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접처럼 세상과 세상을 잇는다

드라마‘ 어셈블리’,‘ 정도전’의 작가 정현민의 인생드라마
IMG_1153.JPG
ⓒ 이지원 사진기자

 2015년 여름, 파편으로 나눠진 사회, 계층, 세대를 붙이려 노력하는 한 남자의 뜨거운 이야기가 전파를 탔다. 무식하지만 용감했던 그의 말 한 마디에서 사람들은 정치의 의미를 되새겼다. 용접공 출신 1년짜리 국회의원의 이야기를 다룬 KBS 드라마‘ 어셈블리’다.‘ 어셈블리’가 종영하고 2주 후 여의도에서 정현민 작가를 만나 드라마만큼 뜨거운 그의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나의 투쟁’을 모색하다

 정현민 작가의 20대는 노동운동과의 운명적 만남으로 시작됐다. 그가 부산기계공고 3학년이 되던 해 6월, 그는 현장실습 차 첫 직장 효성중공업에 출근했다. 그곳에서 그가 제일 먼저 만난 것은 유리창이 다 깨져있던 관리동 건물이었다. 1987년 7월부터 9월까지 이어졌던 노동자대투쟁의 시작이었다. 이후 그가 회사 사보에 써냈던 콩트를 눈여겨 본 노조 선배들이 그를 노조신문 제작에 참여시키면서 그는 노동 운동에 들어섰다.

 그러던 중 정현민 작가의 눈에 기자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기자들을 보며 정 작가는“ 사건과 사건이 모여서 시대가 되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그 사건들을 옮기는 이 사람들이야말로 어떤 시대를 제대로 살아가는 이들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노동자로서의 삶이 적성에 맞지않아 고민하던 시기, 그들의 치열함에 이끌렸다. 그렇게 주경야독해서 한 대학의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1학년이 되던 해 그는 기자의 꿈을 접었다. 그가 꿈꾸던 정론직필의 언론인과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언론기업 사이에는 분명한 거리감이 있었다.

 좌절한 대학생 정현민은 운동권으로 향했다. 기타 치는 노래패 대학생으로서 여유만 있다면 음악을 하고 싶다는 꿈도 어렴풋이 생겼던, 낭만의 시기였다. 동시에 ‘학생회 간부는 길거리에서뿐만 아니라 강의실에서도 스타가 돼야 한다’라는나름의 원칙으로 공부도 하고, 데모도 했다.“ 기나긴 대학생활을 마칠 때 대한민국의 봄날이 끝났죠.” 졸업 후에 IMF 외환위기가 터졌다. 좋은 학점과, 당시로선 높았던 800점의 토익 점수를 갖고도 그에게 단 하나의 정규직 일자리도 허락되지 않았다.

 1년을 아무일 없이 지내던 그를 부른 곳은 노동운동 판이었다. 그는‘ 한국노총부산지역본부’에서 상근 노동운동가로서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언론으로 자리를 옮겼다. 노회찬 전 의원이 당시 사장으로 있었던 <매일노동뉴스>였다. 수십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이뤄낸 기자의 꿈이었지만, 1년 반이 지나자 정 작가는 지루함을 느꼈다. “늘 남들의 투쟁을 전달해주다 보니 나의 투쟁을 갈망하게 됐습니다.” 그의 발길은 다시 노동현장으로 향했다. 2000년은 외환위기의 여파로 은행들 간 인수합병이 이어지던 혼란의 시기였다. 국민·주택은행 강제합병 반대투쟁의 투쟁기획부장이 그의 새로운 직함이었다.

 10개월을 그렇게 싸운 후 남은 것은 전문 노동운동가로서의 삶에 대한 회의였다. 그는 “어줍잖게 운동이란 이름으로 활동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고 회상했다. 자신의 일터, 그에 딸린 가족을 위해 싸우는 은행원들과 달리 전문 ‘노동꾼’인 정현민 작가에게는 운동을 통해 지켜야 할 구체적인 목표가 보이지 않았다. ‘세상을 바꾸기 위한 절절한 신념으로 운동을 한 것인지’,‘ 할 줄 아는 게 운동 밖에 없어서 이것만 했는지’란 생각 사이에서 정 작가는 헛갈렸다. 정열적이라 믿었던 지난 10년에 대한 회의가 그를 감쌀 때, 그의 나이는 어느새 서른이었다.

정치라는 또 다른 전투현장

 30대의 문턱에 서 있던 그를 국회가 불렀다. 노동운동 현장에서 꽤나 유명했던 그의 글 솜씨를 노동계 출신 비례대표 의원실에서 눈여겨 본 것이다. 그는 “처음에는 ‘국회, 거기 쓰레기들 모인 곳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단 한번도 들여다보지 않은 세계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다. 그는 호기심에 이끌려 노동정책담당 비서관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노동이라는 유사한 분야를 다루기에‘큰 어려움은 없겠거니’ 싶었다. 그러나 곧 머리띠 두른 운동가의 싸움과 머리로 벌이는 국회에서의 싸움이 다름을 느꼈다. 국정감사 기간 중이던 출근 첫 날, 노동 담당 비서관 정현민은 전임자가 노동부로부터 받아둔 서류들과 마주했다. 그의 눈에는 단 하나의 문제점도 없었다. 그러나 ‘문제없음’이라 판단한 것이 바로 초짜 비서관 정현민의 문제였다. “제가 바깥에서 떠들었던 노동은 극히 일부였던거죠.” 이제껏 고용된 이들의 처우와 해고문제를 위해 싸워왔던 그는 취업과 일자리 창출 등의 문제에 대한 지식과 고민이 부족했다. 게다가 법을 갖고 정책을 논의하는 국회의 방식 역시 그에게 익숙하지 않았다. 논리 대 논리로 자신의 말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는 오기가 생겼다. 거칠었던 거리의 운동가는 그날로 틈이 날 때마다 신림동의 법학원에 나가 노동법부터 공부했다.

 해가 지나면서 데모할 때는 보이지 않던 재미가 정현민 작가의 눈에 들어왔다. 보좌관 활동은 거대한 벽과 싸우는 듯 했던 거리의 투쟁과 달랐다. 그는 “국회에서는 작은 부분이라도 내가 세상을 바꾸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며 밝게 웃었다. 상임위원회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국회 구조 상, 환경노동위원회에 소속돼있던 의원들 중에는 노동 정책에 특화돼있던 그를 필요로 하는이가 많았다. 정현민 작가는 그를 필요로 하는 의원이라면 한나라당이든 민주당이든 가리지 않고 함께 일했다.

 환경노동위원회 안에서도 노동정책보좌관으로서 정현민은 점차 그 전문성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모시던 의원들이 소신을 갖고 세상을 바꿔내는 모습을 볼 때면 희망과 보람도 느껴졌다. 그는 “당시 10년의 현장경험과 10년의 국회경험을 갖고 좋은 의원이 오면 보좌하는 것, 그게 내 역할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대로 평생 보좌관으로 일하다 은퇴 후 지방노동위원회 노동위원장이 돼 끝까지 노동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이 당시 보좌관 정현민이 생각했던 삶의 최종 목표였다.

드라마에 정치를 입히다

 글은 정현민 작가의 삶을 이끌어 온 또다른 힘이었다. 그를 노동운동에 입문하게 한 것도 그의 글이었고, 국회로 입문하게 만든 것 역시 그의 글이었다. 다만 ‘단 한번도 글로 먹고 살 것이란 생각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나름 실력도 인정받았다. 그가 상근 노동운동가로 활동하며 월간 <비정규노동>에 연재하던 콩트 모음집을 그곳 편집장이 ‘전태일 문학상’ 소설 부문에 출품한 것이다. 비록 당선되지 못했지만 최종심까지 올라갔다. 그 때 심사평의 마지막 줄이 ‘그의 본격 소설을 기대한다’였다. 정 작가는 그 평가에 고무됐다.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겠다는 마음으로 펜을 잡았지만 한 달 동안 두 페이지도 쓰지 못했다.“ 이상은 조정래, 김훈 선생님인데 내 글은 그렇지 못하다”는 한계만 경험했다. 이후 그는 인터넷 공간에 종종 논쟁적 글들을 쓰기도 했으나 주제에 대한 깊이 없이 소위 ‘말빨’로만 진행되는 논쟁에 허무함을 느꼈다.

 드라마와의 만남은 우연이었다. 일하던 의원과 맞지 않아 잠시 쉬고 있던 때, 여의도에 있던 드라마 교육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말과 감성을 다루는 영역의 글인 드라마는 그가 이전에 다룬 콩트와도 유사했다. 소설과 논쟁조의 글들 사이에서 메마름을 느꼈던 그가 마침내 자신의 물을 만난 셈이었다.

 ‘ 프레지던트’,‘ 정도전’,‘ 어셈블리’.정현민 작가의 필모그래피를 채우는 작품들 중에는 정치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들이 많다. 한국 드라마에서 정치는 대중에게 공감을 얻기 힘든 소재다. 그럼에도 그가 정치드라마를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 작가란 자신의 체험에서 비롯된 무언가를 갖고 대중과 소통해야 하는 사람이 아닐까요?”란 답이 돌아왔다. 운동권 10년, 국회 10년이란 그만의 이력에서 우러나온 화두가 바로 ‘승자독식 무한경쟁’과 ‘패자를 위한 배려’였다. 대중의 취향을 따라가야 하는 드라마 작가 치고는 ‘골 때리는 화두’라고 그가 쑥스럽게 말했다. “패자를 ‘루저(loser)’로 보지 않고 그들을 감성적·정책적으로 배려하는 사회를 말하고 싶었습니다.” 삶에서 우리 사회 속 수 많은 패자들을 바라봤고, 그 자신이 때론 패자였으며, 그 패자들을 지키려는 노력들을 지켜봐 온 그에게 가장 어울리는 이야기란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에게 정치에 대한 혐오를 버리고 정치에 관심을 갖고 참여할 것을 꾸준히 호소하는 것도‘ 정현민표 정치 드라마’의 공통점이다. 정치 혐오가 판 치는 시대, 정치가 사람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정치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묻는 질문에 정현민 작가는 스스로를 “정치에 있어서는 지극히 이상주의자”라 말하면서도“ 정치를 외면하면 계속 소외된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운동은 어떤 특정 계층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는 것이기에 상대방의 권력을 인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정치는 그런 서로 다른 이익들을 보듬고 조정하는 행위가 아닐까요?” 그 말에 덧붙여 정 작가는 시민이 최소한의 정치 행위인 투표에도 무관심하다면 정치를 움직이는 기본적인 규칙은 특정 집단들에게 유리하게 짜일 것이라 우려했다. “그 악순환이 계속된다면 사회 이곳 저곳에 쌓여있는 문제들은 심각해지지 않겠습니까?” 그가 힘줘 얘기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을 용접하는 이야기

 전작 ‘정도전’에서 권력자 이인임에게 무작정 덤벼들던 정도전을 두고 많은 젊은 시청자들은 그를 ‘어그로’라 표현했다. 비슷한 반응이 ‘어셈블리’에서도 나타났다. ‘어셈블리’를 쓰며 인터넷 사이트의 댓글을 들여다보던 중, 정현민 작가는 20대 시청자들이 드라마 속에 해고노동자들에 대해 보였던 ‘불편하다’,‘ 낯설다’라는 반응에 깜짝 놀랐다.“ 제가 예상했던 20대의 반응이 아니었죠” 예상치 못한 20대들의 반응을 통해 정현민 작가는 차가워지는 사회적 분위기를 느꼈다.

 정현민 작가는 오늘날 20대에 대한 자신의 이해와 생각을 드라마‘ 어셈블리’에서 20대 청년 김규환을 통해 풀어냈다. 정현민 작가는 “민주 대 반민주, 통일 대 반통일처럼 외부에 전선(戰線)이 있었던 우리와 달리 현재의 20대에는 그 전선이 개별화돼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취업, 결혼과 같은 가장 기본적인 문제가 그가 생각한 20대의 싸움터였다. 그는 그런 오늘날 20대의 정치 외면이 “무지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냉소와 자기확신에서 비롯된 것”이라 주장한다. 동시에 20대가 지닌 그 냉소와 자기확신은 젊은 날 누릴 것을 다 누리고, 지금의 무한경쟁 시대를 만들면서도 그 기득권에 안주한 40대에 대한 반감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 작가는 극을 통해 미지의 세대 20대와 끊임없이 대화했고 대립했다.

 직접 경험해보지 않았던 20대의 이야기를 쓰는 것은 40대의 그에게 분명 힘든 작업이었다. 그는 드라마를 쓰며 지금의 20대가 가진 생각과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더 이해하고 싶어졌다고 말한다.“20대가 처한 전투적 환경도 알지 못하면서 그들에게 마냥 ‘진취적으로 살라’ 는 말을 던질 수는 없잖아요?” 20대의 사고와 가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들에게 좀 더 통할 수 있는 말을 해 보고 싶다는 의지가 아니었을까? 미지의 젊은 세대와의 소통과 이해는 정현민 작가에게 작가로서, 그리고 대한민국의 40대로서도 해결해야 하는 숙제인 듯 보였다.

부모가 자식에게 권하는 드라마를 꿈꾸다

 ‘어셈블리’를 집필하는 동안 정현민 작가는 “행복했었다”고 표현했다. 늘 선하거나 설령 잠깐 타락하고 악해져도 자신을 반성하는 인물들을 통해 정현민 작가는 원 없이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보여줬다. 동시에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이 작가로서 갖고 있던 화두인‘ 승자독식 무한경쟁’을 전면에서 다룰 수 있었다. 정현민 작가에게 이번 작품이 데뷔 이후 5년 간 이어온 작가로서의 삶 제 1기를 마무리 짓는 작품이라 말했다. “운동과 정치는 사람을 남기는 곳이지만 드라마는 결과와 비즈니스 논리가 압도하는 곳입니다.” 드라마 작가로서 이제는 상업적인 부분을 무시할 수 없는 순간이 온 것이다.

 다음 작품은 무엇이 될 것인가 라는 질문에 정현민 작가는 “불륜치정막장멜로?”라며 우스개를 부렸다. “다음은 상남자의 격정멜로를 그려보고 싶어요. 트렌디 로맨스와는 달리, 사랑의 의미를 나타낼 수 있는 좀 더 무거운 사랑이랄까?” 또한 그는 한국의 좋은 대하소설이나 역사적 사건들을 드라마로 다시 그려내고 싶다는 소망도 드러냈다. 하지만 어떤 장르가 됐건 그의 드라마에는 하나의 원칙이 꼭 존재한다. 그것은 “좋은 드라마, 그리고 착한 드라마”다. 그에게 착한 드라마란 선과 악의 극적 대립이나 ‘막장’같은 상업적 코드를 포함하지 않으면서도 한번쯤 생각해 볼 만한 메시지를 담는 드라마다. 정현민 작가는 마치 좋은 책처럼 “부모가 자식에게 권하고 중·고등학교 사회시간에 교사가 학생에게 한 번은 보라고 권할 수 있는 드라마”를 쓰고 싶다고 표현했다. 그는 여기에 자신이 경험했던 정치를 녹여내려고 한다. 용접처럼 부모와 자식, 교사와 학생, 그리고 서로 다른 사람들을 뜨겁고 끈끈하게 연결할 그의 본격 드라마를 기대한다

댓글 댓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Previous Post

굳이 차별할 필요가 있나요?

Next Post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