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 자녀를 지원하는 기관에는 각 지방자치단체의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비롯해 시민단체에서 운영하고 있는 이주민지원센터 등이 있다. 정부의 정책뿐 아니라 이들 단체들의 지속적인 노력 덕분에 이주아동들은 타지 생활에 적응하는 데 도움을 받고 있다. <서울대저널>에서는 사회적협동조합 ‘다문화 너머서’를 방문해 민간 차원에서 다문화 자녀 지원 활동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살펴보고, 다문화가족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아이들의 놀이터, 다문화 예술학교
월계동에 위치한 사회적협동조합 ‘다문화 너머서’(너머서)는 다문화 자녀들의 놀이터다. 2010년 개소 당시 도서관 형태의 다문화 센터로 시작한 너머서는 자녀들의 교육에 대한 이주여성들의 요구를 반영해 협동조합으로 전환해 교육 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부에서 예산이 지급되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와 달리 너머서는 조합 이사회를 통한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너머서의 김영희 상임이사는 “다문화가족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 혜택을 충분히 제공하려고 한다”며 설립 취지를 설명했다.
점심시간이 막 지난 토요일 오후, 너머서의 활동공간인 순문화원에 엄마 손을 잡은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토요일마다 열리는 다문화 예술학교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토요학교라고도 불리는 예술학교에서는 공부방과 피아노 교실, 미술교실이 진행된다. 아이들은 평상시에는 집과 어린이집이나 학교에서 지내다가 주 1회 이곳에 와서 한국어와 수학, 영어를 공부한다. 고등학생부터 성인까지 자원봉사자들이 아이들의 공부를 봐주고 있다. 김영희 이사는 “1년에 50주 동안 열심히만 나오면 특별히 엄마 아빠가 신경 쓰지 않아도 학교 공부를 따라갈 수 있고 피아노도 어느 정도 칠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문화원 앞쪽에는 피아노 수업이 한창이었다. 피아노 수업은 전문 선생님과 예고 학생들이 지도한다. 뒤쪽으로는 아이들이 모여 미술교실을 준비하고 있었다. 스케치북과 크레파스 사이사이로 오늘 수업의 재료로 쓸 은행잎이 수북했다. 다문화가족 구성원들은 가정이나 사회에서 여러 가지 상처를 경험하는데, 너머서에서는 1년 중 3개월씩 두 번 미술교실을 열어 어머니들과 아이들이 스스로 감정을 다스리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면목동에서 오는 어머니 A 씨는 “너머서에서 하는 활동에 참여하면서 저도 아이도 마음이 부드러워졌어요”라고 말했다.
진득하게 앉아 공부를 하거나 피아노를 배우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친화력이 좋은 아이들은 봉사자들에게 장난을 치다 놀이터로 나갔다. 과학에 관심이 많은 도현이(가명)는 공룡이 나오는 책을 골라 와서 처음 보는 기자에게 스스럼없이 읽어달라고 했다. 한창 그림에 집중하던 아이는 중고 책들이 들어오자 책을 고르러 갔다. 김 이사는 “다문화가정의 부모님들은 우리 아이 수준에 어떤 책이 좋을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후원자나 조합원 분들에게서 책을 기증받아서 2주에 한 번씩 나눠줘요. 지금까지 만여 권 정도 분출했는데 이것도 다문화가족에게 힘이 되죠”라고 말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아이들이 한국어에 더 익숙해질 수 있고 학업 성취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엄마들의 걱정을 덜어주세요
아이들이 활동을 하는 동안 어머니들은 한쪽에 앉아 아이들을 기다렸다. 이곳을 찾는 어머니들의 대다수는 중국과 베트남 출신의 결혼이주여성이다. 다른 어머니들은 필리핀과 캄보디아, 몽골과 태국 등지에서 왔다. 남편의 억압적인 성향으로 인해 상처가 있는 경우 어머니들은 낯선 남자가 오는 것을 불편해하는 편이라고 한다. 김 이사의 소개로 베트남에서 온 어머니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올해 초등학교 2학년인 수진이(가명) 어머니 B씨는 한국에 온지 10년차인 베테랑 주부다. 지인의 소개로 너머서를 알게 됐다는 B씨는 “베트남에는 이런 곳이 없는데 한국은 자녀들을 지원해주는 시설이 있어서 좋다”며 “집이 멀지만 꾸준히 오는 편”이라고 말했다.
어머니들이 가장 우려하는 점은 자녀가 앞으로 학교에서 잘 지낼 수 있는지의 문제다. 아직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지 않은 지훈이(가명) 어머니 C씨는 “아이가 학교에 가서 잘 적응하고 따라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김 이사는 “아이들은 여기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없지만 한국 아이들만큼 한국어를 잘하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긴 지문을 읽을 때 전부 다 이해하기는 어려워한다는 것이다. 딸을 학교에 보낸 B씨는 “초등학교 1학년 때는 학교에 들어가서 언어나 문화 면에서 어려움을 겪었는데 지금은 선생님도 도와주시고 친구들도 사귀면서 공부를 잘 한다”며 “수진이가 제일 잘하는 것은 받아쓰기”라고 말했다. 너머서에서 어떤 것이 제일 좋은지 묻는 질문에 B씨와 C씨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다양한 활동을 무료로 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입을 모았다.
서로 이야기를 나눌 때와 달리 어머니들은 부끄럽다는 듯이 손으로 얼굴을 가리기도 하고 수줍게 웃음을 지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자녀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몸짓을 섞어가며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직 서툰 한국어였지만 쉽지 않은 생활을 견뎌낸 의지와 자녀들을 향한 마음만큼은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김영희 상임이사는 “결혼이주여성이 한국 국적을 취득하려면 남편의 허락이 필요한데, 배우자가 동의를 해주지 않아 어머니의 지위가 위축되고 가정 분위기가 불안정한 경우가 많다”며 “아이들이 가정에서 불화를 경험하는 것도 엄마들이 걱정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또 미디어에서 다문화가족을 가난하고 불우하게 묘사하는 것도 어머니들을 낙담시킨다. 김 이사는 “엄마들은 한국인들이 아이만큼은 차별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기를 원해요”라며 사회적 인식 개선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사회적협동조합 ‘다문화 너머서’의 김영희 상임이사는 “다문화 자녀를 낙인찍는 것보다 함께 살아가는 아이들로 생각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나연 사진기자
너머서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이현주 씨는 “이곳에 처음 왔거나 아직 적응을 못한 아이들을 챙겨주고 있다”며 “초등학교 교사가 꿈인 딸과 시작한 일인데 발랄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위로를 받고 간다”고 소감을 밝혔다. 공부방을 답답해하는 아이들이나 한 군데에 집중하기 어려워 돌아다니는 저학년 아이들은 이 씨의 손에 붙들려 책상 앞에 앉곤 했다.
오후 3시가 되자 공부방에 아이들을 맡겨놓고 일을 갔던 어머니들이 아이들을 데리러 문화원을 찾았다. 갈 시간이 되자 아이들은 공부하던 책과 연습장을 들고 분주하게 정리했다. 김영희 이사와 자원봉사자들은 다음 주에 만나자며 아이들을 배웅했다. “다문화 현상이 우리나라에서는 20년이 안 됐지만 이제는 다문화 자녀들에게 돈 없는 외국인이라고 낙인을 찍지 않았으면 해요. 이 친구들을 일방적으로 우리가 도와줘야하는 관계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아이들로 생각하면 어떨까요?” 힘 있게 말하는 김 이사의 눈이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