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금심의위원회의 지위와 기능
흔히 교수·학생·직원을 대학의 3주체라고 한다. 교수는 가르치고 학생은 배우며 직원은 뒷받침한다는 뜻인데, 정작 학생은 주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지위가 빈약하다. 학생은 등록금을 꼬박꼬박 지불할 의무가 있지만 구조조정이나 학사정책변동 등 대학의 주요 의사(意思)에는 거의 관여할 수 없다. 최근에야 학생들이 개입할 여지가 생겨났는데, 대표적인 것이 2012년부터 도입된 등록금심의위원회(‘등심위’, ‘고등교육법’ 제11조)다.
거칠게는 등심위를 노사 간 단체교섭에 유비할 수도 있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단체교섭의 결과물인 단체협약이 개별근로계약·취업규칙의 내용에 우선하는 규범적 효력이 있다면(‘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33조), 등심위의 심의결과는 학교운영주체가 존중해야 될 뿐 무시했다고 해서 법적책임을 물지는 않는다. 또한 등심위의 인적 구성은 대학이 정하므로 학생에게 불리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많은 학교의 등심위에서 등록금을 동결 내지 소폭 인하하는데 합의한 것은, 등록금 인상률이 연평균 소비자물가상승률의 1.5배를 초과하면 제재를 가할 수 있다고 법문으로 선언해두었거니와, 현실적으로 등록금을 동결·인하한 대학만 국가장학금 Ⅱ유형을 받을 수 있는 탓이다. 대학에게 유리한 운동장을 국가가 부분적으로나마 보완하는 셈이다. 더군다나 등심위는 모든 대학에서 학생들이 전체 위원의 30% 이상을 구성하도록 법적으로 보장받은 유일한 학내 기구이다. 따라서 많은 대학의 총학생회는 등심위에 학생대표를 적극 파견하여 각종 학내 사안에 관하여 의견을 개진하고 투쟁해왔다.
서울대학교 등록금심의위원회의 역사
등심위가 처음 열린 2012년(학부 5% 인하 및 대학원 동결)에는 날치기 법인화 문제로 총학생회가 학생대표 파견을 거부했고, 학교는 여기에 맞서 임의로 학생대표를 지명하고 회의를 진행했다. 그렇다보니 당시에 관한 자료는 공식회의록 뿐이다. 2012년의 반복을 막기 위해 총학생회는 그 이후 학생대표를 꼬박꼬박 파견하고 활동도 정리·평가하고 있다.
2013년(학부·대학원 0.25% 인하)에는 학교가 예산·결산자료의 사무실 내 열람만 허용하자, 연창기·김재원 학생대표는 자료를 일일이 컴퓨터를 옮겨적은 후 예산집행비율을 계산하는 열의를 보였으며, 당시 화제가 되었던 기성회 회계자료를 받기 위해서는 행정심판까지 진행했다. 한편 그 해 가을부터는 총학생회 산하기구로 대학행정자치연구위원회를 신설하여 등심위 대응과 학교행정연구의 전문성을 제고했고(이하 ‘대자연’, 「서울대학교총학생회칙」 제73조의4~5), 대학원생총협의회(현 대학원총학생회)도 등심위를 같이 준비하고 학생대표도 파견하였다. 일부 학교가 학부 등록금만 인하하고 대학원 등록금은 인상하는 상황에서 서울대학교가 꾸준히 학부와 대학원 등록금을 동률 인하할 수 있었던 까닭은 바로 이것이다.
2014년과 2015년(각각 학부·대학원 0.3% 인하)에는 장학금 확대도 꾀했다. 특히 2015년 양기원 당시 대자연 위원장은 2014년 대학원생의 외부장학금 수혜규모가 2013년의 35% 수준으로 갑자기 떨어졌음을 지적하면서, 연구후속세대 양성 차원에서 대학원생의 교내 장학금 확충 요구를 하였다. 등심위에 들어온 보직교수조차 아연실색한 발견을 통해, 학생들은 학교로부터 장학금 확충 노력을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다만 실행여부는 불투명하다.

2011년 반값등록금 투쟁 당시 저녁 촛불 집회에 참가한 대학생들의 모습. ⓒ오마이뉴스
2016년 서울대학교 등록금심의위원회
올해 등심위는 1월 5일 1차 회의 개최로 시작되었다. 예년처럼 학교대표는 기획처장·학생처장·재정전략실장, 학생대표는 학부총학생회장·대학원총학생회사무총장·대자연위원장(필자)이었고 외부위원이 3명이었다. 작년보다 는 3주 늦게 열린 것이지만 2013년과 2014년에는 1월에 1차 회의를 열었던 점, 학교가 작년 2학기에 교육부·감사원 감사를 연달아 받아 바빴던 것을 감안하면 출발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이날 학교는 예년처럼 공공요금·인건비 증가분을 벌충하고 세계적인 대학으로 발전하기 위한 재원이 필요하다며 등록금 1.7% 인상안(고등교육법상 인상률상한)을 내놓았다.
문제는 학교가 등록금을 신속히 확정하여야 예산안을 수정하고 재경위원회·이사회에서의 수속을 밟을 수 있다며 이틀 후에 2차 회의를 개최할 것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요청한 자료를 받아 분석할 시간이 필요하므로 1월 11~12일에 열자고 했지만, 학교는 2차회의에서 합의가 안 되면 그 때 3차 회의를 열자고 받아쳤다. 결국 학교가 제시한 대로 2차 회의가 열렸다.
2016년 예산 자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였고 분석할 시간도 별로 없었으므로, 우리는 지출 증가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예컨대 최저시급 인상이 청소·경비용역비용 상승으로 직결되어 등록금을 인상해야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청소·경비노동자를 학교가 직고용하고 용역업체수수료를 임금으로 전용(轉用)함으로써 지출총액은 유지할 수 있다고 받아쳤다. 공공요금을 충당해야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에너지 절약을 위한 구체적이고 생산적인 지출이 담보되지 않는 한 수용하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또한 치의학대학원에서 학교 예산으로 발주한 실험실 공사가 부실하게 진행된 사례 등을 제시하면서 예산 집행 감시 체계를 갖추기 전에는 학교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도 하였다. 그리고 국고출연금의 증가를 반영하여 학부·대학원 전 계열 등록금 5% 인하를 제시하였다.
우리의 주장에 학교가 작년과 같은 수준인 0.3% 인하안을 제시함으로써 인하율을 둘러싼 줄다리기에 들어갔다. 우리는 내심 1% 수준의 인하만 얻어내더라도 전례와 비교하여 성공이라 여겼으므로, 1.7% 인하안을 제시하였다. 하지만 학교가 완강히 거부하는 통에 1시간에 걸쳐 점점 끌려가 0.5% 인하안을 최종으로 냈다. 한편 학교는 0.33% 인하안을 최종으로 내놓고,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등심위를 최종 결렬하고 이사회에서 학교안과 학생안 둘 중 하나를 고르도록 만들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 상황에서 외부위원이 0.35%로 중재하여 극적으로 타결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건대 올해 등심위는 작년 등심위보다 급하게 진행되었으며 준비도 철저하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하율은 작년보다 0.05%p 증가하였는데 까닭이 무엇일까? 답은 서울대학교의 세입 구조에 있다. 법인화 이후에도 서울대학교는 막대한 규모의 국고출연금을 지원받고 있는데, 올해에는 4,548억으로 본예산세입의 70%를 차지한다. 특히 기획재정부의 중기예산계획에 따르면 서울대학교가 지원받는 국고출연금은 2014년을 정점으로 매년 200~300억씩 감소하기로 되어있었지만(법인화 반대 투쟁의 근거 중 하나이기도 했다), 실제로는 오히려 큰 폭으로 상승(2015년에는 전년 대비 7.0%, 2016년에는 전년 대비 4.1%)했다. 연평균 소비자물가상승률의 약 4~5배, 일반국공립대학 연간예산상승률의 약 2배이다.

등록금심의위원회에 참가하는 학생들을 돕기 위해 일부 야당 국회의원들과 대학교육연구소, 참여연대 주최로 매년 한 번 2014년부터 등록금캠프가 열리고 있다. ⓒ참여연대
결국 학교 입장에서는 예상보다 국고출연금을 많이 받았으므로, 본예산세입의 30%에 불과한 등록금을 작년보다 더 인하하더라도 세출 편성에 큰 지장이 없는 것이다. 정부와 국회를 설득하여 국고출연금을 매년 증액하여 받아오는 예산과장의 역량은 개인적으로 칭찬하지만, 국가로부터 후원을 이중으로(국가장학금과 국고출연금) 받고도 학교가 등록금을 인하하는데 매우 인색하다는 사실은 총학생회 간부로서 매우 씁쓸하다. 뿐만 아니라 등심위가 국고출연금의 증감에 종속적인 요식행위로 전락할까봐 두렵기도 하다.
앞으로의 등록금심의위원회를 준비하며
등심위가 요식행위로 전락하지 않고 실질적인 기능을 수행케 하려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나? 첫 번째는 대학의 예산 효과적·효율적 집행을 감시하는 것이다. 2013년 학생위원들이 지출 항목별 예산집행비율을 계산한 것에서 보듯, 지출 감축가능성이 등록금 인하의 핵심근거임은 이미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보고서의 숫자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배후의 지출내용을 알 수 없으며 남은 예산은 부족한 곳에 전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 때문에 대학을 크게 압박하지는 못하였다. 따라서 학생들은 실제지출규모가 원가 계산에 맞추어 적정한지, 지출규모에 걸맞은 성과가 나고 있는지, 부실공사나 비위가 혹시 있지 않았는지 등을 전반적으로 살펴보아야한다. 쉬운 일은 아니며 공상(空想)으로 들릴 수도 있다. 학생이 업무에 전념할 수 있는 기간은 1~2년에 불과하고, 서울대학교는 구성원이 3만 명에 달하는 거대기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입 증대에 한계가 있음은 명약관화하므로 세출 감축 노력은 필수적이다. 이에 대자연은 올해 인건비·광열비와 같은 주요 지출의 효율화·절감 가능성을 검토하고 필요하면 대학 측에 사실관계를 문의하는 등의 연구를 진행코자 한다. 단과대학생회와 일반 학우의 제안·낭비신고도 독려할 것이다. 당장 성과보기는 어렵겠지만, 행동을 취하는 것만으로도 대학에 정치적 압력을 가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 훔볼트 대학의 건물 모습. 독일은 국공립대학의 등록금을 무료화했다. 독일식 정책을 한국에 곧바로 적용하기에는 사회적 배경이 많이 다르기는 하나, 좋은 선례가 될 것이다. ⓒThe American Conservative
두 번째는 국가의 고등교육재정확충과 학생의 대학행정참여보장을 요구할 전국운동을 조직하는 것이다. 앞서 살펴보았듯 등심위 운영에 국가의 역할이 지대하거나와, 제도적 보장이 있어야 학생들이 발언권을 확대하고 많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으며, 지출 감축에 매몰되면 대학의 중요 축인 비정규직노동자·시간강사들을 위기에 내몰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이번 총선은 제도 야권의 사분오열로 인해 대응가능성에 의문이 드나, 무얼 하든 무위(無爲)가 되지는 않을 터이다. 다만 운동을 조직하기에 앞서 대학의 본질과 기능에 관한 질문은 선결될 필요가 있을 텐데, 이를 돕고자 필자는 이번 학기에 근현대대학사를 다루는 학생자율세미나 4번 강좌를개설하였다. 학우 여러분의 관심 바란다.
이동현(자유전공 13)

고등학교 때는 자연과학을 좋아했으나, 대학에서 이상한 바람이 들어 한동안 사법시험을 준비하겠다고 설치다가 대차게 말아먹고, 2학년 때부터 대학행정자치연구위원회에 둥지를 틀어서 학내외 정치사안 대응을 해온 것이 만 2년이다. 서양사학과 경제학이 전공이지만 게을러서 공부 한 건 없고 소련사와 자본론 겉핥기 한 게 전부다. 무엇으로 먹고 살지는 오리무중이라 몇 년 간 더 무진기행을 해야 될 성 싶다. 연애에 관심이 없는 게 그나마 위안이다. 대학행정자치연구위원회 위원은 항시 모집하므로 010-8842-3960으로 연락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