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은 씹고 뜯을 고기를 식탁에 올려준다. 마트 신선식품 코너의 고기는 스티로폼과 비닐로 말끔하게 포장된 채, A++이니, 1등급이니 하는 축산물 등급을 자랑스럽게 내보인다. 하지만 먹는 즐거움을 상징하는 등급 스티커 그 너머에 축산업의 진실이 있다. 우리 눈앞의 포장육은 부드러운 육질을 위해 평균 수명의 반의 반도 살지 못하고 죽은 동물의 살덩이다. 저렴한 고깃값이 찍힌 영수증에는 우리가 고기를 먹는 대신 지불하는 사회적 비용이 누락돼있다. 인간에 의한 공장식 축산은 결코 누구도 위하고 있지 않다.
몸보다 작은 그들의 공간
공장식 축산이라는 표현은 빽빽하게 들어찬 닭들과 소들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공장식 축산은 ‘밀집된 환경에서의 사육 방식’ 이상의 거대한 산업구조를 의미한다. 환경사회학자 송인주의 논문 ‘한국 산업축산의 발전과정’에 따르면 공장식 축산의 목표는 산업적 표준화와 효율화다. 규모가 커질수록 효율이 올라간다는 규모의 경제 원리를 대공장 모델로 축산업에 적용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효율을 최대화하는 인공환경으로서의 축사’뿐만 아니라 ‘가축을 빨리 크게 하는 고효율의 사료’, ‘살만 빨리 찌거나 우유만 많이 내도록 개량된 고성능의 종축’ 등이 모두 공장식 축산의 요소가 된다. 공장식 축산은 이윤 추구를 위해 ‘공장에서 기계로 물건을 찍어내듯’ 동물이 태어나고, 대량으로 ‘수확’되는 시스템인 셈이다.
축산업계가 최소 비용-최대 생산량 달성을 위해 채택한 대표적인 방법은 가능한 좁은 공간에 최대한 많은 동물을 사육하는 일이다. ‘배터리 케이지’, ‘스톨(Stall)’ 등이 구체적인 결과물이다. 배터리 케이지는 1930년대에 미국에서 개발된 산란계 대상 축사구조로, 가로 50cm, 세로 50cm 크기의 철창 케이지가 종횡으로 밀집돼 8-9층까지 쌓여있는 형태다. 케이지 한 칸 안에서 암탉 5-6마리가 죽을 때까지 알을 낳는다. 암탉 한 마리에게 평생 주어지는 공간은 A4용지의 2/3 정도다. 축산업계의 입장에서, 배터리케이지는 공간을 최소화할 뿐 아니라 닭들의 활동량을 제한해 방사형에 비해 사료 섭취량을 줄이므로 더 ‘경제적’이다.

2018년 축산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산란계 및 종계의 마리당 적정사육면적이 기존의 0.05m²에서 1.5배인 0.075m²로 늘어나긴 했다. 그러나 이 규정은 신규 진입 농가에만 적용될 뿐이고 기존 양계장에 적용되려면 2025년까지 기다려야 한다. 전문가들은 시행령 개정에 대해 실효성이 없다고 본다. ‘동물자유연대’ 박선화·김솔 활동가는 “한 케이지에 넣는 닭의 마릿수를 줄인 것뿐 닭들의 복지에는 큰 변화가 없다”고 설명했다.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동변)’의 한주현 변호사 역시 “개정안은 산란계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육계의 적정 사육 면적은 여전히 0.046m², 산란 육성계의 경우에는 0.025m²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스톨을 이용한 사육도 기업과 축산농가의 이익을 위해 고안됐다. 스톨은 번식용 암퇘지를 개별적으로 가둬 사육하는 폭 60cm, 길이 210cm의 철제 틀로, 돼지의 몸이 들어가면 남는 공간 없이 꽉 차게 된다. 비좁은 스톨 안에서 암퇘지가 할 수 있는 움직임은 단 두 가지, 일어서기와 앉기뿐이다. 보통 암퇘지 한 마리는 태어난 지 7개월이 되면 더 많은 돼지를 ‘생산하기’ 위해 인공수정을 시작한다. 이때부터 도축될 때까지 암퇘지는 스톨을 벗어나지 못한다.

어미돼지의 임신-출산-수유는 모두 장소이동 없이 스톨에서 이뤄진다. 115일의 임신 기간이 끝나고 암퇘지가 출산하면, 약 20일의 수유 후 새끼돼지와 어미돼지가 분리된다. 자연 상태의 수유기간인 2개월에 한참 못 미치는 기간이다. 어미와 분리된 새끼돼지들 중 수퇘지는 따로 모여 사육되다가 생후 6개월쯤에 도축되고, 암퇘지는 어미돼지와 똑같이 7개월 이후부터 스톨에 들어가 1년에 최소 2회의 강제임신과 출산을 반복한다. 이를 해마다 겪다가, 번식능력이 떨어진 암퇘지는 3-4년 차에 도축된다. 자연상태에서 돼지의 평균 수명은 15-20년이다.
공장 속 동물들, 그들의 ‘삶’
축산업에서 ‘동물이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은 무의미하다. 이윤 창출이 목표인 축산업 구조 속에서 가축은 고통을 느낄 자격조차 박탈당한다. 산란계 농가의 경우, 산란을 할 수 없는 수평아리는 다른 농장에 팔리거나, 일반적으로는 ‘폐기’된다. 폐기되는 수평아리는 태어나자마자 기계로 분쇄돼 동물성 사료가 된다.
운이 좋아 살아남았다면 곧장 부리가 잘린다. ‘카니발리즘’을 막기 위해서다. 카니발리즘은 닭들이 서로를 공격하는 이상행동이다. 공장식 축산의 사육환경에서 닭은 횃대에 오르거나 모래목욕을 하는 등 동물의 본성을 표출할 수 없다. 이 상황에서 닭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다른 닭의 살을 쪼아먹거나 서로의 깃털을 뽑는 등의 이상행동을 보인다. 이를 방치하면 닭의 상품가치가 떨어져 이윤에 방해가 되므로 ‘효율’적이지 않다. 살아남은 닭들의 부리를 자르는 이유다.
국립축산과학원은 홈페이지를 통해 부리자르기를 권장하며 그 효과로 카니발리즘 방지뿐 아니라 ‘사료 절약’ 및 ‘병아리 취급 용이’를 들고 있다. 부리가 잘리면 사료를 많이 먹을 수 없고, 성격이 온순해진다는 설명이다. 스톨 속에서 평생을 보내는 암퇘지들도 철제 뼈대를 물거나 다른 돼지의 꼬리를 물어뜯는 등의 이상행동을 보인다. 이번에도 양돈업자들은 돼지의 꼬리를 잘라내는 ‘해결책’을 취한다.
열악한 사육환경을 버티지 못하고 스스로 몸이 망가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육계의 경우 높은 상품성을 위해 강제로 살을 찌우거나 가슴의 근육을 키우는 형태로 개량됐다. 활동량이 없는 상태에서 급격히 찌워진 살로 인해, 닭들의 다리뼈는 종종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부러진다. 배터리 케이지에서 사육되는 산란계들은 판판한 바닥이 아닌 철망을 디디고 살기 때문에 발이 변형되기도 한다. 박종무 수의사는 “근본적으로 공장식 축산은 비용 절감을 위해 동물의 건강을 완전히 무시한다”며 “공장식 축산 환경에서는 첫째로 가축들의 운동량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아 동물들의 면역력이 극히 떨어지고, 둘째로 배설물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아 분뇨가 발생시키는 암모니아 가스 등에 노출됨으로써 호흡기 질병에 극히 취약해진다”고 설명했다.
아프거나 상해를 당한 동물에게 수의학적 처치를 제공하는 일은 ‘비효율’적이다. 아픈 동물을 치료하기 위해 수의사를 부르는 것보다 죽게 두고 새 동물을 사육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다. 동물들에게는 단지 다량의 항생제만이 무차별적으로 투여될 뿐이다. 동물전염병으로 이들 모두를 폐기처분해 손해가 생기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다.
항생제를 투여해도 동물전염병은 발생한다. 이때 국가에 의해 이뤄지는 대처는 살처분이다. 특정 농가에 돼지열병, 조류인플루엔자(AI), 구제역 등의 동물전염병 확진 판정이 나면 가축전염병예방법에 의해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서 살처분이 진행된다. 밀집 축산환경으로 동물들을 병에 걸리게 만든 것은 인간이지만, 죽임을 당해 없어져 줘야 하는 것은 동물들이다. 한주현 변호사는 “가축전염병에 걸리지 않은 가축에게도 선제적으로 행하는 예방적 살처분이 당연한 절차로 굳어지고 있으며, 그런 관행 하에서 가축의 생명권은 고려조차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박선화·김솔 활동가는 “지난해 아프리카돼지열병 당시에도 38만 마리의 돼지들이 살처분됐지만, 대부분의 돼지들은 살처분 지침에 맞지 않는 방식으로 공포와 고통 속에서 죽어갔다”며 살처분 최소화와 관련 규정 보완을 촉구했다.
공장식 축산이 포기하는 모두의 미래
공장식 축산이 동물에 대한 극심한 폭력임은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공장식 축산의 비윤리성이 사회에서 ‘공장식 축산 폐지론’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공장식 축산의 비윤리성도 경제 논리 아래선 ‘값싸고 맛있는’ 고기를 공급하기 위한 필요악으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동물의 문제는 안타깝지만, 인간이 소비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동물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는 논리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동물을 외면한 채 인간의 이익만 따지더라도 공장식 축산이 인간의 이익을 해치고 있다고 설명한다. 공장식 축산의 폐해가 동물에만 국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박종무 수의사는 동물전염병이 인간사회에 가져올 보건위기를 우려했다. 그는 AI를 대표적인 인수공통전염병(인간과 동물에 같이 감염되는 전염병)의 예로 들며 “AI 바이러스는 RNA변이에 특히 능한데, 이때 공장식 사육환경은 바이러스가 전파되며 변이하기에 적합한 환경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가금류에서 처음 발생한 AI와 같은 바이러스도 공장식 축산과 같은 밀집사육환경에서 여러 번의 변이를 거치면 사람에게 치명적인 질병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항생제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동물전염병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다량으로 투여되는 항생제는 분뇨와 사체로부터 배후지의 토양과 지하수로 침출된다. 동물이 가지고 있던 항생제 내성균 역시 항생제 자체와 함께 침출돼 생태계의 다른 동물과 인간들을 위협한다. 동물전염병에 꼬리처럼 따라붙는 살처분 역시 생태계에 치명적이다. ‘가축 살처분 실태와 쟁점 진단’ 국회 토론회 자료집에 따르면, 현행 살처분 시행 체계 안에서 사체 매몰에 대한 관리 감독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어 매몰지의 침출수 유출 및 지하수 오염 등의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지난 2011년 환경부에서 가축 매몰지 300m 반경의 지하수 수질을 검사한 결과, 조사대상 51곳 가운데 31곳의 지하수가 대장균 및 암모니아성 질소 등이 함유된 침출수로 인해 오염돼 있었다.
UN 식량농업기구는 보고서 ‘가축의 긴 그림자’를 통해 공장식 축산이 환경에 끼치는 영향을 전지구적으로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전 세계 축산업이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양은 연간 인위적 온실가스 배출의 18%를 차지한다. 이는 전 세계의 모든 자동차와 배, 비행기 등의 운송수단에서 배출되는 양을 합친 것과 맞먹는다. 매년 6,000만 톤이 훌쩍 넘게 생산되는 가축분뇨도 환경오염의 원인이다. 분뇨가 비료 등으로 자원화되더라도, 엄청난 양의 분뇨를 양분으로 활용할 사료작물용 토지가 부족하다. 때문에 대부분은 고스란히 오염물로 배출된다. 가축이 오직 인간의 소비를 목적으로 대량으로 생산되고 사육되는 한, 지구의 자정능력은 축산업이 배출하는 오염물질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다.

공장식 축산이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의 측면에서만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것은 아니다. 박선화·김솔 활동가는 공장식 축산을 생태계 질서 파괴와도 연결짓는다. 그들은 “공장식 축산에 의해 더 많은 살을 가질 수 있도록 농장동물의 유전자가 변해갔고, 그럴수록 동물의 자연적인 유전자 다양성은 사라져 획일적이고 단편적인 유전자 정보만이 농장동물 대대로 이어졌다”고 설명한다. 즉 인간이 동물을 가장 ‘생산적’인 형태로 규격화한 결과, 질병과 같은 외부 요소에 순식간에 멸종될 수 있게 됐다는 이야기다.
공장식 축산이 만들어낸 각 동물의 유전적 획일성은, 역시 공장식 축산이 추동한 산림파괴와 결합해 더 큰 문제를 낳는다. 수많은 가축에게 공급할 곡물 사료를 제공하기 위해 산림이 파괴되고, 그 과정에서 많은 생물종들이 멸종돼 생태계 내 생물종 자체의 다양성도 떨어졌다. 생물종 다양성이 확보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한 종의 멸종도 생태계 전체에 큰 여파를 불러올 수 있다. 물론 인간도 예외는 아니다. 인간도 생태계 안의 생물종이기 때문이다. 공장식 축산은 결국 미래의 인간과 지구까지도 담보로 잡고 있는 셈이다.
UN 식량농업기구는 이미 2006년에 ‘공장식 축산과 같은 지금의 축산방식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공장식 축산이 여전히 축산업을 떠받치고 있다. ‘생산성’을 위시한 공장식 축산이 소비자에게 양질의 고기를, 달걀을, 유제품을 싼 값에 공급해 주리라는 착각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 제품들에 지불하는 가격은 새로 매겨져야 한다. 우리가 공장식 축산을 위해 포기하는 것은 동물의 삶을 넘어선 지구의 미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