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국회 돌아보기

세 가지 포인트, 그리고 중간평가

  4·13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많은 유권자들이 투표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미래에 대한 전망이 아니라 각 정당·정치인의 과거 행적이다. 예를 들어 어떤 지역구의 국회의원이나 정당이 지난 4년간 국민들에게 신뢰할 수 있다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면 그 지지율이 올라갈 것으로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서울대저널>에서는 19대 국회의 지난 4년을 세 가지 포인트에 따라 정리했다.

1. 행정부의 영향력

  19대 국회의 특징 중 하나는 행정부의 영향력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2012년 하반기에서 2013년 전반기의 주요 정치 이슈였던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의혹과 NLL 대화록 논란은 국정원이라는 국가 기관으로 인해 여야의 갈등이 격화된 사례다. 2015년에는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의 압력에 의해 원내대표직을 사퇴했고,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이뤄진 새누리당의 공천에서는 소위 ‘비박’ 의원들이 무수히 탈락했다. 이러한 이슈들을 두고 일어났던 국회에서의 갈등에는 어김없이 행정부와 그 소속의 국가 기관들이 직·간접적으로 관련돼 있었다.

 2013년 전반기, 2012년 대선 선거운동 기간에 민주통합당 김현, 진선미 의원이 제기한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의혹에 대한 수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수사 축소를 지시한 정황이 드러나 논란이 일었다. 여야는 국정조사에 합의했지만 새누리당에서 김현, 진선미 의원의 국정조사 참여를 반대함에 따라 조사가 심층적으로 이뤄지지 못했다. 국정원 역시 국정조사에 무단으로 불참했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이 구체화되자 새누리당에서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NLL(북방한계선)을 포기하겠다는 발언을 했다고 주장하며 국정원에 대화록 열람을 요구했다. 대화록은 공개됐으나 정작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 중 NLL을 포기하겠다는 내용은 없었다. NLL 정국을 주도했던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 역시 그로부터 약 1년 후 포기 발언이 없었다는 것을 고백해 논란을 일으켰다. 통일연구원의 이상신 연구위원은 “국정원 여론조작 사건은 당시 인터넷을 통한 정치 참여의 모범적 사례로 여겨졌던 한국의 인터넷 공론장이 붕괴된 계기라는 점에서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NLL 대화록 논란에 대해서는 “민감한 외교적 문서를 공개하고 이를 통해 여론을 조성하려는 시도는 매우 위험하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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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는 여당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영향력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원내대표는 한 정당의 국회의원들을 대표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해당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들의 투표를 통해 선출된다. 2015년 6월 유 원내대표는 정부가 이미 제정된 법률의 취지에 반하는 내용의 시행령을 발표하지 못하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 통과를 주도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여기에 거부권을 행사하며 “배신의 정치인을 국민이 심판해야 한다”는 말로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종용했다. 이후 친박계 의원들은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거세게 주장했고, 결국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유승민 의원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제1조 1항을 지키고 싶었다”고 사퇴의 변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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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

  여당이 행정부의 영향력을 받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는 긴밀하게 관련돼 있고 이들의 상호 작용을 거쳐 통치(governance)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4년을 돌이켜볼 때, 19대 국회와 행정부의 관계는 이상적인 상호 협력과 견제보다는 일방적으로 지시를 내리고 받는 관계에 가까웠다.

2. ‘식물 국회’?

   19대 국회를 두고 ‘역대 최악의 국회’ 혹은 ‘식물 국회’라는 비판이 많이 제기됐다. 여기에는 2012년 5월 기존 국회법이 개정된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으로 인해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이 매우 엄격해지고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등의 제도가 도입된 배경이 있다. 이에 따라 법안들이 통과되기 어려워졌고 의사결정이 지연돼 결국 최악의 국회라는 오명을 쓰게 된 것이다. 실제로 여야는 세월호 특별법, 선거구 획정, 테러방지법 처리 등 각종 쟁점 사항에 대해 쉽게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고 이 결과 국회가 공전 상태에 빠지는 경우가 잦았다.

  하지만 강원택 교수(정치외교학부)는 “사실 18대 국회에 대해서도 ‘역대 최악’이라는 말은 나왔었다”면서, “18대 국회에서는 최루탄까지 터지는 등 의회 정치의 기본적인 규칙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기준에서 보면 19대 국회에서 국회선진화법으로 인해 몸싸움이 사라진 것은 의미 있는 진전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19대 국회가 역대 최악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에 대해서 강 교수는 “국회선진화법으로 인해 협상과 타협에 의한 정치의 필요성이 높아졌지만 여야가 그것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상신 연구위원은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입법 효율성이 저해됐다는 실질적인 증거를 찾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19대 국회에서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률 16,664건 중에서 처리(가결·부결·폐기·철회)된 것은 6,924건으로 전체의 41.5%이다. 반면 18대 국회에서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률의 수는 12,220건이며 이 중 처리된 것은 4,890건으로 전체의 40.0%에 해당한다. 오히려 19대 국회에서 더 많은 법안이 발의·처리된 것이다. 이 연구원은 “국회선진화법을 통해 법률안이 상임위원회를 거쳐 본회의에 회부되는 데까지의 장애물이 상당 부분 제거됐다”고 설명했다. 한편 그는 “법률을 많이 통과시키면 좋은 국회고 그렇지 못하면 나쁜 국회라는 것 역시 일종의 선입견”이라고 지적했다. 주어진 시간 내에 얼마나 많은 법안이 발의됐고 그 중 통과된 법안의 수가 몇 개인지 계산해 효율성을 따지는 것이 정치 판단에 있어 온당한 기준이라고 단언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2016년 2월 정의화 국회의장이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고 테러방지법을 직권상정한 것은 국회선진화법 논란에 또다시 불을 지폈다. 더불어민주당을 위시한 야당은 이에 대응해 필리버스터에 돌입했으나 결과적으로 테러방지법 원안 통과를 저지하지 못했다. 새누리당은 필리버스터를 맹렬히 비판하며, 국회선진화법이 야당의 권한을 지나치게 강화하여 입법교착 상태를 야기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상신 연구위원은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필리버스터를 통해 법안의 통과를 완전히 막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국회선진화에서는 필리버스터로 인해 어떠한 법안의 표결이 해당 회기 내에 이뤄지지 못할 경우, 다음 회기가 시작될 때 본회의에서 해당 법안에 대한 표결이 바로 시작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연구위원에 따르면 필리버스터는 야당이 법안의 통과를 무제한적으로 저지할 수 있는 제도가 아니라, 여야로 하여금 상호 간의 합의를 보다 중요시하게 하는 하나의 제도적 인센티브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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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3. 기득권적 양당 체제

  19대 총선 결과 새누리당은 152석, 민주통합당은 127석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처럼 거대한 여·야당이 많은 국민의 선택을 받은 만큼 유권자들의 권익을 충실히 대변해왔는지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강원택 교수는 새누리당에 대해 “집권 여당이지만 실제로 통치 과정에서의 역할이나 기여가 분명하지 않고, 대통령과의 친소 관계로 인한 파벌이 당의 일상적인 운영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더불어민주당에 대해서는 “계속된 이합집산과 당내 파벌 문제로 인해 집권 대안 세력으로서의 미래지향적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폐쇄적 형태의 지역주의 정당 체제는 한국 정당 정치의 본질적 문제점이다. 영남·호남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거대 정당이 양립하고 있고, 이들의 강세 지역에서는 사실상 경쟁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각 정당의 정치적 긴장감이 감소해 유권자에 대한 대응성이 하락하면 이는 유권자들의 정치 혐오와 정치적 무관심을 야기하고, 다시 폐쇄적인 기득권적 양당 체제를 강화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강 교수는 최근 화제가 됐던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의 공천에 대해 “공천 과정에서 평당원들이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현 정당 체제에서 각 정당이 유권자들의 여론보다는 당내 역학 관계를 중시하게 됐다”며 “정당이 정치 엘리트들의 결집체가 아니라 일반 시민이 참여해 중요한 사항을 결정할 수 있는 구조로 변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2016년 2월에는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안철수 의원이 국민의당을 창당했고 창당 초기에는 20% 내외의 상당한 지지율을 기록했다. 한상진 국민의당 창당준비위원장은 “기존의 양당제는 국민으로부터 유리돼 극단적인 이념 투쟁의 장으로 치달았다”고 비판하며 “국민의당은 양당 지지층의 중간에 존재하는, 조직화되지 못한 다수의 국민들을 대변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창당 이후 국민의당의 지지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추세에 있다. 강원택 교수는 이를 “표방하는 가치가 분명하지 않으며 지역적 기반도 호남에 국한돼 있어 새로운 제3당으로서의 차별화에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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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aknews

  정의당에 대한 지지율은 점진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강원택 교수는 “(정의당이) 종북 논란에서 자유로워진 진보정당으로서 역할을 수행할 공간은 열려 있다”고 평가했지만 “존재감이 다소 약하다”는 지적을 덧붙였다. 실제로 통합진보당이 야권연대를 통해 13석의 의석을 획득했던 19대 총선과 비교하면 20대 총선 국면에서 야권연대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기득권적 양당 체제를 타파하기 위한 제도적 방법으로는 선거구제 개편이 꼽힌다. 헌법재판소의 선거구 개편 권고에 대해 2015년 2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중점으로 하는 선거구 개정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전국을 6개의 권역으로 나누고, 한 권역에서의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의 수가 결정되는 제도다. 이 제도를 시행하게 되면 비례대표 의원 수가 크게 늘어나는 한편 지역주의 구도도 완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2016년 2월 여·야 합의에 의해 새롭게 획정된 선거구에서 기존의 소선거구제와 단순 다수 대표제는 변하지 않았고 비례대표의 수는 오히려 감소했다. 이상신 연구위원은 “양당제를 유지하고 있는 양대 정당에서 지금의 소선거구제를 철폐하고 제3당의 출현을 허용할 제도를 만들 유인이 없다”면서, 획기적인 계기가 나타나지 않는 한 제도적 변화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숙제검사’

  박근혜 정부에 대한 평가를 떼어놓고 19대 국회를 생각하기는 어렵다. 19대 총선에서부터 박근혜 대통령은 새누리당에서 상징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했고 그 개인에 대한 지지가 대선의 승리와 국정 운영에 있어 강력한 동력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강원택 교수는 박근혜 정부에 대해 “지난 3년 동안 당청 관계가 원활하지 못한 모습을 보였고, 가시적인 성과가 특별히 드러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한 경제민주화 등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 지켜지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많은 유권자들이 공감했던 대선 공약을 지키지 않는 것은 시대적 요구를 효과적으로 반영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하며, 20대 총선에서는 이에 대한 유권자들의 평가가 반영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4년간 새누리당은 집권 여당임에도 행정부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으며, 이에 따라 총선에서 투표 결과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유권자들의 평가 역시 일정 부분 드러나게 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대통령과 집권 여당에 대한 효과적인 대안 세력으로서 국민들에게 이미지를 각인시키지 못했다. 국민의당은 참신성에서, 정의당은 확장성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제는 각자의 4년간의 행적이 유권자들에게 평가받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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