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연은 시한폭탄?
갈등과 논란 속 끝나지 않은 이야기
밑 빠진 독에 전문연 붓기

갈등과 논란 속 끝나지 않은 이야기

전문연 제도 존폐를 넘어 폭넓은 논의 필요해
국방부 민원실에 서명운동 결과를 전달하는 전문연대책위 ⓒ신민섭 사진기자

  2016년 이후 4년 가까이 이어진 논란 속에서 전문연구요원(전문연) 제도에 대해 찬반이 교차했다. 이공계 일부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지나친 특혜로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과 국가과학기술발전을 위해 기여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섰다. 이번 존폐 논란과 전문연 제도 전반에 대해 살피고 작년 11월 발표된 제도 개편안에 대해 고민해봤다.

존속이냐 폐지냐, 불확실성이 가져온 폐해

  전문연 제도란 간단히 말해 이공계 연구생으로 하여금 군복무 대신 대학원이나 연구기관에서 연구에 전념하게 만드는 제도다. 병역법 37조에 따르면 전문연은 크게 석사전문연구요원(석사 전문연)과 박사전문연구요원(박사 전문연)으로 나뉜다. 석사 전문연은 석박사 통합과정 수료자를 포함한 석사 이상 학위 취득자가 중소·중견기업을 비롯한 병역지정업체에서 3년간 근무하며 연구활동을 하는 경우다. 박사과정 수료생들이 군복무 대신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3년 동안 연구활동에 매진하는 것이 박사 전문연이다. 병역판정검사에서 신체등급 4급을 받아 사회복무요원 소집 대상인 경우, 예외적으로 학사학위만 취득하더라도 전문연으로 복무할 수 있다. 이런 예외를 제외하면 현재 전문연 정원은 박사 전문연 1,000명, 석사 전문연 1,500명을 합쳐 2,500명 수준이다.

  전문연 폐지 논란은 2016년 5월 언론을 통해 국방부의 ‘병역특례제도 폐지계획’이 보도되며 시작됐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박사 전문연은 2019년부터 사라지고 석사 전문연 역시 점차 축소돼 2023년 폐지될 계획이었다. 이후 논의가 지지부진하다가 2019년에서야 논란이 재점화됐다. 또 다시 언론을 통해 ‘이공계 병력특례 축소 계획’이 보도된 것이다. 이 개편안은 박사 전문연 정원은 1천 명 규모로 유지되나, 석사 전문연은 전면 폐지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했다. 보도가 나온 지 하루 만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아직 관계부처와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과학기술계는 지속적으로 전문연 폐지 및 축소안에 반발했다. 2016년 5월 서울대, 카이스트, 유니스트를 비롯한 9개 대학 총장이 공동으로 전문연 폐지 반대 의견서를 발표했으며, 2019년 7월엔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과 과학·공학·의학 한림원 등 4개 단체가 전문연 축소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4개 단체는 “전문연구요원제도가 축소되거나 폐지될 경우, 국내 이공계대학원의 인적 자원 붕괴와 고급두뇌의 해외유출 가속화가 심각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방부 민원실에 서명운동 결과를 전달하는 전문연대책위 ⓒ신민섭 사진기자

  이공계 학생들 역시 존폐 논란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2016년 5월 서울대 공과대학 연석회의, 카이스트 총학생회를 비롯해 전국 12개 대학 32개 단위가 모여 ‘전국 이공계 학생전문연구요원 특별대책위원회(전문연 대책위)’를 구성했다. 이들은 전문연 제도 폐지 계획에 반대하는 차원의 서명운동을 벌이고 결과를 전달하면서 항의성 기자회견을 여는 등 전문연 제도 존치를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2019년 7월 국방부가 전문연 선발 규모를 절반으로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보도가 나오며 국면이 전환되자 이에 맞춰 새롭게 ‘전문연 감축 대응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입장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신민섭 사진기자

  결국 총리실 중재로 이견이 봉합되고, 2019년 11월 병역 대체복무제도 개선안이 발표되면서 존폐 논란은 일단락됐다. 석사 전문연이 300명 정도 감축되는 수준에서 제도 개편이 확정됐다. 제도를 둘러싼 불확실한 상황이 4년 가까이 지속된 셈이다. 불확실성을 최대한 제거해야 한다는 주장은 논란이 불거진 초반부터 존재했다. 자연과학대학 이준호 학장은 “폐지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불확실한 상황이 더 문제였다”면서 “(전문연) 숫자를 조금 줄여도 좋으니 방침을 명확히 달라고 요구했다”라며 불확실성의 제거가 중요했다고 밝혔다.

  제도의 존속 여부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피해는 고스란히 이공계 학생들에게 전가됐다. 전문연 지원을 고민하던 학생 중 일부는 급하게 군입대를 택했고, 이미 군대에 가기 늦었다고 생각한 학생들은 대책 없이 불안감에 떨 수밖에 없었다. 공과대학 최대영 학생회장(원자핵공학 17)은 “(자신도) 전문연을 생각하다가 존폐 논란 이후 포기하게 됐다”며 “(병역문제는) 개개인의 일생 계획에 있어서 큰 부분인데 논의가 불확실하다 보니 많은 학생들의 진로계획에 큰 지장이 생겼다”고 말했다. 공과대학 홍진우 전 학생회장(화학생물공학부 석사과정) 역시 “16년 (전문연) 폐지 기사가 나오면서 많은 학생들이 황급히 진로를 변경했다”며 “16학번 이후로 전문연 지망생이 상당히 줄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대학원 전기 경쟁률은 2016년 존폐 논란이 시작된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2016년 1.36:1이었던 경쟁률은 2017년 1.33:1으로 떨어졌고 2018년부터는 정원이 미달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2018년 0.96:1에서 2019년엔 0.81:1로 저점을 갱신할 정도였다. 전문연 논란이 갈무리된 2020년에서야 경쟁률은 1.01:1로 소폭 상승했다. 이준호 학장은 “전문연 존폐의 불확실성이 해소돼 경쟁률이 회복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꿀빠는’ 전문연?

   존폐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전문연 제도를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선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공계 학생만을 위한 지나친 특혜가 아니냐는 것이다. 이공계 학생들 역시 전문연을 특혜로 볼 여지가 있다고 말한다. 카이스트 한승윤(전기 및 전자공학부 18) 씨는 “어느 정도 (전문연이) 특혜가 맞다고 생각한다”며 “전문연들이 사명감이나 (국가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방부 역시 전문연 제도 개편안을 내놓으며 병역 의무 형평성 논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웠다. 이를 반영해 석사 전문연의 경우 18개월 이상 중소·중견 기업에서 복무한 후 대기업 전직이 가능하도록 한 기존 제도를 없앴다. 박사 전연 역시 박사학위 취득을 의무화한 뒤 학위 취득 이후 1년 동안 기업이나 연구소에서 복무하도록 규정을 바꿨다.

  실제로 전문연 제도를 둘러싸고 여러 잡음들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1월에는 <뉴스타파>를 통해 카이스트 전문연구요원들의 가짜출근이나 대리출근 사례가 드러났다. 출근체크를 한 뒤 기숙사로 들어가거나 심지어 다른 학생의 QR코드를 받아 대리로 출근 체크를 해주는 행태가 지적됐다. 보도 이후 병무청과 카이스트 측에서 전문연 출근 실태를 점검하고 위반 사례를 적발하며 사건이 정리되는 듯했으나 이후 제보자에 대한 집단 괴롭힘으로까지 번지기도 했다.

  논란을 부추기는 전문연 제도 악용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8월 <KBS>에 따르면, 전문연으로 복무 중인 A씨는 자신이 공동으로 설립한 회사에 병역 특례요원으로 선발됐다. A씨는 전문연 선발 직전 회사 이사직에서 사퇴했다. 현 대표이사 B씨는 ‘회사 창립 멤버들에게 병역특례를 약속했다’고 밝힌 바 있다. 현행법에 따르면 특례요원과 회사 대표가 4촌 이내의 관계에 있지만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당장은 법적으로 혈족을 제외한 회사 관계자들의 ‘꼼수’를 막을 수 없다는 뜻이다.

존폐 논란에 가려진 문제들

  선정적인 존폐 논란과 일탈, 악용 사례 속에서 정작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다. 홍진우 전 학생회장은 “대응 당시 여성이나 병역을 마친 남성도 많이 참여했다”면서 “언론 보도를 통해 미필 학생들이 군대 가기 싫어서 떼를 쓰고 있다는 식으로 프레임이 씌워졌다”고 비판했다. 현재 전문연을 지망하고 있는 오용재(물리천문학부 석박사통합과정) 씨 역시 “당시 전문연에 대한 누군가의 발언이 나오면 그렇게 확정된 것처럼 기사가 나왔다”면서 “아무 것도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보도만 쏟아지면서 진로에 대해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하는 상태가 4년 가까이 지속됐다”고 말했다.

  전문연 선발 기준 문제도 뒷전으로 밀렸다. 현재 전문연 선발 기준은 한국사 능력검정시험, 대학원 평점, 영어 성적인데 실질적으로는 영어 성적의 지표인 TEPS(텝스) 점수가 당락을 좌우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천문학과에서 박사 전문연으로 복무한 김용정 씨는 “(전문연 합격에 필요한) 텝스 점수가 막 올라가던 시기에 영어 공부 하느라 고생했다”면서 “텝스 성적 때문에 전문연에 떨어져 박사 수료를 한 학기 미루기도 했다”고 밝혔다.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대학원생 C씨는 “텝스 점수는 일정 수준만 넘으면 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면서 “연구 실적과 관련된 부분을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연 선발 시험 시기도 문제로 지적된다. 현행 제도에선 박사 과정에 들어서야 시험을 칠 수 있다. 이미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박사 과정생들은 전문연이 아니면 연구 경력을 유지하면서 군 복무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전문연에 선발되지 못하면 대학원 과목을 재수강하거나 박사 수료를 미루는 경우가 생긴다. 홍진우 전 학생회장은 “대학원 입학 후 (석사학위과정 수업연한인) 2년이 지난 시점에 전문연 시험에 응시하는데, 시험에 붙지 못해 대학원 수료를 늦추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박사 수료를 미루려면 등록금을 추가로 내야 하는데 이는 고스란히 개인의 부담으로 남는다. 한림원 김성진 부원장은 “지나치게 선발 시기가 늦어 진로의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라며 “일반 대학원에서도 4대 과학기술원(과기원)처럼 대학원에서 자체 선발하고 선발 시기도 학부나 석사과정 때로 앞당겨야 한다”고 밝혔다.

  현행 제도에서는 4대 과기원 학생들이 전문연 진입에 보다 유리한 상황이다. 현재 1,000명의 박사전문연구요원 배정인원 중 400명은 카이스트를 비롯한 4대 과기원에 배정된다. 과기원의 경우 별도의 선발시험 없이 대학원 내에서 자체적으로 전문연을 선발한다. 때문에 일반 대학원에서 전문연에 선발되는 것보다 훨씬 쉽다. 카이스트에 재학 중인 한승윤 씨는 “카이스트 전자과의 경우 학점이 일정 수준 이상이면 전문연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대학교 대학원총학생회 박인국 전문위원(생명과학부 석박사통합과정)은 “과거 카이스트를 비롯한 과기원엔 대학원만 존재했고 과학기반 육성을 위해 대학원생 유치가 필요했다”면서 “과기원들에 학부가 신설되고 연구역량이 성장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형평성 차원에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기원 배정인원을 제외한 나머지 600명의 정원이 일반 대학원 사이에서 배분되는 과정에도 비판이 존재한다. 현재는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논리에 따라 수도권 대학에서 70%, 비수도권 대학에서 30%를 선발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수도권과 비수도권 사이 합격 평균 템스 점수의 격차가 100점 이상 벌어지는 등의 상황이 발생했다. 수도권 대학에 다닌다는 이유로 높은 커트라인을 마주한 일부 학생들은 불만을 토로했다. 현재 전문연 지원을 준비 중인 김진현(원자핵공학 석박사통합과정) 씨는 “비수도권 정원이 포항공대에 치중된 상황에서 굳이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나눠서 선발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취지가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음을 꼬집었다.

전문연 개편안의 허와 실

  이번 제도 개편안을 통해 전문연 제도의 문제점들이 일부 개선될 예정이다. 일단 박사전문연의 근로시간 관리 방식이 바뀐다. 기존에는 정해진 시간 출퇴근하고 매일 8시간씩 근무해야 했지만, 심야연구, 장기간 프로젝트 참여 등 연구 현실을 고려해 주 40시간을 근무하면 되는 방식으로 바뀐다. 학생들은 대체로 개편안을 환영했다. 박인국 전문위원은 “실험 동물의 행동주기에 따라 야간에 실험을 할 때가 종종 있는데 주 40시간으로 통합해서 관리한다면 삶의 질이 개선될 것”이라고 밝혔다. 기존 지급되지 않았던 4주간의 기초군사훈련 기간의 보수 역시 지급되는 방향으로 바뀐다.

  그러나 석사 전문연 300명 감축에 대해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대학 부설 연구소에 배정되던 전문연 정원이 모두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준호 학장은 “연구소에 배정된 전문연 인원이 크진 않았지만, 해외 박사후 연구원을 유치하는 등의 성과가 있던 것은 분명하다”면서 “이런 경로를 아예 막아두면 연구 인력을 유치하는 것도 힘들고 연구자들이 커리어를 유지하는 길도 사라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학장은 “우수한 연구인력을 확보한다는 전문연 제도의 취지를 살려야 한다”고 말을 마쳤다.

  박사 전문연이 박사학위 취득 후 기업이나 연구소에서 복무하도록 한 것에 대해서도 반발이 있다.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대학원생 H씨는 “국내 박사후 연구원이 충분한지도 모르겠고 한국에서 박사 학위를 따고 그대로 국내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하는 것은 오히려 커리어에 해가 될 뿐”이라며 개편안 내용을 비판했다. 2년 안에 박사학위를 취득하도록 의무화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김진현 씨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원자핵공학과의 경우 박사취득에 오랜 기간이 걸린다”면서 “박사학위 취득 의무화는 실제 대학원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 제도”라고 비판했다.

  한계가 명확히 지적되고 있음에도 확정된 개편안에 따라 박사 전문연 제도는 2023년부터 바뀌고, 석사 전문연 정원은 2022년부터 5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축소된다. 문제는 기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개편안이 또 다른 문제를 낳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는 점이다. 개편안에 대한 추가적인 고민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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