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를 맞대고 손을 맞잡고”

매튜 워처스 감독의 ‘런던 프라이드(2014)’

  지난 7월 15일, 서울광장에서제18 회퀴어문화축제가열렸다. 성적다양성과성소수자운동지지를상징하는무지개는올해조금더다양한색으로, 그러나 선명한 빛으로 여름 하늘을 장식했다. ‘대한불교조계종사회노동위원회’, ‘알바노조’, ‘우리동물병원생명사회적협동조합’ 등다양한정체성의단체를 퍼레이드 부스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갖가지색의목소리들이연대라는틀 아래 축제의 현장을 촘촘히 채우고있었다. 

  올여름서울의무지개만큼빛나는연대를다룬영화가있다. 영화 ‘런던프라이드’다. 영화는 1984년장기파업 투쟁에 돌입한 영국 광부노조와 이를 지지하는 성소수자 단체간의 연대를다룬다. 그러나이연대는빈틈없이완벽한모범답안으로그려지지않는다. 연대는어딘가엉성하지만그렇기에더욱벅찬동화처럼다가온다. 

레즈비언도, 게이도, 광부도아닌너와나 

  1984년영국의대처(Thatcher) 정부는 채산성이 맞지 않는 탄광을 폐쇄한다고발표했고, 이에광부들은장기파업을선언했다. 런던성소수자모임의마크는소식을접하고일원들에게광부를위한모금을제안한다. “우리가받아온 차별과 억압을 지금 광부들이 받고있다”며연대의의무를제시하는마크에게돌아오는반응은싸늘하기만하다. 누군가는광부들이우리를한번이라도도운적이있냐며되묻고, 누군가는매일같이자신을끔찍하게조롱했던이들이바로광부들이라고말한다. 연대의 필요성을 묻는 날선 눈빛들에 마크가제시한 ‘함께차별받고있기때문’ 이라는느슨한답은, 일원들에게가닿지 못한 채 힘을 잃는다. 

  결국 7명의인원으로시작한 ‘LGSM(Lesbians and Gays Support the Miners, 광부를지지하는레즈비언과게이들)’은매일같이모금활동을진행하지만, 정작모금액을전달받고자하는단체를찾지못한다. 성소수자단체의모금은모두거부했기때문이다. 몇 번의 거절 끝에 처음으로 승낙을 한곳은웨일스의작은탄광촌. 말귀가어두운할머니가전화를받았고, LGSM이성소수자 단체인 줄 모른 채 후원을 승낙한것이다. 두집단의연대는필연이라기보다우스운우연에서시작한다. 

  웨일스광부대표다이와 LGSM이런던에서 처음 만난 날, 두 집단은 짐짓 민망한듯털어놓는다. “당신들은내가태어나서처음본게이들이에요.” “당신도내가처음만난광부예요.” 짐짓무례해보이는 두 집단의 인사말은 서로에 대한인식을투명하게보여준다. 서로를이름이아닌광부, 게이, 레즈비언으로명명하고이해하는두집단에는여전한간극이존재하지만, 그들은손을내밀수 있을 만큼 가까이 다가와있다. 

  이후모금액이증가하고 LGSM은웨일스에 가장 많은 모금액을 전달한 단체가 된다. 그러나 이것이 두 집단의 간극을좁히지는못한다. 웨일스의마을회관으로초청된 LGSM은온기없이적대감만 가득한 마을 사람들의 눈을 마주한다. “감사편지만받았으면됐지, 여긴왜온대?” “변태들(perverts)이준돈까지받아야해?” 그날밤숙소에서 LGSM은연대의필요성, 아니최소한그가능성에대해자문한다. 

  다음날저녁회관의온도는전날과사뭇달라진다. LGSM의게이조나단은직접디스코음악을선곡해멋들어진춤을추고, 마을사람들은시선을뺏긴다. 남자가 춤추는 건 처음 본다며 신이난 웨일스 여성들도 함께 춤을 추기 시작한다. 이를본웨일스의청년들은조나단에게다가가서툰부탁을한다. “춤을가르쳐주세요.” 회관을꽉채운음악과몸짓속에서 LGSM과웨일스사람들 사이 새로운 색의 대화가 싹튼다. 웨일스의호호할머니그웬은레즈비언스텔라에게 “레즈비언에대해말도안되는 얘길 들었어. 레즈비언은 진짜 다 채식주의자야?”라고묻고, 스텔라는미소를지으며 “나는엄격한비건”이라답한다. 웨일스의주부게일은게이부부에게 “부부라고요? 그럼집안일은누가하죠?”라고묻는다. 날선말을들을까걱정하던 게이 부부는 오히려 게일의 질문에안도한다. 옅은편견이묻어나는질문들에도성소수자들은한층누그러진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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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나단의 디스코 춤은 마을회관의 분위기를, 나아가 탄광촌 남성들의 술자리 문화를 바꿔놓는다. ⓒ영화사 ‘진진’

  두 집단은 서로의 진부한 일상을 캐물으며서로에게붙이는수식어를늘려간다. 춤을잘추는게이, 채식을하는레즈비언, 집안일을나눠하는게이부부. 서로를집단의이름으로부르던이들은장황한수식어가붙은자신에게꼭맞는이름을입는다. 이름이늘어날수록견고한테두리는무색해지고집단을둘러싼편견과두려움도한 꺼풀씩벗겨진다. 남은건게이도, 레즈비언도, 광부도아닌너와내가맞잡은손이다. 

유쾌하고단단하게맞잡은두손 

  순탄해보이던연대는파업이장기화되며위기를맞는다. 이전부터 LGSM 에적대적이었던일부광부들은이를기점으로파업투쟁만으로도벅차다며, 투쟁에집중해야한다고목소리를높인다. 성소수자들은우릴돕는척하지만자신들의인권만을주장하고있다고비난하기까지한다. 연대에회의적이던성소수자들도점차자신을드러낸다. 한게이는 “게이들은에이즈로매일죽어나가는데광부를걱정할때냐”며 LGSM의일원게딘을무차별폭행한다. 외부의 비난 속에서 결국 광부 측은 마을사람들의투표결과에따라 LGSM의모금액을받지않기로결정하고, 연대는 허무한 끝을 맞는 듯 했다. 

  그러나모금이중단된이후에도여전히 두 집단은 서로의 손을 놓지 않는다. 도리어더욱견고하게잡고있다. LGSM의로고가박힌차를타고시위현장으로향하던웨일스사람들은지나가던운전자로부터혐오섞인질문을듣는다. “당신들설마레즈비언이요?” 웨일스위원장은묵직한농담을던지며한방을날린다. “맞아요. 스완지에레즈비언파티하러갑니다.” 차별과혐오의 장면들에서 두 집단은 무르고 여리기만한약자가아니라, 단단하고유쾌한연대의주체들로그려진다. 

  그리고영화의막바지, 연대의주체가확장된다. 웨일스광부를비롯한전국의광부노조가대거 1985년런던의성소수자행진에참여한것이다. LGSM과 광부들은 참가 단체 중 인원이 가장많아행렬의선두에서게되고, 각자의깃발을들고행진을준비한다. 이내각종광부노조의깃발과성소수자인권을외치는깃발이뒤섞이고, 서로가서로의자긍심이된다. 우연한계기로만나끊임없이연대의필요성과가능성을되물으면서도서로의손을놓지않았던이들은, 마침내자긍심으로가득한축제를맞이한다. 우스운우연에서시작해 엉성한 악수를 거쳐 한 편의 동화로거듭난그들의연대는, 어쩌면결국필연이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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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런던의 성소수자 행진은 자긍심으로 가득한 축제였다.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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