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규칙 변경 강행하는 서울대병원, 민주적 절차는 어디에?
서울대병원은 2015년 한 해 동안 두 차례의 취업규칙 변경을 시도했다. 2015년 1월, 병원은 첫 번째 취업규칙 개정을 시도했다. 자녀 학자금 지원 폐지 퇴직수당 폐지 정기휴가 삭제 휴직기간 근속기간 제외 등 노동자의 복지조건을 낮추는 내용에 기존 의사에 적용되던 성과급제를 전 직원으로 확대하는 신설 세칙안이 포함됐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서울지부 서울대병원분회(서울대병원분회)는 2015년 4월 이에 반대하는 총파업을 강행했다. 논란이 됐던 전 직원 성과급제 도입에 대해 서울대병원은 ‘병원 경영 정상화를 위한 방책’이라고 입장을 고수한 반면, 서울대병원분회는 ‘과잉 진료를 유도하여 환자의 진료비 부담을 늘린다’고 맞섰다. 팽팽한 대치 끝에 5월 13일, 스무 날 째를 마지막으로 총파업은 마무리됐다. 이후 5월 27일 서울대병원과 서울대병원분회는 최종 합의서를 타결했다. 합의서에 따르면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 성과연봉급제 도입은 철회됐으나 직원 복지후생 축소에 관한 나머지 취업규칙 개정은 전부 통과됐다. 박 분회장은 “전 직원 성과급제를 막는 대신 여러 복지수당과 지원금을 포기해야했다”고 말했다.
2015.05.27. 방만 경영 정상화 이행을 위한 新취업규칙 도입 관련 합의사항 1. 새로운 취업규칙에서 각종 평가 결과를 조합원의 고용과 연계하지 않으며, 능력가급, 인센티브수당을 포함하지 않는다. 2. 병원은 퇴직수당 폐지에 따라 2015.6.30. 기준으로 1호봉을 가산하고 2015.7.1.부터 기준기본급에 근속가산기본급(1년이상-5년미만 2%, 5년이상–10년미만 5%, 10년이상–15년미만 6%, 15년이상–20년미만 7%, 20년이상 8%)을 새로운 보수규정에 따라 지급한다. 3. 단체계약 갱신 합의서 제28조 1항 개정: 휴직기간은 원칙적으로는 근속기간에 산입하지 아니한다. |
2015년 10월, 또 한 번의 취업규칙 개정이 있었다. 서울대병원은 10월 20일부터 27일까지 임금피크제 도입에 관한 직원투표를 실시했다. 서울대병원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온라인 투표 시스템을 활용한 선거 절차를 밟았다. 직원 6,045명 중 3,177명(52.56%)이 투표했고, 그 중 1,728명이 찬성 의사를 밝혔다. 근로기준법은 취업규칙이 근로자에게 불이익 변경될 때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도록 명시하고 있다. 서울대병원의 임금피크제 도입은 취업규칙 적용대상 직원 중 28.59%만이 동의해 노동자 과반수 동의를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서울대병원은 29일 임시 이사회를 열고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취업규칙 변경을 의결했다. 정년을 58세에서 60세로 연장하되 1년차(59세)엔 20%, 2년차(60세)엔 30% 감액하는 내용이었다. 서울대병원 측은 “현행 정년이 58세이기에 오히려 정년을 연장하는, 근로자에게 유리한 취업규칙 변경”이며, “투표에 참여한 3,177명 중 1,728명의 동의(찬성률 54.39%)를 얻었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11월 4일 성명을 통해 “임금피크제 강행은 위법한 취업규칙 변경이다. 이미 법으로 60세 정년이 확정된 상황에서 정년 연장을 이유로 한 임금피크제의 실시는 불이익변경에 해당함이 명백하다”면서 “수많은 판례가 명시했듯이 근로기준법에서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는 투표한 인원의 과반이 아닌, 취업규칙을 적용받는 전체 노동자의 과반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더구나 서울대병원이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해 시행한 취업규칙 변경 투표 절차가 공정하지 못했다는 의혹이 있다. 직원들은 반복되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시하고자 투표를 거부했으나, 병원은 주말, 근무 중 가릴 것 없이 개개인에게 투표를 독촉하는 문자를 보냈다. 개개인의 투표 여부가 비밀로 보장돼야함에도 불구하고, 병원에서는 투표 여부를 파악하고 투표를 요구했던 것이다. 서울대병원분회 우지영 사무장은 “병원은 미투표자들에게만 선별적으로 전화를 했고, 미투표자들은 투표가 마감되는 27일에는 평균 네댓 통의 전화를 받아야 했다”고 주장했다.

서울대병원의 투표 독촉 문자. 투표하지 않은 직원들에게 선별적으로 문자가 발송됐다. ⓒ 서울대병원분회
최근 서울대병원분회는 서울대병원의 임금피크제 도입 강행에 대해 병원장을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형사고발한 상태다. 그러나 고용노동청에서는 네 달이 지나도록 수사와 관련한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서울대병원분회는 고용노동청 앞에서 조속한 수사를 촉구하는 릴레이 1인 시위를 진행하며 문제를 알리고 있다.

최근 서울대병원분회는 고용노동청 앞에서 조속한 수사를 촉구하는 릴레이 1인 시위를 진행 중에 있다.
배후에는 정부의 공공기관 정상화 지침이 있다?
서울대병원이 무리한 취업규칙 변경을 시도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11월 4일 성명에서 “서울대병원은 임금피크제 도입이 불이익변경이라는 점을 명백히 알고 있으며, 위와 같은 행태는 정부의 강압적인 공공기관 정상화 정책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기획재정부는 2014년 초부터 3대 핵심개혁과제 중 하나로 ‘공공기관 정상화’를 내걸고 있다. 공공기관 정상화 정책은 과도한 부채, 방만한 경영 등 공공기관의 비효율을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2014년에는 공공기관 부채 감축과 방만 경영 해소를 골자로 하는 1단계 정상화 정책이 추진됐고, 2015년도부터는 임금피크제·성과연봉제·중기성과급제 등의 도입을 통해 성과주의제를 강화하는 2단계 정상화 정책이 이행 중에 있다.
서울대병원의 두 차례 취업규칙 변경 초안을 살펴보면 1단계 및 2단계 공공기관 정상화 정책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자녀 학자금 지원 폐지, 퇴직수당 폐지 등 노동자의 복지수당을 축소하는 내용(2015년 1월 취업규칙 개정 초안)과 임금피크제 도입(2015년 10월 취업규칙 개정안)은 1단계 지침인 ‘방만 경영 축소’와, 전 직원 성과급제 도입(2015년 1월 취업규칙 개정 초안)은 2단계 지침인 ‘성과주의 확대’와 관련돼있다.
실제 서울대병원은 병원과 노조 간의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 회의’가 무산되자 곧바로 무리한 취업규칙 개정을 강행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의 4월 29일자 보도에 따르면 서울대병원측은 무리하게 취업규칙 변경을 강행했다는 비판에 대해‘정부의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에 따르지 않으면 임금 동결과 지원금 삭감 등 불이익이 너무 많아 취업규칙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공공기관 정상화인가 공공기관 영리화인가
공공기관 정상화는 정확히 어떤 의미일까. 2014년 11월,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 경영평가 대상에 국립대학병원을 포함시켰다. 이어 교육부는 2015년 4월 국립대학병원 경영평가 편람에 재무예산관리 정부지원사업비 집행실적 계량업무 관리비 등을 국립대학병원의 평가지표로 명시했다. 재무예산관리와 계량업무 관리비는 재무적 성과와 인건비·관리비 절감을 보겠다는 것이고, 정부지원사업비 집행실적은 국가 지원금을 얼마나 정부가 명시한 용도에 맞게 사용하는지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녹색병원 이상윤 과장(직업환경의학과)은 “현재 정부의 정상화 정책은 사실상 수익성만을 두고 평가를 하겠다는 것”이라며 “공공기관은 영역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문제와 개선점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을 뭉뚱그려 하나의 지표로 관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의견을 밝혔다. 박경득 공공운수노조 서울대병원 분회장 또한 “기획재정부와 교육부는 공공기관 정상화 정책을 국립병원에 일괄적으로 적용해서 안 된다”며 “특히 교육부는 공공성에 대한 고민 없이 국립대학병원 평가편람을 급하게 작성한 경향이 짙다”고 말했다. 실제로 교육부는 삼덕회계법인에 평가편람 작성을 전부 위임했으며, 2014년 11월 의료연대본부 주최 국회토론회에서 “국립대병원 경영평가는 새로운 업무라 많이 낯설고 준비에 힘이 드는 상황”이라고 인정한 바 있다.

교육부에서 작성한 국립대학병원 평가 편람. 철저히 수익성 지표 위주로 구성된, 재무적 성과와 노사 관리에 치우친 평가체계임을 알 수 있다. 반면 중증치료, 필수의료공급, 지역의료체계 등 의료공공성을 반영하는 지표는 전무하다.
서울대병원은 국립공공기관으로서 늘 정부 주요 정책들의 첫 번째 실험장이 돼왔다. 이명박 정부 시절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정책은 정권이 바뀐 후에도 ‘공공기관 정상화 방안’, ‘방만경영 효율화 방안’ 등 이름만 바뀌어 지속적으로 서울대병원에 시도됐다. 2013년 12월 공공기관 정상화 지침이 발표된 뒤로 정부는 꾸준히 국립대학병원들에 임금피크제 도입과 성과급제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서울대병원분회는 의료공공성의 기치를 전면에 내세우고 총파업과 기자회견을 통해 꾸준히 취업규칙 개악을 저지하는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