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4일, 군인권센터는 6사단에서 발생한 구타·가혹행위 사건을 폭로했다. 올 2월 6사단 최전방초소(GP)에서 근무하던 故박모 일병은 지난해 9월부터 선임들의 폭행, 폭언에 시달렸고, 올 초에는 북한의 도발로 가중된 업무를 선임들의 몫까지 모두 떠맡았다. 하루에 채 4시간도 취침하지 못하고 12시간이 넘도록 일하면서 구타와 가혹행위에 시달리던 故 박 일병은 결국 소총으로 목숨을 끊었다.
잊을 만하면 일어나는 군대 내 폭행 및 가혹행위 사건은 아직까지도 건강한 군 문화가 정착하지 못한 현실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인권침해는 군에서 고질적으로 발생하는 여러 문제 중에서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치부다. 병사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총기로 위해를 가하는 사건의 이면에는 군에서 발생하는 심각한 인권침해가 있다. 군에서의 인권은 어떤 맥락에서 이토록 취약한 환경에 놓여 있는 것일까.

지난 11월 24일 밝혀진 6사단 GP 구타·가혹행위 사망사건을 보도하는 기사들 ⓒ한민희 사진기자
군대 내 특수한 인권 인식, 인권침해로 이어져
군 조직은 특수하다. 특히 한국군의 경우 휴전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청년들이 의무적으로 징집돼 복무하는 곳이기 때문에 외부와는 매우 다른 규율과 분위기가 유지된다. 이런 이유로 군에서의 인권침해는 사회에서의 인권침해와는 다른 맥락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러나 이는 다른 한편으로는 거듭 반복되는 군인권 침해의 핵심적인 원인이 된다. 군인권이 사회에서의 인권과 다르게 여겨져야 한다는 인식이 곧 군에서 공과 사가 분리되지 않아 인권이 침해되는 결과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군인권센터 김형남 간사는 “군인은 국가를 지키는 집단이기 때문에 개인의 생활이 어느 정도는 침해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며 군대의 특수한 상황을 반영한 이와 같은 인식이 군인 개인의 인권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군대 내부의 공적인 규정을 따르는 군인의 역할이 그들의 사생활에서도 적용되면서, 군인이면 이 정도는 참을 줄 알아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사적 영역에서도 인권침해를 감내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이에 대해 김형남 간사는 “공적인 상황의 권위가 사적 영역에서도 작용해 병사들은 물론 초급 간부들의 개인적인 영역까지도 제대로 보호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군대 안에서의 인권이 특수하고 제한적인 의미로 통용되는 탓에 사병들은 폭행, 가혹행위 등의 인권침해에 쉽게 노출된다. 2년 전, 군대 내의 인권침해 사건이 사망으로 이어져 온 국민을 충격에 빠트렸다. 한 달이 넘도록 선임들로부터 가혹행위에 시달린 병사가 결국 죽음에 이른 것이다. 2014년 4월 7일, 28사단 포병연대 본부 포대에서 의무병으로 근무하던 한 병사가 기도폐쇄에 의한 뇌손상으로 사망했다. 2013년 12월에 입대한 피해자 故윤승주 일병은 2주간의 신병대기기간이 끝나고 자대 배치를 받은 3월 3일부터 가혹행위에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된 2014년 4월 6일까지, 30일이 넘는 기간 내내 폭행과 가혹행위에 시달렸다. 쓰러진 당일 피해자는 앞선 6일 동안 이어진 가혹행위로 수면을 박탈당하고, 호흡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가해자들은 폭행으로 다리를 저는 피해자에게 절뚝거린다는 이유로 기마자세를 시키고, 심지어 뱉어놓은 가래침을 핥으라고 명령했다. 계속되는 구타에 피해자는 말이 어눌해지고 소변을 보면서 의식을 잃는 뇌진탕 징후까지 보였지만, 가해자들은 이를 꾀병이라 여기고 폭행을 멈추지 않았다.
가혹행위의 주범인 이찬희 병장은 원래 28사단 의무대 출신이 아니었다. 이 병장은 다른 부대에서 괴롭힘을 당해 전입을 왔다. 그러나 그를 괴롭혔던 선임들은 처벌을 받지 않았고, 이를 지켜본 이 병장은 군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중도에 의무대에 편입돼 후임병에게 명령을 내리기는 어려울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지만, 누구에게도 얕보이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이 병장은 자신의 계급을 내세워 후임병들을 가혹하게 대함으로써 지위를 확보했다. 더구나 故윤승주 일병이 속했던 의무대는 본대와 거리가 멀어 폭행 사실이 알려지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의무대에서 치료를 받는 사단 내 다른 부대 소속 병사들은 상황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개입할 명분이 없었고, 무엇보다 가해자들의 일처리로 가혹행위는 교묘히 감춰졌다. 상황에 대해 알고 있었던 의무대 지원관 유모 하사조차도 이 병장과 한패였다. 유 하사는 가혹행위를 방조했을 뿐만 아니라 이 병장과 함께 피해자에게 폭행을 가했다.

지나친 공적 관계와 자의적인 내집단 관습이 지속적 폐해 낳아
이 사건을 통해 드러나는 군의 특수한 맥락 중 하나는 사적인 영역의 소멸이다. 상명하복의 원칙에 따라 상부의 명령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군 조직에서는 개인의 권리가 어느 정도 제한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문제는 공적 영역에서의 이런 수직적 위계관계가 사적 영역까지 지배한다는 점이다. 김형남 간사는 “군에서는 공적 영역의 지위가 사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이로 인해 개인 사이의 관계가 명령과 복종 관계로 채워진다”고 설명했다. 군 조직의 원활한 업무 수행을 위해 형성된 공적 위계질서가 업무 바깥의 사생활까지 확장된다는 것이다. 이는 비단 사병만의 문제는 아니다. 부사관과 장교 직급에서 가장 낮은 계급인 하사나 소위에게는 사생활을 유지할 만한 개인적인 여유가 주어지지만, 이 또한 고위 간부가 사적인 일을 부탁하는 순간 침해되기 십상이다.
故윤승주 일병 역시 이런 구조에서 희생됐다. 공적 위계의 밑바닥에서 그는 선임의 모든 요구사항을 따라야 했고, 선임들은 이를 이용해 故윤 일병에게 잔혹한 인권침해 행위를 가했다. 자대 배치를 받은 첫날부터 피해자는 대답을 느리게 하고 약간 인상을 썼다는 이유로 선임들의 눈 밖에 났고, 이후 그의 삶은 위계로 짓눌린 가혹행위 속에서 스러졌다.
군대 내 인권침해의 또 다른 맥락은 군 내집단에서 자의적으로 형성되는 질서다. 군 규정에 따르면 가혹행위와 폭력은 절대 용인되지 않으며 군에 속한 모든 부대는 이런 원칙을 따라야 하지만 군 규정이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려운 내집단 구조에서는 인권침해에 취약한 자체적인 규율이 생겨난다. 또 군이 모든 부대를 완벽하게 통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부대에 따라 인권침해가 내부적으로 용인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군 내부에서 관습적으로 용인되는 인권침해의 대표적인 사례가 해병대의 ‘기수열외’다. 일부 해병대 부대에서 아직도 남아있는 기수열외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는 병사를 기수에서 열외하는 집단 따돌림이다. 기수열외를 당한 병사는 선임과 동기에게 무시당하는 것은 물론 후임으로부터도 선임 대우를 받지 못하게 된다. 이런 관습은 군 규정에 명백히 어긋나지만, 해병대라는 군 조직의 일부 내집단에서 지속돼왔다.
이처럼 군 규정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 공백은 내부 집단의 관습으로 채워진다. 2011년 해병대 총기사망사건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해병대 병사들이 가혹행위를 ‘전통’으로 인식해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인권침해를 용인하는 내집단의 관습이 전체 군 규정보다 병사들에게 실질적으로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해온 것이다.
이런 상황을 예방하고 군 내부 집단에 건강한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국방부는 2003년부터 구타, 가혹행위, 언어폭력 등 규정 위반행위를 금지하는 ‘병영생활 행동강령’을 마련했지만, 이 또한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은 김종대 국회의원과 공동으로 저술한 책 《그 청년은 왜 군대 가서 돌아오지 못했나》에서 병영생활 행동강령이 제대로 강조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오히려 군대에서 규정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은 권위자의 말과 행동이다. 28사단 의무대에서는 이찬희 병장의 말과 행동이 군의 어떤 규정보다 강한 힘을 발휘했다. 최고선임으로서 이 병장의 명령은 곧 법으로 받아들여졌고, 이 병장이 용인한 폭행, 가혹행위 등의 처벌 방식을 모두가 따랐다. 의무대가 본대와 멀리 떨어져 있어 독립성이 강한 탓에 군 규정에 어긋나는 이 병장의 규율은 관습과 질서로 확립됐다.
군대의 ‘특수성’이 문제해결을 막는다
군대 조직 내에서 이와 같은 맥락이 유지되는 배경의 핵심에는 군대의 특수성이 있다. 군이라는 특수 집단의 질서가 외부에 의해 섣불리 침해돼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인권침해에 더욱 취약한 환경을 빚어내는 것이다. 임태훈 소장은 위 저서에서 군대 내 인권이 보장되고 병영문화가 민주화되면 군대가 나태해진다고 생각하는 지휘관들의 사고방식을 비판했다.실제로 28사단 의무대 사건 이후에 군대가 여론의 뭇매를 맞자 예비역 장성들의 모임인 ‘성우회’에서는 ‘군은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고 국민들은 회초리를 거두라’는 광고를 내기까지 했다. 같은 저서에서 김종대 국회의원은 이와 같은 행위가 ‘결점이 없고 신성한 집단인 군대가 외부의 모욕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드러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련의 군대 내 인권침해 사건들이 대서특필된 이후에도 군은 두 가지 대안만큼은 완고하게 반대했는데 바로 군인권 보호관 제도의 수립과 군사법원의 제한적 운영이다. 국방 옴부즈만 제도라고도 불리는 군인권 보호관 제도는 불시에 부대에 출입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닌 보호관이 인권침해 상황을 수시로 감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군사법원의 제한적 운영은 평시에는 군사법원을 폐지하는 대안으로, 군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민간에서 공개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사법체계를 구성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대안은 모두 외부 개입을 전제하는 방안이고 군은 외부의 개입이 군의 특수성을 훼손한다고 생각해 이에 강하게 반대했다. 김종대 국회의원은 이런 군의 반응을 ‘단 한 번도 없었던 외부의 감독과 개입에 느끼는 두려움’으로 분석했다. 군은 특수성을 유지하기 위해 오래간 유지해온 벽을 허물고 싶지 않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이렇게 군이 내부에서 자성적인 움직임이 보이지 않아 인권침해 문제의 해결은 요원하다. 군이 스스로 외부의 개입을 용인하지 않는 현재로서는 외부에서 군에 끊임없이 변화를 촉구하는 방법만이 유일한 해결책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특수성에 기반한 군의 폐쇄성을 하루빨리 허물지 않는다면 지금과 같은 인권침해 상황은 개선되기 어렵다.

심각한 군의 인권침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군 문화가 필요하다. ⓒSBS
건강한 군 문화 형성의 중요한 단서는 주변의 관심에 있다. 김형남 간사는 “군은 바깥의 인식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을 들어 군인의 친구, 가족들이 군에 대해 갖는 관심이 군에게는 큰 압박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즉 군인의 복무환경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문제제기에서 군인권 침해 문제의 해결방향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2014년 군인권 침해에 대한 공론화가 어느 정도 이뤄졌지만, 군인권 침해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문제제기와 해결 촉구만이 병사들의 인권침해를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