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해 동안 교내의 열람실과 카페는 우후죽순처럼 늘어났다. 쾌적하게 공부하고 앉아서 이야기할 공간을찾는 학생들의 요구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학생들의 휴게 공간에 대한 요구는 충족되지 못하고 있다. 강의 사이의 시간이나 시험기간의 늦은밤에 학생들이 잠시라도 눈을 붙이고 편안하게 휴식할 만한 공간은 교내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그나마 마련돼 있는 공간도 크기가 협소하고 체계적인 관리가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다.
조성 및 관리 모두 통일된 기준 없어…
교내 휴게 공간은 각 단과대학별로 서로 다른 기준에 따라 조성되고 관리된다. 이 때문에 단과대학에 따라 꼭 필요한 휴게 공간이 없거나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는 등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총학생회 차원에서 관리하는 학생회관여학생휴게실을 제외하고 모든 휴게 공간은 각 단과대학 내에 따로 설치돼있다. 경영대, 농생대, 사범대, 인문대의 경우 여학생휴게실이 하나, 공대의 경우 네 개 마련돼 있다. 사회대의 경우 남학생휴게실과 여학생휴게실이 각각 하나씩 존재한다. 그러나 휴게 공간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곳도 다수다. 미대, 자유전공학부, 생활대, 자연대 등의 단과대학에는 학생 휴게실이 마련돼 있지않다.
이처럼 많은 단과대학에 학생 휴게실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는 휴게 공간이주로 단과대 학생회의 개별적인 요구에 따라 마련되기 때문이다. 지금 단과대학 내 마련돼 있는 휴게 공간은 해당 단과대의 학생회가 지속적으로 요구해서 얻어낸 경우가 대부분이다. 강지영(국어교육 12) 사범대 학생회장은 “학생회차원에서4-5년 동안 지속적으로 요구한 결과 2000년대 초반에 여학생휴게실을 얻어낼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인문대에 위치한 여학생 휴게실. 최근에 장소를 옮겨 쾌적한 편이다. ⓒ이지원 사진기자
한편 남학생을 위한 휴게 공간은 거의 전무하다. 남학생휴게실에 비해 여학생휴게실이 상대적으로 많이 마련돼 있는 것은 여학생휴게실이 페미니즘 운동의 일환으로 과거부터 지속적으로 요구돼왔기 때문이다. 배지연(정치외교13) 사회대 부학생회장은 “2000년대 초반 여성주의 흐름에 따라 여성들이 시선에 의한 폭력 등으로부터 자유롭게 쉴 수 있는 공간이 요구됐고, 그 결과 여학생휴게실이 마련됐다”고 밝혔다. 즉 여학생휴게실은 단순한 휴게 공간이 아니라 젠더적 고민에서 출발한 결과물인 것이다. 배 씨는 “현재는 여성들이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선에 의한 폭력, 자기검열 등으로부터 자유로워졌기 때문에 여학생휴게실이 일상적 휴식을 위해 주로 이용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여학생휴게실이 일상적 휴식공간으로 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남학생휴게실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다. 그 결과 2008년 남학생휴게실이 한 차례 75동에 설치되기도 했다. 하지만 곧 관리 소홀, 낮은 접근성 등의 문제로 사라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땅한 휴게공간이 없는 남학생들은 휴식을 위해 과/반방, 음악감상실 등 다른 용도로 마련된 공간을 전전하게 됐다. 최근 관정도서관이 생기면서 마련된 휴식용 의자역시 남학생들의 휴게 공간으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공간은 외부에 노출돼있고 많은 학생들이 오가는 등 제대로 된 휴식에 적합하지 않다.

▲관정 도서관에 비치된 휴게용 의자. 이용하려는 사람이 많아, 학기 중엔 이마저도 이용하기 힘들다. ⓒ이지원 사진기자
최근 적절한 휴게 공간을 요구하는 남학생들의 요구에 따라 남학생휴게실에 대한 논의가 다시금 활발해지고 있다. 사범대, 인문대 등 단과대학 학생회는 남학생 휴게실 설치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사회대 학생회는 2013년 말 기존에 다른 용도로 사용되던 학생 자치공간을 남학생휴게실로 바꿨다. 총학생회 역시 지난 12월 학내 커뮤니티 ‘스누라이프’를통해 남학생휴게실 설치계획을 안내했다. 총학생회 김민석 (정치외교 14) 부총학생회장은 “제 57대 총학생회부터남학생휴게실 설치를 추진해왔으며, 접근성과 시설을 제대로 갖춘 남학생휴게실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어렵사리 휴게 공간을 얻어내더라도, 이를 잘 관리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휴게 공간의 청결을 유지하고 필요한 물품을 구비하는 데는 적지 않은 비용이 소요되지만, 이를 위한 별도의 지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사범대의 경우 여학생휴게실 관리에 단과대 행정실의 지원이 전혀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강지영 씨는 “사범대 여학생휴게실관리는 전적으로 학생회에서 맡아서 하고 있다”며 “행정실에 요구했으나 지원이 전혀 없어 기숙사에 사는 집행부원이 직접이불 빨래를 하는 상황”이라며 휴게 공간 관리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사회대도 마찬가지로 휴게실 운영에 행정실의 지원이 부족해 과/반마다 일정금액을 걷어 휴게실을 관리하고 있다.
학생회관, 인문대, 농생대 등 여학생휴게실을 관리하는 근로장학생이 배정된 곳은 상황이 조금 낫지만 역시 체계적인 관리가 되고 있는 편은 아니다. 여학생휴게실 관리 주체가 명확하지 않고 근로장학생의 업무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제공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학기 인문대 여학생휴게실 담당 근로장학생이었던 강세영(영문 15) 씨는“학생회장이 가끔 전달하는 요구사항을 제외하고는 여학생휴게실 관리에 대한가이드라인이나 지침은 없었다”고 말했다. 학생회관 여학생휴게실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근로장학생 이누리(사회15) 씨 역시 “학생회 차원에서 주기적으로 대청소를 진행하지만 휴게실을 관리하는 가이드라인이나 지침 같은 것은
없다”고 밝혔다.
마련된 공간이 협소하다는 점도 지적된다. 시험기간 등 학생들이 휴게 공간을 많이 찾을 때는 많은 학생들이 휴게공간을 이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특히 여학생들 수가 많은 인문대나 사회대의 경우 시험기간이면 휴게 공간이 꽉 차서 뒤늦게 찾아오는 학생들이 이용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강세영 씨는 “시험기간에는 밤을 새우는 학생들이 많아 공간이 꽉 찬다”며 학생들이 몰리는 시기에 휴게 공간 이용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사회대에 위치한 남학생 휴게실. 교내에 남학실 휴게실은 이곳 하나 뿐이다. ⓒ이지원 사진기자
본부의 협조와 관리주체 마련이 절실해
공간 부족, 관리 소홀 등 휴게 공간을 둘러싼 여러 문제가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캠퍼스 내 모든 휴게 공간에 대한 전반적인 사무를 담당하는 주체가 없기 때문이다.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탓에 유기적인 휴게 공간 계획·설치 및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본부 학생지원팀에서는 학생회관에 위치한 여학생휴게실을 담당할 뿐, 나머지 단과대 휴게실의 설치나 관리는 온전히 단과대학의 몫이다. 때문에 새로운 건물을 지으면서 학생 휴게 공간 설치를 검토할 수도 없다. 학생들의 요구가 있으면 그제야 남는 공간에 산발적으로 휴게실을 설치하고, 학생들이 요구해서 만든 것이니 관리도 학생들이 하라며 맡겨 버리는 식이다. 이와 같이 학생휴게실에 대한 본부의 관심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학생들의 요구를 제대로 전달하는데도 어려움이 발생한다. 김민석 부총학생회장은 “단과대학 별로 (남학생 휴게실 설치를) 공약으로 추진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 총학생회에서 요구를 하면 거기에 찬물을 끼얹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며 대응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결국휴게 공간의 확보는 학교의 호의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단과대학 측의 비협조적인 자세 역시문제의 원인이다. 단과대학 학생회에서는 단과대학이 협조를 거부할 경우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최우혁(경제 13) 사회대 학생회장은 “지난 교육개선협의회 당시 학장단이 휴게실에서 잠을 잔다는 것에 대해 불쾌해하면서 휴게 공간 관리에 협조를 거부했다”며, 남학생 휴게실을 마련하긴 했으나 단과대학 차원의 지원 없이 휴게실을 관리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휴게 공간 마련은 학생 복지 차원에서 꼭 필요하지만, 학교는 이를 학교가 해야 할 역할로 인식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김민석 부총학생회장은 “단과대 행정실에서는 학생회가 요구해서 만들었으니 학생회에서 관리하라고 하지만 휴게실 관리를 하지 않는 것은 학교의 책임 회피”라며 휴게 공간 관리에 학교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