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관악구 여성 주거 안전 정책의 덫
▲서울대 주변 주요 지역의 여성안심지킴이집·여성안심귀갓길 현황

  <서울대저널>이 주최한 여성 1인 가구 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은 1인 주거 여성들의 일상적인 불안과 분노를 공유했다. 2017년 울산대 강지현 교수(경찰학과)는 여성 청년 1인 가구의 전체 범죄 피해 가능성이 남성 청년 1인 가구에 비해 2.276배 높고 주거침입피해 가능성은 무려 11.226배 높다고 발표했다. 이는 좌담회 참석자들의 증언이 개인의 특수한 경험에 그치지 않음을 드러낸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도 1인 주거 여성이 겪는 주거 불안을 인식하고 다양한 정책을 쏟아내는 상황에서,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많이 거주하는 관악구의 여성 주거 안전 정책을 점검했다. 나아가 정책이라는 수단이 주거 안전을 보장하기 충분한지 검토했다.

산더미 같은 정책, 산으로 가는 정책

  관악구 여성가족과에 따르면 현재 관악구는 ▲여성안심홈 4종 세트 지원 ▲여성안심귀갓길 정비 ▲여성안심원룸 인증 제도 등을 시행하고 있다. 서울시에서 지원하는 ▲여성안심귀가 스카우트 ▲여성안심택배함 ▲여성안심지킴이집 등의 정책도 시행 중이다. 관악경찰서가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관악구에 위치한 21곳의 여성안심귀갓길에는 81대의 CCTV와 43개의 비상벨이 있다. 도로 하나당 4대의 CCTV와 2개의 비상벨이 설치된 꼴이다. 원룸이 많은 대학동과 서림동에도 각각 390m와 260m 길이의 도로가 여성안심귀갓길로 지정돼있다.

▲서울대 주변 주요 지역의 여성안심지킴이집·여성안심귀갓길 현황
▲대학동의 여성안심귀갓길

  문제는 이런 정책들이 실효성이 있느냐다. 대학동의 여성안심귀갓길을 직접 확인한 결과, 3개의 비상벨이 작동 중이었지만 낮은 채도의 붉은색으로 표시돼있어 한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실제로 취재에 동행한 여성 기자가 전력으로 달렸지만 비상벨부터 다음 비상벨까지 35초가 걸렸고, 비상벨에 조명이 들어와 빛나긴 했지만 500원 동전만 한 크기의 비상벨은 달리는 동안 눈에 띄지 않았다. 심지어 서림동의 여성안심귀갓길에는 비상벨이 설치조차 되지 않았다.

▲눈에 잘 띄지 않는 비상벨 ⓒ홍서현 사진기자

  여성안심지킴이집은 24시간 운영하는 편의점의 특성을 활용해 위급한 상황에서 여성들이 편의점으로 대피할 수 있도록 만든 제도다. 관악구에는 총 41개소의 편의점이 여성안심지킴이집으로 지정됐지만 이를 충분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원룸촌이면서 좁은 골목이 많은 서림동의 경우, 20개의 편의점 중 단 한 군데도 여성안심지킴이집이 아니었다. 같은 원룸촌인 대학동은 여성안심지킴이집으로 지정된 편의점 네 곳 사이의 평균 거리가 250m에 달했다. 서울대입구역에서 반경 500m 이내에 있는 여성안심지킴이집은 간격이 촘촘하기는 하나 7곳 중 5곳이 청룡동에 편중됐다.

▲관악구의 한 여성안심지킴이집 ⓒ홍서현 사진기자

  분포나 개수보다 문제인 점은 여성안심지킴이집인 편의점의 점주들이 해당 정책이 있는지조차 모른다는 사실이다. 밤 11시경, 여성안심지킴이집으로 지정된 관악구의 한 ‘ㅅ’ 편의점에서 근무하던 점주에게 여성안심지킴이집에 대해 묻자 “관심도 없고 잘 모른다”며 대답을 피했다. 인근의 다른 ‘ㅅ’ 편의점의 점주 역시 “최근에 (점주로) 와서 (여성안심지킴이집으로 지정된 편의점인 줄) 몰랐다”고 답했다. 이런 상황을 개별 편의점의 잘못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실제로 여성안심지킴이집으로 지정된 관악구의 또 다른 ‘ㅅ’ 편의점에서 근무하던 아르바이트 노동자에게 양해를 받아 계산대 주위를 확인해본 결과, 여성안심지킴이집에 관련된 매뉴얼이나 비상벨은 존재하지 않았다. 계산대 아래의 경찰과 연결되는 신고 버튼에 대해 묻자 아르바이트 노동자는 “(여성안심지킴이집이 아닌) 다른 편의점에도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와 여성안심지킴이집 업무협약을 맺은 한국편의점산업협회는 이런 상황에 대해 “경찰도 공무원도 아닌 근무자가 여성을 안전하게 귀가시킬 의무는 없다”며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매뉴얼이 (개별 편의점에) 따로 주어지진 않고 도움을 청한 여성을 경찰에 연계할 뿐”이라고 답했다. 후속 관리에 대해서도 “서울시 차원의 점검은 없고 경찰이 순찰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그렇지도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관악경찰서 생활안전과 김진국 과장은 “여성안심지킴이집으로 지정됐는지와 무관하게 범죄에 취약한 곳에 위치하거나 여성이 혼자 근무하는 편의점 위주로 순찰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성안심지킴이집으로 지정된 편의점에 대한 조치는 사실상 현판을 지급하는 데에 그치는 셈이다.

▲대학동의 다른 비상벨. 관리 상태가 좋은 이 비상벨은 관악구가 자체적으로 시행하는 ‘안심골목길’ 사업으로 설치됐다.

  지난 5월의 신림동 사건 직후 입안된 정책 중 하나는 디지털 비디오창·현관문 보조키·문열림 센서·휴대용 긴급비상벨로 구성된 여성안심홈 4종 세트 지원이다. 관악구 여성가족과는 지난해 여성 1인 가구 총 335가구를 대상으로 여성안심홈 4종 세트를 지원했고, 올해 3월부터 100가구를 추가로 선정해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018년 통계청 인구총조사 자료에 따르면 관악구의 여성 1인 가구는 전국의 기초자치단체 중 가장 많은 53,288가구다. 이 사실을 감안하면 올해 계획된 지원이 모두 이뤄지더라도 관악구의 1인 주거 여성 중 불과 0.8%가량만 정책의 대상이 되는 상황이다.

  지난해 시작된 여성안심원룸 인증 사업 역시 갈 길이 멀다. 건물주나 거주민이 인증을 요청하면 ▲관리실이 존재하는지 ▲CCTV가 설치돼있는지 ▲공동현관에서 출입 통제가 가능한지 등의 문항으로 구성된 체크리스트로 점수를 매기고, 기준을 충족하면 관악구청이 해당 건물에 여성안심원룸 인증패를 수여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여성안심원룸으로 인증된 곳은 한 군데에 그친다. 관악구에서 공개한 여성안심원룸 인증 기준은 총점의 80%고 건물주의 개선 의지에 따라 70% 이상도 포함하는데, 유일하게 인증된 원룸은 기준인 80% 밑인 72.9%를 받아 여성안심원룸으로 인증된 상황이다.

  여성안심원룸에 대한 사후관리가 없는 건 아니다. 인증은 2년간만 유효하고 재인증을 받기 위해선 다시 현장진단을 받아야 한다. 또한 인증된 원룸에 관악구는 여성안심홈 4종 세트를 지원하고 경찰은 주변 순찰을 강화한다. 그러나 이런 조치가 민간의 자발적인 시설 개선을 얼마나 유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성평등정책연구팀 강희영 팀장은 “부족한 부분을 지원해주는 게 정책의 역할”이라며 적극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준에 미달하는 건물에 먼저 시설 개선을 지원할 계획은 없는지 관악구 여성가족과를 상대로 문의했으나 “원룸 시설 개선 사업도 하려고 했지만 올해는 빠졌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비교적 안정적으로 운영 중인 여성안심귀가 스카우트도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월요일 오후 10시부터 12시,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1시까지 운영되기 때문에 주말에 귀가하는 경우엔 서비스를 신청할 수 없다. 현재의 인원으로는 귀가 지원이 포화상태기도 하다. 23명으로 구성된 관악구의 11개 스카우트 팀은 지난 한 해 총 15,730건의 귀가 지원과 8,137건의 순찰을 수행했다. 한 팀이 약 30분마다 한 건의 귀가 지원을 하는 셈이다. 안심귀가 스카우트를 호출할 때 최소 30분이 걸리기 때문에 인원이 보충되지 않으면 지금으로선 이용 건수가 15,730건보다 늘어나는 것이 어렵다.

▲여성안심귀갓길 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로고젝터가 설치돼있다.

  관악구 여성 주거 안전 정책들의 인지도와 이용률은 전반적으로 저조하다. 관악구청이 시행한 여성안심홈 4종 세트를 지원받은 1인 주거 여성 131명 대상 설문조사 결과, 여성안심지킴이집, 여성안심택배함, 여성안심귀가 스카우트의 인지도는 각각 16%, 51%, 60%였고 이용률은 그보다 낮은 4%, 8%, 11%였다. 여성안심홈 4종 세트 사업에 참여한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다른 정책에 관해서도 알고 있을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실제 인지도와 이용률은 더욱 낮을 것이다.

헌 집 줄게, 89만 원 다오?

  전문가들은 현재의 부분적인 안전 정책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익명을 요구한 여성 정책 전문가 C씨는 “경제적 취약성을 보조하는 주거 정책으로 접근하는 게 맞지 집에 데려다주는 것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고 일축했다. 강희영 팀장 또한 “1인 주거 청년 여성의 주거 불안은 단순히 안전의 문제라기보다는 (청년 시기의 낮은) 소득과 연관된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다가구주택보다는) 아파트와 같이 안전시설이 갖춰진 주거를 마련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같은 비용도 소득이 적으면 상대적으로 큰 부담이 된다. 2018년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여성의 중위소득은 180만 원, 남성은 269만 원으로 한국 사회에는 아직도 89만 원에 이르는 성별 임금 격차가 존재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8년 자료에 의하면 이는 OECD 회원국 중 압도적인 1위다. 청년 여성 역시 성별 임금 격차를 피해갈 수 없다. 캔자스대 김창환 교수(사회학과)가 2019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대졸 직후 여성의 소득은 남성에 비해 19.8% 적었다. 강희영 팀장은 “여성이 안전한 주거를 확보할 금전적 여력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논의는 여성안심홈 4종 세트에 그치고 있다”며 여성 주거 환경 개선을 위한 시급한 과제로 성별 임금 격차 해소를 제시했다.

  소득에서의 성차별이 1인 주거 여성의 상대적인 주거비 부담을 늘린다면, 한국 사회에 만연한 여성 대상 폭력은 절대적인 주거비를 상승시킨다. 강희영 팀장은 “성폭력 범죄가 줄어든다면 (1인 주거 여성의) 불안도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통계청이 2018년 발표한 사회조사 결과에서 범죄 발생에 불안하다고 응답한 여성의 비율은 무려 73.3%다. 범죄에 대해 불안을 느끼는 여성의 상당수는 홈 시큐리티 서비스 등 자력구제의 수단을 찾아 나선다. 이런 현상을 두고 C씨는 “경비업체에 드는 비용이 적지 않다”며 경제적 성차별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문제를 인식한 정부는 개인이 지출하는 안전비용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을 내놨다. 경찰청이 경비업체인 KT텔레캅과 협력해 지난해까지 3,000명의 신청자를 모집한 ‘여성가구 홈 안심서비스’다. 출입문 감지기·비상버튼 등을 설치해주고 위급한 상황에 경비업체가 출동하는 월 3만 원대의 서비스가 경찰청과의 협약으로 월 9,900원으로 할인해 제공됐다. 그러나 보조금 전액을 지원하지 않는 한, 비슷한 정책이 계속돼도 국가와 사회가 안전을 유지할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긴다는 혐의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렵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지출되는 비용을 뜻하는 ‘핑크 택스’는 홈 시큐리티 서비스의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관악구에서 ‘ㅅ’ 부동산 중개업소를 운영하는 A씨는 “남성 손님은 (여성 손님에 비해) 방을 구할 때 치안을 덜 따지는 편”이라고 말했다. 치안과 월세가 관련이 있는지 인근 ‘ㅂ’ 부동산 중개업소를 운영하는 B씨에게 문의하자 “치안이 좋은 곳은 월세가 2~3만 원 비싸다”고 밝혔다. 가족구성권연구소 이유나 연구원은 이 역시 “비용을 추가로 부담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성에 대한 경제적 불평등의 일종”이라며 “그것(2~3만 원 비싼 월세)조차 부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답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이효린 대표는 “높은 월세를 부담할 수 없으면 낮은 치안을 감당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며 선택지 자체가 주어지지 않는 상황을 비판했다.

타인이 지옥이 되지 않도록

  비상벨 설치 등 단편적인 정책만으로는 1인 주거 여성이 안전해질 수 없다는 비판이 줄곧 제기됐다. 그럼에도 새로 도입되는 정책들이 크게 다르지 않은 이유는 여성 1인 가구가 여전히 일시적인 주거 형태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강희영 팀장은 “국가는 (여성 1인 가구가) 쾌적한 주거를 갖는 것을 여성들이 결혼하지 않게 하는 요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수 있다”며 국가가 여성을 대하는 관점에 의문을 던졌다. 이유나 연구원은 “결혼하면 쾌적한 주거로 알아서 갈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며 정책 이면의 이성애 중심주의를 꼬집었다.

  가장 큰 문제는 현재 정책이 여성을 위험하다고 여겨지는 상황으로부터 분리하고 보호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강희영 팀장은 “보호 위주의 정책으로 가서는 안 된다”며 불안의 원인을 제거하려 노력할 것을 주문했다. 여성안심귀가 스카우트를 분리·보호 정책의 대표적인 예시로 든 강 팀장은 “직접 정책을 이용하는 사람으로선 없는 것보단 낫다”면서도 “밤길이 불안한 근원은 들여다보지 않은 채 스카우트 대원에게 보호받으라고 하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이효린 대표도 “여성안심홈 4종 세트를 받더라도 여성들은 자신의 일상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될 뿐”이라며 분리주의적인 현재의 안전 정책에 우려를 표했다.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여성을 보호하는 데에 방점을 둔 제도로는 여성 1인 가구의 현실적인 불안을 경감시키기 어렵다. 실제로 한국여성의전화가 2018년 발표한 통계에 의하면 전체 성폭력 피해 중 85%가 피해자와 아는 사람에 의해 발생했다. 이유나 연구원은 “낯선 사람에 의해 여성 대상 범죄가 일어난다는 국가의 시선은 (나머지 85%를 고려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 연구원은 이어 “누구도 낯선 사람과의 만남 없이 살 수는 없다”며 완전한 분리나 보호라는 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여성에게 완벽히 안전한 장소를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여성의 일상 자체가 안전해져야 하는 이유다.

  여성 주거 안전의 문제엔 경제적 불평등, 성폭력, 가족 제도 등 수많은 차원의 논의가 교차하지만, 정작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내놓는 정책은 여성의 분리와 보호라는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강희영 팀장은 문제 해결의 어려움을 토로하면서도 “법이나 문화 등 여러 차원이 모두 바뀌어야 한다”며 총체적인 접근을 요청했다. 여성 1인 가구의 안전에 대해 더욱 섬세하고 세밀한 진단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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