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시작된 ‘대학 인문역량 강화사업(코어사업)’이 이번 학기로 4학기 차를 맞았다. 당초 코어사업은 전국 16개 대학에서 대학별 자율 모델에 따라 3년간 시범적으로 운영하기로 계획됐다. 서울대는 인문대 대학원 과정을 지원하는 ‘기초학문 심화 모델’과 연합연계 전공을 신설해 학제 간 융합을 추구하는 ‘대학자체모델(SNU모델)’, 두 사업을 진행하며 교육부로부터 3년간 37억 원을 지원받는다. 시범운영 기간의 절반이 지난 지금, 코어사업의 운영 실정을 살펴봤다.

만족도 높은 기초학문 심화 모델, 학업 지원금은 의견 엇갈려
기초학문 심화 모델은 인문대 대학원 진학이 예정된 3, 4학년 학부생(학사 코어)과 석사생(석사 코어)에게 매달 코어 학업지원금을 지급한다. 2017년 1학기의 경우 학부생 100명, 석사생 86명에게 매달 60-80만 원씩 지급됐다. 코어 학업지원금은 적지 않은 돈을 지원하는 만큼, 대학원 진학을 고려하는 학부생과 대학원생 모두에게 인기가 높다. 특히 석사 코어의 경우 정원을 크게 웃도는 200명 이상이 매학기 학업지원금을 신청하고 있다. 학업지원금 외에도 코어사업단은 해외수학지원금, 학술지원금, 논문 게재료 지원 등 다양한 학술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 결과 2016학년도 2학기에는 대학원 진학 예정자 16명 전원이, 2017학년도 1학기에는 진학 예정자 26명 중 23명이 예정대로 인문대학 대학원에 진학했다.

학업지원금 수혜자는 의무적으로 학부생-석사생 멘토링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돼있다. 학부생과 석사생은 1대 1로 연결돼 한 달에 두 번 대학원 생활과 입시에 관해 정보를 나누며, 멘토링 프로그램에 대한 학생들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다음 학기 대학원에 진학하는 학사 코어 수혜자 A 씨는 “실질적인 조언을 받을 수 있고, 석사 진학 이후의 진로와 연구실 정보를 대학원생에게 직접 들을 수 있다”고 만족감을 전했다. 국사학과 석사생 B 씨도 “대학원 진학 이전에 선배를 알게 되면 대학원 적응에 큰 도움이 된다며 멘토링 프로그램이 코어 사업의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타 단과대에 비해 외부 장학금을 받기 힘든 인문대 학생에게 학업지원금은 재정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많은 학생이 학업지원금에 생활비를 의존하면서도 유동적인 지급시기에 불안해하고 있다. 학업지원금은 매달 말일 지급이 원칙인데, 2017년 1학기 3-4월과 5-6월분이 각각 5월과 7월에 뒤늦게 지급됐다. 학사 코어 수혜자 A 씨는“지급이 지연되거나 중단될 가능성이 있어 부담이 크다고 토로했다. 코어사업단은 지난 8월 지급 지연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으나, 내년 상반기 재발 가능성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한편 학업지원금으로 인한 부담감을 토로하는 경우도 있다. 코어사업 평가 시 학사 코어 수혜자의 대학원 진학률이 주요한 기준이 되므로, 코어사업단 입장에서는 학부생이 예정된 시기에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학사 코어 수혜자는 휴학이나 교환학생 등으로 대학원 진학시기를 늦추기 힘들며, 대학원에 불합격하는 경우엔 학업지원금을 환급해야 한다. 석사 코어 수혜자인 B 씨는 “학업지원금 액수가 크다보니 학부생 멘티가 환급에 대해 큰 부담감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신효필 코어사업단장(언어학과)은“학업지원금을 악용할 가능성을 막기 위해 진학시기를 못박아둘 수밖에 없다며 대학원 진학을 늦춰야한다면 사유서를 쓰고 한 학기를 미룰 수 있다고 전했다. 인문학 연구인력을 유치하기 위해선 학사보다는 석사 코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학사 코어 수혜자였던 김보민(철학 13) 씨 는 “(학부생보다는) 오히려 석사와 박사과정 학생을 지원해 금전문제로 인한 중도 이탈을 방지하고, 대학원생의 생활을 안정시켜 학부생의 유입을 유도해야한다”며 정책 방향의 재고를 촉구했다.
코어사업단은 정책 시행 전 이러한 문제의식에 공감해 학부생에 한정됐던 학업지원금을 석사생까지 넓혔다. 하지만 석사 코어는 코어 수혜자의 경제적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4대보험 미가입자’만 학업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해놓아 수혜자가 여타 경제활동을 하는 데 제약을 받는다는 지적이다. 석사 코어 수혜자인 C 씨는 “(4대보험 미가입자가) 학업지원금의 우선순위가 돼야하지만, 개인 사정에 따라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에도 지원 대상에서 아예 배제되는 점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또 C 씨는 “코어 학업지원금을 받는 경우 학업에 도움이 되는 연구소 아르바이트나 인턴 기회도 놓치게 된다”고 덧붙였다. 뿐만 아니라 코어 학업지원금은 ‘강의연구지원(GSI)’ 장학금, 조교장학금과 중복수혜가 불가능해 일부 학과에서 조교 인원이 부족하거나 조교 업무가 과중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학제간 융합의 시발점 될 수 있을까
SNU모델로는 동아시아 비교인문학, 고전문헌학, 인문데이터과학, 정치경제 철학 4개의 연합·연계전공이 운영 중이며, 각 전공당 16명, 17명, 38명, 79명의 학생이 공부하고 있다. 특히 인문데이터과학과 정치경제철학 전공에는 진입정원인 30명과 50명을 크게 초과해 학생들이 지원하는 등, 전공과 신설 전공과목에 대한 수요가 크다.
연합·연계전공 커리큘럼에 대한 학생들의 기대는 뜨겁다. 인문학의 특성을 살리면서도 최근 사회적 요구에 부합하며 타 분야와의 접목을 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학기 고전문헌학 전공에 진입한 박승두(철학 16) 씨는 “철학과 대학원 진학을 계획하고 있는 입장에서 고전문헌학이 인문학자로서의 역량을 기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밝혔다. 박 씨는 “적은 인원수에 비해 신설 교과목의 수가 많아 만족스럽고, 전공 언어 역량이 증진할 수 있기를 기대 한다”고 말했다. 인문데이터과학 전공에 진입한 D 씨도 “최근 기본적 통계지식이나 프로그래밍 소양이 요구되는데, 인문데이터과학은 자신의 기존 전공에서 데이터 관련 지식을 특성화 할 수 있다”며 기대를 드러냈다.
반면 여러 진입생은 기대에 비해 커리큘럼의 내실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정치경제철학 전공생인 E 씨는“일부 전공개설과목에서는 전공 간 연계가 두드러지지 않는 것 같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주전공인 철학을 기반으로 다른 공부를 해보고 싶어 진입했지만, 타과 전공을 몇 개 더 듣는 것 외에 커리큘럼에 크게 기대한 바는 없었다”며 회의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정치경제철학 전공은 정치외교학부, 경제학부, 철학과의 기존 개설과목 외에 신설 교과 목 1과목만 들으면 이수가 가능하다. 인문데이터과학 진입생 D 씨도 “신설된 과목들이 학생들 수준에 맞아 만족하지만, 전공이 생긴 지 얼마 안됐고 학생 간 교류가 적어 커리큘럼이 잘 연계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연계·연합전공 담당 교수로부터‘전공이 진정한 의미의 융합 학문이 될지, 단기적으로 소모되는 정책에 불과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들은 학생도 있었다.

2017년 2월 22일 열린 코어 학업지원금 수혜자 대상 오리엔테이션 ⓒ서울대학교 코어사업단
한편 연합·연계전공의 지속성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지난 8월 31일 열린 학업지원금 오리엔테이션에서 신효필 코어사업단장이 대학별 중간평가에 따라 2019년 이후 코어사업이 중단될 수도 있다고 전했기 때문이다. 박승두 씨는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는데 입대 전까지 전공을 이수해야하나 조급함이 든다”고 불안감을 표했다. 이에 대해 신 코어사업단장은 “코어사업 시행 초기에 5년 이상 유지하는 조건으로 연합·연계 전공을 개설했다”며 연합·연계전공 조기 폐지설을 일축했다. 그는 “코어 사업이 끝나더라도 인문학 부흥을 위한 후속사업이나 대체사업이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코어사업이 2019년 3월 중단되면 예정돼있던 코어 학업지원금 역시 중단되고, 이후 진행될 사업에 학업지원금이 포함될지도 불확실하다. 한 학자가 학문적으로 성과를 이루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단기적으로 시행되는 코어 사업이 학문의 부흥을 꾀하는 데 임시방편식 정책은 아닌지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