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 있으면 군대를 가라고요?

‘전쟁없는세상’ 이용석 활동가에게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에 대해 묻다

  3만 5800년. 1950년이후 1만 9천명의양심적병역거부자가감옥에서보낸시간의합이다. 매년 400여명이군복무를하는대신수감을택하고있다. 4주의군사훈련이후엔여러형태의대체복무가가능함에도불구, 양심적병역거부자들은불이익을감수하며감옥으로걸어들어가고있다.

  이런병역거부자들을지원하고자 2003년 ‘전쟁없는세상’이결성됐다. 전쟁없는세상은양심적병역거부자를돕고병역거부문제를사회에알리기위해시작됐지만, 현재는보다큰차원인평화주의운동으로활동반경을넓히고있다. 전쟁없는세상의시작부터함께해온이용석활동가는학생시절이라크파병반대등반전운동을접하며병역거부에관심을갖게됐고, 그자신도병역거부를선택해실형을살았다. 여전히전쟁없는세상을꿈꾼다는이용석활동가를만나양심적병역거부와대체복무제도입에대해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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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없는세상

이용석활동가

양심적병역거부무엇인가?

  ‘양심적병역거부’에서 ‘양심’은법률용어로, 헌법제19조 ‘모든국민은양심의자유를가진다’에명시된국민의기본권이다. 헌법재판소는양심을 “어떤일의옳고그름을판단함에있어서그렇게행동하지아니하고는자신의인격적인존재가치가허물어지고말것이라는강력하고진지한마음의소리”라고설명한바있다. 즉양심은한인격체의존재이유와도같은진지한가치관이지만, 일상에서는 ‘선량한마음’ 이라는뜻으로자주쓰여오해가생긴다. ‘병역을거부하는게양심적행동이면, 군대에간사람들은양심이없다는말인가’와같은논리는이런오해에서비롯됐다. 그래서최근에는불필요한오해를줄이고자 ‘병역거부’라고만표현하고있다.

  양심적병역거부를선택하는이유, 즉 ‘양심’의구체적인내용은다양하다. ‘여호와의증인’ 신도들이대표적으로알려져있지만불교및기독교신자나평화주의자들이병역거부를하는경우도적지않다. 처음부터입영을거부하거나, 현역복무중신념이바뀌어병역거부를선택하거나, 현역복무를마친뒤예비군소집을거부하는등형태도다양하다. 특정한전쟁이나명령만을거부하는병역거부자도있다. 가령이라크전쟁파병을비판하며복귀를거부한이등병강철민씨, 2008년촛불집회당시의경의폭력적인진압을규탄하며저항한의경이길준씨등이있다.

한국의양심적병역거부논의는어떻게진행돼왔나?

  한국에서처음기록된병역거부사례는일제강점기로거슬러올라간다. 1930년대말전시동원체제가시작되면서조선인에대한징용·징집이시작됐고, 이를거부한여호와의증인신도들이투옥됐다. ‘등대사(燈臺社, 여호와의증인을의미함) 사건’이라고불리는이사건은국사편찬위원회가펴낸 ‘한민족독립운동자료집’에독립운동의일환으로기록돼있다.

  이후에도병역거부자는계속있었지만사회적인이슈가되지못했고, 2000년대초반에이르러서야병역거부관련논의가본격화됐다. 2001년 2월 ‘한겨레21’이여호와의증인신도들의병역거부를기사로다루며큰주목을받았고, 그결과양심적 병역거부가인권문제로떠올랐다. 당시까지병역거부에대한공식적통계나조사가전무했기때문에, 매년 500여명의병역거부자가 ‘양심’을지키기위해수감된다는사실은사회에적잖은충격을불러왔다. 2001년 12월에는불교신자인오태양씨가여호와의증인신도가아닌사람으로는최초로양심적병역거부를선언하며화제가됐다. 이후양심적병역거부는입시논술이나토론의단골소재가되는등중요한사회적이슈로자리잡았다.

  한편 ‘UN자유권규약위원회(UNHRC)’ 와 ‘국제엠네스티’ 등국제기구는꾸준히한국정부에병역거부자에대한처벌을중단하고대체복무제를도입할것을촉구해왔다. 2005년에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도정부에대체복무제도입을권고했고, 이에국방부도대체복무제도입계획을발표하고나섰다. 그러나이후 ‘대체복무제연구위원회’가대체복무제도입은시기상조라는연구결과를제출하면서, 국방부도도입방침을철회했다. 국회에서도대체복무제를도입하자는법안이꾸준히발의돼왔지만표결에부쳐지지못하고번번이폐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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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복무제

도입에대한시민사회의견서국정자문위제출기자회견ⓒ전쟁없는세상

양심적병역거부를인정해야하는이유는무엇인가?

  두가지측면에서설명할수있다. 우선이는인권의문제다. 국가는국민의인권을지켜주기위해존재하는데, 병역거부를인정하지않고처벌하는건개인의양심을파괴하고국가의존재이유를부정하는일이다. 두번째는평화의문제다. 최근한병역거부사건의판결문에서언급됐듯, 군사무기매입뿐만아니라평화를위한노력도넓게보면안보에기여한다고할수있다. 일각에서는한국이북한과대치하고있어특수한상황에놓여있다고반론하지만, 그럴수록우리는더욱평화를위해진지하게 고민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병역거부자들의 외침은 평화주의와 맞닿아있고, 한국이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로서 그들의 인권을 존중하는 면모를 보여준다면, 국제사회에서 평화를 이야기할 때 힘이 더 실릴 수 있다.

  사실 양심적 병역거부를 허용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본다. 유럽의 선진국들은 이르면 1·2차 세계대전 때부터 양심적 병역거부를 허용해 왔다. 국제사회는 이미 병역거부를 진보·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인 인권의 문제로 바라보고 있다. 분단 상황에서 시기 상조라는 주장도 있지만, 독일도 분단 중에 대체복무제를 운영했고 중국과 긴장관계에 있는 대만도 대체복무제를 도입했다. 현재 선진국 중에서 병역거부를 처벌하는 국가는 한국과 싱가포르밖에 없고, 2000년 이후 매년 수백 명이 병역거부를 이유로 수감되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국제사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는 이미 논의의 대상이 아니며, 이제는 어떤 형태의 대체복무제를 도입해야 할지를 논의해야 하는 단계라고 생각한다.

  여론도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호의적으로 변하고 있다. 인권위가 실시한 ‘국민인권의식조사’에 따르면 대체복무제 도입에 ‘찬성한다’고 답한 비율이 2005년에는 10.2%에 불과했지만, 2016년에는 46.1%로 크게 증가한 모습을 보였다. 국제엠네스티가 2016년 5월 15일 ‘세계 병 역거부자들의 날’을 맞아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도 흥미로운데, ‘병역거부를 이해할 수 없다’는 응답이 72%였던 한편 ‘대체복무제 도입에 찬성한다’는 응답도 70%로 나타났다. 병역거부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병역거부자들을 감옥에 보내기보다 대체복무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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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 도입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국제엠네스티

현재 국내의 병역거부자들이 처한 현실은 어떤가? 그리고 처우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한국의 병역거부자들은 대부분 실형 1 년 6개월을 선고받고 징역을 살다가 가석방된다. 1년 6개월이 선고되는 건 선고된 실형 기간이 그보다 짧을 경우 입영영장이 다시 발부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판사는 내심 양심적 병역거부를 무죄로 생각하고 있더라도 피고의 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년 6개월 형을 선고하기도 한다. 또 예비군을 거부하면 벌금형이 내려진다. 수감되지는 않아도 예비군 훈련이 있을 때마다 계속해서 벌금이 부과되기 때문에 당사자가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아예 외국으로 난민신청을 하기도 하는데 난민으로 인정받은 사례는 아직 많지 않다.

  이런 인권침해를 막기 위해 대체복무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올바른 대체복무제는 ▲군사 훈련과 관련된 요소 배제 ▲국방부나 병무청 등 군 관련 기관이 아닌 독립된 기관이 심사 및 운용을 담당 ▲대체복무 기간은 현역에 비해 지나치게 길지 않음 ▲현역 또는 예비군으로 복무 중인 사람도 대체복무 선택 가능, 위의 4가지 기준을 만족해야 한다. 물론 이외에도 앞으로 논의하고 정해야 할 사항들이 수두룩하다.

  ‘양심’의 진정성을 완벽하게 선별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지적에는 어느 정도 동의한다. 따라서 현역 복무보다 조금 더 힘들거나 어려운 방향으로 대체복무 난이도를 조절해 ‘양심’의 진정성을 검증할 필요가 있다. 실효성을 의심하는 목소리에 대해선 대체복무제가 이미 여러 다른 나라에서 실행되고 있으니 참고할 해외 선례가 많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대만에서도 대체복무제를 도입할 시 군기피자가 급증하리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막상 제도가 도입된 후에는 지원자가 부족해 대체복무 모집인원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양심 때문이 아니라면 현역 복무에 비해 기간이 긴 대체복무제를 선택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체복무가 아무리 힘들어도 군대보다는 낫지 않겠냐는 의견도 많다. 그렇기에 더더욱 대체복무제 도입은 군의 개혁을 전제로 해야 한다. 군대의 반인권성과 폭력성을 방치한 채 대체복무를 더 나쁜 선택지로 만들어야 한다는 논의는 잘못됐다. 군 문화 자체를 개선함과 동시에 합리적인 대체복무 방안을 마련해야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최근에 대체복무제 도입에 긍정적인 기류가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의 전망과 활동 계획은?

  올해는 병역거부 운동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기대감을 가질 수 있는 해였다. 올해만 1심 법원에서 35건의 병역거부 사건에 대해 무죄가 선고됐는데(9월 21일 기준), 이는 2015년 6건, 2016년 7건에 비해 확연히 많아진 수치다. 판사들은 대체복무제를 마련할 의무와 권리가 국가에 있음에도, 국가가 이를 실행하지 않고 처벌로 일관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판결문을 통해 밝혔다. 지난 5월에는 ‘참여연대’가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형사처벌이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을 청구했고, 6월에는 인권위가 정부에 대체복무제 도입을 재차 권고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 대체복무제 도입을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고, 현재 국회에는 이철희, 박주민, 전해철 의원의 대체복무제 도입 법안이 발의돼 있다. 하지만 이 기류가 아직 구체적인 움직임으로 나타나지는 않았다.

  앞으로 대체복무제 도입 등 병역거부 운동을 이어가겠지만 이것이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다. 전쟁없는세상은 최종적으로 전쟁을 일으키는 사회구조에 대해 저항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병역거부 운동, 무기 감시 운동, 비폭력 트레이닝 등 평화주의 운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합리적인 대체복무제를 도입해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인권침해를 해결하고, 그들의 목소리에서 전쟁의 참혹함과 평화의 가치를 되새겨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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