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음악회, 청중의 방문을 두드리다

음악회장에서 탄생한 문화적 권위가 도전받은 순간
서울시향의 온라인 콘서트 '영웅' ⓒ서울시 유튜브 캡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다수의 관중이 한데 모일 수 없게 되자 공연예술계는 초토화됐다. 클래식음악 공연도 이를 피할 수 없었다. 예정됐던 연주회 및 음악행사가 연이어 취소되자 클래식공연계에선 각종 온라인 음악회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오프라인 음악회 부재의 아쉬움을 달래고 청중의 관심을 유인하기 위해서다. 음악회장 외의 공간에서 클래식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음악과 청중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

서울시향의 온라인 콘서트 ‘영웅’ ⓒ서울시 유튜브 캡쳐

안방에 들어선 음악회장

  지난 3월 13일,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은 유튜브와 페이스북에서 온라인 콘서트를 생중계로 개최했다. ‘서울시향이 국민들에게 전하는 위로와 희망의 라이브 스트리밍’이라는 제목을 내건 이날 콘서트에선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이 연주됐다. 서울시향 강은경 대표이사는 ‘비록 객석은 마련하지 못했지만 여러분들을 위해 서울시향이 온라인 무대에 격려와 응원의 공연을 준비했다’며, ‘각자 가장 편안한 자리에서 <온라인 콘서트 ‘영웅’>을 관람해주시기 바란다’고 전했다. 서울시향은 이날 연주를 생중계한 후 다시보기 영상으로 공개해 많은 청중이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서울시향의 온라인 음악회 이후 ‘국립오페라단’도 온라인 콘서트 대열에 합류했다. 4월 첫째 주에 포문을 연 국립오페라단의 ‘집콕! 오페라 챌린지’는 매주 월요일 오페라 실황 한 편씩을 공식 유튜브 페이지에 공개하는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는 생중계로 기획된 서울시향의 온라인 콘서트와 달리 기존에 국립오페라단에서 상연했던 작품의 녹화 영상 전체를 공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모차르트의 ‘마술 피리’와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등 유명한 작품부터 무소르그스키의 ‘보리스 고두노프’와 오펜바흐의 ‘호프만의 이야기’와 같이 대중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까지 다양한 오페라가 유튜브를 통해 관객과 만났다.

  온라인 공간에 공연장을 마련한 것이 클래식공연계만의 시도는 아니다. 2월 말 문화체육관광부의 권고로 국공립공연장이 잠정 휴관되자 다수 예술단체는 SNS와 스트리밍 사이트를 활용해 저마다 무관중 공연을 개최했다. 온라인 공연에 뛰어든 것은 뮤지컬, 연극, 무용, 창극 등 장르를 막론한다. 하지만 클래식음악의 온라인 공연엔 다른 장르와 다른 점이 있다. 클래식음악엔 음악작품과 음악회장, 객석을 둘러싼 독특한 역사적 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공간 속에서 완성된 권위

  클래식음악은 ‘권위 있는 장르’로 여겨진다. 클래식음악의 권위는 음악회장과 객석을 기반으로 완성된다. 음악학자 니콜라스 쿡은 저서 『음악에 관한 몇 가지 생각』에서 ‘오늘날 콘서트홀의 출입은 마치 대성당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는 비유를 제시한다. 음악회장의 안팎은 음향적으로 완전히 분리돼 있고, 그 내부에 진입한 청중은 엄격한 규칙을 지켜야만 한다. 악장 사이에 박수를 치지 않는 것, 오페라에서 아리아가 끝난 후 ‘앙코르!’를 외치지 않는 것, 말소리나 기침소리를 내지 않는 것 등이다. 청중은 이 규칙을 기꺼이 준수하며 종교의례에 참여하는 것처럼 정갈한 마음가짐으로 음악작품에 귀를 기울인다. 대성당과 닮은 음악회장의 특성들이다.

  공공음악회장이 등장한 것은 1800년경이다. 그 전까지 음악은 종교의례에 동원되거나 궁정·귀족 연회에서 여흥을 위해 연주됐다. 음악 창작과 연주는 예배나 오락을 위한 수단이었고 음악가는 이를 담당하는 ‘기술자’였던 것이다. 18세기 후반 작곡가 베토벤은 음악과 음악가의 지위를 바꿔놨다. 그는 음악을 회화나 건축, 조각 같은 ‘예술작품’으로 보존하고자 한 최초의 음악가였다. 음악이 작품의 자격을 얻을 수 있다는 그의 아이디어는 음악 감상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으로 이어졌다. 사람들은 예술가 베토벤의 음악을 듣기 위해 음악회장에 직접 찾아가기 시작했고, 이것이 공공음악회장의 시초가 됐다.

  예전에는 청중이 차를 마시고 대화도 나누며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었다면, 베토벤 이후 공공음악회에 참석한 청중은 객석에 앉아 침묵하며 무대 위에서 연주되는 음악을 음미했다. 청중의 침묵은 경의의 표현으로, 음악작품에 문화적 권위를 부여했다. ‘결혼 행진곡’으로 오늘날 대중에게 알려진 19세기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는 음악예술의 권위를 강조한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대규모 오페라를 상연하기 위해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을 설계했는데, 이곳에선 자리에 앉은 관객이 조금만 움직여도 의자에서 삐걱거리는 소음이 났다. 공연 중 객석의 조명을 끄는 관습도 바이로이트 극장에서 처음 생겨났다. 때문에 청중은 캄캄한 객석에 정자세로 앉아서 미동도 없이 작품을 감상해야 했다.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에선 오늘날에도 바그너의 작품이 상연되고 있다. ⓒ인디언 익스프레스

텅 빈 객석, 흔들려온 클래식

  음악은 음악회장을 기반으로 권위를 유지했지만 오늘날 공연장에 가는 사람 중 클래식음악을 감상하려는 청중은 적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2019년 12월 발표한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 월간 리포트’에 따르면 코로나19 발발 전인 2019년 12월 한 달 간 클래식음악 공연 매출액은 약 47억 원으로 전체 공연 매출의 8.5%에 머물렀다. 399억 원의 매출액으로 72.5%를 차지한 뮤지컬 공연과 비교하면 턱없이 낮은 수치다.

  통계자료가 보여주듯 클래식음악이 공연문화의 주인공 자리를 내준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음악회장이 문을 닫은 것은 코로나19로 인한 최근의 사건이지만 클래식음악의 공연 수익은 예전부터 저조한 상태였다. 민은기 교수(작곡이론)는 “(베토벤 시대) 도시 한복판에 있는 오페라 공연장에 가는 독일 시민의 마음과 오늘날 ‘예술의전당’에 가는 대중의 마음은 다르다”고 지적한다. 이 차이는 음반의 발명과 인터넷의 보급으로 음악 청취 방식이 변화한 데에 기인한다. 민 교수는 “클래식음악은 ‘레코딩’이 발명되기 전 공연문화를 통해 전성기를 구가한 음악인데, (주된 청취 방식이) 음반과 음원으로 넘어가면서 클래식의 공연 수요가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음악회장에 모여드는 청중이 줄면서 클래식음악의 권위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청취 방식의 혁신이 감상 태도의 변화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화여대 원유선 박사(공연예술대학원)는 철학자 발터 벤야민을 인용하며 “음악을 듣는 공간의 변화로, 집중하고 관조하는 방식의 음악 감상이 산만한 청취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객석의 청중들이 영화관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를 관람하듯이 음악의 전개 과정을 선형적으로 쫓아가는 데 비해, 집에서 음반이나 음원을 듣는 청중들은 음악의 흐름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원 박사는 “애플뮤직이나 멜론 같은 스트리밍 사이트의 경우 클래식작품을 전체가 아니라 개별 악장 단위로 나눠서 판매한다”며, 이는 “음악을 완결된 전체가 아닌 각각의 노래로 취급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모든 악장이 서로 연결돼 하나의 작품을 이룬다는 관념이 약화된 것이다.

  이런 변화에 대해 <월간 객석> 박용완 전 편집장은 <동아일보> 칼럼에서 현대사회 음악의 생산·유통·소비 양상을 ‘권위주의의 쇠퇴’라고 요약했다. 이는 클래식음악과 공연을 향해 꾸준히 제기돼온 문제기도 하다. 따라서 클래식음악계가 온라인 플랫폼을 활발히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일면 이에 대한 응답으로 비춰진다. 유튜브와 SNS에 마련된 온라인 음악회장엔 객석이 없다. 청중은 홀에 모이지 않고도 클래식 공연을 향유할 수 있다. ‘무관중 음악회’라는 새로운 개념은 ‘언택트’ 시대의 대중에게 먼저 다가가고 있다. 클래식음악은 음악회장을 담보로 했던 문화적 권위주의를 양보하고 있는 것이다.

  클래식음악계의 온라인 공연 문화는 클래식음악의 방향을 재설정했다. 우선 클래식음악에 대한 접근장벽이 낮아졌다. 원유선 박사는 “클래식음악은 문화적 권력을 고수해왔지만 온라인 음악회를 통해 대중에게 접근성 있는 형태로 변화됐다”고 해석했다. 클래식음악의 문화적 권력은 음악회장이라는 공간에서 모종의 위압감을 발생시킨다. 원 박사는 “‘음악회장에는 식자층만 올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며, “‘다른 사람은 음악을 이해하는 것 같은데 자신은 잘 모르겠다’는 위축감으로 음악회장에 가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음악회는 다른 관객을 의식하지 않고도 클래식공연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인 셈이다.

  온라인 플랫폼은 음악이 ‘시간예술’로서 지녔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게 만들기도 했다. 다시 말해 음악작품은 시간과 공간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원유선 박사는 “음악은 본래 ‘현존성’을 지닌 일회적인 예술”이며,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함께 있어야만 감상이 가능하다는 점은 시공간적 아우라를 일으키지만, 다른 예술분야와 비교해 음악이 지니는 한계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20세기 전반 발명된 녹음기술로 음악은 소리를 기록할 수 있게 됐지만, 이는 여전히 시각적인 것을 배제하는 형태였다. 보는 것이 듣는 것만큼 중요해진 세상에서 영상매체를 통한 공연 중계는 청각뿐 아니라 시각적 욕구까지 충족시킨다.

고전은 죽지 않는다, 어떻게?

  ‘고전은 죽지 않는다’는 오래된 명제 앞에서 클래식음악은 거듭 도전받아왔다. 고전으로서의 가치를 나타내던 음악회장의 장벽은 허물어지고 있다. 기술의 발명 때문이기도 하고, 변화된 대중의 음악 취향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로 비어버린 객석은 클래식공연계의 전향적인 시도를 불러왔다. 많은 클래식음악가들은 클래식음악의 권위를 흔드는 변화의 물결 속에서 물리적 공간 밖으로 걸어 나와 청중의 방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제 앞날에 대해 물을 차례다. 온라인 플랫폼은 클래식공연계의 실효성 있는 대안으로 정착할 수 있을까? 원유선 박사는 “온라인 공연이 실황에서의 감동을 대체하기는 힘들다”고 대답했다. “관객이 실제 공연장에 참여해 느끼는 음악작품의 현존성을 2차원 화면이 대체할 순 없다”는 전망이다. 이 점을 누구보다 절감하고 있는 것은 바로 클래식 팬들이다. 공연장 휴관이 장기화되면서 많은 클래식 팬들은 오프라인 음악회를 그리워하고 있다. 민은기 교수는 이를 “그(공연장) 안에 군집해 일제히 작품에 귀 기울임으로써 누리던 황홀경에 대한 갈증”으로 해석했다.

  기술적인 문제도 존재한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2008년 개장한 디지털 콘서트홀을 코로나19 사태 이후 3월 한 달 동안 무료로 공개했다. 하지만 온라인 중계의 버퍼링이 심해 원활한 감상이 어려웠다. 원유선 박사는 “사람들은 기술에 유토피아적 환상을 갖고 있어서 음악공연도 기술매체로 대체될 수 있으리라 믿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고 말했다. 공연을 온라인 송출에 적합한 형태로 촬영·편집하는 데는 막대한 시간과 비용, 고수준의 기술이 필요하다.

  원유선 박사는 온라인 음악회가 “관객을 실제 공연으로 이끄는 기폭제가 될 순 있다”고 본다. “포털사이트 메인 화면 등에서 온라인 음악회를 접하고 친근감을 느끼는 대중이 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낮아진 접근장벽은 클래식음악을 멀게 느꼈던 사람도 시험 삼아 재생 버튼을 클릭할 수 있게 한다. 공연을 영상으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이뤄진 촬영과 편집이 음악회장에선 불가능했던 색다른 감각 경험을 유도하기도 한다. 예컨대 ‘집콕! 오페라 챌린지’의 다섯 번째 콘텐츠 ‘마술 피리’는 다양한 앵글과 클로즈업으로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자아냈다. 날카로운 고음을 부르는 ‘밤의 여왕’의 표독스러운 표정연기가 생생하게 드러났고, 감초 조연 커플 ‘파파게노’와 ‘파파게나’의 익살스러운 춤동작은 보는 재미를 선사했다. 보다 풍부해진 시각적 요소가 청각적 효과를 보강하며 오페라의 전개를 뒷받침한 것이다.

‘집콕! 오페라 챌린지’에 공개된 모차르트 ‘마술 피리’ ⓒ국립오페라단 유튜브 캡쳐

  올해는 공공음악회장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 베토벤의 탄생 250주년이다. 음악회장이 음악의 권위를 구성하는 공간으로 기능하기 시작한 지 250년 정도 흐른 셈이다. 이제 베토벤의 교향곡은 유튜브 스트리밍으로 안방의 청중에게 전달되고 있다. 이 전환기에, 온라인 음악회는 무엇을 들을까 고민하는 청중 앞에 클래식음악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 기여할 수 있을까. 클래식음악이 자부하는 ‘음악의 깊이’라는 가치는 온라인을 통로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 있을까. 클래식공연계는 이 질문들에 자신 있게 답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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