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는 세계 유수 대학과 비교해 짧은 기간 동안 놀랍게 성장했다. 연구력은 이미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고, 재정과 시설도 상당히 발전했다. 그러나 대학의 연구가 눈부신 성장을 하는 동안 상대적으로 희생된 것이 있다. 바로 교육이다.
연구 부담에 비해 너무나 적은 교육의 비중
대학의 3대 기능에는 교육, 연구, 봉사가 꼽힌다. 이중에서 대학의 출발이자 기초가 되는 것이 교육이다. 그러나 현실은 조금 다르다. 교수가 훌륭한 연구를 하면 각종 상이나 연구비를 지원받을 수 있고 업적 평가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반면 “교육을 잘 했을 때의 인센티브는 거의 없다”고 교수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거의 유일하게 교수학습개발센터(CTL)에서 시상하는 교육상이 있다. 하지만 객관적 평가가 어렵다 보니 강의의 질을 보기보다는 교육과정 개발 등 증명 가능한 업적에 주는 유명무실한 상이 돼버렸다는 의견이 있다.
교수가 활동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요소에서 인센티브의 유무가 전부는 아니다. 그렇지만 교수는 한정된 시간에 개인 연구, 대학원생 논문 지도 등 많은 업무를 소화해야 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부담이 큰 연구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 몇 년 전부터 크게 강화된 정년보장 임용 심사는 젊은 교수들에게 연구 부담을 더욱 압박한다.
조흥식 교수협의회(교협) 회장은 “학생들은 양질의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면서 “현재 연구 중심으로 돼있는 교원평가제도를 교육도 중시하는 쪽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했다. 자연대에서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2학기부터 학생의견, 동료교수의견, 강의만족도조사를 반영한 ‘우수강의상’을 시상하기로 했다. 김성근 자연대 학장은 이에 대해 “상은 그 공동체가 지향하는 가치를 드러낸다. 좋은 강의가 명예로운 업적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 서울대학교 교수학습개발센터(CTL) 교육지원부에서는 교수법 워크숍, 교수 집담회, ‘강의촬영 및 컨설팅’ 등 다양한 교수자 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박나연 사진기자
측정하기 어려운 ‘교육의 질’
교육이 연구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강조되지 않는 데는 ‘교육의 질’을 측정하고 비교하기 어렵다는 이유도 있다. 연구 실적은 주요 학회지 게재 횟수 등으로 양적 평가가 가능하다. 그렇지만 교육은 객관적이고 정량적인 평가가 어렵다. 구성원들이 합의할 수 있는 알맞은 측정 도구 개발이 요구되는 지점이다.
그나마 유일하게 시행되는 평가는 학생들이 수행하는 강의만족도조사다. 강의만족도조사의 결과는 본부에서 수합한 다음 각 교수에게 메일로 통지되며 담당 학장과 학과장에게도 전달된다. 이를 통해 전체 평균, 단과대학 평균, 그리고 자신의 위치를 비교할 수 있다. 학교에서는 교수들에게 강의만족도조사 결과를 그래프화해서 효과적으로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점수가 평균보다 매우 낮으면 학장 면담이 진행되기도 한다. 교수학습개발센터 교육지원부 민혜리 교수는 “교수들이 강의만족도조사를 상당히 신경쓴다”며 “결과가 두려운 나머지 메일을 열자마자 보지도 않고 바로 닫아버리는 분도 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하지만 강의만족도조사 결과는 대개 참고 자료로만 사용된다. 시간강사 재계약 시 강의평가 결과를 중요 요소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과 비교되는 지점이다. 이는 강의만족도조사 자체의 신뢰성이 낮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 성인 학습자의 강의 평가는 대개 신뢰할 만하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학생들이 교육 과정을 평가하거나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정확히 평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많은 학생들이 무성의하게 조사에 응하기도 한다.
교수법 프로그램 있지만 이용률 낮아
서울대학교 교수학습개발센터는 높은 수준의 교수법 개선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제공하는 프로그램은 교수법 워크숍, 교수 집담회, 강의촬영 및 컨설팅이 있다. 그에 반해 워크숍에 의무로 참여해야 하는 신규 임용 교수를 제외하고 실질적으로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교수는 적은 형편이다. 다만 공대와 자연대는 정교수 임용을 위해서는 교수법 워크숍에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
일부 사립대에서는 낮은 강의평가 점수를 받은 교수에게 교수법 개선활동에 참여하도록 강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민혜리 교수는 “교수처럼 높은 전문성을 가진 이들에게 마치 벌을 주듯이 워크숍에 참여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자율적으로 개선할 수 있게 인센티브로 유도해야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또한 “앞으로 교수가 될 사람인 시간강사, 박사과정생을 위해 ‘예비교수자 양성과정’도 운영하고 있다. 느린 변화겠지만 미래에는 교육에 대한 훈련을 받은 교수들이 많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흥식 교협 회장은 “동료 교수와 서로의 강의를 참관하고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좋은 교육환경 만들기 위한 노력 필요해
교수자가 보다 깊이 있는 교육을 진행하기 위한 교육 환경의 개선도 요구된다. 대표적으로 대형 강의에서는 학생과 활발한 소통이 어렵기 때문에 전임 교원을 늘리고 강의당 학생 수를 줄여나갈 필요가 있다. 현실적으로 대형강의일 수밖에 없다면 강의 조교를 확충하는 것도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조흥식 교협 회장은 “교수와 학생이 수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소정의 실비를 지원하는 제도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교수가 성향에 따라 강의 전문 또는 연구 전문 노선을 스스로 선택해 이에 따라 평가받을 수 있게 하거나 강의년, 연구년을 운영하는 제도도 고려해볼 수 있다.
학문보다는 ‘스펙’이 우선시되는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 역시 양질의 교육을 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의견도 있다. 안병직 기초교육원장은 “학점이 중요해서인지 어려운 강의를 피하고 조금만 어려워도 쉽게 수강취소를 하는 사실이 통계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면 의욕적으로 강의에 임하는 교수들이 위축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에 덧붙여 “더 어렵더라도 많이 배우는 수업에 (학생들이) 도전 정신을 가지고 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