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한국, 건강할 권리

우리는 메르스 사태로부터 무엇을 배웠나?

메르스, 유행은 끝났다?

  이제 메르스 유행은 끝났다고 한다. 더 이상 뉴스의 아나운서들은 불안한 표정으로 사망자의 숫자를 보도하지 않고, 네이버의 실시간 검색어는 또 몇 명의 환자가 어디의 어떤 병원에서 확진되었는지에 대해 관심이 없다. 전 국민이 마스크를 사러 약국으로 달려가는 일도 없어졌고, 의료인용 N95 마스크를 들여놓았다고 문에 붙여 놓은 가게도 더 이상 없다. 이쯤 되면 우리는 메르스라는 이 이름도 생소한 질병을 살면서 다시 볼 일이 없을 거라는 확신을 가질 수도 있다. 그렇게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우리는 좀 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과연 우리는 조금 더 안전한 사회에 살게 되었는가? 우리는 메르스 사태에서 정부와 국가 권력을 비롯한 각 행위자들이 어떤 식으로 안이하고 미흡하게 대응했는지 지켜볼 수 있었다. 어떻게든 정보를 감추고 ‘유언비어 엄벌’ 따위를 쩌렁쩌렁하게 외쳐대던 정부는 다른 전염병 사태가 발생한다면 국민 불안을 효과적으로 종식시킬 수 있을 것인가? 수십 명이 감염되는 등 메르스 전파의 온상이었던 삼성병원은 또 다른 전염병 사태에서는 안전할 수 있을까? 또 무슨 생소한 이름이 붙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 상륙할 수도 있는 다른 전염병으로부터 우리는 안심하고,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냐는 질문에 대하여, 당신은 자신있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가? 

  아마 메르스 유행 이후, 몇몇 사소한 것들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주무부처였던 보건복지부의 장관을 의사가 맡게 될 수도 있고, 몇 가지 질병 안전 관련 매뉴얼들이 새로 생겼을 수도 있다. 그러나 또 새로운 전염병이 들어오면 ‘정부 대응수칙을 어긴 환자’들은 역시 또 잘못을 할 것이고 어떤 천재적 과학자가 백신을 새로 개발하거나, 헌신적인 의료인들의 노력을 통하여 전염병을 결국엔 막아낼 것이다. 물론 그 사이 불운한 누군가는 명을 달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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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최고의 병원이라고 하는 삼성서울병원. 저 화려한 건물 안에는 최고의 의료진과 검진기기들이 있다. 그리고 하청노동자와 안전평가 따위는 민영화시킨 지독한 안전불감증도 있다. ⓒ삼성서울병원

메르스, 한국사회

  이 메르스 사태 중에 일어난 일들을 우연한 사건, 개인의 책임으로 치부하는 것은 아주 편한 선택이다. 결국 우리는 바꿔야 할 것이 별로 없다고, 추상적인 ‘시민의식’ 혹은 몇몇 개인의 일탈행동이 비극의 원인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사실인가? 환자로부터 감염된 가족이 메르스를 퍼트린 것을 두고 조선일보처럼‘ 한국식 문화의 폐해’를 운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간호 인력이 OECD 최저 수준이라 어찌 되었건 가족이 환자를 책임질 수밖에 없다면, 이것을 단순히 문화의 문제로 치부할 것은 아니다. 삼성서울병원의 부분 폐쇄를 부주의한 직원들이 일으킨 우연한 사고로 포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직고용 직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하청노동자를 아무런 지시도 주지 않고 질병과 그냥 맞닿도록 내버려두어 결국 온 병원이 바이러스에 노출된 것이 과연‘ 우연한 사고’인가? 

  이런 파국들은 사실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삼성서울병원에서 일하는 용역 직원으로, 온 병원에 병상을 옮기는 일을 하는 137번 환자는 메르스에 감염된 채로 9일 동안이나 병원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이 환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간병노동자와 청소노동자의 15%는 환자로부터 감염된 적이 있다(노동환경연구소, 2013). 결핵, 독감 등에 감염된 채로 다른 환자를 만들어낸 노동자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통하여 위와 같은 문제들은 그 일각을 간신히 드러내었을 뿐이다. 수많은 사고들이 발생하지만, 가장 충격적인 일부-작금의 메르스 사태처럼-매스컴을 통해 알려지고, 그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이 해결된다. 

  각 행위자들은, 예컨대 삼성병원은 더 적은 돈을 들여 더 많은 이윤을 내기 위해 간호사들에게 중노동을 강요하고, 병원 유지에 필수적인 업무를 외주화시킨다. 병원에서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감염 예방은 도외시한 채 쇼핑몰을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사유화시키고, 음압병상과 격리병동을 없앤다. 메르스 사태에서 격리된 확진자들을 책임지는 공공병원들은‘ 경영 개선’이라는 명목 하에 축소, 폐쇄당한다. 공공병원에 입원했던 저소득층 환자들은 메르스 때문에 다른 병원을 찾아다니다 거부당하고 집 안에서 병이 도지지 않기만을 기다려야 한다. 단순히 병원뿐만이 아니다. 자가 격리 대상자들은 급여 보전은커녕 최저생계비에도 턱없이 못 미치는 금액을 받고, 고객들이 불안해 할 수도 있으니-돈을 안 쓸 수도 있으니-노동자들은 마스크를 쓰지 못한다. 극히 소수의 이윤을 위하여 온 사회가 고통을 짊어지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이윤의 추구가 절대적 선인 사회는 가만히 내버려 둔 채, 슬로건을 만든다, 감염병 관리센터를 세운다 한들 근본적으로 우리가 더 안전해질 수 있는가? 전염병으로부터는 약간 더 안전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안전과 건강을 위협하는 다른 수많은 요인들에 대한 문제의식 없이, 원인을 치료하지 않고서는 그저 미봉책이 될 뿐이다. 누군가는 병에 걸리고, 사고를 당하고, 죽어갈 것이고 나머지 사람은 ‘이번에는’ 불운을 피했을지언정 계속 안전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건강할 권리를 위하여

  새로운 약을 개발하면 더 건강해지는가? 더 큰 병원을 짓고 번쩍번쩍한 새 검진 기기들을 들여 놓고, 최신 수술방법을 배워 들어온 사람들이 많으면 대한민국은 좀 더 건강한 나라가 될 수 있는가? 우리는 이미 메르스 사태에서 그 실상을 보았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크고 좋은 병원이라는 삼성병원에서 수십 명이 감염되고 사망자가 발생하는 것을. 만약 초기 전파자가 입원했던 병원이 돈이 덜 되더라도 감염 관리 지침을 충실하게 지켰더라면, 삼성병원이 비정규직을 차별하지 않고 똑같이 관리를 했더라면, 이 나라가 일하는 사람에게 좀 더 관대한 나라였다면. 그렇다면 메르스는 조금 덜 위험한 질병이었을 것이다. 

  꼭 메르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작년 세월호에서도 그랬다. 안전보다, 다른 무엇보다 이윤이 중요했던 사회는 300명을 바닷속에 수장시켰다. 아니, 굳이 대형 사고들을 꺼내올 필요도 없다. 하루에 대여섯 명씩, 1년이면 2천여 명이 산업재해로 사망한다. 일하다 죽은 것을 인정받지 못하는 사망자들을 합치면 얼마나 될 지도 모른다. 죽음만 있을 것인가? 이윤이 먼저인 사회는 사람들을 죽이고, 다치게 만들고, 기회를 앗아가고, 총체적 박탈을 만들어내었다. 이 짧은 글로는 도저히 다 언급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무엇을 어떻게 해야 바뀔 수 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사람은, 사람이니까 지금보다 더 존중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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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기태(의예 14)

의예과 재학. 사회학과 복전. 사회 속에서의 건강 실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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