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리어프리(barrier-free)는 물리적·제도적 장벽을 없애 공동체가 장애인을 배제하지 않아야 함을 의미한다. 대학과 사회에도 장벽을 낮추기 위한 다양한 제도가 도입됐다. 2008년 시행된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은 장애학생의 교육과 지원을 총괄하는 장애학생지원센터 설치를 각 대학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서울대도 2003년부터 장애학생지원센터를 설립해 운영해오고 있다. 그럼에도 서울대가 배리어프리하지 않다는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다.
배리어프리하지 못한 시설
장애학생지원센터는 현재 편의시설 및 이동, 교수·학습, 대학생활 등 크게 세 측면에서 장애학생을 지원하고 있다. 홈페이지에 따르면 학내에서 이동하고 강의실에 접근할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휠체어 리프트가 설치된 이동지원차량을 운행하고, 휠체어나 독서확대기, 대필용 노트북 등을 무상으로 대여해준다. 뿐만 아니라, 이동·생활·대필 등의 도우미 제도를 운영하는 등 장애학생에게 다양한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이외에도 비장애 구성원을 대상으로 장애 이해 교육을 실시하고, 장애학생이 수강하는 교과목 담당 교수에게 명료한 발음이나 수업 PPT 제공 등을 요청하는 교수·학습 안내문을 발송하는 것도 장애학생지원센터의 역할이다.
장애학생지원센터의 지원 외에 학교 차원에서 제공되는 서비스도 존재한다. 중앙도서관은 장애학생의 도서 대출·반납 시 교내에 한해 책을 배달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중앙도서관 2층의 장애학생지원실은 장애학생 전용 사물함과 장애학생 전용 좌석 등이 설치돼있다. 1열람실과 3열람실에는 많은 수는 아니지만 장애학생 우선 이용 좌석이 있다. 사회대 도서관에도 장애학생 열람실이 따로 존재하고, 중앙전산원도 장애학생 전용공간을 운영한다. 행정관 1층의 장애학생휴게실 ‘다솜누리’에는 수면실과 높낮이 조절 책상, 점자프린터, 독서확대기 등이 비치돼있다.
이러한 지원에도 학교가 충분히 배리어프리하다고 말하기는 섣부르다. 장애인권동아리 ‘턴투에이블’ 박선아(사회복지 17) 대표는 “(장애학생 이동지원차량이) 1대밖에 없고 3년간 계속 증차를 요구해왔지만 작년에 노후화된 차량이 교체되기만 했다”고 말했다. 특히 산자락을 따라 지어져 경사가 급한 서울대의 특성상 학내에서 이동할 때 이동지원차량이 필수적이지만, 차량 한 대가 드넓은 캠퍼스를 도맡기엔 한계가 있다. 장애학생지원센터 직원 임희진 씨는 “차량이 한 대다 보니 학생 사이에 이용시간을 조정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며 “추가 구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선아 대표는 강의실의 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계단형 대형강의실의 경우 휠체어를 탄 학생들은 뒤로 앉아야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들어갈 수 있어도 1층에 단이 있는 경우 강의실 출입이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8동·14동·28동·56동·83동의 계단형 대형강의실을 찾아가 본 결과 모든 강의실에서 경사로를 발견할 수 없었다. 장애학생 전용석으로 보이는 별도의 책상은 다섯 개 동의 모든 계단형 대형강의실에 있었지만, 14동·28동·56동의 경우 계단 아래쪽으로 접근이 불가능해 모든 장애학생 전용석이 강의실 가장 뒤에 위치해있었다. 8동의 경우 휠체어 전용 공간이 단상에 의해 일부 가려져있고 장애학생 전용석도 난간에 바짝 붙어있어 사용하려면 장애학생 전용석을 끌어내야 했으며, 56동도 두 개의 계단형 대형강의실 모두 장애학생 전용석이 뒤쪽 벽에 붙어있었다. 곧 철거되는 28동의 경우 계단형 대형강의실 여섯 곳 중 두 곳은 장애학생 전용석이 의자와 일체형이어서 휠체어 장애인이 사용하기 힘들었고, 다른 한 대형강의실의 장애학생 전용석은 56동처럼 뒤쪽 벽에 붙어있었다.
늘어나고 있는 키오스크(무인주문기)도 걸림돌이다. 화면에서 버튼을 눌러야 하고 일어선 사람의 키높이에 맞춰져 있는 키오스크는 시각장애인과 휠체어 장애인이 사용하기에 불편한 시설이다. 중앙도서관이나 생활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학생식당과 느티나무뿐 아니라 외주업체가 운영하는 감골식당·4식당·플루이드 카페 등에도 키오스크가 설치돼있다. 임희진 씨는 키오스크에 대해 “지체장애학생이 사용하기 어려운 것은 물리적 형태만 바꾸면 되기 때문에 예산 문제지만 시각장애학생이 사용하기 어려운 부분은 내부를 손봐야 한다”며 단시간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답했다. 다만 임 씨는 “운영 주체가 다르기 때문에 일괄 추진은 어렵지만 학교에 속한 도서관이나 생협처럼 학교에 밀접한 기관에 먼저 시행해서 입주한 업체도 따르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애학생지원센터는 학교를 방문하는 장애인이나 일시적으로 다친 학생까지 지원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임희진 씨는 “우선은 (장애학생으로) 등록된 학생 위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황이다 보니 (휠체어나 차량 등을) 등록된 학생이 이용하겠다고 하면 반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졸업식 등 행사가 있을 때 휠체어 대여 정도가 가능한 상황이다. 다만 임 씨는 “다른 대학에는 담당자 자체가 없는 경우가 많다. 정기적으로 지원하는 서비스에 대해서는 매년 그만큼의 예산은 확보된다”며 다른 학교에 비해선 재정적인 어려움은 없다고 밝혔다.
뒷받쳐주지 못하는 제도
예산을 들여 강의실에 경사로와 장애학생 전용석을 확보하고 이동지원차량도 추가로 구비하면 배리어프리를 달성할 수 있을까. 박선아 대표는 “물리적인 요소뿐 아니라 제도적·인식적인 측면에서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장애학생지원센터나 장애학생간담회 등의 제도가 존재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이다.
학기 초마다 한 번씩 열리는 장애학생간담회는 장애학생들의 의견을 공식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창구다. 지난 9월 26일 열린 제3차 장애학생간담회에서 “증차문제나 발달장애인의 학습권, 각종 시설 문제가 제기됐다”고 박선아 대표는 말했다. 그러나 박 대표는 장애학생들이 더 편하게 오갈 수 있는 기숙사 동에 입주할 수 있도록 하라는 요구에 학교 측 참석자가 ‘학생들이 원하는 건 정량적 평등’이라며 ‘(장애인에 대한) 특별한 배려를 (학생들이)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다’고 거절했다고 덧붙였다. “그분들이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박 대표는 “학교에선 (간담회에서 제기하는 문제들을) 잘 수용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학생이나 당사자들은 수용이 잘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장애학생의 교육·복지의 기본 방침을 심의하는 기구인 ‘장애학생복지위원회’도 장애학생과 관련된 제도 중 하나다. 본부와 총학생회 측 인사가 참석하지만 정작 장애학생 당사자는 해당 위원회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장애학생 교육·복지 지원 규정’에 따르면 장애학생복지위원회는 학생처장을 위원장으로, 학생부처장, 교무부처장, 입학본부장을 당연직 위원으로 둔다. 총학생회장과 부총학생회장 역시 작년 2학기부터 회의에 참관하고 있다. 그러나 임희진 씨는 “(장애학생복지위원회에) 장애학생 당사자는 참석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박선아 대표는 “모든 관계자가 비장애인인 상황에서는 (장애인 편의증진법 등에서 규정된) 기준의 필요성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며 상위 기구에 장애학생이 참여하지 못하는 데에 우려를 표했다.
건축물 설계 논의에도 장애학생은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임희진 씨는 “(장애학생지원센터의 건축물 설계 과정에의 참여가) 규정에 명시되거나 (장애학생지원센터가 건축물 설계 관련) 위원회에 포함되진 않았지만 (장애학생지원센터 차원에서) 건물 사용에 불편한 점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시설기획과에 의견을 전달하고 있다”며 장애학생 당사자의 의견을 반영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장애학생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진 않는다. 임 씨는 “출입문에 경비시스템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무겁고 한 방향으로만 열리는 출입문이 늘어났는데 문이 워낙 많다 보니 반영되지 않은 부분이 많다”며 여전히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최근 완공된 26동의 경우, 모든 출입문이 휠체어를 타지 않는 사람도 체중을 실어야 열릴 정도로 무겁다. 점자블록으로 유도되는 출입구는 바로 앞 점자블록에 매트가 깔려 시각장애인이 접근할 수가 없고, 한쪽 문만 열 경우 유효폭이 83cm에 불과해 폭이 보통 85cm인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어 양쪽 문을 모두 열어야 하지만, 끝까지 열어야 문이 고정이 돼 시각장애인과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 모두 26동에 출입할 때 어려움을 겪게 된다. 장애인 편의증진법에 의하면 출입문이 연속으로 있는 곳의 경우 휠체어의 활동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전면 유효거리가 1.2m 이상이어야 하는데, 26동의 주출입구는 전면 유효거리가 1.26m로 최소 기준만을 넘겼다. 더욱 엄격한 기준인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BF) 인증심사기준 및 수수료기준’에 따르면 이는 최저 등급인 ‘일반’에 해당한다.

장애학생도우미제도도 잠재적인 불안을 안고 있다. 박선아 대표는 “도우미가 구해지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도우미가 없으면 수업을 못 듣는 학생들이 있다. (도우미가 학생들의 자발적인) 지원으로만 운영되다 보니 도우미를 구하기가 힘든 면도 있다”고 말했다. 또한 장애학생도우미제도가 학교가 아닌 국가 차원에서 한국장학재단을 거쳐 근로 장학의 형태로 운영되는 점도 문제다. 박 대표는 “장애학생에겐 자신의 기본적 권리에 대한 것인데 그 권리를 보장해줄 책임을 국가가 근로장학생에게 시급 8,350원에 외주를 시킨 셈”이라며 비판했다.
학내 장애인권 보장의 핵심 기관인 장애학생지원센터도 위태롭다. 500동 지하에서 장애학생휴게실과의 구분도 없이 운영되던 센터는 2018년 5월에야 장학복지과의 한 직원의 적극적인 추진으로 학생회관 1층에 자리잡을 수 있었지만, 여전히 상황은 녹록지 않다. 장애학생지원센터에는 총 세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는데 한 명은 전문 속기사고 다른 한 명은 사회복무요원으로, 남은 한 명인 임희진 씨에게 행정업무가 집중되는 상황이다. 특수교육 전문가로서 법인직원이 아닌 자체직원으로 고용된 임 씨는 “법인 직원의 경우 순환근무를 하기 때문에 장애학생지원센터에 법인직원이 배치되지 않은 것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총장 직속인 다양성위원회나 본부 직할인 인권센터와 달리 장애학생지원센터는 학생처 산하 장학복지과의 업무 중 하나로 규정돼있다. 임 씨는 “지금은 산하의 산하에 있다 보니까 일을 하려면 (보고 라인을) 쭉 타고 올라가야 해 시간이 많이 걸린다”며 독립된 센터 운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열쇠는 인식 개선에 있다
턴투에이블과 장애학생지원센터 모두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비장애인들만이 모여 장애인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한 채 결정을 내리면 최소한의 법적 기준은 충족시키더라도 장애인들이 실제로 사용하기엔 불편한 시설이 들어서기 쉽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한 임희진 씨는 “한 번에 해결될 일도 여러 번 설명해야 돼 어려운 경우가 있다”며 장애인에 대한 열악한 인식으로 인해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일에 협조를 구하기가 쉽지 않음을 설명했다. 이에 임 씨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을 가장 시급한 과제로 제시했다. 단번에 모든 시설과 제도를 바꾸는 것은 어렵겠지만, 장애인의 인권이 후순위로 밀리고 심지어 특혜로까지 치부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으려면 장애인에게도 권리가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