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속 비명만 가득했던 축제의 전야

돼지가 죽던 그날, 비질 현장에 가다

※ 본 글은 돼지가 죽는 도축업장 앞을 직접 방문하고 작성한 것으로, 표현이나 사진이 다소 노골적입니다. 읽으면서 불편함을 느낄 수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5월 13일 수요일 오전, ‘서울애니멀세이브’가 주최하는 비질 현장을 찾았다. 비질은 철야기도를 의미하는 단어 ‘vigil’에서 유래한 것으로, 도축장 앞에서 동물들의 죽음을 추모하는 활동이다. 2010년 12월 결성된 캐나다 동물보호단체 ‘토론토 피그세이브’가 도축장으로 향하는 돼지에게 물과 음식을 준 것이 비질의 시초다. 비질에 참여하는 이들은 떠나간 생명을 추도하면서 육식주의 사회가 가리는 고통을 기록하고 알리고자 한다.

  이번 비질은 경기도 화성시의 한 도축업장 앞에서 진행됐다.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려 현장에 도착했다. 탁 트인 조용한 평야에 위치한 도축장은 평화롭게 느껴졌다. 돼지의 비명소리가 들리기 전까진. 이곳에서만 하루 2,000여 마리의 돼지와 50여 마리의 소가 죽는다. 5월 13일 비질은 5명만 참여한 채 소규모로 이뤄졌다. 지난해 유행한 아프리카돼지열병과 최근 유행 중인 코로나19 바이러스 탓에 축산농가의 상황이 좋지 않아, 비질은 다소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시작됐다.

AM 8:40 / 울지 않던 소들

  도축장 앞에 첫 번째 차가 정차했다. 두 마리의 얼룩소가 타고 있었다. 소는 낙농업 농가에서 더는 착유가 불가능하거나 다친 경우에 한두 마리씩 작은 트럭에 태워 온다. 아프면 치료를 받는 것이 아니라 도축장으로 보내진다. 더 이상 식량으로서의 상품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소의 머리 가운데에는 빨간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도축 과정에서 이마 한가운데에 공기총을 쏘아 소를 기절시키는데, 그 자리를 미리 그려둔 것이다. 곧 죽을 운명임을 드러내는 일종의 표식이다. 소들은 울지도 않고, 그저 철창 밖을 바라볼 뿐이었다.

AM 9:00 / “나에겐 ‘고기’가 아니다”

  누렁소 한 마리를 태운 또 다른 트럭이 멈춰 서면서 비질 참여자들과 축산업자 사이에 작은 말다툼이 벌어졌다. 비질에 참여한 A씨가 소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자 바닥에 늘어져 있던 소가 급하게 일어났다. 이 모습을 본 소의 주인은 “이러면 (소가 놀라) 나중에 사후경직 와서 고깃값 잘 안 나간다”며 책임질 것이냐고 화를 냈다. 활동가가 비질 활동을 설명하며 상황은 일단락됐지만, 이후 A씨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소를 ‘고기’로밖에 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고 화가 난다”는 말을 전했다.

AM 9:15 / 돼지를 처음 마주하다

▲트럭 안에서 꼼짝하지 못한 채 겹쳐진 돼지들 ⓒ서울애니멀세이브

  처음으로 돼지를 실은 한 트럭이 도축장 앞에 섰다. 2층으로 된 트럭에 80여 마리의 돼지가 한꺼번에 실려왔다. 트럭 안은 빈 공간이 하나도 없어 돼지들은 서로 살을 겹친 채, 꼼짝 못하고 울고 있었다. 섬나리 활동가는 “트럭 속 돼지들은 철창을 물었다 놨다 하는 반복적 이상행동을 보이기도 하지만, 체념한 듯 그냥 주저앉아 있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가까이서 보니 돼지들의 눈은 붉게 충혈돼 있었다. 심지어 눈이 뒤집혀 있거나 속살이 다 튀어나와 흰자위를 다 가리고 있을 때도 있다고 활동가들은 설명했다. 돼지 한 마리의 모습이 심상치 않아 자세히 보니 울컥하고 토사물을 뱉어내고 있었다. 아무것도 먹거나 마시지 못한 채 트럭에 갇혀 먼 길을 오면서 멀미에 시달린 것이다. 비질 참여자들은 오물이 묻은 트럭에 주저 없이 가까이 다가가서 돼지들과 눈을 맞췄다. 비질에 참여하는 많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돼지 하나하나의 눈빛이 모두 다르다’, ‘모두 다른 돼지들이다’라고 말한다.

AM 9:30 / 도축장에 맴돌던 돼지의 비명

  비질 참여자들은 도축장 주변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주는 요소가 ‘소리’라고 말한다. 실제로 이날 늦게 도축장에 도착해 돼지를 실은 트럭을 보지 못한 B씨는 “오히려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 안을 더욱 상상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돼지들은 곧 닥쳐올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듯 들어가기 전부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트럭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난 후에도 비명은 계속됐다. 국내에서 돼지는 보통 전살법으로 도축된다. 전기로 충격을 줘서 의식을 잃게 만든 다음, 거꾸로 매단다. 그 상태에서 칼로 목을 그어 피가 다 빠져나오도록 방혈 작업을 한 후, 뜨거운 물로 돼지를 익혀 털을 모두 벗겨낸다. 섬나리 활동가는 “전기로 충격을 주지만, 10마리 중 한 마리는 의식이 있는 채로 살해된다”고 말했다.

AM 10:20 /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돼지를 싣고 들어갔던 트럭들이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업장에는 트럭이 들고 나는 통로가 하나여서 돼지를 실은 트럭과 돼지가 모두 사라진 트럭이 마주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소독과 청소를 마치고 나온 트럭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깨끗했다. 반면 업장으로 들어가는 트럭은 돼지들이 멀미로 토를 하거나 그 자리에서 배변하다보니 오물로 뒤덮여있었다. 두 트럭이 교차하는 모습은 기괴했다.

▲도축이 끝난 후 소독돼 나오는 트럭과 돼지들을 싣고 도축을 기다리는 트럭

  모든 트럭은 도축장에 들어가기 전과 나온 후, 바닥에 노란선으로 그려진 사각형 위에 잠시 멈춰 선다. 섬나리 활동가는 그 사각형을 가리키며 바닥에 저울을 설치한 시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트럭이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무게를 재서 도축장 안에서 죽은 돼지들의 무게가 얼마인지 측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5월부터 서울애니멀세이브의 비질에 참여했다는 A씨는 “처음엔 뭐가 뭔지 몰랐지만 갈수록 감정이 느껴졌고, 그 감정은 올 때마다 다르다”고 말했다. 이어 “돼지들을 봐도 아무렇지 않을 때가 있는가 하면, 어떨 땐 도축장에서 나오는 빈 트럭만 봐도 눈물이 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AM 10:45 / 동물의 고통에 무뎌지지 말 것

  어색한 장면도 있었다. 도축장에 들어갈 때, 직원이 활동가를 보고 “왔어?”하며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도축업장과 동물보호단체의 독특한 공존에 대한 궁금증이 사라지지 않아 활동가에게 상황을 물었다. 섬나리 활동가는 “여기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사실 동물들이 겪는 죽음의 고통을 누구보다도 잘 알 분들”이라며 입을 열었다. “단지 도축장이 일상적인 일터이고, (우리 사회가) 육식이 당연시되는 사회이기 때문에 그런 고통들에 무뎌진 것뿐”이라고 언급했다. 종종 도축장 직원들과 동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는 섬나리 활동가는 “처음엔 화도 내셨지만 지속적으로 방문하면서 이야기해보니 직원들과 관계 형성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심지어 여름엔 비질 참여자들에게 박카스를, 겨울엔 따뜻한 물을 챙겨준 적도 있다고 한다. “우리가 그저 동물의 마지막 순간을 추모하기 위해서 이곳에 온다는 걸 이제 아시는 듯하다”고 섬나리 활동가는 생각을 전했다.

  그는 도축업장 직원들과 동물의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비질이 육식을 당연시하는 사회에 일으킨 작은 변화라고 긍정적으로 평했다. 마찬가지로 식탁 위의 고기에 익숙해져버린 사람들도 비질 현장에 한번 오고나면 돼지가 겪는 고통을 먼저 떠올리게 되리라는 것이 활동가들의 생각이다.

AM 11:30 / 인간은 그들을 남김없이 먹는다

  비질 참여자들은 도축장에서 나와 걸어서 5분 거리의 도매상가로 향했다. 육류를 가공하고 판매하는 곳이다. 소와 돼지의 잘린 머리들이 털이 다 벗겨진 채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도축장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온기를 지니고 있었으나, 이곳에는 눈을 감은 창백한 사체뿐이었다. A씨는 “털이 덜 뽑혀서 조금 남아 있는 소의 머리를 봤다”며 “살아있을 때의 모습이 생각나 더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살부터 창자, 혀까지 소와 돼지의 모든 부분을 남김없이 먹는다. 온몸이 곧 인간의 음식이 된다.

PM 12:30 / 고통을 마주함으로써 얻은 힘

  활동이 끝난 후, 참여자들은 도축장 옆 공원에 모여서 소감을 나눴다. 비질에 두 번째로 참여했다는 최범구 씨는 “돼지를 실은 트럭이 지나갈 때는 처음 버스에서 내려 도축장 앞에서 맡았던 악취와는 다른 돼지 냄새가 났다”며 “악취가 아니라 진짜 돼지의 살 냄새”를 느꼈다고 전했다. 그는 살아있는 돼지의 체취를 실제로 맡으니 비건으로 살아가는 데에 더욱 힘을 느낀다고 했다. 식용으로 사육되는 동물들의 죽음은 도시에서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은폐되고 무뎌지는 현실이다.

  소와 돼지는 출생부터 죽음까지, 생의 매 순간을 통제받는다. 인간의 목적에 의해 태어나고 길러져 인간이 소비하는 상품으로 삶을 마감하는 그들에게, 자유는 허락되지 않는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4월 기준 국내에서 한 달 동안 도축된 돼지는 1,604,913마리다. 1분에 40마리, 이 기사를 읽는 5분 동안 200마리의 돼지가 죽은 셈이다. 그들의 죽음은 사회의 관심 밖에 있다. 애초에 인간의 축제에서 제물로 희생될 운명으로 태어난 ‘고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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