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하지 않은 사회 속, 안전한 대학?

성소수자 인권운동, 교육·법·미디어를 이야기하다
▲2015년 교육부에서 발표한 ‘한국성교육표준안’(왼쪽)과 인권교육을 위한 교사모임 ‘샘’,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에서 발간한 ‘학교에서 무지개길 찾기 가이드북’(오른쪽)의 일부. 성별 이분법이 그대로 담겨있는 공교육의 표준안과 성소수자 학생의 커밍아웃을 지지하는 법을 명시한 공교육 바깥의 가이드북 사이에서 느껴지는 간격은 너무도 크다.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 ‘목소리를 낸다’는 점에서 대학은 어느 곳보다도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학생회, 동아리, 학회 할 것 없이 학생자치단체에서 성소수자 인권은 중요한 의제다. 서강대 퀴어자치연대 ‘춤추는 Q’는 학생회 내에서 의결권을 보장받을 정도다. 서울대 성소수자 동아리 ‘QIS’는 학생회 선거철에 후보들에게 성소수자 관련 질의문을 보내고 있고, 이화여대 ‘변태소녀하늘을날다’는 교수들의 혐오발언에 대해 시정을 요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렇다고 대학이 성소수자에게 마냥 안전한 공간이냐고 한다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대학 내 성소수자 단체들은 깃발이 도난당하거나 포스터, 현수막 등이 훼손되는 사건을 숱하게 겪어왔다고 입을 모은다. 충남대학교 중앙성소수자동아리 ‘RAVE’는 동아리 신청 과정에서 “아직은 우리 학교가 성소수자를 받아들이기에 시기상조인 것 같다”는 답변을 받기도 했다. 대학이 퀴어 친화적인 공간을 지향하면서 동시에 퀴어 혐오가 존재하는 공간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공교육의 궤도 바깥에 놓인 성소수자

  대학에 입학하기 전 대부분의 청소년은 12년간 공교육을 받는다. 대학에서 드러나는 문제의 원인을 찾기 위해 공교육을 점검해볼 필요가 있는 이유다.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SOGI 법정책연구회)’ 이승현 연구원은 “성소수자 혐오는 ‘성소수자가 성병을 옮긴다’는 등의 왜곡된 정보가 확산되며 세력을 넓혀왔다”고 강조했다. 성소수자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전달로 현실의 혐오가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보 전달에 있어서 공교육이 제 역할을 하는 데 실패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2015년 발표된 ‘학교성교육표준안(표준안)’에 대한 논란이 대표적이다. 교육부는 표준안의 도입 배경을 두고 ‘성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정보를 통한 바람직한 성가치관과 성행동’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으나, 표준안의 내용은 설명과 달랐다. 표준안은 유치원 교육과정에서부터 성을 ‘남성 혹은 여성’으로 구분했으며, 마치 여성·남성의 뇌가 따로 있다는 식의 성별 고정관념을 그대로 가져와 서술하고 있었다. 다양한 성적 지향이나 정체성에 관한 언급은 없었다. 이에 대한 문제제기에도 2017년 ‘학교 성교육표준안 운용의 실제 직무연수’에서는 여전히 ‘건전한 이성교제와 예절, 배우자의 선택과 이성관 등을 정립’하는 것을 고등학교 세부목표로 들고 있었다. 2019년 ‘유엔아동권리협약 이행 제5·6차 대한민국 본심의’에서는 “표준안에 LGBT 성소수자에 대한 성교육을 포함시킬 계획이 있느냐”는 유엔 측 질문에 교육부가 “현재로서는 계획이 없다”는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교육부가 ‘공식적으로’ 성별을 두 개로 나눈 뒤, 다른 성별을 좋아하는 게 당연하다는 식의 이성애 중심주의를 가르치라고 장려하는 셈이다.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은 “성소수자를 배제하는 인식이 성역할 고정관념과 이성애를 전제한 공교육 시스템을 통해 더욱 강화되고 있다”고 역설했다.

  당장 일선의 교사들조차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인권교육을 위한 교사모임 ‘샘’의 홍의표 교사는 “실제 학급 현장은 교사 성향에 따라 동성애를 가르치지 않거나 언급조차 피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교사들에게서도 이를 적극적으로 가르치려는 의지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홍 교사는 “(동성애에 대한 언급을 피하는 분위기에서) 학생들이 어떻게 성적 지향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2015년 교육부에서 발표한 ‘한국성교육표준안’(왼쪽)과 인권교육을 위한 교사모임 ‘샘’,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에서 발간한 ‘학교에서 무지개길 찾기 가이드북’(오른쪽)의 일부. 성별 이분법이 그대로 담겨있는 공교육의 표준안과 성소수자 학생의 커밍아웃을 지지하는 법을 명시한 공교육 바깥의 가이드북 사이에서 느껴지는 간격은 너무도 크다.

  교육 제도의 바탕에 깔린 성별 이분법과 이성애 중심주의는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폭력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국가인권위원회의 2014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성소수자의 80%가 교사로부터 성소수자 혐오표현을 들었고 54%는 다른 학생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 2015년엔 청소년 성소수자 200명 가운데 98%가 교사나 또래 친구로부터 혐오표현을 들었다고 답했다. 성인에 비해 청소년은 피해 상황을 알리고 해결하기 어렵다.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에서 활동해온 김지학 소장은 “청소년 성소수자의 경우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해도 선생님이나 부모님께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들이 자해·자살 시도로까지 이어지는 큰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강조했다. 교육 제도의 개선이 시급한 이유다.

  국민들이 공유하는 상식을 형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교육제도 개편은 반드시 필요하다. 김지학 소장은 아시아 최초로 동성혼을 법제화한 대만의 사례를 제시했다. 김 소장은 “대만에서 2004년 성평등 교육 법안이 통과되고 15년이 지나자 그 교육을 받은 세대가 자라 동성혼 법제화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뤄냈다”고 설명했다. 교육을 개편하면 다른 제도의 변화까지 연쇄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지인 활동가는 “부모 세대가 학교에 다닐 때 성적 지향에 대해 교육받은 적이 없다보니 자식이 성소수자임을 알게 됐을 때에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자녀가 심적으로 무너질 확률이 높지 않겠느냐”고 되묻는다. 성소수자에 대한 교육의 부재가 여러 세대에 걸쳐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법이 공인해온 반쪽짜리 모범답안, 이성애 중심주의

  대학에 와서 성소수자 이슈를 접하더라도 이성애 중심주의를 내려놓는 건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대학교 밖 사회에서 성소수자를 제도 바깥에 놓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성소수자의 존재를 배제하는 법질서가 이성애 중심주의 문화를 공고하게 만드는 주범으로 지목된다. 이에 법질서를 바꾸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결혼을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성소수자는 새로운 고민에 직면하게 된다. ‘다양성을 향한 지속가능한 움직임(다움)’ 김보미 대표는 “성소수자라면 누구나 ‘앞으로 애인과 안정적인 관계를 맺어갈 수 있을까’라는 걱정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제도상으로 혼인관계를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제도의 미비 속에서 사실혼 관계에 있는 성소수자 커플은 셀 수 없는 어려움에 부딪힌다. 우선 애인이 긴급한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더라도 법적인 보호자가 아니기 때문에 수술 동의서에 서명할 수 없다. 국민건강보험법 상의 ‘배우자’로 인정받지 못해 피부양자로 가입할 수도 없다. 심지어는 유족 연금이나 신혼부부 대출을 심사할 때도 ‘배우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이에 대해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성소수자 커플에 대한 제도상 차별을 시정해달라는 집단 진정을 한 상태다. 서로 부양하고 돌보는 ‘생활동반자 관계’를 맺은 사람에게 동반자로서 필요한 사회복지혜택을 보장하는 ‘생활동반자법’의 입법을 촉구하거나, 헌법상 평등권 침해와 민법상 혼인의 자유를 근거로 동성혼 법제화를 외치는 목소리도 터져 나온다. 이들의 목소리에는 현실의 절박함이 담겨 있다.

  ‘성적 지향’까지 차별금지사유로 포함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입법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뜨겁다. 130여 개 단체가 차별금지법제정연대를 구성해 활동할 정도다. 차별금지법은 헌법의 평등권을 구체화해 생활영역에서 합리적 이유가 없는 차별을 금지하는 법률이다. 성소수자에 대한 제도적 차별이나 혐오표현을 법적으로 규제할 수 있기에 그 입법 필요성은 크다. 하지만 장애를 차별금지사유로 한 법안은 통과된 반면, ‘성적 지향’이라는 문구는 일부 개신교 단체들의 반대에 부딪혀 번번이 입법에 이르지 못했다. 법이 공식적으로 보호하는 이들과 보호하지 않는 이들 사이에 선을 그은 것이다. 이승현 연구원은 2007년 동성애·동성혼반대국민연합의 거센 반발을 떠올렸다. 그는 이들이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국회의원 낙선 운동을 하겠다는 민원을 넣거나, 자녀세대가 동성애를 배울까봐 무섭다는 식의 거짓 정보를 퍼뜨렸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성소수자 관련 입법 논의가 나올 때면, 동성애 ‘반대’ 집회가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이들을 바라보는 활동가들의 시선은 날카롭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장서연 변호사는 “공론장에서 이들의 반인권적인 발언을 집단적인 의견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김보미 대표는 “동성애 혐오세력의 목소리는 그들에게 동조하는 일부 언론에 의해 과대 대표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공론장에서 설득해야 할 상대는 혐오발언을 내뱉는 사람들이 아니라, 기본적인 인권 의식을 갖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무지갯빛 이야기를 들어 보실래요

  우리 사회의 공교육과 법제도 속에서 성소수자의 존재에 대한 언급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아직 현수막을 찢는 사람들이 있는 이유다. 하지만 성소수자 이슈에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동성결혼 법제화 찬성 의견은 2001년 17%에서 2019년 35%에 이르렀다. 변화를 이끈 동력은 무엇일까. 활동가들은 사람들이 자주 성소수자를 ‘접하게’ 됐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지학 소장은 “최근 강의를 하러 나가면 드라마·웹툰에서 성소수자를 봤다며 이들이 왜 차별받는 것인지 묻는 학생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내 주변에 성소수자는 없어”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던 이들이 퀴어 콘텐츠를 통해서 성소수자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콘텐츠를 제작하는 이들의 역할도, 고민도 막중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퀴어라는 집단을 정형화하는 게 아니라 개개인의 희노애락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이들은 말한다.

  유튜브는 대중들이 성소수자와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창구가 됐다. 동성애 커플의 일상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채널김철수’, ‘이모양의 이모저모’나 퀴어 이슈를 풀어내는 ‘연분홍TV’, ‘All about LGBTQ’ 등이 대표적이다. ‘연분홍TV’의 넝쿨 씨는 “평소 퀴어 이야기를 농담으로 삼는 데에 불편함을 느꼈던 사람들이 마음 편하게 웃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자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마포 FM에서 매주 방송되는 ‘L양장점’은 라디오를 통해 퀴어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있다. 2005년부터 15년간 ‘L양장점’을 기획해온 방송제작팀 ‘레주파’의 하레 씨는 “처음 기획할 당시에는 ‘동성애자’ 하면 게이만을 떠올리는 인식이 만연했다”며 레즈비언의 존재를 알리고자 방송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커밍아웃을 고민하던 이들이 스스로의 이름을 넣어 ‘나는 OOO입니다. 나는 레즈비언입니다’라는 메시지를 외쳤던 ‘보이스 커밍아웃 캠페인’도 그 일환이었다.


  성소수자의 삶을 담담하게 기록해낸 다큐멘터리도 있다. 퀴어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온 권아람 감독은 “소수자의 이야기를 다룰 때 ‘얼굴’을 드러낸 이야기가 가지는 힘이 있지만, 이는 낙인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며 고민을 털어놨다. 얼굴이 아닌 공간이 주인공인 ‘퀴어의 방’은 이런 고민 속에 탄생한 작품이었다. 다큐멘터리 ‘레즈비언정치도전기’는 2008년도 종로구 선거에 출마한 레즈비언 최현숙 씨의 선거캠프를 기록 촬영한 작품이다. 제작을 맡았던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의 한영희 감독은 “당시 최현숙 씨의 커밍아웃에 관심을 가진 사람을 보기 어려웠던 데 비해, 지금은 적어도 퀴어 이슈를 두고 정치적 공방을 하게 되는 상황에는 이르지 않았느냐”며 사회적 조건이 이전과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몇 년간 퀴어 문학의 출판이 급격히 늘어난 것도 살펴볼 만한 변화다. 퀴어문학종합플랫폼 ‘무지개책갈피’는 “퀴어 문학이 차별의 현실을 호소하거나 혐오를 지적하고, 법 없이도 어쨌든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인식을 변화시켜왔다”고 이야기한다. 한편, 퀴어가 겪는 일상의 소소한 에피소드를 그린 ‘어서오세요. 305호에’나 ‘모두에게 완자가’와 같은 웹툰도 독자들과 소통해 왔다.


  미디어 플랫폼은 퀴어의 이야기가 스스럼없이 오가는 하나의 공론장이 됐다. 이 공론장에서 퀴어들은 일상의 매 순간마다 느껴온 감정을 담백하게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가 가진 울림은 학교에서 성소수자에 대해 배우지 못했던 수많은 시청자, 청취자, 독자들에게 닿고 있다. 이들은 적어도 ‘제2의 최현숙 씨가 선거에 나오면’ 성소수자 이슈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의 관심을 갖게 됐다. 퀴어가 만든 공론장이 더 많은 이들을 공론장으로 나오게끔 하는 순환을 일으키는 것이다.

▲2019년 퀴어문화축제에 등장한 슬로건들 ⓒ여동준 사진기자

  대학도, 그 바깥의 사회도 분명 아직은 모두가 있는 그대로 존중받는 사회라고 보기는 어렵다. 동성애 ‘반대’ 집회에서 표출됐던 성소수자 혐오의 인식은 대학에서 ‘찢긴 현수막’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성소수자에게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전까지는 안전한 대학도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성별 이분법과 이성애 중심주의라는 틀에 균열을 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승현 연구원은 “이성애 중심주의와 성별 이분법을 무너뜨리면, 우리 모두를 옥죄고 있던 여성성·남성성의 틀도 깨고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성소수자의 인권을 향상시키는 일은 결국 모든 인간의 권리를 넓히는 일이라는 것이다. 교육과 법이 이 목소리에 응답한다면, 모두를 옥죄던 틀을 깨뜨리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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