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유와 착취 사이에 선 아이돌 문화

우리가 아이돌을 소비하는 방법
▲V-line 동영상 일간 순위(2019년 12월 5일 기준) ⓒV Live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희는 지금 쇼케이스 공연장에 와있습니다. 너무 떨리는데, 여러분과 이 순간을 함께하고 싶어서 브이앱으로 라이브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 회사에 왔는데 여러분이 보고 싶어서 즉흥적으로 브이앱을 켰어요.” 네이버에서 제공하는 동영상 플랫폼 V LIVE에선 아이돌이 자신의 일상을 방송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스타와 대중의 거리가 한껏 가까워진 지금, 아이돌 문화의 변화된 양상을 돌아봤다.

우리 둘 사이 딱 한 뼘 사이

  대중이 아이돌의 사생활을 본격적으로 소비하기 시작한 건 네이버의 글로벌 동영상 라이브 서비스인 V LIVE가 등장하면서부터다. 박희아 대중문화평론가는 “V LIVE의 콘셉트가 24시간 스타와 함께할 수 있다는 라이브 방송인만큼 아이돌이 자신의 취미나, 일상적으로 수다 떠는 모습 등을 공개해야 플랫폼을 제대로 활용하는 게 된다”고 말했다. 아이돌은 더 이상 무대 위에서만 그들을 드러내는 존재가 아니다. V LIVE나 트위터, 인스타그램, 네이버 카페 등에서 아이돌은 무대 밖 자신들의 일상을 대중에게 보여준다. 아이돌과 대중 사이의 접촉면은 넓어졌고, 아이돌의 사적인 영역은 하나의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아이돌이 무대 밖에서 보여주는 사적인 모습은 팬들이 아이돌에게 느끼는 심리적 거리를 가깝게 한다. 아이돌은 연예인 중 팬덤 의존도가 높은 직업이기에 팬덤과의 친밀감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팬 A씨는 “무대 위에서의 멋진 모습만 좋아하는 건 아닌 거 같다”며 “(브이앱 등으로) 우리랑 가깝게 느껴지는 웃긴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팬 B씨도 “멀게만 느껴졌던 아이돌을 더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점이 전략의 성공 요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이돌이 인간적인 모습을 대중들에게 드러내는 것은 효과적인 홍보 전략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아이돌이 대중에게 노출하는 일상의 영역이 많아지면서, 이들의 노동의 경계는 과거보다 모호해졌다. 《아이돌》의 저자 김보년은 ‘(아이돌이) 카메라 앞에서 보이는 일상은 더는 일상일 수 없다’며, 아이돌은 춤과 노래를 하는 육체노동 외에도 ‘목적에 맞게 자신의 감정을 고무하거나 억제해야 하는 감정노동의 영역까지 수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생활을 대중에게 전시하기 시작하면서 아이돌은 일상에서도 노동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됐다. 문화사회연구소 이종임 이사는 “(아이돌이 V LIVE 등을 사용하는 데 에는) 진심도 있겠지만 그들은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을 노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V-line 동영상 일간 순위(2019년 12월 5일 기준) ⓒV Live

진실한 너를 보여줘

 아이돌이 무대 밖에서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과정에는 각종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큰 역할을 한다. 엠넷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인 ‘프로듀스’ 시리즈는 팬들이 연습생의 성장 과정부터 함께 지켜볼 수 있도록 리얼리티적 성격을 도입했다. 대중은 프로그램에서 연습생이 치열하게 연습하는 모습을 비롯해 그들의 현실적인 일상생활까지 소비한다. A씨는 “이런 프로그램은 오히려 사람을 사람으로서 다가갈 수 있게끔 하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A씨는 “연습생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고, 이들에게 나 자신을 투영하면서 응원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프로듀스’ 시리즈에서 연습생은 각자 일관된 서사와 캐릭터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특정 서사에 부합하지 않는 모습을 보일 경우 그들은 대중의 질타를 받는다. 예를 들어 ‘프로듀스 101 시즌2’에서 권현빈 연습생은 연습 태도가 무성의해 보인다는 이유로, ‘프로듀스 48’에서 허윤진 연습생은 센터 욕심이 과도하다는 이유로 논란이 일었다. 이처럼 특정한 이미지를 대중에게 일관되게 증명하는 게 중요해진 상황에서, 아이돌의 감정노동은 불가피하다. 저자 김보년은 《아이돌》에서 ‘아이돌이 보여주는 리얼한 모습을 모두 거짓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말하면서도, ‘아이돌이 특정 감정을 연기하거나 끄집어내면서 수행하는 감정노동의 고단함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은 비단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만 드러나는 건 아니다. 이미 데뷔한 아이돌 역시 무대 위에서 형성된 이미지와 무대 밖에서의 모습이 일치하지 않을 때 대중의 비난을 피할 수 없다. f(x)의 전 멤버였던 故설리가 공개연애를 하고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은 언제나 논란의 중심에 있었고, 레드벨벳의 멤버 아이린은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는 이유로 일부 남성 팬에게 뭇매를 맞아야 했다.

그때도 틀리고 지금도 틀리다

  이처럼 아이돌에게 부과된 과제는 늘어났지만, 매체가 그들을 소비하는 기존의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매체는 여전히 아이돌의 인격을 보장하지 않는 방식으로 아이돌을 그려낸다. 홍석경 교수(언론정보학과)는 “대중의 사랑을 갈구하고 그걸 어떻게든 얻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의 청소년들을, 미디어의 힘 있는 사람들이 프로그램의 인기를 위해 소비한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특히 대중 매체에서 아이돌에게 애교를 요구하는 상황을 예로 들면서 “애교는 권력 있는 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례로 <MBC>의 ‘주간 아이돌’에서 애교는 모든 연예인이 거쳐야 할 하나의 관문이다. 해당 방송에서 애교 요청은 그룹 내 애교 ‘원퀸’ 뽑기, 애교로 남성의 심박수 올리기, 애교송 부르기 등 다양한 방법으로 요구된다. 이때 아이돌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은 애교를 수행하거나 뛰어난 예능감으로 상황을 유연하게 벗어나는 것뿐이다. 홍 교수는 “억지로 하기 싫은 것을 시키는 건 폭력적이며 없어져야 할 대표적인 것들 중 하나”라며, 아이돌이 “연예 노동자”라 불러도 무방한 위치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매체에서 아이돌을 성애화하는 양상 역시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나현수 외 2명은 ‘아이돌 육성 TV 프로그램에 나타난 젠더 디스플레이 분석(2018)’에서 ‘역사적으로 여성의 몸 이미지는 대중문화의 여러 분야에 걸쳐 성애화되어 소비되어 왔다’며 ‘‘프로듀스 101 시즌1’에서도 프로그램의 회차가 거듭될수록 소녀에서 미성년을 벗어나는, 성애화 코드가 점차적으로 강화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경향성은 이후 시즌인 ‘프로듀스 48’에서도 유지돼, 미성년자인 장원영이 성관계 이후를 묘사한 노래를 경연에 올리며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성애화 현상은 남성 아이돌에게도 발견할 수 있다. 홍석경 교수 역시 “여자 아이돌을 성적 대상화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지만, 최근에는 매체에서 남자 아이돌에게도 강제로 스킨십이나 애교를 요청하고 복근을 보여달라 한다”고 말했다. 남녀를 떠나 매체에서 아이돌이 연약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시다.

▲MBC 주간아이돌 방송 장면 ⓒV Live

  여성 아이돌은 젠더 권력의 영향으로 더욱 취약한 상황에 

놓인다. 매체는 지속적으로 여성 아이돌을 성적 대상화했으며, 대중 역시 그러한 여성 아이돌의 모습을 소비했다. 유튜브에 올라온 한 걸그룹 멤버의 직캠 모음 영상은 멤버가 특정 신체 부위가 부각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장면을 모아 썸네일로 사용했다. 영상의 댓글에는 각종 성희롱이 난무했다. 카라 전 멤버 故구하라 씨의 디지털 성범죄 피해 사실이 알려졌을 때 온라인 포털의 인기 검색어에는 ‘구하라 동영상’이 올랐다. 홍석경 교수는 “남자 아이돌을 대상으로 한 불법 (성관계) 동영상을 촬영해서 유포하진 않는다”며 “현실사회의 남녀 간 힘의 관계가 투사되고 더 악화돼 드러나는 게 아이돌 산업”이라고 말했다.

  과거에 비해 아이돌 산업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간 부분은 분명 있다. 팬들은 단순히 아이돌을 동경하는 걸 넘어 아이돌의 사생활을 존중하려 노력한다. 《팬덤 3.0》의 저자 신윤희는 “예를 들어 지나가는 아이돌을 봤을 때, 팬 입장에서 사진을 찍더라도 곧바로 사진을 SNS에 올리지 않고 다음 날이나 늦은 시간에 올리는 경우가 많다. 실시간으로 사진을 올리면 사람들이 몰려 아이돌이 본인의 개인 시간을 방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며 “이러한 문화는 새롭다고 하기에도 좀 지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대중 매체에서도 아이돌의 이미지를 재현하는 방식에 있어 조금은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 박희아 평론가는 “과거에는 남성 아이돌이 여성 아이돌 커버를 할 때 우스꽝스러운 느낌을 살리는 경우가, 반대로 여성 아이돌의 경우에는 남성 아이돌 커버를 할 때 멋지고 터프한 느낌을 살리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이런 경향도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도, 아이돌이 오롯이 본인의 목소리를 내기는 어렵다. 플랫폼의 발전과 더불어 아이돌의 노동 양상은 이전보다 다양해졌고, 대중 매체는 여전히 아이돌을 특정한 방식으로만 소비하고 있다. 지금도 수많은 아이돌과 연습생이 자신의 미래를 걸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꿈을 위해 그들은 때때로 가혹한 대가를 치른다. 그들의 노력이 악용되지 않기 위해 아이돌 문화를 어떻게 바라볼지는 우리 모두가 고민해볼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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