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기술지주회사가 설립된 지 올해로 7년이다. 학내에서 개발된 기술을 사업화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서울대 기술지주회사는 20여 개의 자회사들을 통해 지금까지 다양한 제품을 선보였다. ‘닭터의 자연’, ‘밀크플러스’, ‘밀크플러스 우유 식빵’ 등 육류에서부터 유제품, 제과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특히 올해는 자회사 ‘밥스누’가 건강한 두유를 표방하며 출시한 ‘약콩두유’가 많은 주목을 받기도 했다. 법인화 이후 학교의 자체재원 확보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기술사업화의 중요성이 다시 대두되고 있는 지금, <서울대저널>에서는 서울대 기술지주회사의 사업을 돌아보며 국내 산학연 협력 정책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고민해봤다.
대학의 연구 성과를 사회로 내보내다
대학은 특허 등의 형태로 이뤄진 학내 구성원들의 연구 성과 중 사업화 가능성이 높은 것을 선별해 회사를 만들고 제품을 출시하는데, 이때 기술지주회사는 이러한 회사들의 일정 지분을 가지고 사업화의 전 과정을 지원한다. 일반적으로 ‘지주회사’라 하면 상법 상 지주회사를 떠올리기 쉽다. 상법 상 지주회사는 경영의 효율성과 투자구조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이미 존재하는 계열 회사들의 지분을 모아 설립된다. 반면 ‘산업교육진흥 및 산학연협력촉진에 관한 법률(산촉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기술지주회사는 학교 기술의 사업화를 목표로 하는 만큼 기술지주회사가 먼저 설립된 후 기술지주회사가 자회사를 설립해 경영을 지원하는 형태가 일반적이다.
사실 기술지주회사를 통해 자회사를 설립하는 방식 말고도 대학이 보유한 기술을 사업화할 수 있는 다른 방식들이 존재한다.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에서 발표한 ‘산학연협력기술지주회사 설립 및 운영 매뉴얼’에 따르면 사업화 유형에는 ▲산학연구 ▲기술이전 ▲창업보육센터 ▲실험실창업 ▲학교기업 등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존의 방식에는 여러 한계점들이 있다. 예를 들어 산학연구의 경우 기업의 지원금으로 연구가 진행되기 때문에 기업이 원하지 않는 연구는 사업화의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차단되며, 기술이전의 경우 기술이 일단 기업에 넘어가면 연구자와 기업 간의 교류가 지속적으로 이뤄지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기술지주회사 제도는 기존 방식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2005년에 도입이 결정됐다. 기술지주회사 제도 하에서는 대학이 주도적으로 연구 과제를 발굴하고 필요에 따라 연구 성과 중 일부를 선택해서 사업화할 수 있다. 서울대 기술지주회사 대표이사 박종래 교수(재료공학부)는 “교수가 주제를 정해 연구한 결과물에서 사업화가 이뤄지기 때문에 기술지주회사 제도 하에서는 연구의 자율성이 보장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술지주회사가 자리를 잡으면 자회사로부터 창출된 수익이 배당이나 시설 지원 등의 형태로 학교로 환원된다. 학교로 돌아온 수익은 다시 연구비 등으로 사용돼 또 다른 사업화의 기반이 마련되며 선순환 구조를 이룬다. 실제로 서울대 기술지주회사의 자회사 중 하나인 ‘밥스누’는 수원에 있는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에 1억 8천만 원 정도의 교육 시설을 기부하기도 했다. ‘밥스누’의 대표를 맡고 있는 이기원 교수(식품•동물생명공학부)는 “기술지주회사 제도가 활성화되면 대학의 재정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대는 2011년에 법인으로 전환되면서 자체적인 재원 확보의 필요성이 높아졌다. 아직까지는 정부가 매년 출연금을 안정적으로 지급하고 있지만 애초에 정부가 재정 자율화를 기대하며 법인화를 추진했던 만큼 서울대 입장에서도 언제까지나 정부 출연금만을 바라보고 있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향후 대학의 주요 재원으로 기대되는 것이 바로 기술사업화다. 기술지주회사의 자회사들이 기업공개나 인수합병 단계에까지 이르게 되면 투자회수가 가능해져 학교 재정에도 적잖은 보탬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대 우유와 닭고기, 그리고 두유
서울대 기술지주회사는 2008년에 산촉법 개정안이 발효되면서 한양대학교 기술지주회사에 이어 국내에서 두 번째로 설립됐다. 대학 산학협력단이 기술지주회사를 세우기 위해서는 전체 자본금의 일정 비율 이상을 현물로 출자해야만 한다. 하지만 기술지주회사 설립 이전에는 서울대 내부에서 나온 연구 결과물의 귀속 주체가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아 특허권이 연구자 개인의 명의로 돼있는 경우가 많았다. 기술지주회사에 현물을 출자해야 할 산학협력단이 특허권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당시 서울대는 학내 구성원의 연구 성과는 모두 산학협력단에 귀속되도록 소유권을 조정한 다음에 기술지주회사를 설립했다. 초기 자본금은 72.5억 원으로 현물과 현금이 각각 42.5억 원과 30억 원이었다.
2015년 현재 서울대 기술지주회사는 20여 개의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에스데어리푸드는 기술지주회사와 SPC그룹의 합작으로 탄생한 자회사다. 기술지주회사로부터는 현물을, SPC그룹으로부터는 현금을 출자 받은 형태다. 에스데어리푸드에서는 ‘밀크플러스’, ‘요거트플러스’ 등 유제품이 주로 출시됐다. 2013년에는 SPC그룹의 제과 전문 브랜드 ‘파리바게트’와 함께 ‘밀크플러스 우유 식빵’을 출시하기도 했다. 또 다른 자회사인 에스엔마니커는 기술지주회사와 닭고기 전문 업체인 마니커가 공동으로 설립했다. 에스엔마니커에서는 2013년에 무항생제 닭고기인 ‘닭터의 자연’을 출시했다. 이 제품은 최윤재 교수(식품•동물생명공학부)의 특허를 기반으로 개발됐다.
최근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자회사는 올해 초 ‘약콩두유’를 출시한 ‘밥스누’다. 현재 ‘밥스누’는 제품 개발에서부터 출시까지 전 과정을 직접 챙긴 이기원 교수가 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2011년 서울대에 부임한 이후 줄곧 전공분야인 식품을 통해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왔다고 한다. 이 교수는 “건강한 식품을 통해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자 했다”며 ‘약콩두유’를 개발하게 된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밥스누’는 현재 서울대 평창캠퍼스에도 공장을 짓고 있다. 내년 상반기에 완공되면 평창이나 정선 등 근처 지역에서 재배된 약콩으로 두유를 생산할 계획이다. 이 교수는 “이 같은 방식으로 대학의 산학협력이 지역사회와 연계되면 국내 농민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사업의 의의를 밝혔다.

ⓒ밥스누
기술지주회사의 고민은?
2008년 기술지주회사 제도가 처음 도입됐을 때 원활한 기술사업화의 가장 큰 걸림돌로 지적됐던 것은 대학의 현물 출자 비율에 대한 규정이었다. 본지(2008년 93호)에서는 법령이 규정하고 있는 현물 출자 비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당시 산촉법에서는 ‘기술지주회사 설립 시 대학 산학협력단이 총 자본금의 절반을 초과해 기술을 현물 출자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이는 일종의 대학 기관인 기술지주회사가 무분별한 이윤 추구 사업을 벌이는 것을 방지하고 대학 본연의 기능인 연구에 충실하면서 오로지 기술로만 돈을 벌게끔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그 동안 이러한 규정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대학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을 현물로 출자하기 위해서는 기술가치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평가 비용이 건당 2~3천만 원 가량 든다. 대학의 특허가 평균적으로 건당 2억 원 정도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평가 비용이 기술지주회사 설립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현물 출자 시 별도로 부가가치세가 부과되는 등 기술지주회사의 영업 활동과 관계없이 발생하는 기타비용이 상당한 수준이다.
현물 지분이 50%를 초과해야 한다는 규정으로 인해 대학이 기술지주회사를 설립하면서 추가 현금 증자를 대비해 애초부터 자본금의 80~90% 정도를 현물로 출자하는 기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렇게 초기 자본금의 대부분을 현물로 출자할 경우 전체 자본금의 규모가 작아져 향후 자회사 설립에 지장이 생길 수 있다. 한국기술지주회사협회 이지훈 사업운영국장은 “현물 출자 비율이 높게 설정되면 처음부터 기술에 대한 과대평가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대학이 굳이 사업화에 필요가 없는 기술을 단순히 규정을 맞추기 위해 출자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한 정부는 2011년에 산촉법을 개정하면서 기술현물출자 의무한도 비율을 50%에서 30%로 완화했다. 또한 기술가치평가 비용이 주는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기술지주회사가 가지고 있는 기술을 현물출자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자회사에 다시 출자하는 경우 기술지주회사에 출자할 당시의 평가액을 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 기존 법령에 따르면 이미 한 번 가치평가를 거쳐 기술지주회사에 출자된 기술이라도 자회사에 출자하기 위해서는 가치를 다시 평가 받았어야 했다. 법령이 개정되면서 대학의 부담이 크게 줄어든 것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30%의 의무한도 비율도 여전히 높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어 현재 20%로 더 낮추도록 하는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이지훈 사업운영국장은 “기술지주회사가 설립 취지대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대학 등 공공기관이 보유한 기술을 사업화하는 기업이 성공해야 하므로 자회사에 세제혜택을 준다거나 특례상장을 가능토록 하는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기술지주회사의 또 다른 고민은 자회사의 지분 확보와 관련된 문제다. 현재 산촉법에 따르면 기술지주회사는 자회사의 의결권 있는 주식의 20% 이상을 보유해야 한다. 이 규정은 기술지주회사가 자회사에 대한 최소한의 지배력과 경영권을 확보해 설립 취지를 온전히 달성하도록 하기 위해 제정됐다. 하지만 경영 상 필요에 의해 20% 미만의 지분을 가지고 있어야 할 때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또한 향후 자회사에 대한 투자회피 현상도 우려된다. 박종래 교수는 “기술지주회사가 자회사의 지분 중 20% 이상을 가지고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투자자를 유치하기 힘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새로 만들어진 회사에 투자하려는 벤처캐피탈의 입장에서는 20% 이상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대주주의 존재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지훈 사업운영국장은 “투자회피 문제가 있긴 하지만 자회사 설립 시 공동 설립자와의 협상 과정 등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지분 확보가 필요한 경우도 있기 때문에 반드시 어느 방향이 옳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면서도 “현재 5년으로 정해진 지분 확보 유예기간이 지난 후에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대처방안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분 확보 비율에 대한 여러 문제점을 인식하고 최근 산촉법 시행령을 일부 개정하면서 지분 확보 유예기간을 1년에서 5년으로 연장한 바 있다.
“장기적 관점에서 지켜봐 달라”
아직 서울대 기술지주회사는 학교로부터 완전한 재정 독립을 이루지 못했다. 자회사들로부터 투자회수를 할 만큼 시간이 충분히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벤처기업이 기업공개 단계에까지 이르러 투자자들이 수익을 창출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평균적으로 11년 이상 소요된다. 이지훈 사업운영국장은 “우리나라에 기술지주회사 제도가 도입된 지는 이제 7년 정도밖에 되지 않아 아직까지는 배당 등 투자회수를 논할 단계가 아니”라고 했다. 또 서울대의 경우 기술지주회사와 산학협력단의 경계가 모호해 기술이전이나 상표관리 등으로 생긴 수입이 산학협력단으로 귀속되면서 회계 상 적자가 매년 가중되는 측면이 있다.
박종래 교수는 “자회사 설립을 통한 기술사업화는 10년 이상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라며 “한 삽만 더 파 내려가면 물이 나올 텐데 지금까지 물이 안 나왔다고 해서 중도에 포기해버리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 기술지주회사는 2020년까지 학교로부터 완전한 재정자립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 다음 단계는 자회사들이 기업공개나 인수합병에까지 이를 수 있도록 키워내 학교에 배당하는 것이다. 서울대 기술지주회사가 학내 기술을 바탕으로 설립된 자회사를 건강한 기업으로 성장시켜 연구비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앞으로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