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할 때는 직원, 쫓겨날 때는 조교?

행정실을 나와 집회에 모인 익숙한 얼굴들

  지난 7월 11일에서 15일까지 5일 동안 행정관(60동) 앞에서는 조교들의 집회가 이어졌다. 집회 마지막 날인 15일에는 행정관 앞에 120여 명의 조교들이 모였다. 교내에서 일어나는 집회로는 작지 않은 규모였다. 이날 모인 조교들은 대부분 단과대 행정실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로 학생들에게 낯익은 얼굴들이었다. 이들은 왜 이곳에 모여 집회를 하게 됐을까.

조교라는 이름의 서로 다른 사람들

  학교에는 ‘조교’라고 불리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모든 조교가 같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학생들이 강의실에서 보는 조교들은 강의·연구지원 조교다. 강의·연구지원 조교는 교수들의 연구를 보조하거나, 전공 및 교양 과목에서 강의 조교로 활동하며 학교 장학 규정에 따라 수업료를 면제받거나 월 30~6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받는다. TA세션, 채점, 출결 관리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조교들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한편 단과대 행정실에 소속된 조교는 강의·연구지원 조교와는 전혀 다른 일을 담당한다. 이들은 ‘고등교육법’에 의해 교원 지위를 인정받고, 하루 8시간 전일제 근무를 하며, 장학금이 아닌 월급을 받는다. 행정실 직원과 같은 곳에서 일하기 때문에 언뜻 봐서는 행정실 조교와 직원을 구별하기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고등교육법’에 따르면 직원은 ‘학교의 행정사무와 기타의 사무를 담당’하지만 조교는 ‘교육·연구 및 학사에 관한 사무를 보조’하도록 돼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모 학과 행정실에서 10년째 일한 행정실 조교 A씨는 “행정실 사정마다 다른 일을 하지만 사실상 직원들과 다를 바 없는 일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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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조교’라는 이름 아래에도 다양한 신분이 존재한다.

  행정실에서 근무하는 조교는 또 다시 두 개의 집단으로 나뉘는데, 석·박사과정과 조교 업무를 병행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다. 조교의 자격은 ‘근무하려는 학교와 동등 이상의 학교를 졸업한 학력이 있는 사람’으로만 정해져있어 대학 졸업자면 누구나 행정실 조교의 자격이 있다. 때문에 일부 행정실 조교는 석·박사과정에 있으면서 생업을 위해 전일제 조교 업무를 병행한다. 한편 각 단과대 행정실은 일반 공개 채용을 통해 석·박사 과정생이 아닌 행정실 조교를 채용하기도 한다. 이처럼 학업을 병행하지 않으면서 행정실 업무만을 담당하는 조교들은 스스로를 ‘비학생 조교’라고 부른다. 이번 시위에 나선 이들이 바로 이 집단에 속하는 조교들이었다. 본부의 조사 결과 서울대에는 총 253명의 비학생 조교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학생 조교의 고용 안정을 보장하라!”

  이번 집회에서 비학생 조교들은 고용 안정과 기간제법 적용을 요구했다. 여러 조교들 중 비학생 조교들만이 시위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이 시위에 나서게 된 배경에는 두 가지 법률이 있다. 2007년 제정된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과 앞서 언급된 고등교육법이다. 기간제법에서는 2년을 초과해 고용된 노동자는 더 이상 기간제 노동자가 아니라고 규정한다. 즉, 기간제법의 적용 대상에 해당되는 노동자의 경우 계약 기간이 이미 끝났더라도 일터에서 해고될 수 없다. 일터와 기간제 계약을 맺고 있는 노동자들에 대한 일종의 보호 장치인 셈이다.

  그런데 기간제법 적용 대상에는 예외가 있다. 고등교육법상 조교도 이러한 예외에 해당한다. 즉 학교 측과 기간제 계약을 맺었다고 하더라도 고등교육법상 조교에 해당될 경우 기간제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게 된다. 행정실 조교 중 석·박사과정생이 많고, 이들은 졸업 후 학교를 떠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기간제법 적용이 불필요하다고 여겨진 결과 이러한 예외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에 많은 대학들은 고등교육법상 조교에 대해 대개 2년에서 5년 정도의 자체적인 근속년수 제한을 두고 있다. 서울대학교 역시 법인화와 동시에 ‘서울대학교 조교 운영 시행 지침’을 마련해 조교의 임기를 명문화했다. 이에 따르면 교육·학사업무에 지원하는 조교는 최대 5년, 실험·실습업무를 지원하는 조교의 경우 최대 7년까지 고용할 수 있다. 또한 ‘조교 인사 규정’에 따르면 조교들은 매년 학교 측과 재계약을 거쳐야 한다. 조교의 임기 제한 규정에 대해 교무처엄은미 담당관은 “법인화 이전에는 근무하다가 떠나는 조교들의 나이가 너무 많은 경우가 있어, (조교가) 학생인 경우 석·박사 과정생이 졸업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고려해 근속년수 제한을 정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오는 2017년 3월은 법인화와 동시에 마련된 이러한 근속년수 제한 규정이 처음으로 적용되는 때다. 때문에 2012년 3월 고용된 행정실 조교들은 내년에 재계약을 맺을 수 없게 된다. 전국대학노동조합(대학노조) 관계자는 이러한 상황에 처한 비학생 조교가 노조 가입자 중에만 69명이라고 말했다. 애초 비학생 조교들은 이러한 사실에 문제제기를 하지 않아왔지만 최근 전남대, 인천대 등에서 조교의 기간제법 적용에 대한 요구가 이뤄지면서 서울대학교 조교들 역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지난 2014년 전남대학교에서는 학교 측에서 정한 근속년수가 만료된 조교가 대학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기간제법을 적용받은 바 있다. 법원은 당시 홍보 담당관이던 해당 조교의 업무가 사실상 직원의 업무와 다름없고, 그가 학업을 병행하고 있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기간제법의 적용 대상이라고 판시했다. 인천대학교에서도 2015년을 시작으로 비슷한 요구가 등장하고 있다. 인천대 조교들은 노동조합에 가입해 앞선 전남대 판결을 근거로 학교 측에 조교 고용 안정을 요구할 계획이다.

  전남대와 인천대의 사례를 통해 조교의 고용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게 된 서울대학교 비학생 조교들은 지난 4월 대학노조 서울대지부에 가입했다. 노조 가입 이후 일부 조교와 단과대 사이에 마찰이 발생하기도 했다. 비학생 조교 대표자 중 한 명인 A씨는 “학과장이 대인관계 불화와 인사권 침해 등을이유로 다른 평가 항목이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나를 하위 평가자로 분류했다”며 노조 가입과 고용안정 요구 이후 학과에서 받은 불합리함에 대해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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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노조 서울대지부에서 게시한 자보 사진

조교일까? 직원일까? 비학생조교를 둘러싼 입장 차

  노조 가입 이후 비학생 조교들은 본부에 기간제법 적용 및 고용안정을 요구하고 있지만 본부와의 의견 차이는 여전히 좁혀지지 않고 있다. 비학생 조교 측에서는 자신들이 고등교육법상 조교가 아니며, 따라서 기간제법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본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노조와 비학생 조교 대표자들은 비학생 조교와 행정 직원의 업무가 사실상 구별되지 않기 때문에 비학생 조교를 고등교육법상 조교로 볼 수 없다고 말한다. 대학노조 관계자는 “2007년 서울대학교 직원 정원이 500명 가까이 줄어들면서 단과대에서 행정 업무를전담하는 조교들이 늘어났다”며 조교와 직원의 업무를 구분하기 어려운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앞선 전남대 판결에서도 법원은 ‘통상적으로 조교란 대학교수 밑에서 연구와 사무를 돕는 사람으로 이해되고 있다는 점’을 들어 당시 홍보 담당관으로 일했던 소송인을 고등교육법상 조교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본부 측의 입장은 다르다. 서울대학교 비학생 조교들이 맡는 업무는 전남대 조교가 맡았던 업무와는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교무처 엄은미 담당관은 “(전남대 조교가 담당했던) 홍보 업무는 통상적인 행정 업무와는 다르고, 서울대학교는 조교들에게 비서, 전산, 홍보 등의 업무는 맡기고 있지 않다”고 반박했다.

  학업을 병행하지 않는 비학생 조교들을 고등교육법상 조교로 보는 것에 대한 문제도 있다. 해우법률사무소 류하경 변호사는 고등교육법상 조교를 기간제법의 예외로 둔 취지가 “근로자가 학업, 직업훈련을 이수하는 데 필요한 기간을 정한 경우 그 기간에 따라 근로를 병행하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명칭은 조교더라도 학업을 병행하고 있지 않을 경우 기간제법의 예외 대상이 아닐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전남대 사건 1심 판결에서 법원이 채택한 근거이기도 하다. 고용노동부 역시 2010년 3월 질의회신을 통해 고등교육법상 조교에 해당하는지의 여부는 기본적으로 조교의 학업 병행 여부에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엄은미 담당관은 “법률 어디에서도 조교 규정에 학생, 비학생 여부를 따지지 않는다”며 비학생 조교들의 고용 형태가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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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에 나선 조교 노동자들 ⓒ대학노조 서울대지부

  본부는 비학생 조교들이 고등교육법에서 보장한 교원 지위를 인정받아 법인직보다 높은 초기 호봉을 받는다는 점을 들며 비학생 조교들이 기간제법 적용 예외대상이라고 주장한다. 엄은미 담당관은 “비학생 조교들이 고등교육법상 조교가 아니었다면 이처럼 높은 임금을 지급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비학생 조교들은 현재의 처우가 비학생 조교들이 기간제법을 적용받지 못할 근거가 될 수 없으며, 오히려 조교이기 때문에 받는 불합리함이 더 크다는 입장이다. A씨는 “교원은 초과 근무 수당을 못 받게 돼있어 조교들은 초과 근무를 해도 수당 신청조차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또한 그는 “조교들은 1년 단위로 재계약을 해야해 재임용 심사 전 두 달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며 조교 신분에 따른 어려움이 많음을 강조했다.

요연한 타협점, 본부 기간제법 회피 의혹도 제기돼

  비학생 조교들은 본부 교무처장(*)과 몇 차례 면담을 가졌지만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A씨는 “교무처장(*)은 법적인 문제는 나중에 이야기하자며 좋은 합의점을 찾아보겠다는 식으로만 이야기했다”며 아직까지 본부의 구체적인 대안 제시가 없었다고 말했다. 본부는 다가오는 국정감사와 감사원 감사 결과 등을 참고해 조교들의 요구에 대해 재검토할 예정이다. 교무처 윤원익 담당관은 “전남대 사건도 대법원까지 올라가 있고 감사원 감독도 계속 진행되고있어 쉽게 결론내리기 힘들다”며 아직까지 명확한 대안을 제시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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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4. ▲감사원 감사가 진행 중임을 알 수 있는 본부의 공문 ⓒ대학노조 서울대지부

  한편 본부가 올해 7월 경 진행한 ‘조교 인사 개정안’은 본부 측에서 조교 문제 해결을 회피하려 한다는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해당 개정안은 현재 관행으로 유지되는 것들을 명문화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지만, 2017년 이후 고용된 조교들에게 적용되는 임용 상한을 기존 5년·7년에서 2년으로 줄이는 부분이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대학노조 관계자는 “(개정안의 내용이) 기간제법 적용 시점을 회피하려는 시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개정 내용에 대해 비판했다. 이에 대해 엄은미 담당관은 “대부분의 업무가 보조 업무이기 때문에 (임용 상한이) 2년 정도여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며 개정안에 기간제법 회피 의도는 없었다고 말했다. 현재 감사원 감사와 국정감사 준비 등으로 개정안 도입은 잠정 보류된 상황이다.

  대학노조에 소속된 비학생 조교들은 개강과 동시에 불안정한 고용과 대책 요구에 대한 홍보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9월 5일부터는 학교 곳곳에서 비학생 조교의 상황에 대해 선전하는 집회를 열고, SNS를 통해 카드뉴스 등을 배포하고 있다. A씨는 “근본적으로는 조교라는 명칭 아래에서 행정업무를 전담하는 상황이 문제”라며 “법인직 전환 등의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 본지에는 교무처장을 연구부처장으로 보도했습니다. 이는 담당 기자의 오기입니다. 온라인 보도를 통해 정정합니다. 기자의 착오로 잘못된 보도를 한 점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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