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투 운동’이 한국사회를 휩쓸면서 대학 내 교수 성범죄도 잇달아 폭로되고 있다. 하지만 교수의 권위를 이용한 권력형 범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2011년 김인희 전 서울대 음대 교수가 제자를 폭행하고 공연 티켓을 강매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본격적으로 ‘교수 갑질’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학계에서도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스캔노예’, ‘인분교수’ 사건 등 대학원생에 대한 교수 갑질은 아직도 캠퍼스 내에서 반복되고 있다. 2016년 서울대 인권센터 조사 결과에 따르면,대학원생 중 35.2%가 자신의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문제해결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교수 갑질이 되풀이되는 구조적 원인을 짚어봤다.
폭넓은 재량으로 만들어진 교수사회의 벽
교수 갑질이 해결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교수가 폭넓게 재량을 발휘할 수 있는 대학 내 구조 때문이다. 특히 대학 내 연구실은 교수가 오너(owner)인 ‘중소기업’으로 비유될 만큼 교수의 영향력이 강한 곳이다. 일반적으로 정부 및 산학 프로젝트 연구비는 산학협력단에서 관리하는데, 연구소에서 시설비 및 인건비 등을 청구하면 산학협력단에서 지급하는 식으로 운영된다. 문제는 대학원생이 인건비를 지급받은 후, 일부 금액을 소속 연구실에 돌려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명목은 ‘연구실 공동자금’이다. 안정적으로 프로젝트 수주가 이뤄지지 않을 때를 대비해 인건비를 묵혀두거나, 장학금을 추가로 받은 학생의 인건비를 장학금을 받지 못한 학생들에게 나눠주기 위한 목적이다. 보통 이렇게 모은 공금을 교수가 관리하기 때문에 사적 용도로 사용할 우려가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교수 재량에 따른 자의적 임금 재분배는 그 자체로 문제가 될 수 있다. 대학원 총학생회 이우창(영어영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전문위원은 “제도 밖의 돈에 대한 ‘배분권’을 교수가 독점한 상황에서 (연구비 용처는) 교수의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다”며, “내부 견제 장치가 없는” 시스템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런 관행에 대해 내부에서 문제를 제기하기란 쉽지 않다. 대학원생이 직접 공용통장으로 입금하므로 실질적인 강제성을 입증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문제를 지적했을 때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이우창 전문위원은 “문제제기를 했을 때, 이 필드(field)에 더 이상 발 붙이지 못한다는 두려움이 (대학원생 사이에서) 존재한다”고 말했다.
문제제기에 대한 두려움은 지도교수가 학위취득 및 논문심사 과정에서 갖는 강력한 영향력과 맞닿아있다.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대학원생 노조) 강태경 부위원장은 지도교수가 연구논문을 지도할 때“주관적인 판단과 학술적인 지적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것을 악용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금품 및 인건비 상납 등 암묵적인 관행을 따르지 않으면 학생이 학위취득에서의 불이익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특히 교수사회 자체가 위계적이고 지도교수가 학계 내 권위자일 경우, 학위 취득 후에도 피해를 입을 수 있다. 강 부위원장은 “특히 인구규모가 작은 한국에서 세부전공을 하면, 판이 좁기 때문에 학위를 받은 후에도 채용 등에 피해를 입을까봐 걱정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5년 이상일 전 새누리당 의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부당행위를 경험한 대학원생 중 91.6%가 이를 신고하지 않고 있으며, 그 이유로는 ‘졸업 때 지장을 받을까봐’가 36.6%, ‘학계에 알려져 관련분야에서 일할 수 없을까봐’가 23.3%로 드러났다.
‘판이 좁다’는 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동료에게도 피해가 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문제제기가 더욱 어렵다. 문제가 공론화돼 교수가 처벌을 받으면, 연구실 자체가 와해될 수 있고 동료 학생들의 논문 지도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이 때문에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숨기거나, 동료들이 피해자를 설득해서 공론화를 저지하기도 한다. 수리과학부 K교수 사건 당시 학생회장을 맡았던 이경원(통계학과 석박사통합 과정) 씨는 “꿈을 포기해야만 폭로할 수 있다”면서 “비리를 폭로하면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경력도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에 (폭로하지 않고) 자신이 연구실을 나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공개된 정보가 부족하다보니 학생들이 대학원 내 교육환경을 미리 아는 것도 어렵다. 인권센터의‘2014 서울대학교 대학원생 인권실태 및 제도개선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대학원생 중 20% 이하만이 입학 전 공식적 경로를 통해 졸업평균연한, 장학금, 졸업 후 진로 등의 정보를 얻었다고 답했다. 대학원에서 교수 권한이 크다는 것을 고려하면, 학생들은 진학과 연구실 선택에 필요한 정보를 위해 사적 인간관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조사 보고 후 4년이 지난 지금도 ‘대학알리미’나 학과 홈페이지에서 평균 학위취득 소요기간, 대학원 중퇴율 등의 정보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경원 씨는 “(교수 갑질에 대한) 소문은 집단 내에서만 퍼지기 때문에 대학원 진학 전 이에 대해 수소문 했다”고 전했다. 반면 미국 코넬대(Cornell)를 비롯한 여러 해외 대학은 학과별 중퇴율 및 졸업 비율, 학위취득 소요기간, 졸업 후 진로 등을 공시하고 있다. 이우창 전문위원은 해당 지표들은 “해당 학과의 대학원생 관리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예측할 수 있는 간접적 지표”임과 동시에 “교수와 학과 차원에서 대학원생 교육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하는 간접적 압박”이라고 설명했다.
공고한 벽을 깨뜨리려는 노력
교수사회의 높은 벽을 깨뜨리고, 교수와 학생 간 위계적 관계를 바꾸려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학내 인권침해 사안 해결을 위해 설립된 인권센터는 교수·학생 간 권력관계에서 비롯된 문제를 조사하고, 징계위원회에 권고안을 제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하지만 교수가 인권센터 장을 맡고, 교무처장과 학생처장 등이 운영위원을 맡는 조직구성 때문에 교수·학생 간 사건에 대한 객관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또 징계권고안을 결정하는 심의위원회가 교수 및 외부인사로 구성되고, 학생은 참여할 수 없기 때문에 교수사회의 이해관계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는 점도 지적된다. 현재 인권센터 규정상 심의위원회에 피해 당사자나 학생 측 대리인이 참고인으로 출석할 수 있지만, 위원회 자체에 참여할 수는 없다. 이경원 전 학생회장은 “교수가 보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인권센터가) 교수 친화적으로 작동한다는 인식이 학내 구성원 사이에서 공유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이우창 전문위원은“동일한 사건이라도 교수와 학생이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심의 과정에 학생 측 대리인이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인권센터의 역할이 징계 권고안 제출에만 그쳐 실효성이 부족하고 사후대처에 불과하다는 지적에 대해 이우창 전문위원은 본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인권센터가 인권침해 사안에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예산·인력·권한을 충분히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전문위원은 “‘인권센터가 무엇을 못했는지’보다 ‘왜 못하게 됐는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하며, 인권센터의 조사 및 분석 결과를 실제 교칙에 반영할 권한, 교수 대상 인권 교육을 의무화할 권한 등을 부여함으로써,인권센터가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설 수 있는 여지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학원생 권리장전’과 ‘인권 가이드라인’도 불평등한 권력관계 속 약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방편으로 시작됐다. 2015년 서울대 인권센터는 카이스트(KAIST)에 이어 국내에서 두 번째로 대학원생 권리장전을 발표했다. 권리장전은 법률안과 표준근로계약서 형태로 만들어졌으며, ▲대학원생의 권리와 의무 ▲근무조건 ▲침해구제의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대학원생의 권리’에서는 ▲학업 및 연구에 대한 권리 ▲공정한 평가를 받을 권리 ▲지적재산권 ▲사생활의 자유와 거부권 등을 명시하고 있다. 구속력이 없어 선언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제기되지만, 이우창 전문위원은 권리장전이 “인권에 대한 서로 다른 기준을 언어로 통일시킨 것”이라며, “학내구성원의 합의에 기초해 (인권침해 발생 시)시정을 요구할 수 있는 문서”라고 그 의의를 설명했다. 이후 2016년 학생들이 만든 ‘인권 가이드라인’은 대학원생 권리장전의 범위를 확장해 학내 구성원 전체 인권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려 했던 시도였다.
하지만 인권 가이드라인과 대학원생 권리장전 모두 본부의 승인을 받지 못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우려가 있다. 인권 가이드라인은 2016년 하반기 전체학생대표자회의(전학대회)에서 통과됐지만, 이후 공식 문서 제정을 위한 본부와의 협의로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대학원생 권리장전 역시 본부 측의 승인을 받지 못한 상태다. 현재 인권 가이드라인 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보미(소비자아동학부12) 전 총학생회장은 “피해 구제권을 명시함으로써 피해자가 공동체 내에서 보호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가이드라인이 의미 있다면서도, “(본부 승인을 위해) 총학생회 차원에서 처장단 면담을 요청했고, 총학생회 회칙에도 인권조례 형식으로 반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노조원들이 정기총회에서 ‘우리가 돈이 없지, 노조가 없냐!’, ‘No pay, No work!’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대학원생 당사자들이 모여 적극적으로 나서는 경우도 있다. 지난 2월 24일 출범한 전국대학원생 노조는 대학원생이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온전히 보장받기 위해 결성됐다. 강태경 부위원장은 노조가“행정과 입법에 개입할 수 있는 전국단위의 중앙조직”으로서 “권리장전 등 명문화된 권리를 실질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조가 결성됨으로써 대학원생의 노동권을 적극적으로 의제화할 수 있게 됐고, 정부와 학교를 대상으로 단체교섭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기 때문이다. 강 부위원장은 “‘노조에 가입하면 제자로 보지 않겠다’고 말하는 등 노조에 대한 교수들의 거부감이 존재한다”면서도, “조직화된 노조를 통해 (갑질) 문화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드러냈다.
공정한 가해자 처벌과 확실한 피해자 보호 필요해
이러한 대처들은 캠퍼스 내에 만연한 갑질 문화를 개선하고, 갑질을 용인하는 제도를 바꾸려는 움직임이다. 하지만 학내외 대처방안이 실효성 면에서 한계를 갖거나 아직 초기단계이기 때문에 학생들은 대부분 대학 내 징계 절차에 희망을 걸게 된다. 형사고발을 하지 않고 학내 조사 및 징계 절차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공동체에 대한 신뢰가 바탕에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김보미 전 총학생회장은 “공동체 내에서 문제제기가 이뤄진다는 것은 곧 건강한 공동체라는 것을 의미한다”며, “2차가해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 설명했다.
그러나 교수·학생 간 사안에서 징계절차의 공정성에 관한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징계위원회의 인적구성이 교수와 변호사, 공무원 등 외부인사로만 이뤄져있어 편향적인 징계결과가 나올 우려가 있다. 또 징계위원회에 보통 유관분야를 전공하거나 학과 내에서 신망 있는 교수가 참여하는데, 증거 취급과 징계수준 결정에 필요한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우창 전문위원은 “징계 결과가 위원회에 참여하는 교수들의 개인적 배경 등 우연성에 의존하는 것이 문제”라며, “제도가 신뢰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높은 수준의 징계만이 능사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사건 처리 과정의 공정성이 제도적으로 담보돼야 한다는 것이다.
피해자 보호도 보다 체계적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 교수로부터 피해를 입으면, 지도학생의 논문과 연구 활동에 지장이 가지 않도록 지도교수를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이우창 전문위원은 “지금은 교수가 학생을 관리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낙동강 오리알’이 되기 십상”이라며, 학교 및 학과 차원에서 지도교수 재배정이나 관련 학계 진출 등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공간분리뿐 아니라 “피해자 학생이 수강하는 강의와 장학금 및 졸업을 결정짓는 자리에 해당 교수가 영향력을 미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교수 갑질’은 단지 몇몇 ‘악인’에 대해 분노를 표출하고, 그들을 처벌하는 일을 넘어설 때 해결될 수 있다. 자의적인 갑질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하고, 꿈을 포기하지 않고도 문제제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 이 점에서 이우창 전문위원은 “인권이슈 의제 활성화가 좋은 대학을 만들어나가는 첫걸음”이라면서 “(장기적으로) 국가 차원에서도 행정과 교육·연구의 분리 등을 통해 좋은 연구환경을 재구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강태경 부위원장도 “학교가 현재 봉건적으로 운영돼 중간영주인 교수가 큰 재량을 발휘하고 있다”며, “본부가 행정, 노동권, 인권 문제를 중앙에서 관리하고,학문은 자유롭게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두가 평등하다’는 책 속의 활자가 제도로서 실현되도록, 캠퍼스가 ‘교수왕국’이 아닌 ‘민주주의의 장’이 될 수 있도록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