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장애인 고용을 위한 노력이 미진하다. 2019년 장애인 고용률은 전체 고용률의 절반 수준인 34%에 그친다. 1990년부터 장애인 의무고용제가 시행됐지만 중증장애인의 고용률은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발달장애인은 장애 특성을 이유로 고용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발달장애인의 88.9%가 만 18세에서 64세로 대다수가 경제활동인구지만, 장애인경제활동실태조사에 따르면 2019년 발달장애인의 고용률은 27%에 불과하다. 노동시장에서 외면당한 발달장애인이 머물게 된 일터는 어떤지 살펴봤다.
발달장애인에겐 주어지지 않은 노동 선택지
발달장애는 지적장애와 자폐성장애를 통칭한다. 발달장애는 사회성 장애로 분류되는데, 발달장애인들은 의사소통이나 사회적 활동을 어려워하는 특성이 있다. 유독 한 분야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본인만의 특성이 뚜렷해 자신의 욕구를 타협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성 장애의 특성상 지적 생산 능력이 떨어진다고 평가받기에 발달장애인에게 주어진 노동의 폭은 다른 장애 유형보다도 현저히 적으며, 노동 시장 진입조차 어렵다.
현재 우리나라 성인 발달장애인 4명 중 3명은 미취업 상태다. 학교를 졸업한 후엔 갈 곳이 없어 집에만 있어야 한다. 5명의 발달장애인과 일하고 있는 ‘성미산좋은날협동조합’ 최성욱 운영위원장은 “(일자리가 없는 발달장애인은) 집에서 아무런 할 일 없이 침대에 누워있거나, 컴퓨터를 할 뿐”이라고 말한다. 일자리가 없어 경제적 자립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실상 가족이 부양 부담을 전부 떠맡고 있다. 발달장애인 권리를 요구하는 ‘피플퍼스트서울센터’ 송효정 사무국장은 현 상황에서는 “장애인이 절대 빈곤을 벗어날 수 없다”며 장애인 노동권 확보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발달장애인 고용 사업장은 크게 일반사업장과 장애인 표준사업장, 직업재활시설로 나뉘며 보호고용 형태의 직업재활시설은 보호작업장과 근로사업장으로 구분된다. 보호작업장에선 노동과 훈련이 동시에 이뤄지며, 여기서 훈련을 받아 작업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장애인 노동자들은 근로사업장으로 옮겨갈 수 있다. 직업재활시설은 일반사업장에 취업이 어려운 중증장애인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존재하는데, 시설 내 발달장애인 비중이 2018년 기준 각각 83%(보호작업장), 75%(근로사업장)에 달한다. 이는 다른 장애유형보다 발달장애인이 일반 노동 시장으로부터 배제돼 ‘직업재활’ 형태로 노동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시사한다. 원칙적으로 직업재활시설은 일반고용으로 들어가기 이전 단계지만, 직업재활시설의 발달장애인 노동자들은 대개 일반고용으로 전이되지 않고 직업재활시설에 머물러 있다.
최저임금제 바깥의 노동
발달장애인은 노동자가 되기도 어렵지만, 일을 한다고 해서 생계를 보장받는 것도 아니다. 발달장애인 일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보호작업장에서는 보통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지불한다. 최저임금법 7조에 따라 ‘정신장애나 신체장애로 근로능력이 현저히 낮은 자’를 최저임금 적용에서 제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적용 제외 제도는 임금을 낮춰서라도 장애인 고용률을 높이려는 취지로 시행됐지만, 임금의 하한선을 정하는 등 장애인 노동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보호 장치도 마련되지 않았다. 최근엔 ‘시급 250원’을 받는 장애인 노동자의 사례가 알려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2019년 최저임금적용제외 근로장애인의 평균 시급은 3,056원에 불과하다.
최저임금 적용 제외 제도는 장애계에서 반복적으로 지적되는 문제다. 2018년에는 ‘전국장애인철폐연대(전장연)’, ‘장애인부모연대’ 등 장애인 단체들이 연대해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인 끝에 고용노동부와 함께 민관협의체인 ‘최저임금 적용 제외 제도 개편을 위한 TF(최저임금 TF)’를구성했다. TF 논의 이후 정부는 직업재활시설 노동자 중 일반고용으로 재취업을 희망하는 장애인 노동자에게 월 30만원의 고용전환촉진수당을 지급하는 ‘직업재활시설 저임금 장애인 노동자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최저임금 TF에 참여했던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김영애 교수(사회복지학과)는 “일반고용으로 전이가 어려운 현장을 고려할 때 실효성이 있는 정책인지 의문스럽다”고 밝혔다. 장애계에서 전이지원금 지급에 합의한 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최근 미래통합당 김예지 의원이 장애인 노동자의 최저임금을 보장하고 고용 위축을 보완하기 위해 임금의 일부를 국가가 보전하는 내용을 담은 ‘최저임금법 일부개정법률안’과 ‘장애인고용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최저임금 TF 활동이 마무리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제도 개선은 이뤄지지 않았다.
김영애 교수는 장애인 고용 정책에 있어 보다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장애인 고용 사업을 확대하기 위해선 정부 예산이 필수적인데 장애인 고용 사업과 같이 성과가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사업에 대해선 정부가 지원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김 교수는 “이와 같은 입장 때문에 최저임금 보전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라며 “결국 장기적으로는 국가 지원이 일정 부분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애인 고용 사업장, 각개전투의 장
최저임금 적용 제외 제도는 보호작업장의 재정 상태와 연관된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보조금은 시설 운영비만 해당되고, 인건비나 장비 구입 등의 비용은 각 보호작업장이 개별적으로 충당해야 한다. 교육과 훈련을 동시에 진행하는 보호작업장 입장에선 재정적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고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주고 싶어도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안양시장애인보호작업장을 운영하고 있는 이형묵 시설장은 “임금을 보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다면 프로그램을 (지금보다) 활발히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재정적 한계에 아쉬움을 표했다. 보호작업장뿐만 아니라 최저임금을 지급하고 있는 근로사업장이나 장애인 표준 사업장의 사정도 크게 다르진 않다. 사회적 기업 꿈더하기 공현숙 팀장은 정책적 개선 방안을 묻는 질문에 “재정적 지원이 가장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4월 정부는 별도의 장애인 재정 지원을 받는 단체에 장애인 고용장려금 지급을 제한하도록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장애인 고용 지원금에 대한 부정 수급과 중복수혜를 막겠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전장연 변재원 정책국장은 “(지원금이 아니면 시설 운영을 할 수 없는) 현장의 목소리를 모르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현재 장애인 고용 지원금이 노동자 임금이나 시설 운영비를 충당하는 데에 쓰이는 만큼 “단순히 인센티브를 준다고만 피상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고용 위기 상황에서 고용취약계층인 장애인의 고용 안정을 위해 일시적으로 장애인 고용유지 지원금의 지원조건이 완화된 상태지만, 언제까지 지속될지 미지수다.
장애인 고용 사업장에 대한 간접적인 정부 지원책이 존재하지만 어려움을 해결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공공기관에서 중증장애인이 만든 제품을 우선적으로 구매하도록 하는 중증장애인생산품 우선구매제도가 있지만, 현재는 사회적 기업 등 우선구매 대상 범위가 확대돼 비장애인 생산품과도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건복지부 차원에서 직업재활시설을 대상으로 경영컨설팅 지원 사업을 실시했지만 1년에 30개의 시설만 참여 가능할 뿐 아니라 2020년에는 시행되지 않았다.
정부의 지원 부족으로 인한 부담은 고스란히 사업장의 몫이 된다. 꿈더하기는 발달장애인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지급하기 위해 사업장 1층에 카페를 운영한다. 사업장에서 내는 수익만으로는 임금을 충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증장애인 고용 사업장 대부분이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 안양시장애인보호작업장 소윤진 직업재활부장은 “장애인 근로자들이 물량을 채우지 못하면 비장애인 근로자들이 추가 근로를 해서 수량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중증장애인 고용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업에 일반적인 기업과 동등한 수준의 생산성이 요구되기 때문에 생기는 구조적인 문제다.

재정난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장애인 고용 사업장을 계속 운영하는 이유는 장애인들에게 일터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발달장애인에게 주어진 일터는 없고, 발달장애인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부의 정책 또한 미비하기 때문이다. 최성욱 운영위원장은 “발달장애인 노동 사업을 추진하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발달장애인을 둔 부모들이 나서서 사업장을 운영하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중증장애인 일자리 창출에서 노동시장에서의 생존경쟁까지 현재로서는 발달장애인 개인이 그 무게를 감당하고 있다. 관련 제도와 정책적 지원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장애인 고용이 활성화될 수 없으며, 장애인 고용 사업장 역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는 최저임금 적용 제외 제도 등을 통해 고스란히 장애인 노동자들에게 전가된다. 노동의 사각지대에 처한 장애인들이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가질 수 있는 제도적 해결방안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