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변희수 하사와 숙명여대 합격생 A씨가 트랜스젠더 인권 논의에 불을 지폈다. 도화선에 불이 붙기까지 오랜 역사가 있었다. 1990년대만 해도 트랜스젠더를 게이로, 게이를 호모로 부를 정도로 트랜스젠더 인식이 부재했다. 2001년 연예인 하리수 씨가 트랜스젠더 인식 전환의 계기를 제공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2006년엔 대법원이 성전환자의 성별정정 관련 예규를 마련했다. 트랜스젠더 인권 향상을 보여준 굵직한 사례들이 조명되는 순간에도 트랜스젠더의 일상은 계속되고 있었다. 마침내 2020년, 변 하사와 A씨는 군대와 여대에서 본인의 삶을 개척해나갈 권리를 주장했다. 변 하사와 A씨가 사회에 던진 질문을 제대로 짚어봤다.
군대는 어떤 몸을 수용하는가
1월 22일 육군본부는 변희수 하사의 강제전역을 결정했다. 변 하사가 성전환 수술을 거치며 음경을 훼손하고 고환을 적출했다는 이유였다. ‘군인사법 시행규칙’에 따라 변 하사는 심신장애 3급(음경 훼손 5등급, 고환 적출 5등급) 판정을 받았다. 육군은 전역 결정이 ‘성별정정 신청 등 개인적인 사유와 무관하게 의무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성전환 수술 행위를 신체장애로 판단해 전역심사위원회에 회부한 것은 차별 행위 개연성이 있다’며 변 하사의 전역 심사 연기를 권고한 것에 대한 맞대응이다.
육군의 논리는 간단하다. 변희수 하사의 전역 결정은 관련 법령을 따른 불가피한 결과일 뿐 성소수자 차별이 아니라는 얘기다. 군인권센터 김형남 사무국장은 이런 육군의 태도를 비겁하다고 본다. 김 사무국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군은) 스스로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하고 성별정정 신청도 낸 변 하사를 여전히 남자로 본다. ‘어쨌든 넌 남자니까 성기가 없는 건 남자로서 장애’라는 식이다. 트랜스젠더를 트랜스젠더로 보지 않으려 한다. 국방부는 절차를 지켰다지만 이는 명백히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다.”
육군이 따랐다는 적법한 절차는 무엇을 지칭하는 걸까. 군이 명시하는 군복무 자격 조건을 살펴보면 그 절차의 정체를 알 수 있다. 군대는 두 가지 기준을 통해 군인들의 몸을 관리하고 통제한다. 하나는 입대 전 실시하는 신체검사다. 군대는 신체검사를 통해 병역 이행에 부적합한 몸을 걸러낸다. 군인은 각종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육체적으로 발달한 몸을 갖춰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때 군의 요구사항은 임무 수행 능력에 그치지 않는다. 신체등급 판정기준에는 ‘성주체성장애 및 성선호장애’ 항목이 있다. 성별 불쾌감(gender dysphoria)과 동성애 등을 장애로 규정한다는 뜻이다. 결국 군은 ‘이성’을 좋아하는 ‘진짜 남성’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트랜스/젠더/퀴어연구소’ 루인 연구원은 “(군대가 요구하는 몸은) 재생산할 수 있는 몸, 혹은 남성성을 갖춘 몸”이라고 비판했다.

변희수 하사의 강제전역은 다른 기준에 의해 결정됐다. 현역 간부의 심신장애 정도를 판정하는 심신장애 등급표다. 군복무 중의 부상 등을 고려해 만들어진 기준이다. 심신장애 기준은 신체등급 판정기준과 한 가지 중요한 차이점을 가진다. 이 표에는 ‘성주체성장애’나 ‘성선호장애’ 항목이 없다. 김형남 사무국장은 “(이 점은) 군이 군대 내에 트랜스젠더 간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을 시사한다”며 “군대에 들어올 때 (성소수자를) 걸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변 하사는 성주체성장애가 아니라 음경 훼손과 고환 적출로 강제전역됐다. 육군이 변 하사의 강제전역을 두고 성소수자 차별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근거다.
성기 상실이 전투력과 직결되느냐의 문제를 제쳐 두더라도 변희수 하사의 전역 조치는 ‘있을 법한’ 일이 아니었다. 김형남 사무국장은 “심신장애 기준에 저촉돼도 전역심사위원회에서 군복무가 가능하다고 판단하면 재량에 따라 전역시키지 않는 것이 보통”이라고 설명했다. 심신장애 기준이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라는 뜻이다. 김 사무국장은 “재량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변 하사를 쫓아낸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변희수 하사가 강제전역된 1월 23일, 트랜스젠더 간부의 군복무 가능성이 열렸다. ‘군인사법 시행규칙’ 제53조에 심신장애 정도가 1급부터 9급까지 해당하더라도 ‘병과 특성에 따른 복무 가능성, 군에서의 활용성과 필요성 등에 관한 심의를 거쳐 남은 의무복무기간 동안 현역으로 복무하게 할 수 있다’는 조항이 마련됐다. 조항 신설과 동시에 강제전역된 변 하사는 신설 조항의 기준을 적용받지 못했다. 변 하사는 전역 조치에 맞서 인사소청을 제기했다. 변 하사는 소청 결과에 따라 행정소송도 제기하겠다는 입장이다.
“여성이 여대에 합격한 게 뭐가 문제죠?”
변희수 하사로 여론이 한창 들썩이던 와중에 숙명여대로 언론의 눈길이 쏠렸다. 숙명여대 법학부에서 트랜스젠더 합격생이 나와서다. 1월 30일 A씨는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트랜스젠더도 당당히 여대에 지원하고 합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저를 보면서 여대 입학을 희망하는 다른 트랜스젠더들이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다음 날인 1월 31일 숙명여대 공익인권학술동아리 ‘가치’에서 ‘(A씨가) 수많은 트랜스젠더들의 용기가 되어 대학이 누군가를 배제하지 않는 배움의 장이 되기를 바란다’며 입장문을 냈다. 대학·청년성소수자모임연대 ‘QUV’ 등 198여 개 단체에서도 총 25여 개 성명문을 내며 A씨와 연대했다.

A씨는 태국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고 지난해 10월 성별정정을 완료했다. 법적 여성이 된 A씨가 숙명여대에 입학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루인 연구원은 “여성으로 살아가고 또 법적으로도 여성으로 인정받은 사람이 여대에 입학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당연한 일은 현실이 되지 못했다. A씨의 입학을 반대하는 주변의 반응이 A씨의 의지를 꺾었다. A씨는 2월 7일 트랜스젠더 커뮤니티를 통해 숙대 등록을 포기한다며 ‘미지의 존재에 대한 공포는 더 알아가고자 하는 호기심이 되어야지, 무자비한 혐오여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트랜스젠더의 여대 입학을 반대한 이들은 여성의 안전을 근거로 들었다. 2월 4일, 6개 여대(숙명여대·이화여대·성신여대·서울여대·덕성여대·동덕여대)의 21개 여성주의 단체는 ‘여성의 권리를 위협하는 성별변경에 반대한다’는 제목으로 성명서를 냈다. 이들은 ‘(트랜스젠더는) 여성혐오 사회에서의 여자의 삶을 알고 존중하기보다 여자들의 공간과 기회를 빼앗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트랜스젠더를 여성과 대립하는 존재로 묘사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성별정정 제도는 ‘여성의 권리와 안전 보장을 심각하게 저해’한다. 트랜스젠더의 ‘침입’을 공식적으로 허가하는 제도기 때문이다. 이들은 법원과 국회에 각각 A씨의 성별변경 신청 기각과 성별변경 불가 법률 제정을 요구했다.
A씨의 숙명여대 입학에 반발한 이들은 A씨를 남성으로 간주한다. ‘래디컬 페미니즘’ 서적을 취급하는 서점 ‘열다북스’의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생물학적 남자들이 여자 공간에 밀고 들어와 자기 정신이 여자라고 주장하는 것이 절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도록 싸울 것’이라 밝히기도 했다. 트랜스여성(MTF, Male to Female)은 본인을 여자라고 주장할 뿐 여전히 남성이며, 여성들을 억압해온 가해자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이런 주장은 여성과 남성을 생물학적으로 구분하는 데서 출발한다.
페미니즘은 생물학적 성의 구분을 꾸준히 비판해왔다. 역사적으로 여성들이 겪어온 억압이 ‘생물학적 기질에 따른 정당한 결과’라는 궤변에 맞서기 위해서다. ‘남성은 원래 성욕이 강하다’며 성폭력 문제를 축소하고 ‘여성은 원래 조직생활을 못한다’며 성차별을 합리화하는 경우가 대표적인 문제다. 반면 A씨에게는 생물학적 성의 논리가 적용됐다. 페미니즘의 한 갈래인 ‘터프(TERF, 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m)’는 생물학적 여성의 권리를 내세웠다. 루인 연구원은 “생물학적 여성만이 (여대에) 들어올 수 있다는 규칙은 오히려 사회가 여성을 억압했던 논리를 재생산하고 강화한다”며 “(여성을 억압해온) 논리가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데 쓰인다는 게 너무나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군대와 여대, 공간의 정치학
언론은 변희수 하사와 A씨의 이름에 ‘최초’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군대와 여대라는 공간에서 트랜스젠더의 존재가 공식적으로 처음 가시화됐다는 이유에서다. 루인 연구원은 “최초라는 평가 자체가 그 이전의 역사를 삭제해버린다”고 비판했다. 군대와 여대에 이미 존재하는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지운다는 얘기다.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 준우 활동가 역시 “군대를 무사히 전역했거나 여대에 잘 다니는 트랜스젠더들이 이미 많이 있다”며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거나, 안전하다고 판단하는 공간에서만 커밍아웃을 했기 때문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언론에서 변희수 하사와 A씨를 조명하는 방식 자체가 잘못됐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들을 그저 ‘성별 구분을 흐트러뜨리는 존재’로 다루기 바빴기 때문이다. 조각보 리나 활동가는 “(언론이) 트랜스젠더를 성별 구분에 혼란을 주는 애매한 존재로 묘사했다”며 “이런 고정관념에서 트랜스젠더에 대한 편견과 혐오가 출발한다”고 비판했다. 변 하사와 A씨 개개인에 초점을 맞춰 하나의 ‘특이한’ 사례로 조명하면 또 다른 문제로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변희수 하사와 A씨라는 개인에서 군대와 여대라는 공간으로 초점을 돌려야 문제의 본질이 드러난다. 군대와 여대는 각각 남성이 ‘남성’일 것과 여성이 ‘여성’일 것을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공간이다. 군대는 신체검사라는 검열을 통해 ‘진짜 사나이’를 가려낸다. 군대는 남성의 성기가 없다는 이유로, 혹은 트랜스여성이라는 이유로 변 하사를 탈락시켰다. 여대는 말 그대로 여학생만을 입학 대상으로 한다. 전형적인 여성의 모습을 하지 않은 A씨와 같은 이들은 끊임없이 ‘여성’임을 증명해야 한다.
누구나 공간을 누릴 수 있도록
군대와 여대 외에도 성별에 의해 규정되는 공간들이 있다. 화장실이나 목욕탕, 기숙사 등이다. 성별 이분법을 전제한 공간 앞에서 트랜스젠더와 젠더퀴어는 갈 길을 잃는다. 화장실은 트랜스젠더 인권 운동을 통해 문제시된 지 오래다. 루인 연구원은 “화장실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화장실이라는 공간이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몸을 가지고 어떤 성역할 규범을 따라야 하는지를 규정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여자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으려면 다른 사람들에게 ‘여성’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더라도 짧은 머리와 민낯으로 화장실에 들어가면 의심을 받는다. 화장실은 여성 혹은 남성다울 것을 요구하며 공간의 구분을 명확히 한다. 화장실이 만들어낸 규칙을 어긴 사람은 차별과 혐오에 노출된다. 준우 활동가는 “성별 이분법적 공간은 (트랜스젠더를) 혐오하기에 너무나 완벽하다”라고 지적했다. 두 가지 선택지만이 존재하는 공간 속에 트랜스젠더가 들어갈 여지가 없다는 의미다.

이에 화장실의 구조를 재구성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성별 구분 없이 이용 가능한 ‘성중립 화장실’이 대표적인 사례다. 성중립 화장실은 독립적인 칸막이로 구성돼 트랜스젠더나 젠더퀴어뿐 아니라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영유아나 장애인, 노약자 등도 이용할 수 있다. 성중립 화장실이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퀴어문화축제나 성소수자 인권포럼 등에서는 성중립 화장실을 마련해 트랜스젠더 및 젠더퀴어 등의 자유로운 화장실 이용을 보장한다.
화장실과 더불어 여성과 남성의 영역이 엄격히 구분된 공간을 새롭게 상상할 때 비로소 트랜스젠더의 공간이 드러난다. 준우 활동가가 인터뷰 말미에 강조한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트랜스젠더가 비가시화됐다는 건 눈에 안 보인다는 말이 아니다. 서 있을 공간이 없다는 얘기다. 서 있을 공간이 없다는 건 물리적인 공간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 있으면 안 된다고 (트랜스젠더를) 밀어내는 시선이 있다는 거다. 그 시선의 정체가 바로 트랜스젠더 혐오다. 이 시선을 대체할 방안을 찾을 때 자연스럽게 성별 이분법이 사라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