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강사법이 시행된 지 한 학기가 지났지만 강사들은 여전히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지난 1월 6일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한교조)’은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또다시 강사를 절망케 하지 말라’며 대학과 정부에 반성을 촉구했다. 강사들이 다시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한 강사의 죽음, 그리고 8년의 시간
‘한국의 대학 사회가 증오스럽습니다!’ 2010년 5월 25일 강사들의 부당한 처우를 폭로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조선대 故서정민 강사(영어영문학과)의 마지막 외침이다. 그는 유서를 통해 논문 대필과 채용 비리 문제를 고발했다. 그의 죽음은 한국 사회에 경종을 울렸고 이듬해 말 고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 소위 강사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교수와 똑같이 학생들을 가르치지만 강사법이 통과되기 전까지 강사는 법적으로 교원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희생이 있어야만 비로소 강사에게 선생 대접을 해주려는 잔인한 사회였다.
강사의 지위 향상을 위해 통과된 법률에 대해 대학은 물론 강사들도 불만을 제기했다. 강사를 포함한 교원의 강의시간은 매주 9시간 이상을 원칙으로 한다는 시행령 조항이 문제였다. 당시 강사들의 주당 평균 강의시간은 4.5시간 정도였기 때문에 강사법 시행 이후 대학이 소수 강사에게 강의를 몰아줘 강사 수를 줄일 것이 예상됐다. 한교조 김진균 부위원장은 “(2011년에 통과된 법은) 강사 대량해고를 유발하는 독소조항이 포함된 법률”이라고 말했다. 당초 2013년 1월 1일 시행 예정이던 강사법은 이와 같은 반대에 부딪혀 법안의 시행이 네 차례나 유예된다. 정체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2018년 대학대표 4인, 강사대표 4인, 국회 추천 전문가 4인으로 구성된 ‘대학 강사제도 개선 협의회(협의회)’가 꾸려졌다. 협의회는 격렬한 논쟁 끝에 합의안을 도출했고 그해 말 국회가 이에 기초한 개정강사법을 통과시키면서 강사법 시행의 물꼬를 텄다. 협의회 위원장을 지낸 이용우 변호사는 “(2018년에 통과된 법은) 대학 측과 강사 측이 최초로 합의한 내용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개정강사법이 시행됨에 따라 강사들은 한 학기 단위로 계약하던 ‘파리 목숨’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고 결격 사유가 없으면 3년 동안 수업을 맡을 수 있게 됐다. 문제였던 강사들의 강의시간은 매주 9시간 이상에서 6시간 이하로 바뀌었다. 박승호 강사(경제학부)는 “개정강사법은 강사들의 오랜 투쟁으로 얻은 역사적인 성과”라며 “아직 갈 길은 멀지만 강사 처우 개선을 위한 출발점이 됐다”고 밝혔다.
대학이 강사를 바라보는 시각

강사법 시행 첫 학기 서울대학교의 경우 강사 수는 203명 감소했으나 전체 수업 중 강사들이 맡은 학점 비중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강사 1인이 담당하는 학점 수가 증가했다는 뜻이다. 교무과 관계자는 “강사 1인이 담당하는 학점 수가 늘어나면서 인원이 줄어든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잡음이 발생했다. 당장 2019년 겨울 계절학기에 경영대의 전공 수업이 전혀 열리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 경영대는 ‘강사법 개정으로 인한 사정’이라고 간략히 공지했다. 경영대 행정실 측에 구체적인 사정을 묻자 “강사를 한번 뽑으면 1년 이상 써야 한다는 점과 방학 중에도 임금을 줘야 한다는 점이 재정적으로 부담됐다”고 설명했다. 경영대의 일방적인 결정에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의 몫으로 돌아갔다. 특히 정규학기 수강신청에서 후순위로 밀려 계절학기가 더욱 절실한 다전공생들의 피해가 컸다.
경영학과 강사 A씨에 따르면 경영대 사태에는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다른 사정이 있다. A씨는 “교수들 사이에 정규학기 전공 수업은 강사에게 맡기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있다”고 털어놨다. 구체적인 근거 없이 강의 수준이 떨어질 것이란 게 이유였다. 강사법 시행 후 강사들에게 최소 1년의 임용이 보장되면서 기존처럼 계절학기만 맡길 수 없고 정규학기에도 강의를 배정해야 한다. 정규학기 강사 임용이 껄끄러워 계절학기 수업을 아예 열지 않은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A씨는 “강사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거나 강의 경력을 쌓을 기회를 잃는 것이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강사법 시행이 유예되는 동안 사립대학을 중심으로 강사 수가 크게 줄었다. ‘대학교육연구소(대교연)’가 사립대학 152개교를 조사한 결과, 2011년 6만 226명이던 강사의 수는 2018년 3만 7,829명으로 7년 동안 2만 명 이상 감소했다. 전체 교원 중 강사 비율도 같은 기간 45.3%에서 29.9%로 줄었다. 반면 같은 비전임교원 중 강사를 제외한 겸임교원, 초빙교원 등의 수는 2011년 2만 4,995명에서 2018년 3만 4,338명으로 만 명 가까이 증가했다. 대교연 김효은 연구원은 “(강사법이 시행되면) 강사가 여러 권리를 갖게 되니, 대학이 강사들 중 일부를 겸임교원이나 초빙교원 등으로 돌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강사와 달리 겸임교원과 초빙교원은 강사법에서도 여전히 교원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강사법 시행 직전인 2019년 1학기에 대학은 강사 해고를 본격화했다. 교육부 발표에 따르면 2019년 1학기 강단에서 쫓겨난 강사는 총 7,834명(399개교 기준)에 이른다. 2018년 협의회 위원장을 맡을 당시 이용우 변호사는 강사법이 바로 시행될 수 있도록 빠른 후속작업을 정부에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변호사는 “대학이 꼼수를 마련할 시간을 벌어준 셈”이라고 비판했다.
강사법 시행 이전 고려대학교에서 공개된 대외비 문건은 대학의 기조를 여실히 드러낸다. 2018년 10월 고려대 교무처는 ‘강사법 시행예정 관련 논의사항’이라는 문건을 작성하고 ‘강사 채용 극소화’를 목표로 ▲과목 수 감축 ▲과목 통폐합 ▲대형강의 확대 ▲온라인 강의 활용 ▲졸업 이수 학점 축소를 계획했다. 강사법 시행으로 늘어날 지출을 대비해 교육의 질을 낮추겠다는 뜻이다. 이외에도 ▲전임교원 강의 확대(교수가 학기당 12시간 수업 시 별도의 연구업적 제출 없이 자동으로 호봉승급) ▲겸임교원, 외국인 초빙교원 활용 ▲연구교수, 명예교수 강의 배정 등의 방안이 검토됐다. 강사들의 고용 안정이라는 강사법의 취지가 무색해지는 방안들이다.
강사법 시행 이후에도 고려대의 ‘꼼수’는 계속됐다. 대표적으로 고려대 교양교육원이 ‘자유정의진리’라는 필수 공통 교양 과목에 초빙교원을 배정해 논란이 됐다. 이를 두고 김진균 부위원장은 “강사법 시행령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시행령 제7조 제3호는 초빙교원을 ‘특수한 교과’를 가르치는 사람이라 명시하고 있는데, 필수 공통 과목을 특수한 교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학들은 재정적 부담 때문에 강사 인원 감축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자금총액 최상위권에 속하는 서울의 대규모 사립대학 역시 강사를 대량 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표적인 경우가 성균관대학교다. 성균관대는 2011년 717명이던 강사의 수를 2018년 29명까지 줄여 전체 강사 중 96%를 감축했다. 2017년 기준 성균관대의 자금총액은 9,410억으로 1조에 육박하지만 강사를 포함한 비전임교원에게 들어가는 인건비는 약 95억으로 자금총액의 1%에 불과하다. 김진균 부위원장은 “학령인구 감소로 긴축재정 시행과 긴급자금 투입이 필요한 대학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대형 사립대학들은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용우 변호사 역시 “대학에게 실질적인 추가 재정 부담은 거의 없다”며 “대학이 강사법을 핑계로 이전부터 추진해오던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적자에도 불구하고 총장의 의지로 강사를 단 한 명도 해고하지 않은 상지대학교와 대비되는 흐름이다. 김진균 부위원장은 “기업화된 대학이 고등교육과 연구의 공공성을 지켜야 한다는 임무를 망각하고 있다”며 자본 논리에 따른 대학의 구조조정을 비판했다.

강사들의 절망이 반복되지 않도록
강사법을 피해가는 행태도 문제지만 강사법 자체도 완전한 것은 아니다. 이용우 변호사는 현행법에서 재임용이 보장되는 기간은 3년뿐이라 기간을 늘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물론 재임용 보장 기간이 연장되면 새로운 강사의 진입이 어려워질 수 있어 신규 강사 임용할당제 등 보완책 역시 검토돼야 한다. 대학들이 꼼수를 부릴 수 없도록 규정을 구체화하는 작업 역시 필요하다. 개정강사법 제14조의2 제4항은 강사들의 방학 중 임금에 대해 임금수준 등 구체적인 사항은 임용계약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현재 대학들은 방학 중 임금을 4달의 방학 중 4주만 지급하겠다는 입장이다. 강사법 개정으로 1년 이상 일하게 됐지만 대학은 강사들의 강의시간이 퇴직금 청구 요건인 주당 15시간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퇴직금 지급을 거부하고 있다. 이는 강의를 준비하는 시간 등을 포함해 강의시간의 3배 정도를 강사의 노동시간으로 인정한 판례의 경향과 배치된다. 그동안 강사들이 건강보험을 적용받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개선 요구가 빗발쳤다.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 개정 등의 문턱을 넘지 못하면 강사들은 직장건강보험의 혜택을 누릴 수 없다.
강사 문제를 교수 문제와 연계해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전임교원의 강의시간을 제한해 교수들에게 강의가 지나치게 집중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교수연구자협의회’ 박배균 공동의장은 “정규직 교수 정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학원생 수에 비해 교수 정원이 턱없이 모자라 강사들이 양산되는 구조가 근본적인 문제라는 분석이다. 박 의장은 교수와 강사 사이 양극화 문제를 지적하면서 교수들이 특권을 내려놓을 것을 제안했다.
강사 처우와 관련해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된 저임금 문제 역시 해결이 시급하지만 현행 강사법은 이를 전혀 다루지 않고 있다. 박승호 강사는 “강사들이 생계유지를 위해 여러 대학에 출강하거나 학원 강사 혹은 대리운전과 막노동까지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사들은 이런 상황에서 안정적으로 교육과 연구에 매진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강사들이 연구실을 제공받지 못해 ‘보따리장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 역시 남아있는 숙제다.
김진균 부위원장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재정을 투입할 것을 촉구했다. 김효은 연구원 역시 “그동안 강사들에 대한 착취와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재정을 충당해왔다”며 “고등교육의 주체인 정부가 책임을 나눠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적극적인 관리·감독 또한 요구됐다. 이용우 변호사는 강사법 시행 이후에도 남아있는 ‘꼼수’에 대한 실태조사를 통해 대학에 페널티 혹은 인센티브를 정확히 부여할 것을 정부에 요구했다.
그러나 법과 예산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순 없다. 강사들도 교원 지위가 부여된만큼 대학 자치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간 강사들은 학교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된 ‘유령’ 같은 존재였다. 학내에서의 발언권을 실어주면서 대학이 일방통행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강사 문제는 강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학생들의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강사들의 처우는 고등교육의 질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과목이 줄어들면 학문의 다양성이 파괴되고, 강의가 대형화되면 수업의 질이 떨어져 결국 학생들에게 피해가 전가된다. 강사 문제는 학문후속세대로서 학생들 자신에게 직접 닥칠 문제기도 하다. ‘전국교수노동조합’ 박정원 위원장은 “강사법의 정신을 지켜내려는 대학 구성원들의 노력이 필요하다”며 강사 문제에 대한 동참을 호소했다. 새 학기를 맞아 들뜬 학생들 앞으로 여전히 강사들은 힘겹게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