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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벌적 손해배상, 기업을 겨누는 새 칼 될까
노동과 소수자에 집중한 137호

징벌적 손해배상, 기업을 겨누는 새 칼 될까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논란에 대해 알아보다

  올 상반기를 뜨겁게 달궜던 사회 이슈를 꼽으라면 역시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일 것이다. 기업들은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인체에 유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면서도 이윤을 위해 해당 제품을 시중에 내놓았고,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거나 영구적인 장애를 짊어지고 살아가게 됐다. 국회의원과 검찰 등에 의해 수사가 시작됐지만 해당 가습기 살균제 제조 기업 옥시래킷벤키저는 여전히 사람들의 피해에 다른 원인이 있을 수 있다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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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서울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옥시래킷벤키저를 규탄하고 있다. ⓒ한국일보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기업들 사이에 만연한 불법적 행태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는 환경부의 규제를 어겼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사의 차량을 계속 판매했고, 이에 대해 현재 검찰 수사가 이뤄지는 중이다. 이밖에 대리점주들에게 ‘갑질’을 한 남양유업이나 조직적으로 노조를 파괴하려 한 유성기업 등 기업들의 불법 행위는 한국에서 매우 일상적으로 이뤄진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계기로 기업들의 불법 행위를 규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확산되면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예전부터 국내 도입 논의가 진행돼 왔고, 19대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이 몇 차례 발의됐지만 재계의 반발에 막혀 번번이 통과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계기로 도입 여론이 광범위하게 조성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현재 더불어민주당, 참여연대 등 다양한 정당 및 시민단체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 어째서 필요한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불법 행위를 저지른 기업들이 그 불법 행위로 인해 발생한 손해액에 더해 막대한 액수의 배상금을 추가로 지급하도록 하는 제도로, 영국이나 미국과 같이 판례를 중심으로 법이 발달해온 국가들에서는 일상화돼있다.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징벌적 손해배상 입법 논의를 주도하고 있는 금태섭 의원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국내에 도입하고자 하는 이유가 “기존 민법상의 손해배상 제도로는 기업의 불법행위를 억제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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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은 “징벌적 손해배상은 기업의 불법 행위를 규제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제도”라고 설명했다. ⓒ박나은 사진기자

  민법상의 손해배상 제도의 일차적 목적은 피해자가 입은 피해를 사회가 부담하고, 나아가 그 책임을 가해자가 지게 함으로써 향후 가해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제도만으로는 기업의 불법 행위를 충분히 규제하기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다. 불법 행위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이윤이 적발됐을 때 치러야 할 배상 액수에 비해 더 크다면, 기업의 입장에서 불법 행위를 지속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 회사에서 신제품을 만들어 큰 폭의 매출 향상이 예상되는데, 만 대 중 한 대 꼴로 치명적인 사고를 일으킬 위험이 있다고 해 보자. 이 경우 사고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일일이 손해배상을 한다고 해도, 전체적인 매출 증진을 고려한다면 생산을 지속하는 것이 경제적으로는 더 이익이다. 금태섭 의원은 “현재 한국 기업들 사이에서는 불법 행위가 적발돼 과징금이나 손해배상을 하게 되더라도 이를 지속하는 것이 더 이익이라는 심리가 만연해 있다”며 “기업들에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8월 10일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하는 내용의 입법 청원을 한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김선휴 간사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의 목적은 불법 행위 억제와 가해자 제재의 두 가지”라고 설명한다. 즉 불법 행위가 발생했을 때 이를 사회적으로 제재하고, 가해자가 동일한 행위를 하지 않도록 하며, 다른 행위자들에겐 처벌의 가능성을 경고함으로써 불법 행위를 억제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제도는 기업들의 만연한 불법행위를 처벌하기에는 부족한 수준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경우 가습기 살균제가 인체의 생명과 신체에 유해하다는 인과관계가 밝혀진 것은 2011년이었지만, 그 사실이 본격적으로 조명된 2016년까지 5년 동안 검찰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적용할 수 있는 죄목인 ‘업무상 과실치사상죄’ 역시 그 형량이 치상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 치사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사회적 파문과 제품의 위험도에 비해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

  이에 대해 김선휴 간사는 “불법행위의 발생을 규제하는 제도가 이미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존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같은 피해가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김 간사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의 의의가 다른 제도로 충분히 달성되지 못하고 있다는 여론이 불거진 상황에서, 이제는 정말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적용 범위는 어떻게, 배상액 상한은 얼마나?

  현재 한국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아니지만 이와 비슷한 성격을 띤 개별 법안들이 일부분 시행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이다. 하도급법에서는 가해자가 해당 법률을 위반해 누군가에게 손해를 일으켰을 경우, 손해액의 최대 3배까지 손해배상 책임을 질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올 12월 시행을 앞두고 있는 ‘대리점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역시 가해자의 손해배상 책임을 최대 3배까지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금태섭 의원은 기존 제도에서 명시하는 ‘3배 배상’은 징벌적 손해배상과는 취지가 다르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제도의 목적이 기업의 불법 행위 규제보다는 피해자 보호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제도에 따라 손해배상을 받으려면 우선 손해가 발생했다는 사실과 그 액수를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하도급 거래처럼 손해의 입증이 쉽지 않은 경우, 실제 손해액이 입증된 액수보다 더 클 것이라는 전제에 따라 피해자를 보다 충실하게 보호하는 것이 3배 배상 제도의 목적이다. 금태섭 의원은 “현재 더불어민주당에서 발의를 추진하고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 법안은 피해자 보호보다 기업의 악의적인 불법 행위를 규제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며 “일반적인 분야로 그 (적용) 범위를 넓히고, 특히 사람의 생명과 신체에 피해를 입혔을 경우 기업 매출액의 일정 비율로 배상액의 상한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참여연대 측에서 입법을 청원한 법안의 경우 사람의 생명과 신체에 피해를 입힌 불법 행위에 대한 배상액 상한이 없고, 그밖에 3배 배상이 적용될 수 있는 불법 행위의 분야를 제한적으로 열거하고 있다. 김선휴 간사는 “가습기 살균제처럼 사람의 생명과 신체에 위해를 끼칠 것을 알면서도 저질러진 불법행위는 사회적으로 묵과할 수 없고, 강력한 억제 효과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따라 배상액의 상한을 명시하지 않았다”며 입법 청원의 취지를 설명했다. 또한 김 간사는 “(적용) 범위가 지나치게 포괄적일 수 있겠지만, 사회적 합의나 필요에 따라 추후 수정이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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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8일에는 국회에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에 관한 공청회가 열렸다.

치열하게 전개되는 찬반양론

 

  그러나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 역시 만만치 않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이중 처벌 금지의 원칙에 어긋난다거나, 경제적 이익을 노리는 사람들이 기업 대상 소송을 남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반론은 재계를 중심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아울러 영국이나 미국처럼 배심원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에서 시작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법관에게 그 권한이 집중돼있는 한국의 상황에 적합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배심원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에서는 배심원들의 합의에 따라 징벌적 손해배상의 액수가 결정되지만, 한국에서는 배상액의 결정에 판사의 영향력이 과도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원고가 징벌적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할 경우 과도한 액수의 배상금을 한 번에 획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법경제학을 연구해 온 명지대학교 김두얼 교수(경제학과)는 2014년 10월 자유경제원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모든 분쟁을 해결하는 과정은 사송(私訟)이 먼저고 그것으로 해결이 안 될 때 규제가 도입되는 것”이라며 “손해배상이 충분히 되고 있지 않을 경우 집행 기관의 교정을 우선해야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해 사송을 활성화시켜 이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편 제도의 도입을 추진하는 측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민사상의 관계를 규정하는 것이므로, 형사적 처벌과 관련된 이중 처벌 금지 원칙과는 궤가 다르다고 반박한다. 또 소송 남발의 우려에 대해서는, 기업의 불법 행위로 인한 피해에 대해 배상을 받는 것이 매우 어려운 현재 상황에서는 피해자들이 적극적으로 소송에 나설 사적 유인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는 재반론이 있다. 김선휴 간사는 “형사처벌이나 행정적 제재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겠지만, 그러한 방향만을 추구하면서 새로운 제도의 가능성을 일축할 수는 없다고 본다”며 반대 측의 입장에 대해 반론했다. 김 간사는 또한 “이제까지 한국 사회에서 기존의 제도적 장치들을 교정하기 위한 노력이 충분했다고 말할 수 있나”라며 기존 제도를 보완하는 것이 먼저라는 입장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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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에 대한 반론과 재반론 

  징벌적 손해배상만으로는 피해자를 구제하고 기업의 불법 행위를 규제하고자 하는 목적이 충분히 달성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소송을 통한 피해 입증 과정이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징벌적 손해배상이 도입된다 하더라도 결국 피해자들은 소송에서 승리해야만 배상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의료, 과학, 환경 등 피해자들이 입은 피해를 입증하기 위해 전문 지식이 요구되는 분야의 경우,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경우에도 피해의 인과 관계가 밝혀지기까지 전문가들의 오랜 노력이 필요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시되는 것이 입증 책임의 전환이다. 즉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가 해당 피해에 있어 자신의 책임이 없었거나 관리·감독의 책임을 다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실제로 하도급법에서는 “원사업자가 고의 또는 과실이 없음을 입증한 경우”에는 배상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규정해 가해자에게 입증 책임을 지우고 있다. 이에 대해 금태섭 의원은 “입증 책임의 전환은 징벌적 손해배상과 별도로 논의돼야 할 매우 중요한 이슈지만, 반드시 징벌적 손해배상과 묶어서 통과시킬 필요는 없다”며 징벌적 손해배상에 관한 법안을 우선 발의할 필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먼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한 이후 입증 책임 전환에 대해 별도로 입법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기업을 단죄하는 ‘새 칼’의 필요성

  이처럼 징벌적 손해배상의 도입에 대한 찬반양론이 대립하는 상황에서도, 현재 한국에서 기업들의 불법 행위에 대한 규제가 미흡하며 피해자들의 구제 또한 쉽지 않다는 사실에는 양측이 모두 동의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제조물에 의한 피해는 사회적으로 가시화됐지만, 분야를 막론하고 일어나는 기업의 불법 행위는 아직도 사회적으로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의 도입 논의가 진행된 것도 오래지만 논의가 진척되지 못하는 사이 기업들의 불법 행위는 점점 심해졌다.

  김선휴 간사는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확산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김 간사는 “참여연대와 같은 시민단체가 국회에 입법 청원을 하는 이유는 그것을 실제로 반영시키기 위해서도 있겠지만, 법안에 관련된 논의를 촉발시키기 위해서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금태섭 의원 역시 “기업의 불법 행위를 규제할 수 있는 제도를 완성해서 내놓진 못하더라도 하나의 방향은 제시할 필요가 있는데, 징벌적 손해배상이 그 방향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기업의 불법 행위를 규제하는 제도적 장치를 도입하는 데 있어 하나의 이정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기업의 불법 행위를 규제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 중 현재까지 가장 유력한 대안으로 여겨지고 있다. 제도의 도입에 대한 타당한 비판이 여럿 제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논의의 본질은 결국 기업의 불법 행위를 규제해야 한다는 사회적 필요성에 있다. 과연 징벌적 손해배상은 기업의 불법 행위를 규제하는 새로운 칼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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