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범대생은 4학년 1학기가 되면 학교로 교생 실습을 나갑니다. 코로나로 혼란스럽던 와중에도 제게 사랑스러운 학생들을 만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지식이 많으면 잘 가르칠 수 있을까요. 그렇지만은 않기에 가르치는 방법을 따로 배우는 사범대가 존재할 겁니다. 교육 현장에서 제 수업은 종종 실망스러웠습니다. 충분히 준비했다고 느껴 자신만만하게 수업에 들어가도, 막상 설명을 하다보면 학생들의 혼란스러운 눈망울만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정확하게 설명하기 위해 밤을 지새 준비한 것들이 오히려 학습을 방해하는 걸 보자 대체 얼마나,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혼란스럽기만 한 시간이 흘렀습니다. 

짧은 실습 동안 강렬하게 와 닿은 것은 수업의 중심을 철저히 학습자에 두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화려한 피피티 디자인과 복잡하고 멋있는 예시를 걷어내고 진정 학생들을 이해시키기 위해 진행한 수업이 학생들을 훌륭한 학습적 성취로 이끌었습니다.

  제가 저널에서 보낸 일 년의 시간도 얼마나, 어떻게 써야 할지 머뭇거리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떤 주제에 대해 감히 나의 시선을 담아낼 수 있을지, 그 시선이 편향돼서 또 다른 의미에서 폭력적이진 않은지 고민했습니다. 기성 언론이 이미 선점한 의제를 되풀이하고 있지만은 않은지, 또 그걸 피하려다가 중요한 담론은 애써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저널에서 보내는 시간이 오래될수록 머뭇거리는 시간은 길어졌습니다. 

기자로서 마지막 호를 끝내는 지금의 시점에도, 좌절과 확신을 되풀이하며 도달한 곳이 어딘지 알기 어렵습니다. 다만 모든 동료 기자들의 기사에서 현장의 진실과 당사자의 진정성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고자하는 열정을 확인했을 뿐입니다. 기자들이 각자 포착하고자 하는 사회의 장면들은 상이하지만 모든 기자는 그 장면의 진실을 찾고자 합니다. 그 진실을 중심에 두고 표현을 가다듬고 시선을 담아내는 치열한 과정이 머뭇거림 그 자체였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마음에 쏙 드는 기사를 적어내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기자들 마음에 진실을 담고자 하는 중심이 있다면 모든 기사에 촘촘한 온기가 담겨있다고 느낍니다. 저널 기자들의 치열한 고민이 앞으로도 계속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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