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5516 노선의 저상버스가 갑작스럽게 사라졌다. 과속방지턱 때문이었다. 5516 노선이 지나는 학내 순환도로에는 50여 개의 과속방지턱이설치되어 있다. 저상버스는 휠체어를 탄 승객도 이용할 수 있도록 차체가 낮게 설계되어 도로 조건에 매우 민감하다. 5516 노선을 운영하는 한남운수 측은 학내 과속방지턱에 충돌하면서 저상버스 하단부 고장이 계속적으로 발생했고, 이에 수천만 원의 손해를 봤다며 저상버스 운행을 중단했다. 한남운수와 서울시는 서울대가 과속방지턱 문제를 해결할 경우 저상버스를 다시 배치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학교는 학내 과속 문제가 심각하고, 교통사고 방지를 위해 과속방지턱을 철거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후 해당 문제가 두 차례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지만 학교는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그러던 중 2014년 출범한 학내 장애인권동아리 ‘턴투에이블(TurnToAble)’이 2015년 4월 10일경 ‘돌려줘요! 5516 저상버스TF팀(5516 TF팀)’ 을 구성했고, 이어 장애인의날(4월 20일) 관련 서명운동을 펼쳤으며 같은 달 28일 본부와의 면담을 진행했다.

과속방지턱에 밀려난 저상버스 5516 저상버스가 사라지면서 휠체어를 이용하는 지체장애학생들은 큰 불편을 겪게 되었다. 학교는 애초에 장애학생 셔틀버스가 있으므로 저상버스를 운행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장애학생들은 장애학생 셔틀버스만으로는 이동권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다며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장애학생 셔틀버스는 단 1대뿐이며, 학기 초 신청을 받아서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서 운행되기 때문이다. 운영시간도 저녁 6시까지이기 때문에 그 이후에는 이용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셔틀버스는 캠퍼스 내에서만 운행하기 때문에 외부로 나가고 들어올 때는 대기시간이 불확실한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5516 TF팀’ 팀장 이화영(통계 09·졸업)씨는 “늦은 시간 밖에 나와 있을 때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없다는 심리적 압박감이 크다”고 말했다.(<서울대저널> 2014년 6월호, ‘5516 저상버스를 찾습니다’) ‘도로안전시설 설치 및 관리지침’에 따르면 과속방지턱 설치 기준은 ‘높이 10cm 이하, 폭 3.6m 이상’이다. 그런데 지침이 지금보다 덜 엄격하던 시절 설치된 교내 과속방지턱은 현재의 표준 높이를 훨씬 넘어서는 경우가 있다. 저상버스는 이러한 과속방지턱에서 주로 손상을 입었다. 기준을 넘어서는 과속방지턱의 높이만 조절해도 저상버스 손상은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턴투에이블 측은 4월 28일 본부 담당 직원과의 면담 자리에서 장애학생들의 실태를 직접 조사한 보고서 등을 참고 자료로 제시했다. 논의 끝에 본부 측은 과속방지턱 중 특히 높은 네 개를 먼저 수리하고 저상버스 도입 가능 여부를 시험해 보자는 안에 합의했다. 시설지원과 권정일 담당관은 “캠퍼스관리과에서 교통량 영향 등 실무적 검토를 거친 뒤, 시설관리과에서 여름방학 중 정기 보수 공사에서 과속방지턱 4개를 규격에 맞게 재설치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과속방지턱이 있는 한 고장 위험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과속방지턱 설치 지침은 승용차를 손상시키지 않는 수준에서 결정되었고, 승용차보다 차체가 낮은 저상버스에는 여전히 손상을 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저상버스가 다니기 위해서는 학내 과속방지턱을 모두 철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과속방지턱을 마냥 없앨 수만은 없는 이유 그러나 학교에서 과속방지턱을 섣불리 제거할 수 없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캠퍼스 내 도로는 구내도로로 도로교통법상의 도로에 해당하지 않는다. 때문에 학내 규정속도가 30km/h로 정해져 있지만 과속 차량을 잡아낸다고 하더라도 벌금 등으로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 한마디로 감속을 강제할 수단이 없기에 운전자의 양심과 과속방지턱 등의 감속 유도 시설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캠퍼스관리과 고광석 행정관은 “학내 차량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민원이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어 과속방지턱을 아예 없애기는 어렵다”면서 “게다가 과속방지턱의 높이가 완만하면 감속 효과가 떨어져 학생들의 안전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설치한 과속방지턱이 장애인 이동권과 저상버스를 위협하는 가치 충돌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소수자 배려하는 캠퍼스 되길 교통관리 전문가 장수은 교수(환경대학원)는 “과속방지턱은 차량 속도를 제어하는 가장 ‘저렴한’ 방법이라 자주 쓰이는 것일 뿐, 결코 ‘최선의’ 방법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는 “비용이 더 들겠지만, 소수자의 인권을 위해 적극적으로 대안을 찾아야 한다”며 “지성인의 집단인 대학에서 장애인 이동권이 침해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 교수는 과속방지턱의 대안으로 ‘교통정온화기법’(그림 참조)을 제시했다. 평지의 도로에는 S자형 도로를 시공하고, 경사로에는 차로 폭을 좁혀(choker 기법) 물리적·심리적으로 차량 속도를 제어하는 것이다. 또한 그는 궁극적으로는 차량 수와 차량 속도를 모두 감축시켜 차량과 보행자 사이 힘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근본적으로 차량 과속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교통사고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 교수는 중장기적·근본적 해결책으로 대중교통을 확충하여 교통량을 줄이고 순환도로는 차와 사람이 공존하는 공유공간으로 조성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경사로에는 차로 폭을 좁히는 기법(choker)을 이용하여 물리적·심리적으로 차량 속도를 제어할 수 있다.
고광석 행정관은 이에 대해 “자세히 검토를 해야 알겠지만, 학교가 산지에 위치해 있고 건물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어 시공하는 데 난점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또 학내 차량은 구성원 차량이 대부분이라, 교통량 감축 역시 어려운 부분”이라면서도 “학내 도로를 보행자 친화적 공간으로 조성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 다양한 대안들을 장기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의견을 밝혔다. 과속방지턱을 없애고 저상버스가 다시 운행되려면 학내 교통량 제한과 속도 제한이 필수적이다. 위와 같은 공학적 기법으로 개선을 이루어낼 수도 있겠지만, 차량 운전자들의 배려와 인식 개선 역시 필요한 지점이다. 한편 서울시가 ‘서울 교통비전 2030’을 통해 2030년까지 저상버스를 100% 보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상황에서 서울대의 선택은 앞으로 상징적 사례가 될 수 있다. 서울대가 어떻게 저상버스와 과속방지턱의 딜레마를 해결하고 소수자에 대한 배려를 실천해 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