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경영권이 아니야

‘차등의결권’의 그림자를 들여다보다

  2017년 문재인 정부는 ‘혁신성장’을 내세우며 우리 경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라고 약속했다. 기업의 혁신을 촉발해 경제 전반의 생산성을 높이고 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꾀하겠다는 의미다.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혁신성장 정책 추진 방향’에 따르면, 정부는 산업 혁신을 위해 ‘벤처기업’ 육성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정부가 사회적 자본을 조성해 민간이 혁신의 주체로서 역할하게 만든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정부와 여당은 벤처 친화적 환경 조성을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1월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은 21대 총선 ‘2호 공약’으로 ‘벤처 4대 강국’을 내걸며 비상장 벤처기업 차등의결권 주식 도입을 약속했다. 과연 차등의결권은 혁신으로 가는 길일까.

1주 1의결권을 깨는 차등의결권

  오늘날 기업의 일반적인 형태로 자리 잡은 주식회사는 주식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다. 주식은 주식회사의 자본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로, 기업에 자금을 제공한 사람에게 출자의 대가로 주어진다. 주식을 보유한 주주들은 각자의 지분에 비례하는 만큼 의결권을 행사함으로써 회사의 경영에 참여할 수 있다. 즉 의결권을 많이 가진 주주는 직접 경영에 뛰어들거나, 원하는 경영진을 선임해 기업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현행 상법은 ‘1주 1의결권’ 원칙에 어긋나는 주식의 발행을 금지하고 있다. 성장 단계에 있는 기업의 창업자들은 투자 유치를 통한 기업 규모 확대과 경영권 안정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진다. 1주 1의결권 원칙 하에선 자금 조달을 위해 주식을 추가로 발행할수록 창업자의 지분이 상대적으로 감소해 경영권이 불안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연구원이 2019년 4월 벤처기업인 20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6%(117명)가 외부 투자로 인한 지분 희석을 염려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차등의결권 제도는 1주 1의결권 원칙을 깨고 1주당 의결권이 상이한 여러 종류의 주식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한다. 차등의결권 도입은 일반적으로 기존 경영진 또는 지배주주에 유리한데, 높은 의결권을 가진 주식을 자신들에게 배정해 적은 지분을 가지고도 회사의 의사결정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높은 의결권을 가진 주식을 시장에 내놓지 않는 한, 다른 투자자들은 지배주주의 지분보다 더 많은 주식을 매입해야 경영권을 손에 넣을 수 있다. 그래서 기존 지배주주는 차등의결권 주식을 통해 경영권을 쉽게 방어할 수 있다. 일례로 미국의 포드 사 창업주 후손들은 차등의결권 주식을 통해 2% 지분만으로 40%의 의결권을 행사하며 4대째 경영권을 지키고 있다.

규제를 풀면 날아오를 수 있을까

  벤처기업인들이 경영권 상실을 우려하며 투자 유치를 주저하고 있다는 지적에, 정부·여당은 벤처 차등의결권을 주요 정책 의제로 선정했다. 신생 벤처기업에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해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와 혁신을 장려하겠다는 의도다. 지난 2018년 10월, 당시 민주당 정책위원회 김태년 의장은 벤처기업가의 경영권 안정화 필요성을 강조하며 벤처 차등의결권 도입을 당론으로 내세웠다. 나아가 지난 총선 당시엔 여당의 총선 핵심 공약으로도 제시되기도 했다.

  결국 벤처 차등의결권 입법은 21대 국회 시작과 동시에 추진됐다. 21대 국회가 개원한 지난 6월 5일, 민주당 양경숙 의원은 비상장 벤처기업 차등의결권 주식 도입을 골자로 하는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일부개정안(벤처기업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비상장 벤처기업은 1주당 의결권이 2개에서 10개 이하인 ‘차등의결권 주식’을 발행할 수 있게 된다. 비상장 벤처기업에 한해 1주 1의결권을 규정한 상법에 예외를 두는 것이다. 양 의원은 ‘벤처기업의 경우 창업자의 철학과 노하우가 기업발전에 필수적이지만 경영권이 취약해 창업정신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며 입법 의도를 밝혔다.

▲2004년 미국 구글 사는 차등의결권 주식을 도입했다. ⓒGregory Varnum

  차등의결권 도입 찬성 측은 해외 사례를 들어 차등의결권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송수환 전문위원은 ‘벤처기업법 개정안 검토보고서’에서 ‘OECD 36개국 중 17개국이 차등의결권 주식 발행을 허용하고 있고, 벤처 붐이 일어나는 아시아 국가들도 최근 차등의결권 제도를 적극 도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소기업연구원 최수정 연구원 역시 지난 7월 중소기업벤처부 주최로 열린 공청회에서 2004년 구글 상장 이후 미국 벤처들은 창업자의 경영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상장됐다며 ‘벤처기업이 혁신을 펼치는 데 족쇄가 되는 부분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차등의결권 입법을 지지했다.

참호로 들어가 내 ‘밥그릇’만 챙기자

  벤처기업 창업자의 경영권을 보장하는 것이 정말로 혁신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경제학의 ‘대리인 이론(principal-agent theory)’은 사뭇 다른 관점을 제공한다. 대리인 이론은 주인과 대리인의 이해관계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주식회사에서 회사의 주인은 자본을 투자한 주주고, 대리인은 주주들을 대신해 기업을 경영하는 경영진이다. 경영진의 의사결정은 기업가치를 변화시켜 주주들의 부(富)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경영진과 주주들은 처한 여건이 달라 이해관계가 완전히 일치할 수 없다. 여기서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문제가 발생한다. 즉, 대리인이 주인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방향으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주식회사에서 많은 정보와 권한을 가진 경영진은 다른 주주들의 이익에 어긋나는 방향으로 사익을 취하기 더욱 쉽다.

  이러한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 문제는 기업의 소유구조와 지배구조가 일치하지 않을수록 심해진다. 소유와 지배 사이의 괴리가 커질수록 주주와 경영진의 이해관계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적은 지분을 소유한 경영진은 기업에 투자한 돈이 적기 때문에, 기업가치 극대화라는 본연의 임무를 위해 노력할 유인이 부족하다. 그 대신 경영진 자신의 사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의사결정 할 가능성이 커진다.

  차등의결권은 기존 지배주주에 적은 지분으로 기업 경영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함으로써 소유와 지배의 괴리를 심화한다. 박상인 교수(행정대학원)는 “비교적 건전한 자본시장을 갖춘 미국에서조차 차등의결권 주식 도입의 폐해 사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며 대표적인 사례로 미국의 미디어 기업 비아콤(Viacom) 사를 꼽았다. 2016년 비아콤 사의 레드스톤 회장이 연달아 구설에 오르며 회사 주가가 3년 동안 55%가량 떨어졌지만, 그가 차등의결권을 통해 비아콤 사의 의결권 80%를 쥐고 있어 다른 투자자들이 회사 경영을 정상화하는 일이 불가능했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실증연구들 역시 차등의결권 도입에 회의적이다. 2010년 미국 하버드대 폴 곰퍼스(Paul Gompers) 교수 연구팀은 1995-2002년 미국 증권시장 데이터 분석을 통해 차등의결권으로 인해 소유와 지배의 괴리가 커질수록 기업가치가 감소함을 보여줬다. 2018년 미국 노트르담대 마르테인 크레머르스(Martijn Cremers) 교수의 연구는 차등의결권으로 인한 기업의 상대적 자본수익률 우위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라지는 것을 지적하기도 했다.

  차등의결권이 기업가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기존에 차등의결권을 도입했던 해외 금융 당국은 점차 규제에 나서고 있다. 박상인 교수는 “제도의 부정적 효과 때문에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는 차등의결권 기업의 상장을 불허해왔고, 유럽의 금융감독기구들도 2000년대에 차등의결권 금지를 추진한 바 있다”며 차등의결권 허용이 세계적 추세라는 주장을 일축했다.

  전문가들은 미국 벤처들이 차등의결권 제도에 힘입어 성장했다는 주장 역시 선후 관계를 혼동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경영대 김우진 교수는 “차등의결권이 있어서 구글이 나온 것이 아니라 구글이기 때문에 차등의결권을 도입할 수 있었던 것”이라며 도입 찬성 측의 논거를 비판했다. 구글은 상장 당시 투자자들로부터 높은 성장잠재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차등의결권 주식을 발행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기업 재무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자신의 ‘밥그릇’ 지키기에만 골몰하는 경영진의 모습을 종종 참호 속에 숨는 병사에 빗대곤 한다. 오세형 활동가(경실련)는 “차등의결권 도입은 지배주주의 ‘참호’를 공고화해 성장과 혁신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말 것이다”고 말했다.

재벌 경영권 승계에 악용될 우려도

  차등의결권이 한국에 맞지 않는 제도라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기술보증기금, 중소기업진흥공단 등 정부 기관이 요구하는 서류를 제출하는 것만으로 벤처기업 설립이 가능하다. 물론 재벌 후계자가 벤처를 설립하는 데도 아무런 제약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을 지배하는 재벌 가문들은 비상장 벤처 차등의결권을 이용해 쉽게 경영권을 세습할 수 있다.

  박상인 교수는 “재벌 3·4세가 비상장 벤처를 설립해 그룹 지주회사 지분을 인수하는 등의 방식으로 경영권 세습이 가능하다”며 재벌의 차등의결권 악용 가능성을 지적했다. 재벌 후계자들은 자신이 설립한 벤처의 차등의결권 주식을 배정받으면 벤처는 물론이고 지주회사, 나아가 그룹 전체의 지배권을 쥘 수 있게 된다. 오세형 활동가는 “정부와 여당이 혁신성장이라는 명분 아래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차등의결권 도입은 재벌 세습의 화룡점정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벤처기업 차등의결권 도입은 궁극적으로 1주 1의결권 원칙을 무너뜨릴 것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국내 최대 재계 단체인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2015년부터 1주 1의결권을 규정한 상법 369조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기업인들이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맞서 경영권 방어에 지나친 비용을 부담한다는 이유에서다. 전경련이 지분 전체를 소유한 <한국경제>는 민주당이 벤처 차등의결권 도입을 추진하자 ‘차등의결권을 기업 규모에 무관하게 모두 부여해야 기업의 안정적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는 취지의 논평을 냈다. 대기업도 차등의결권 주식을 발행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오세형 활동가는 “재계는 벤처기업법 개정안을 발판 삼아 차등의결권 적용 범위 확대를 요구할 것이고, 종국에는 더 극단적인 경영권 방어수단 도입을 위해 압력을 행사할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우리나라의 현실을 고려하면 재계가 내세우는 적대적 M&A 방어를 위해 차등의결권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부족하다. 김우진 교수는 “2010년부터 2018년까지 8년 동안 국내에서 시도된 적대적 M&A는 단 1건뿐이고 이마저도 성공하지 못했다”며 우리 자본시장의 현실을 지적했다. 오히려 ‘경영권 교체 가능성만으로도 경영진이 비효율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는 미국 경제학자 마이클 젠슨(Michael Jensen)의 연구에 비춰볼 때, 경영권 교체 압력이 사실상 부재한 우리나라의 경우 M&A 활성화를 통해 경영진을 적절히 규율할 필요가 있다.

▲’창업 1번지’로 불리는 판교 테크노밸리 ⓒCrowdPic

  혁신을 위한 사회적 자본 조성이 저성장이라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조처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기업인들의 제 ‘밥그릇’ 지키기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에서 벤처 차등의결권은 되려 혁신에 방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의 혁신가들이 참호 속에 갇히지 않도록 혁신성장 정책 수립에 신중을 기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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