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이야기는 소설이 아니다

비슷한 듯 다른 여성 1인 가구의 삶

  2015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관악구의 전체 가구 대비 1인 가구 비율은 43.87%로 서울 자치구 중 가장 높다. 그 중 51.2%가 여성 가구주임을 고려하면 관악구의 주거 형태 중 여성 1인 주거의 비중이 상당함을 알 수 있다. ‘혼자 사는 여성’이 증가하고 그들의 삶이 각종 매체를 통해 드러나면서 여성 1인 가구의 주거안전과 권리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그렇다면 여성 1인 가구 당사자는 어떤 일상을 살고 있을까. 지난 2월 12일 좌담회를 통해 관악구에서 4명의 1인 가구 여성을 만났다.

Q1. 여성 1인 가구로서 안전에 대해 고민하게 된 계기가 있나?

D : 지금 거주지 주변에서 발생한 여성 1인 가구 대상 범죄가 한동안 뉴스에서 많이 보도됐다. 위험하다는 인식 때문인지 부모님이 자취를 허락해주지 않다가 최근에야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집을 골랐는데, 남자 형제가 집을 구할 때보다 확실히 까다로웠다. 1층보다는 고층을 선호하게 되고, 건물 현관문 비밀번호가 있는지, 창문을 열었을 때 건너편에서 보이지 않는지 등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안전도를 따졌다.

A : 이미 여성이라는 사실 자체로 안전에 취약한데 가족처럼 보호를 해줄 사람도 없으니 혼자 사는 여성은 범죄의 ‘타겟’이 될 가능성이 크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민하게 됐다.

C : 여성이 약하다는 인식이 있는 상태에서 쉽게 여성을 보호해야 하는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방식도 문제다. 혼자 사는 남성에게는 ‘좋겠다’는 말이 이어지지만, 혼자 사는 여성에는 ‘잘 들어가’라고 말하는 사회적인 맥락과도 연결된다. 그래서 여성들도 혼자 산다는 결정을 하면 집이라도 안전해야 한다는 고민으로 연결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Q2. 스스로 여성 1인 가구라고 실감한 순간이 있나?

A : 한번은 누군가 길을 가는데 따라오는 기분이 들어 뛰었더니 뒷사람이 같이 뛰었다. 일부러 주차장으로 돌아서 집으로 갔는데 끝까지 따라오더라. 다행히 건물 밑에 덩치 큰 남성 애인이 지키고 있었고 따라오던 사람은 ‘아 여기 내가 왜 왔지’라며 돌아갔다. 운이 좋아서 보호해줄 사람이 있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아니니까 집에 혼자 있을 때나 집에 들어갈 때는 무서운 생각이 곧잘 든다. 그 이후 스스로 과도하게 사람들을 경계하고 조심하게 되는 경향이 생긴 것 같은데, 그럴 때 여성으로 혼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B : 이상한 상상을 하는 경우가 많다. ‘내 집을 뚫으려고 한다면 어떻게 뚫을까’에 대한 방식을 떠올리면서, 결국에는 어떻게 방비를 해도 안 된다고 포기하는 상상을 자주 한다.

C : 혼자 오래 살아서 괜찮다 싶다가도 또 택배 배달은 여전히 무섭고, 누가 놀러오더라도 먼저 연락을 하고서야 집에 들인다. 초인종이 울렸을 때, ‘누구세요?’라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평소에는 신경 쓰지 않다가도 ‘어디 사세요? 자취하시나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내가 혼자 산다는 것을 상기한다. 혼자 사는지 물으며 다른 의미를 담고 접근하는 경우가 있어서 택시의 행선지를 집이 아닌 곳으로 두는 등 신경 쓰는 것이 늘었다.

Q3. 위험하다고 느낄 때 경찰 등 외부의 도움을 구하나?

D : 아주 위험하면 경찰을 부르겠지만 위험할 뻔한 경우는 혼자 무서워하면서 적당히 넘기게 된다. 부모님께 말하면 집에 들어오라며 걱정하실 거고, 경찰이 성폭행 미수 사건을 미온적으로 처리하는 경우들을 뉴스에서 접했기 때문에 위험한 상황에서 경찰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신뢰도 떨어졌다.

B : 경찰에게 믿음이 없다기보다는 누가 와도 사후적인 조치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애인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도 보호를 기대하지 않게 된다. 누가 온다고 해도 죽거나 다친 뒤일 수밖에 없고, 결국 위험이 오면 받아들여야만 하는 상황이라서 흡사 운으로 살아가는 듯하다.

Q4. 여성 1인 가구가 사회에서 소비되는 이미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C : 영화 ‘도어락’을 보고 기분이 나빴다. 우리의 불안감과 누군가의 생사가 달린 문제를 영화 소재로 써서 흥행하고 싶은 게 불쾌하면서도 이걸 보고 누군가는 영화 속 범죄를 따라 할 것이 염려됐다. 또, 여성 1인 가구 통계의 국가적 활용도 그 방향성이 허공에 맴돌고 있다. 어떤 지역에 여성 1인 가구가 많을 때, ’안심귀갓길 서비스 같은 여성 보호 정책을 시행해야 해야 한다’가 아니라 ‘아예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하고 가해자는 중하게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놔야 하는데, 거기까지 접근을 못한다. 단순히 수치만 보여주니까 ‘혼자 사는 여자가 이렇게 많고 위험에 처해있다’는 단편적인 결론에서 끝나버린다.

D : 언론 보도는 여성 주거 문제에 대해 경각심을 불러일으켜야 하는데 해결책 없이 소비만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사실적 보도는 중요해도 너무 과장된 보도는 걱정이나 불안감만 증폭시킨다. 또, 신림동 주거침입 사건을 모티브 삼아 삐에로 가면을 쓴 사람의 모방 행동을 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냥 어이가 없었다. 누군가에게 무서운 일이 유머로 소비되는구나 싶어서. 한번은 도어락을 라이터로 지지면 열린다는 게 언론에서 보도됐는데 실제로 해보는 사람들이 많아질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사실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왜 이 내용을 보여주는지도 중요하다. 정책을 마련하자는 움직임과 공론화의 시작 대신 단순한 자극 요소로 사용되는 경우가 대다수인 것 같아 오히려 모방 범죄만 양산하는 꼴이 되고 있다.

B : 드라마나 영화에서 여성이 정장 치마나 하이힐을 신고 걸어가면 카메라는 그걸 따라가는 남성의 시선으로 많이 보여주는 경향이 있다. 남성이 여성을 구해준다는 전형적인 시나리오도 문제다.


Q5. 1
인 여성 가구 안전에 관한 정책을 들어보거나 이용한 적이 있나?

D : 관악구 ‘여성안심귀갓길’에 살고 있는데 경찰이 순찰을 하는 경우는 많이 보지 못했다. 현재 관악구에서 혼자 사는 여성을 대상으로 혜택을 준다고 알고 있는데 직접 동 주민센터까지 가서 신청해야 해서 포기했다. 신청의 접근성도 높아졌으면 좋겠고, 근처에 대학생이 많이 산다면 대학교에 연결해서 메일을 보내주는 등의 적극적 홍보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전입신고를 할 때 바로 안전 제품을 준다거나, 순찰을 따로 신청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거나, 관련 정보가 다 한눈에 볼 수 있는 사이트가 있으면 좋겠다.

C : 정책에 대해 알고는 있어도 쉽게 신청하기 어렵다. 실제로 주민센터나 구청에서 직접 거주지를 심사하는데 방문 전에 이 주택이 저가 주택인지, 얼마나 취약한지를 판단한다. 취약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혜택을 주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실효성이 있는 정책인지 의문이 든다. 직장인은 소득이 있으니까 개인적으로 해결하라는 식으로 말하면 할 말은 더 없다.

Q6. 여성 대상 범죄 및 주거 침입 관련 법과 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C : 카톡부터 시작해서 물리적인 범죄로 발전하는 과정 자체를 예방할 수 있도록 처벌의 범위가 바뀌어야 한다. 누군가가 직접 침입하지 않아도 당사자를 위험에 빠뜨렸다면 이에 대해선 훈방조치와 같은 안일한 대처는 개선될 필요가 있다. 혼자 사는 여성이라는 사실을 알면 ‘너 혼자 살아?!’하는 느낌으로 여기고 접근하는 것 자체도 불편하고 위협이 된다.

D : 신림동 주거침입 사건도 대중은 강간미수라고 생각했지만, 법은 그렇게 보지 않았다. 법이 시대적 상황을 못 따라오고 있다고 이야기할 공간이 필요하다. 법이 그래서 어쩔 수 없다는 자세는 안 된다. 또, 이 문제를 공론화하려 할 때 ‘나는 그런 나쁜 생각이나 행동을 하지 않는데 왜 그런 이야기를 꺼내냐’고 역으로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면 모두가 목소리를 내야 한다.

B : 위험성을 느끼지 않을 뿐만 아니라 거꾸로 남의 위험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있다. 법에 구멍이 있다면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교육이라도 해야 한다. 그래야 도어락을 재미로 눌러보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또 주거침입 발생 시 정당방위의 인정 범위 역시 넓어질 필요가 있다. 특히 면식범의 경우에는 집에 들여놓은 사람이기에 그 뒤엔 방비가 어렵다. ‘네가 가해자를 들여놓은 것 자체가 문제’라며 개인의 책임이라고 말하는 경우도 문제다.

Q7. 안전에 관한 요구를 하다가 부딪히는 문제들이 있나?

B : 대중은 안전 전문가가 아니고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전문가는 소수라서 정부에 대한 우리의 요구가 터무니없는지 아닌지를 검증하기가 어렵다. 안전 문제의 당사자는 우리지만 해결의 당사자는 우리가 아닌 현실이 우리를 피해자로 계속 남게 하는 것 같아 화가 난다. 또 집에 투자할 돈이 없어서 싼 집을 구했는데 다시 안전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은 아이러니 그 자체다.

A : ‘여성’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모든 복지 정책에 대해 ‘왜 여성만을 특별히 보호해주냐’, ‘왜 세금을 저기에 저렇게 써야하냐’ 등 호의적이지 않은 여론이 많다. 정책 결정자 입장에선 가시적인 효과를 보기도 어렵고, 부정적 여론이 형성된 정책을 추진할 이유가 별로 없을 것이다. 여성 관련 의제가 미디어에 보도되더라도 실질적 조치가 없고 보여주기식 정책이 난무하는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D : 여성 안전이 정치권에서 중요한 의제로 여겨지지 않는다. 생각하는 사람들은 있지만 구심점이 없어서 목소리들이 분산되는 상황이다.

B : 또 여성 대상 범죄가 너무 일상화돼 마치 예방책이 없는 당연한 일처럼 다뤄지는 경향이 있다.

C : 원래 범죄는 예외적인 일이어야 하는데, 너무 빈번해서 ‘아, 또?’와 같은 반응이 나온다. 누구도 혼자 산다는 이유로 위험해져서는 안된다. 그런데 혼자 사는 여성들은 1인 가구로서의 위험성에 대해 일상적으로 고민하고, 스스로 안전을 지킨다. 사실 안전이 여성 개인의 몫이 된다는 것은 곧 국가가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국민을 지키는 차원에서 여성인 국민이 취약할 수 있음을 유의하고 접근해야 한다. 국회에서는 입법이 제대로 안 되고, 사법부도 제대로 된 해석을 안 하고, 행정부는 손을 놓고 있는 상태다.

D : 겪지 않은 사람에게 이건 소설이고 영화다. (여성의 주거 불안에 대한 증언이) ‘섀도복싱’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가해자도 없고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소설로 쓰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인식이다.

B : 자신의 위험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종종 한다. 몇 년 전, 남성 친구가 자기 뒤에서 쫓아오는 사람을 느끼고 나서야 여성들이 쫓길 때 얼마나 무서운지 이해했다고 말하는 걸 들었는데, 그걸 왜 그제야 알게 됐나 생각했었다.


Q8. 
안전에 관한 담론이 나아갔으면 는 방향혹은 종합적 평가는?

B : 많은 건물의 현관이 개방돼 있는데, 건축할 때부터 건물의 안전기준을 일정 이상 의무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성 1인 가구 네트워크도 있다면 좋을 텐데, 저 멀리 있는 부모님이나 남성 애인보다 근처에 사는 이웃 친구가 훨씬 심적으로 안정을 주고 연락을 자주 하게 된다.

A : 젊은 여성 정치인이 더 있으면 좋겠다. 나이 많은 여성들은 국회의원이 되면 젊은 여성의 안전에 대해서 체감을 한 지 너무 오래됐거나 현재는 대부분 가정을 이루고 살 테니까 잘 모르는 측면이 있다.

D : 피해자에게 집중된 교육을 할 것이 아니라 모두가 이런 일을 저지르면 안 된다고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는 분이 술에 취한 여성을 어떤 남성이 따라가는 것을 보고 도와줬다고 영웅담처럼 말을 했다. 물론 잘한 일이지만 여성을 구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심신미약인 상태의 사람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르려던 그 사태의 심각성이 훨씬 중요하다. (여성 대상 범죄에 있어) 사람들이 초점을 이상하게 맞추는 경우가 있다. 도와야 하는 상황에 대해 논의를 해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Q9. 1인 주거를 고려하는 친구들에게 할 수 있는 조언이 있다면?

D : 창문을 열었을 때 내부가 보일지 모르는 각도처럼 주의해야 할 사항을 매뉴얼로 만들어서 전해줄 것 같다. 혼자 사는 것이 좋기는 하지만 조심할 부분들이 꽤 있다.

A : 근처에 친구나 지인 같은 믿을 만한 사람이 있는 곳으로 위치를 결정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심리적으로 안정감이 중요하다.

B : 누구도 믿지 말라는 말을 할 것 같다. 애인이든 누구든 언제 관계가 틀어질지 모르니 남을 집에 들이지 말아야 하고, 집 계약 전에는 주인에게 방범창이나 CCTV 등을 요구해야 한다.

C : 웬만하면 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하게 된다면 착해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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