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 권하는 어른들의 동화

육아예능, 어른의 시선 속 아이와 육아의 파편을 보여주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저녁식사 시간이 되면 대한민국 거실은 어린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찬다. 토요일 저녁이면 뾰로통한 표정을 짓는 라둥이와 태오, 주안이가 TV 속을 뛰어다니고 일요일 저녁에는 삼둥이와 대박이, 사랑이가 거실을 점령한다. 브라운관 속 아이들의 행동과 웃음, 말 하나하나가 인터넷 포털과 SNS를 장식한다. 2015년 대한민국은 바야흐로 육아예능공화국이다. <서울대저널>은 육아예능에 비춰진 육아와 아이의 모습을 되짚어봤다.

공감에서 시작한 육아예능 열풍

육아예능사진1_2015년 대한민국은 바야흐로 육아예능 시대다..jpg
▲ 2015년 대한민국은 바야흐로 육아예능 시대다

 육아예능 열풍은 2013년 ‘ 아빠! 어디가?’로 시작됐다. 이 프로그램은 최고 시청률 20%를 기록했고, 그 해 연예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후 ‘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출연 아동의 연령대를 초등학생에서 유아기 아동으로 낮추고, 아버지들의 육아법에 초점을 맞추는 등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육아예능의 연속적 성공에 발맞춰 이듬해인 2014년에는 ‘ 오 마이 베이비’, ‘ 엄마사람’, ‘ 엄마의 탄생’ 등 유아를 활용한 예능 프로그램들이 연달아 방영됐다. 육아예능 열풍은 중국으로도 이어졌다.‘ 아빠! 어디가?’와‘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형식은 중국으로 수출돼 각각 중국 <후난위성TV>의 ‘파파취나얼(爸爸去哪儿)’과 <저장위성TV>의 ‘파파훼이라이러(爸爸回来了)’로 제작됐다.

 육아예능의 인기는 육아와 출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제고로 이어졌다. 특히 2·30대 미혼 시청자들의 육아와 결혼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했다. 대구가톨릭대학교 부설유치원에서 교사로 근무하는 서예은(29) 씨는 “주변 2·30대 친구들 중 육아예능에 관심 갖는 친구들이 많다”고 말했다. 시청자들이 육아에 대해 막연하게 가지는 두려움 역시 일정 부분 개선됐다. 연세대학교 길준범(언론홍보영상대학원 석사과정) 씨는 육아예능이 시청자들에게 “육아에 대한 두려움을 감소시킨 반면‘ 나도 육아를 잘 할 수 있다’는 자기 효능감은 증가시켰다”고 말했다.

 육아예능을 통해 육아하는 아버지의 역할이 부각되면서, 육아예능이 육아와 가사에서의 양성평등실현에 기여한다는 점도 주목 받았다. 육아예능은 여성의 영역이라 여겨졌던 육아를 남성의 영역으로 넓히는 효과를 낳았다. 대구가톨릭대학교 부설유치원 교사 최아름(27) 씨는 “육아에서 아버지의 역할을 부각하면서 엄마가 주된 역할을 맡는다는 기존의 양육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는 데는 긍정적이다”라 말했다. 길준범 씨 역시 “최근 친구 같은 아버지에 대한 사회적 선망을 육아예능이 잘 잡아낸 듯하다”고 평가했다. 이를 증명하듯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2014년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양성평등상 장려상과 가정의 달 기념 여성가족부 장관 표창을 수상했다.

 시청자들이 육아예능에 공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특별할 것만 같던 연예인의 가정 자체를 보여주는 것도 큰 매력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육아예능의 인기를 견인하는 존재는 아이들이다. 시청자들은 아이들의 순수함에 재미를 느끼고 사회생활에 찌든 삶을‘ 힐링’한다. 

 리얼리티 예능형식에 관찰식 촬영방식을 도입한 것이 아동들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잡아낸 데에 적합했다는 분석도 있다. 한양대 이영주 겸임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는“ 관찰식 촬영 방식은 연출과 구성 등의 작위적 형식을 최대한 배제해 시청자에게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라고 설명했다.

육아의 파편만을 보여주는 육아예능

 ‘착한 예능’의 이미지를 업고 성공한 육아예능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육아예능에 대한 공감보다 비판적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프로그램이 다루는 육아 자체가 부분적이고, 연예인이라는 특정 직업군의 육아만 비추기에 시청자들이 점차 이질감을 느낀다는 분석이다.

 우선 육아예능은 실제 육아의 다양한 모습들을 담지 않는다. 육아예능은 주로 아동과 부모가 함께 먹고 여행가는 체험을 다룬다. 그러나 실제 육아는 배변습관 형성처럼 일상적이고 사소한 면을 포괄한다. 서예은 씨는 육아예능에서는 “훈육, 배변, 식사를 포괄하는 실제 육아 문제와 고민들을 다루지 않는다”고 짚었다.

 육아예능이 육아의 즐거움과 보람됨에만 초점을 맞춘 것도 한계로 꼽힌다. 이따금 TV 화면을 통해 아버지나 어머니가 육아의 힘겨움을 겪는 모습이 비춰지기도 한다. 그러나 육아예능에 출연하는 부모들은 쉽게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기 성장을 체험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길준범씨는 “육아예능이 육아에 관한 일반적이고 현실적인 고민들을 다루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실제로 육아하는 부모의 고통이 외면되는 상황을 얘기했다.

육아예능사진2_연예인 부모들의 모습이 화면에 비춰질 수록 비슷하게 해 줄 수 없는 시청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커진다._출처-MBC
▲ 

연예인 부모들의 모습이 화면에 비춰질 수록 비슷하게 해줄 수 없는 시청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커진다. 출처: ‘아빠! 어디가?’ ⓒ 서울신문

 또한 육아예능은 연예인 부모의 육아만 보여준다. 육아예능에 출연하는 연예인 부모들은 개인 일정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고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다. 이는 일반 부모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끔 만든다. 학내 부모협동조합‘ 맘인스누’ 서정원 대표는“ 육아예능이 체험이나 이벤트와 같은 활동들을 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부모의 역할을 이벤트 제공자 내지 금전적 소비자로만 국한한다”고 비판했다. 이영주 교수는 금전적으로 여유 있는 부모의 양육만 비춰지는 데 대해 “육아는 사회와 국가의 제도적 지원이 필요한 것이지만 육아예능은 자칫 육아의 성패를 오로지 개인과 가족의 능력에 달린 것으로 보여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일부 육아 방식과 특정 계층의 육아가 TV 속에서 무작정 칭찬해야 할 대상으로 부각되는 점에 불편함을 토로했다. 대구가톨릭대학교 부설유치원 교사 이보라(28) 씨는 “아동의 상황에 따라 육아방법이 다를 수 있는데 시청자들이 TV 속의 육아법만을 옳은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서정원 대표는 “시간사용이 자유롭고 경제력이 뒷받침되는 아버지들의 육아가 TV에서 당연하게 비춰지면서 실제 아버지들의 일·가정 양립을 불가능하게 하는 현실제도 문제를 간과하게 만든다”며 우려를 표했다.

어른의 시선 속에서 다뤄지는 아이들 

 육아예능이 아이를 아이답게 다루지 않는다는 점 또한 시청자들이 육아예능을 불편하게 여기는 요소다. 최근 육아예능은 아동의 나이에 맞지 않는 행동과 캐릭터를 요구하고 억지로 에피소드를 만든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실제로 네이버 육아카페 ‘시흥맘들의 수다방’에서는 ‘억지로 에피소드를 만든다’란 반응이, 또 다른 육아카페 ‘진희맘’에서는 ‘아이의 마음을 제작진 마음대로 해석해서 더빙하는 것이 불편하다’, 그리고 ‘맘스홀릭’에서는 ‘아이를 어른스럽게 만들거나 억지로 웃기려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라는 부정적인 반응들이 올라오기도 했다. 

육아예능사진3_지난 11월 1일
▲ 

지난 11월 1일‘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방영된 삼둥이의 병영체험은 아동의 대상화라는

측면에서 논란을 낳았다. 출처: 슈퍼맨이 돌아왔다’

 특히 프로그램 속에서 아동이 하게 되는 체험의 내용은 어른의 시선이 강하게 반영된 것이다. 아동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부모와 제작진이 체험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11월에 방영된‘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송대한·민국·만세 세쌍둥이 병영체험이 논란이 됐다. 인터뷰에서 송일국 씨는“ 아이들이 규칙성을 배우기 좋은 곳이 군대라 생각”했기 때문에 병영체험을 결심했고 체험을 통해“ 아이들도 많이 배웠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슈퍼맨이 돌아왔다’ 해당 회차는‘ 힘겨움을 극복하고 진정한 남자로 거듭나는 아이들’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하지만 네 살인 아이들이 제식훈련을 하는 모습은 일반 대중이 알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과 거리가 멀다. 또한 대중들은 엄격한 분위기와 강도 높은 훈련에 울고 힘들어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과연 많이 배운 것일까?’라는 의문을 자연스럽게 제기했다. 이는 병영체험이 오로지 말 잘 듣고 사회에 순응하는 아이로 만들기 위한 어른들의 욕망일 뿐이라는 지적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육아예능에서 아동이 어른의 시선으로만 다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영주 교수는 육아예능 형식의 한계와 시청자의 요구를 그 이유로 들었다. 그는 “아동과 부모의 교감을 주 내용으로 하는 형식은 단조로울 수 밖에 없고 주 시청 층인 2·30대의 재미를 충족시킬 수 없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시청자들의 재미를 보장해야 하는 예능프로그램의 특성상 제작진은 재미를 위해 극적 상황을 연출할 수밖에 없다.

 이런 한계가 육아예능의 실패로 이어진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길준범 씨는 ’아빠! 어디가?’의 경우를 들어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처럼 출연 아동들에게 어른들의 시선으로 해석된 캐릭터를 부여하고 초점을 두면서 양육이라는 프로그램 고유의 정체성이 흐려졌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는 “‘아빠! 어디가?’의 실패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고민의 시작점으로서 육아예능

 육아예능은 있는 그대로의 아이들 모습을 보여주며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또한 일반인들의 관심사인 육아를 공략하고, 연예인들이 부모로서의 모습을 비춰주면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육아예능 역시 어디까지나 방송사가 제작하는 상품이다. 결국 가공되고 편집된 부분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육아예능 제작자들 역시 이 부분을 의식하고 교육적 영향을 미치는 예능인‘ 에듀테인먼트(Edu-tainment)’로서의 기능을 살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2014년 9월 방영 1주년 특집으로 일반인 가족들을 패널로 초청해 육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 자리에는 겹쌍둥이 가족, 다섯 자녀 이상을 둔 가족, ‘대한민국 아빠육아휴직 운동본부’의 대표와 회원 등이 참여해 실제 육아에 대한 고민을 공유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소아정신과 의사인 손석한 원장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해 매 회차에 대한 손 원장의 분석과 조언을 ‘슈퍼맨 칼럼’ 게시판에 게재한다. ‘ 오 마이 베이비’도 소아의학 전문가, 학습 및 발달 전문가, 표현 치료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단을 꾸려 육아에 관심 많은 시청자들에게 상담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TV 시청에만 그치는 대부분의 시청자들을 볼 때, 제작진의 노력이 실질적인 의미를 갖는지는 의문이다.

 육아예능에 대한 시청자들의 불만을 해소할 방법은 무엇일까? 유치원 교사 최아름 씨는 “아버지의 육아를 좀 더 보고 싶다는 점에서 아버지가 전업주부로 나오는 육아예능을 보고 싶다”고 주문했다. 또 다른 유치원 교사인 서예은 씨는 “광고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게 방송이지만 그래도 아이들만큼은 자제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시청자들은 일반인들의 경험을 반영하고 더 양성평등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프로그램을 바라고 있다. 하지만 육아예능에 현실을 가미하는 순간 예능으로서의 가치를 잃어버린다는 평도 있다. 이영주 교수는 “오히려 아빠에게 엄마가 하는 강도의 육아를 아빠에게 경험하도록 하는 것도 굉장히 인위적인 연출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 교수는“ 극적 요소를 만들기 위해 아이들에게 어른의 가치와 시선을 요구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동화는 대중이 새겨들어야 할 교훈을 쉬운 말로 전달한다. 그리고 동화를 읽는 사람은 그 이야기 안에 몰입된다. 저출산 시대를 살아가는 2·30대에게 육아예능은 동화다. 육아예능이라는 동화는 몰입하기 쉬운 이야기 구조를 통해 양육의 가치를 일깨운다. 하지만 지나친 환상과 상업성만을 내세운다면 육아예능이 의도한 기본 뼈대는 무너질 것이다. 많은 시청자들이 육아예능에 관심을 보인 이유가‘ 자녀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과 가족 간의 소통’이었다. 시청자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고, 사회적 문제에 대한 고민을 공론화하려던 처음의 메시지를 잘 살리려는 제작진의 노력이 요구된다.

댓글 댓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Previous Post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안 A to Z

Next Post

<서울대저널>이 들어 본 유권자들의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