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9일, 조각보 리나·준우 활동가님과 인터뷰가 있었다. 어느 인터뷰가 떨리지 않겠냐마는, 이번 기사의 첫 인터뷰였던 만큼 약간의 긴장과 설렘을 안고 망원동 사무실로 향했다. 따뜻하게 맞아주셔서 얼어있던 몸이 금세 녹아내렸지만.
변희수 하사와 A씨가 사회에 던진 과제가 무엇일지 물으며 인터뷰를 갈무리했다. 아래에 두 활동가님의 답변을 공유하고 싶다.
리나: ‘트랜스젠더가 여성의 범주를 해체한다’는 어려운 말보다는… 차라리 전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이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여성으로 살고 있고, 또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먼저 좀 지켜봐라.”
준우: 어찌 보면 (성별 범주를) 해체하는 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인 것 같다. 그냥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에게 ‘넌 해체하고 있어’라고 주변에서 계속 말하는 셈이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준우 님이 말씀하신 ‘다른 사람들’에 나도 포함되어 있어서다. 변희수 하사와 A씨를 통해 비로소 생물학적으로 ‘자연스러운’ 구분이 사실은 허구적이라는 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가 나의 분석이었다. 바로 이 이야기를 기사에 담아내고 싶었는데. 기사는 무엇보다 현장에 충실해야 한다. 나는 그런 기사를 쓰면서도 계속 외부자의 시선을 견지하고 있었다.
어쩌면 나에게 있어 이 주제가 지금껏 공부의 대상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2016년 ‘페미니즘 리부트’를 제대로 타면서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한 지 5년째다. 대학에 와서 젠더 관련 강의를 듣고 책을 읽었으며 글을 썼다. 변희수 하사를 통해 군대가 표방하는 남성성의 허구가 드러났다고 생각했고, A씨를 통해 페미니즘 내에 성찰이 시급하다고 느꼈다. 그놈의 ‘생물학적’ 기준이 뭐라고 한 사람의 권리가 짓밟히도록 냅둘 수 있을까. 하필 군대와 여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도 나에겐 의미심장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당신들이 생각하는 ‘남성’, ‘여성’의 기준이 사실은 별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니까, 나는 성별 범주를 ‘해체’하고 싶었다. 해체라기보다는 허구성을 드러낸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긴 하다.
나의 해석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동안 그 안에 막상 트랜스젠더는 없었다. 내가 이 주제로 기사를 쓰고 싶었던 건, 성별 이분법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나의 주장에 살을 붙여줄 예시를 찾았다고 생각해서였나. 조각보 사무실을 나오며 뼈아프게 반성했다. 반성하고 성찰하는 마음으로 기사를 썼다.
여전히 나의 글은 트랜스젠더의 삶을 관통하지 못한 채 주위 어딘가를 맴돌고 있다. 사건의 현상을 넘어 그 안의 사람까지 녹여낼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발로 뛰어야겠다. 다음 호에는 르포 기사를 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