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단 ‘애인’의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 포스터
‘애인’은 장애를 가진 단원들이 주축이 되어 2007년에 창단된 극단이다. 애인의 배우들은 다양한 신체 및 정신적 특성들을 가지고 있으며, 이 특성들은 관객들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데 때때로 ‘장애요소’로 작용한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호흡, 말, 몸짓을 통해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방식을 찾고자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애인의 활동은 연극을 만드는 과정 전반에 걸쳐 있다. 공연을 올리는 것 뿐만 아니라, 단원들의 연극에 대한 이해와 기술을 향상시키기 위한 스터디 및 아카데미도 운영한다. 올 여름에는 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과 극단 ‘산’과의 협업을 통한 연극 아카데미를 열며, 8월과 10월에는 공연을 올릴 계획이다. 특히10월에는 이반 투르게네프의 단편소설 <무무>를 각색하여, 다양한 움직임 요소들을 이용해 청각장애인인 게라심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풀어낼 예정이다. 애인만의 색깔이 잘 드러나는 공연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애인이 극단의 이름을 알린 본격적인 계기는 <고도를 기다리며>(사무엘 베케트 작, 이연주 각색/연출)라는 작품이었다. 애인은 2010년도부터 무려 4년 동안이나 수정을 거듭하여 여러 번 이 공연을 올렸다. 2013년도에는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에서 대상을 포함한 3관왕에 오르기도 하며 한국 장애 연극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렇게 긴 작업 기간은 장애인 극단이 자신들의 ‘차이’를 장점으로 살린 연극을 만드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연극 가능성 중 하나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무대적 상상력을 통해 재현해내는 힘이라면, 애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이러한 가능성을 충분히 실험하는 작품이다. 현실에는 없는 “장애인들의 시간을 인정하고 기다려주는 세계”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연주 연출은 “애인과의 작업을 통해 배우들을 기다리는 법을 많이 배운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애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는 이런 기다림이 묻어난다. 장애를 가진 배우들에게는 간단한 대사 한 마디나, 동작 하나에도 더 힘들고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이런 배우들을 고려하여 장면과 대사들을 대폭 줄이는 대신 기다림의 여백을 두었다. 템포를 강조하여 배우들이 빠르게 말을 하거나 움직이도록 밀어붙이기 보다는, 필요한 시간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느리다고 해서 연극이 느슨하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배우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말하고 움직이며 무대 위의 매 순간을 채우도록 훈련되었다. 관객들은 무의미하다고 여기기 쉬운 ‘기다림의 시간’ 동안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는 몸짓을 보게 된다. 기다림을 통한 이러한 연출 방식은 단원들이 가진 배우로서의 에너지와 역량을 끌어올리는 힘이 되었던 것이다.
베케트의 원작 자체가 기다림에 대한 연극이라는 점에서, 애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기다림에 대한, 기다림에 의한, ‘기다림의 연극’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애인은 자신만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4년 동안 기다렸다. 이 기다림의 끝에 연출과 배우들은 고도를 만났을까? 분명한 것은, ‘애인 만의 좋은 연극’에 대한 그들의 기다림은 여전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고도를 기대하며, 애인의 기다림을 응원한다.
*이 글은 2015년 4월 25일 글쓴이가 진행한 극단 애인의 대표 김지수씨와의 인터뷰를 토대로 작성 되었습니다. 인터뷰의 상세한 내용은 http://www.drama-in.kr/2015/05/loveaplay.html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최희범(공연예술학 협동과정 석사과정 수료)

연기론, 연기자의 몸에 대한 관심의 연장선에서 ‘다른 몸’들의 연극인 장애 연극을 공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