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과 학생자치 내세운 디테일, 약속 지켰나?

일관된 추진에는 합격점, 성과에는 아쉬움 있어

  지난 제58대 총학생회 선거에서 ‘디테일’은 정책을 대표하는 키워드로 다양성과 학생자치를 내세웠다. <서울대저널> 제58대 총학생회 선거 특집호에서 김보미(아동가족 12) 총학생회장은 “기본적인 권리를 얘기할 수 있는 학생 사회를 위해 다양성 공약을 먼저 실천하고 싶다”고 밝혔다. 김민석(정치 14) 부총학생회장은 학생사회 기층의 목소리를 수렴하기 위한 학생자치 공약을 강조했다. 학생들은 18년 만에 연장투표 없이 본투표만으로 선거를 성사시키며 뜨거운 기대와 지지를 보냈다. 1년이 지난 지금 디테일의 약속은 지켜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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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대 총학생회 선거에서 ‘디테일’ 선본은 전체 투표인원 중 약 86%의 찬성표를 얻었다. ⓒ서울대저널

학생의 권리신장 위한 공약들, 결실은 맺지 못해

  디테일이 내세운 학생자치 대표 공약은 ‘총학생회칙 및 세칙 정비’와 ‘학교운영기구 의결권 확보’였다. 회칙 및 세칙 정비 사업은 본래 선거시행세칙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지만, 박자훈(경제 15) 씨가 팀장을 맡은 ‘회칙·세칙 개정TF’가 회칙을 전체적으로 검토하며 확대돼 진행됐다. 그 결과 9월 7일 열린 하반기 정기 ‘전체학생대표자회의(전학대회)’에서는 전학대회 대의원에 관한 총학생회칙(대의원 회칙) 학생회비 배분에 관한 총학생회칙(학생회비 회칙) 총학생회칙 기타 정비 조항에 관한 총학생회칙 전자투표에 관한 선거시행세칙 선거시행세칙 기타 정비 조항에 관한 선거시행세칙 등 총 5개 회·세칙에 관한 개정안이 상정됐다.

  이 중 학생회비 회칙은 원안과 의대 학생회 측에서 발의한 수정안이 모두 표결에서 부결됐다. 그러나 회의 진행이 늦어진 탓에 나머지 개정안은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이에 10월 1일 임시 전학대회에서 개정안에 대한 논의가 이어질 예정이었으나, 임시 전학대회는 성사되지 못했고 회칙 및 세칙 개정은 다음 총학생회의 과제로 남겨졌다. 

  하반기 전학대회에 상정됐던 개정안의 핵심은 대의원 회칙과 학생회비 회칙 개정안이었다. 먼저 대의원 회칙 개정안의 골자는 대의원이 대표하는 자치단위 간 회원 수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것이었다. 현재 각 대의원이 대표하는 자치단위의 회원수는 최대 20배의 차이를 보인다. 이를 위해 개정안에서 신설된 제18조 3항은 ‘재학생 회원 수가 200인을 초과하는 학부/과/반 학생회는 ‘총운영위원회’에 신고하여 부학생회장 한 명도 전학대회 대의원이 된다’고 규정했다. 자치단위의 구성원이 수백 명에 이르는 대형 학부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전학대회에 보다 크게 반영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학생회비 회칙 개정안의 목적은 의대가 인원수에 비해 학생회비를 과하게 배분받는 현실을 바로잡는 것이었다. 학생회비는 총학생회칙에 규정된 비율대로 중앙집행위원회와 문화자치위원회, 자치언론기금, 그리고 각 단과대 학생회에 할당된다. 이에 더해 기존 학생회비 회칙은 연건 학생회비를 별도로 설정했는데, 연건 학생들이 중앙집행위원회 사업 또는 문화자치위원회의 혜택을 받기 어려워 관악 학생들에 비해 불이익을 받는

다는 고려가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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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에는 9월 7일 열린 하반기 정기 ‘전체학생대표자회의’를 포함해 총 4번의 전학대회가 열렸다.

  그러나 기존 학생회비 회칙에서 연건 학생들의 불이익에 대한 보상은 연건 학생회비가 각 기구에 배분되는 비율을 관악보다 낮게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연건의 단대 배분금을 관악 학생회들이 대납함으로써 이뤄졌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개정안 원안은 연건 학생회비의 분담금 비율을 관악의 약 절반으로 설정하고, 관악과 연건의 학생회비가 완전히 독립적으로 배분되도록 했다. 또한 기존 회칙에 의하면 의과대학 학생들의 학생회비는 모두 연건 학생회비로 납입됐지만, 의예과 과정이 실질적으로 관악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파악돼 개정안은 이를 관악 학생회비로 편입시켰다. 박자훈 팀장은 “공대 학생회의 경우 원래 받아야 할 60만 원 정도를 못 받고 있다”며 “모든 회원이 최대한 자기가 낸 만큼 균등한 권리를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고 사업을 마무리하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또한 박 팀장는 “꼭 필요한 사업인 만큼 다음 총학생회에 이어질 수 있도록 인수인계하겠다”고 말했다.

  총학생회가 미처 돌보지 못한 부분도 있다. 이번 58대 총학생회는 자치 공간 조정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자치 공간 조정에 관한 회칙 제70조의2 제1항에 따르면 ‘동아리연합회’와 단대학생회 관할 공간을 제외한 자치 공간의 심사 권한은 중앙집행위원회가 가진다. 이 조항은 총학 산하기구나 학생정치조직, 자치언론기금 등의 단체가 점유한 자치 공간에 적용된다. 또한 제3항에 의하면 기타 공간 조정에 관한 사항은 총운영위원회가 정한 별도의 공간 조정 세칙에 따른다.

  그러나 현재 공간 조정 세칙은 제정돼있지 않고, 위에 언급된 기구들은 공간을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는지 심사 받지 않고 있다. 특히 학생정치조직에 배정된 학생회관 6층의 자치 공간 중 일부는 현재 어떤 단체가 사용하고 있는지 명확히 파악조차 되지 않는 상황이다. 김민석부총학생회장은 지난 3월 이 문제를 인지하고 공간 조정 세칙을 제정하겠다고 밝혔으나 “역량 부족으로 실천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학교운영기구 의결권 확보 공약 역시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다. 디테일은 출마 당시 대표적인 학교운영기구인 재경위원회, 학사운영위원회, 평의원회 등에 학생들의 참여가 보장되지 않는 현실을 지적하며 학생들의 운영기구 의결권을 쟁취하겠다고 공약했다. 국고출연금과 등록금 등으로 구성된 서울대의 법인회계는 재경위원회에 보고되고 감사받게 돼있지만, 정작 등록금을 납부하는 주체인 학생들은 참여 권한이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서울대의 주요 사안을 심의하는 기구인 평의원회에서도 학생들은 참관권만 가지며 최고 심의·의결기구인 이사회는 참관조차 할수 없다.

  하지만 의결권을 확보하기 위한 총학생회 차원의 체계적인 행동은 없었다. 총학생회는 본부와 접촉할 때마다 의결권 확보를 요구했으나, 전담 TF를 설치하는 등 계획적인 대응은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김민석 부총학생회장은 “교육권리운동을 통해 학생들의 힘을 모으고자 했지만 시흥캠퍼스에 대한 대응 때문에 시도되지 못했다”고 답했다.

다양성 공약, 분명한 성과와 남은 과제 

  제58대 총학생회선거 디테일 선본의 구호는 ‘다양성을 향한 하나의 움직임, 디테일’이었다. 그만큼 다양성은 디테일이 뚜렷이 지향하는 가치였다. 이를 상징하는 공약이 인권 가이드라인 제정이다. 인권 가이드라인은 2012년 대학원생에 대한 과도한 업무 지시와 인권침해 문제가 불거지며 인권센터가 처음으로 제정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교수의 책임을 강조했으나, 학내 구성원 전체가 동의하는 인권 기준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면서 성희롱·성폭력 문제와 대학원생의 노동권에 대한 논의도 함께 이뤄졌다. 하지만 작년에 완성된 인권 가이드라인 초안은 본부회의에서 반려됐다. 전 인권센터장 정진성 교수(사회학과)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제정 취지에는 모두 공감했지만 구성원이 다양하다 보니 문구 하나하나에 의견이 갈려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후 지지부진하던 인권 가이드라인 제정은 디테일 선본이 공약으로 내걸며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김보미 총학생회장은 “다양한 인권침해 사건들을 접하며 문제의식을 느꼈다”며 “작년에 인권센터 측이 ‘학부생들의 의견이 가이드라인에 반영되면 좋겠다’고 해서 사업을 시작했다”고 공약의 배경을 설명했다. 작년인 2015년은 봄축제 폐막제에서 있었던 사회자의 성희롱 발언, ‘샤인’ 신입 모집 면접에서 발생한 인신공격 등 인권침해 사건이 잇따르며 인권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해였다.

  인권 가이드라인 제정은 총학에서 꾸린 전담 TF와 별개로 특별위원회가 중심이 돼 이뤄졌다. 특별위원회는 총학생회와 각 단과대, ‘TurnToAble’, ‘QUIS’등 소수자 인권 동아리, ‘외국인총학생회’, ‘대학원총학생회’ 등 다양한 단위에서 파견된 대표들로 구성됐다. 특별위원회는 수차례 회의와 공청회를 거쳐 가이드라인을 만들었고, 하반기 정기전학대회에서 인준된 인권 가이드라인에는 기존에 없던 해설서가 추가됐다. 20개 각 조항이 만들어진 배경과 의미, 그 중요성에 대한 학내 구성원들의 이해를 도울 수 있다는 측면에서 발전적인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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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차별금지 조항을 이유로 인권가이드라인 제정에 반대하는 대자보가 중앙도서관 터널에 게시됐다. ⓒ장민국 사진기자

  인권 가이드라인 제정의 추진 과정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반기 정기전학대회에서는 조예상(사회복지 12) ‘서울대기독교연합’ 대표가 인권 가이드라인이 “캠퍼스 내 기독인 학우의 인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어렵고 학교 내 기독인들의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논의를 막는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 발언을 했다. 캠퍼스 곳곳에는 ‘동성애 파시즘에 반대한다’는 취지의 대자보가 붙었고 차별 금지의 사유에서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김보미 총학생회장은 “서울대는 교회가 아니라 누구나 평등하게 생활하며 안정적으로 교육을 받아야 하는 공간”이며 “누군가를 차별하기 위해 가이드라인이 수정되는 것은 수용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다만 반대하는 사람들과 소통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며 면담에 응할 생각도 있다고 말했다.

  인권 가이드라인은 전학대회에서 학내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었지만 공식적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본부의 승인절차를 거쳐야만 한다. 총학생회의 목표는 인권 가이드라인을 학칙에 준하는 규범으로 만드는 것이다. 김보미 총학생회장은 전문성과 대표성을 담보하기 위해 “학내 구성원뿐 아니라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변호사 전문위원까지 참여하는 공청회를 열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한 총학생회 임기와 상관없이 특별위원회 활동은 지속되기 때문에 “다음 총학생회가 성사되지 않아도 인권 가이드라인 제정은 계속 추진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통학 고생 덜어준 광역셔틀, 본부 이관은 불투명

  제58대 총학생회는 제57대 총학생회의 광역셔틀 사업을 이어받아 진행했다. 광역셔틀은 여러 차례 환승을 하면서 먼 거리를 통학하는 학생들의 불편을 덜어줬다. ‘광역셔틀 TF’ 팀장을 맡은 임수성(산업인력개발 15) 중앙집행위원회 부집행위원장은 “작년에는 용인·성남과 강동·송파 두 노선만 운영됐지만 올해는 1학기 7개 노선, 2학기 5개 노선(용인-성남, 수원, 목동, 부천, 강동)이 운영 중”이라며 규모가 확대된 것을 지난 총학생회와의 차이로 꼽았다. 광역셔틀의 이용객 평균은(금요일 제외) 2016년 1학기 기준 156명이었다.

  한편 상반기 정기전학대회에서는 “(광역셔틀) 사업에 투입되는 예산이 너무 많다”는 대의원의 문제제기가 있었다. 제2기(03.01.~08.31.) 총학생회 사업비 예산 3,910만 원 중 2,400만 원이 광역셔틀 사업비 예산으로 책정된 탓이다. 당시 총학생회 측은 본부의 지원금으로 지출을 일부 보전할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본부로 사업을 이관시키겠다고 답했다. 하반기 전학대회에서 공개된 총학생회 제2기 결산안에 따르면 광역셔틀 사업비의 지출은 약 4,500만 원이었고 이용료 수입은 약 1,500만 원이었다. 본부로부터는 지원금 1,000만 원을 받았다. 임수성 부집행위원장은 “지출이 컸던 건 그만큼 학생들에게 저렴한 단가를 제공하기 위함이었다”며 “학생들이 광역셔틀로 한 학기 통학을 좀 더 편하게 했다면 만족한다”고 말했다.

  광역셔틀 사업은 신청자가 많을수록 적자폭이 커지는 사업이다. 2학기 신청자의 수는 1학기 때보다 적어 1,500만 원의 예산이 책정됐다. 장차 사업의 확대를 위해서는 총학생회가 계획한 대로 본부로의 이관이 필수적이다. 임 부집행위원장에 의하면 본부는 총학생회와 논의하는 과정에서 사업의 필요성을 인정했고 실제로 지원금을 지급하는 등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시흥캠퍼스와 관련한 일련의 사태들 때문에 8월부터 광역셔틀 사업의 이관 논의는 중단됐다. 제58대 총학생회의 임기가 끝나간다는 것을 고려할 때 내년에 본부가 광역셔틀 사업을 직접 운영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제59대 총학생회가 11월 선거로 성사되지 않거나, 성사되더라도 사업을 이어나가지 않는다면 내년에는 광역셔틀 사업 자체가 시행되지 않을 수도 있다.

  디테일의 공약들은 성과에는 차이가 있지만 다양성과 학생자치라는 목표 아래 1년 동안 일관되게 추진됐다. 김보미 총학생회장은 “학생회 활동으로 학내에서 학생들의 문제제기가 더 수월하고 활발한 논의가 이뤄지기를 바랐다”며 “어떤 분야든 여러 의견들이 모여 이야기될 수 있도록 열심히 일했다”고 자평했다. 김민석 부총학생회장은 “TF를 만들어 집행부원 각자가 관심 있는 사업을 추진한 것은 장점”이지만 “현안이 많이 터져 전도 제재 등 공약들을 다 지키지 못한 것은 아쉽다”고 1년을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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