좌담회 참가자 : 곽인식(수의과대학), 김수연(농업생명과학대학), 김숭비*(약학대학), 박서연*(간호대학), 박현성*(공과대학 전기정보공학부), 손소연(공과대학 재료공학부), 유황광(자연과학대학 생명과학부), 이성빈(공과대학 재료공학부), 이우석(공과대학 전기정보공학부), 이진수*(자유전공학부), 임희동(공과대학 화학생물공학부), 최나현*(생활과학대학 의류학과), 한민재*(자유전공학부)*표는 패널의 요청에 따라 가명 처리했습니다.

20150531_204302.png
자료 출처 : 서울대학교 경력개발센터,

<2013년 서울대학교 학부생 진로의식 조사결과 보고서>

테마 1. 자기소개 및 진로 소개

(1) 유황광 : 연구실 인턴, 회사 인턴 등 다양한 경험을 했고, 지금은 대학원 진학 후 연구를 계속 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2) 곽인식 : 사람들이 많이 하는 애완동물 수의학 보다는 야생동물 수의학 쪽으로 진로를 생각하고 있다. 작년 겨울 전북대 수의대에서 야생동물 구조센터와 연계해서 진행한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여기에 참가하고 나서 진로를 확정하게 되었다.

(3) 이성빈 : 창업을 해서 한창 사업 활동을 하고 있다. 입학 전까지만 해도 공학도를 꿈꾸는 평범한 고3 수험생이었다. 그러나 입학하고 나서 유럽 및 아시아 여행, 인도 봉사활동, 호주 워킹홀리데이 등 여러 경험을 하며 새로운 세상을 봤다. 호주에서 가졌던 유모로서의 생활, 5년여에 걸친 소외지역 멘토링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교육 사업을 구상하게 됐다.

(4) 손소연 : 재료공학이 주전공이고, 화학을 복수전공 하고 있다. 지금은 국내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공부를 하기로 마음 먹었지만 다른 길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하다

(5) 최나현 : 식품영양학과에서 전과해 현재는 의류학을 전공 중이다. 식품영양학과에 오게 된 이유는 사실 성적에 맞춰서 온 것도 있다. 부모님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약대 진학을 권유 받았다. 대학에 오고 나니 약대라는 진로가 별로 끌리지 않았고, 또 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아서 가기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원래부터 좋아했던 의류 제작 쪽으로 전공을 돌리고, 아르바이트 등을 통해 경험도 쌓았다. 그러다 보니 직접 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져서 경영학 수업도 듣고 직접 현장에서 뛰며 창업자금을 모았다. 조만간 포털 사이트 의존형 온라인 쇼핑서비스를 열 예정이다.

(6) 김숭비 : 2년 동안 다른 대학을 다니고 우리 학교 약대에 들어와서 지금은 본과 1학년이다. 아직 정확하게 정한 진로는 없다. 선배들 말을 들어보면 약제 쪽 변리사가 유망한 것 같아 일단은 그 쪽으로 생각하고 있다.

(7) 박현성 : 전기정보공학부에 다니고 있다. 지금은 행정고시 기술직을 준비하고 있다. 처음 대학에 입학했을 때는 대부분의 공대생이나 자연대생이 그렇듯, 대학원에 진학해서 연구자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열악한 이공계의 연구 환경에 대한 뉴스를 보면서 내가 연구를 직접 해도 좋겠지만 정책 입안자가 돼서 좋은 연구 환경을 조성해주는 일도 가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공계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관료가 돼 관련 정책을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8) 임희동 : 화학생물공학부에 다니고 있다. 과학고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대학에 와서도 당연히 대학원에 가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2학년이 되니 군대 문제가 고민이 되더라. 일단은 우리나라 대학원에 진학해서 병역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로 했다. 외국 경험이 필요하다면 대학원 졸업 후 해외에서 박사후 과정 연구원을 하면 되지 않겠는가.

(9) 박서연 : 간호대학 4학년에 재학 중이다. 고등학교 때 문과였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면서 너무 힘들었고, 요즘 문과는 취업도 잘 안 된다던데 나중에 또 이런 고생을 반복하고 싶진 않았다. 원래부터 보건복지 쪽에 관심도 있었고 해서 간호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다. 간호학을 공부한 이력을 살리려면 차후 어느 분야로 진출하든 간호사 경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졸업 후 병원에 들어가서 간호사로 일을 할 생각이다. 간호사 일을 계속할지 아니면 교수가 되기 위해 공부를 더 할지는 그때 가서 결정할 일이다.

(10) 김수연 : 농업생명과학대학에서 작물생명과학을 전공하고 있다. 신약 개발을 통해 희귀병을 고치고 싶다는 생각으로 약대에 진학하고 싶었다. 하지만 약대가 6년제로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은 때라 정보도 별로 없었고, 약대 준비를 전공 공부와 병행하기 힘들어 약대 진학은 포기했다. 그 이후로 생각한게 국제기구에 진출하는 것이었다. 농업을 공부했으니까 국제기구에 들어가서 식량문제나 기후문제 관련된 일을 하면 보람이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 또한 준비해야 할 것이 만만치 않더라. 부모님께서도 내가 빨리 사회에 진출해서 돈을 벌기를 원하시기도 해서 일단은 사기업 취직을 준비하고 있다. 농업이나 식품 관련 기업으로 갈 계획이다.

(11) 한민재 : 자유전공학부에서 경제학과 통계학을 전공하고 있다. 지금은 의대 학사편입을 생각 중이다. 의사는 ‘돈을 많이 번다, 못 번다’를 떠나서 전문직이라는 장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나이 들어서도 안정적으로 계속 수입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12) 이진수 :  자유전공학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창업이나 프리랜서, 연구직 쪽을 생각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내년부터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하거나, 졸업 후 학사장교 복무, 자교 석사학위 취득 후 산업체 전문연구요원 복무 등을 고려하고 있다.

테마 2. 불안

(1)유황광 : 스스로 커리큘럼에 갇히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어려운 것 같다. 진로 고민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전혀 갖춰져 있지 않다. 무턱대고 학과를 나가서 찾자니 방향조차 정해지지 않아 막연하고, 불안감만 커진다. 그래서 일단 나에게 주어진 길인 전공 공부를 열심히 하고 졸업을 해보자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2) 최나현 :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고 난 지금은 행복하다. 대학에 와서 정신적으로 방황도 많이 했고 우울했었는데, 지금은 할 일이 많고 힘들지만 행복하다. 심하게 우울할 때는 안 좋은 생각도 했었지만, 이제는 다르다.

(3) 김수연 : 굉장히 불안하다. 사기업을 준비하고 있는데 지원할 기업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현직자하고 만날 기회도 없고, 내게 있는 정보라곤 회사 홈페이지에 제공된 것이 전부다. 회사 분위기나 복지에 대해 알고 싶은 점이 많은데 이런 것들은 사실 회사에 들어가기 전까진 모르는 것 아닌가. 또 과연 그 회사에 들어갈 수는 있는지, 그 자체도 많이 불안하다.

(4) 박서연 : 이곳에 있으면 세상이 평등한 것 같다. 하지만 병원에 가면 그렇지 않다. 특히 나이 드신 분들이 여자라고 무시하고, 간호사라고 무시한다. 이 일이 정말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데 실제 일터에서 그런 대우를 받으며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과연 이것을 견딜 수 있을지 불안하다.

(5) 이우석 : 일단 연구 분야가 너무 다양해서 어느 랩에 들어갈지에 대한 고민이 든다. 학점도 높고 의지도 넘치던 친구들이 학년이 올라가면서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고 변리사 등 다른 직업을 선택하는 것을 볼 때마다 ‘내가 대학원에 가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듣는 학부 전공과목도 어려운데 내가 대학원 수업을 듣고 계속 연구를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테마 3. 학과, 커리큘럼 만족도

(1) 손소연 : 학부생들이 학과에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은 교수를 어려워하고 찾아가기 힘들어 하지만 교수들은 또 학생들이 찾아오기를 바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짧은 시간 안에 진로를 정하는 과정 자체가 학생들에게는 버겁다. 선배들과의 만남 등 학과에서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2) 유황광 : 맞다. 학부 진로 간담회에서 학부 운영의 기반은 단순한 이익모델이 아니라는 의견이 나왔다. 동감한다. 교수 대 학생뿐만이 아닌, 어른 대 아이, 경험자 대 비경험자로서 학생들에게 멘토가 되어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3) 박서연 : 간호대가 연건에 있지 않나. 하루 수업이 다 끝나면 4시, 5시다. 그때 관악으로 와서 다른 과목 좀 들어보려고 하면 수업 열리는 것이 없다. 간호대에서 복수전공을 하려면 결코 4년 안에 졸업할 수 없을 것이다.

(4) 김숭비 : 복수전공에 대해서는 나도 할 말이 있다. 서울대로 오면서 가장 기대했던 것이 ‘종합대학’이라는 점이었다. 원래부터 심리학에 관심이 많아서 수업을 좀 들어보려 했다. 하지만 수강신청 가능 학점 20학점 중 약대 필수 과목이 20학점으로 다 채워져 있다. 그러니 교양이라도 하나 듣고 싶어도 들을 수가 없다.

(5) 박현성 : 복수전공을 하면 초과 학기를 고려하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든다. 애초에 4년은 전공 하나를 배우기 위한 기간 아닌가. 학교를 오래 다녀야 하는 것은 복수전공을 선택한 본인이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테마 4. 단대별 경향

(1) 최나현 : 식품영양학과의 경우 영양사 자격증을 따는 것보다는 전공을 살려 대기업으로 취직하려는 분위기인 듯하다. 의류학과는 의외로 사업하는 사람이 많다. 꼭 의류 사업이 아니더라도 마케팅 수업이 있어서 그런지 제각기 아이템을 생각해서 창업하는 선배들이 많다. 전과하려는 사람도 많은 편이다.

(2) 곽인식 : 수의대의 경우 대부분 무난하게 졸업하고 국가고시에 합격한다. 이후 개업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적다. 사료나 제약 회사 또는 화장품 회사로 취직도 많이 하고, 검역이나 역학 조사 쪽으로 전환해 정부 산하기관에서 일하기도 한다. 이번 에볼라 사태 때도 수의대 출신이 파견됐었다.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진로가 다양하다.

(3) 박서연 : 아까도 말했다시피 간호 관련 일을 하려면 일단 간호사 경력이 필요하다. 대부분 병원에서 간호사 일을 한다. 하지만 계속 간호사로 남아 있는 사람은 거의 없고 보통 대학원을 많이 간다. 또 우리나라에서는 간호사에 대한 처우가 너무 좋지 않다 보니 미국 간호사도 많이들 원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는 간호사 수가 너무 적어 일이 힘들 뿐만 아니라, 환자에게도 제대로 된 간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 반면 미국에서는 환자 한 명에 4명의 간호사가 배정된다더라.

(4) 김숭비 : 약대는 6년제로 바뀐 지 얼마 안 돼 자료가 많지는 않다. 대신 4년제 때의 자료를 보면 정말 진로가 다양한 것 같다. 교수님께서 랩 졸업생들의 근황을 보여주셨는데 변리사, 교수, 연구원, 화장품회사, 식약처, 개업 등 여러 가지가 있더라.

(5) 박현성 : 근데 대학원 나와도 교수되기는 힘들다. 대학원에 가더라도 결국엔 취직을 많이 한다. 요즘엔 안정성을 고려해 대기업 말고 정부출연연구소도 많이 간다.

테마 5. 사회 분위기

(1) 박서연 : 문과생들이 제일 싫어하는 얘기가 수학이 싫어서 문과 갔다는 것 아닌가. 이과도 마찬가지다. 이과생들도 철학이나 사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이과로 온 것이 아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공직을 보면 이과 출신에게는 상한선이 있다. ‘기술직이면 당연히 상위직으로 갈 수 없는 것 아냐?’ 하는 인식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한다.

(2) 김숭비 : 정부에서 말로는 이공계를 장려한다고 하면서 정책을 정말 못 만든다. 이공장이라고 있는데, 2년 동안 받았던 것을 약대 오면서 전부 토해내야만 했다. 한 마디로 ‘이공계 가서 공부하라고 장학금까지 줬는데 다른 데 갔으니까 다 뱉어내라’는 것이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일단 이공계하고 비이공계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게 문제다. 의약 계열로 가도 기초 학문 연구를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않나. 이공계에 진입할 때부터 다른 길로 진출할 여지를 아예 없애버리는데 누가 이공계로 가고 싶겠나.

(3) 박현성 : 사람들이 너무 근시안적으로 정책을 만드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이공계열 학생이 의치한 쪽으로 빠지는 것을 막고 싶으면 이공계열을 떠나는 근본적인 원인을 고치려고 해야 한다. 나는 그 근본적인 원인이 ‘안정성’ 문제라고 생각한다. ‘100세 시대’라고 하면서도 60세가 안 돼 엔지니어들이 회사에서 쫓겨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대학에서 공학을 배우고 기업에서 수십 년 동안 연구 활동을 해 온 사람이 치킨집을 하고 있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큰 낭비다.

(4) 임희동 : 그래도 지금 현실에서는 문과보다는 이과가 더 좋은 대우를 받고 있는 것 같다. 장학금만 해도 이공계 관련 장학금이 훨씬 많지 않나. 기업에서도 이공계 출신을 선호한다.

한민재 문과도 이과도 요즘은 다 ‘헬’이다. 그나마 할 만한 것은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밖에 없는 것 같다.

(5) 이성빈 : 세상이 만들어 놓은 길로만 가려 하지 않고 ‘내가 왜 이 일을 좋아하는지’, ‘왜 이걸 하고 싶은지’를 생각했으면 좋겠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하고 싶은 것을 찾은 다음, 학과에서 그와 관해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찾아보는 건 어떨까. 자신의 ‘니즈’가 본질적으로 충족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6) 손소연 : 서울대학교가 순수 학문의 마지막 요람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세상은 순수학문을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시키는 대로 일만 하는 사람만을 원하는 것 같다. 문과에서 취직을 위해서 공학을 배우는 것도 사회적인 요구 때문인 것 같다. 슬픈 현상이다.

(7) 이우석 : 경제적 가치만 놓고 봐서는 이과에서 배우는 것들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더 많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너무 돈의 논리만을 따라가면 안 된다. 또한 계속 문과와 이과를 나눠서 얘기했는데, 둘을 너무 경계 지어서 생각하는 습관을 버렸으면 좋겠다.

(8) 이진수 : 7080 세대는 지금의 현실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더 이상 대학교 졸업장이 소위 말하는 ‘스펙’이 될 수 없는 시대가 열렸고, 아무리 교육 여건이 좋은 학교를 졸업해도 회사가 써먹을 수 없으면 취업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정부가 청년 실업에 대한 해결책이자 경기 부양책으로 꺼내든 것은 쌩뚱맞게도 ‘창업 장려’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사회 안전망이 매우 취약하다는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결국 언젠가 이 문제는 사회의 정상적 운영을 위협할 정도로 심각한 수위로 불거져 나올 것이다.

댓글 댓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Previous Post

132호

Next Post

대학구조조정, 근본적인 치료법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