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가까이에, 책 한 권 한 권에 숨결을 불어넣는 특별한 장소들이 있다. 대형 프랜차이즈 서점이 보급된 시대의 동네 책방이란 어떤 의미일까. 매월 다른 서가를 꾸미고 책들에 담긴 이야기를 소개하는 서점, 책과 술을 곁들여 즐길 수 있는 공간, 음악과 그림을 책 안에 녹여낸 작업실 같은 북카페, 그리고 30년간 더 큰꿈들의 발상지 역할을 해온 인문사회과학 서점. 작지만 품고 있는 세계는 그보다 훨씬 큰 독립서점들을 찾아 제각기 간직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오해는 마시라! 요즘은 동네 책방들이 손수 엄선한 책 목록도 온라인에서 그대로 만나볼 수 있다. 코로나 시대, 여의치 않다면 온라인으로나마 그 정취를 느껴보면 어떨까.
#1. 책과 술이 있는 살롱드북
서울대입구역에서 도보로 7분 거리 골목길에 특별한 독립서점이 있다. 책방 ‘살롱드북’은 ‘책과 술이 있는 동네책방’으로 18세기 유럽 지식인들의 토론과 사교의 장이었던 ‘살롱’에서 이름을 따왔다. 이제는 독서 모임이나 낭독회부터 소규모 공연까지 다채롭게 펼쳐지는 복합예술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Q1. 책방에서 술을 파는 게 흔치 않은데?
워낙 술을 마시면서 책을 읽는 걸 좋아해서 시작했다. 특히 술을 마시면서 책을 읽는 공간 중 여자분들이 갈 수 있는 공간이 없어서 살롱드북을 열게 됐다. 서점과 바(Bar) 사이의 균형점을 잘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Q2. 손님들과 어떤 식으로 교류하는지?
행사나 모임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어서 교류가 많은 편이다. 독서 모임은 3년, ‘치타의 산책’이라는 글쓰기 모임은 1년 넘게 진행하고 있다. 손님들이 문을 열기도 하고 음료나 술을 만들 줄 알아서 가게도 대신 봐주면서 식구처럼 지낸다.

Q3. 서울대저널 독자들에게 남기고 싶은 한마디
코로나로 방문이 어렵더라도 온라인 스토어를 애용해주시라. 동네의 독립서점들이 가진 커뮤니티로서의 기능을 지켜내려면 손님 여러분의 역할이 중요하다. 서점마다 인스타그램으로 소식도 받아볼 수 있다.
[살롱드북]
주소: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부순환로231길 11 (봉천동, 1층)
Instagram: salon_book
홈페이지: salongbook.modoo.at

#2. 비어서 자유로운, ‘엠프디폴더스’

Q1. 서점 곳곳에 책 관련 기발한 소품이 많은데?
이곳 수업을 통해 인연을 맺은 분들이 그림, 글, 독립출판을 통해 다시 서점과 맺어진다. ‘주머니 시’라는 이름의 ‘시-가렛’은 담뱃갑을 형상화한 짧은 시 글귀 모음집인데 책방 수강생의 손에서 탄생했다. 이외에도 짧은 글에 디자인을 더해 12가지 주제로 책을 추천하는 큐레이션 팸플릿도 있고 책에 관련된 엽서나 다양한 캐릭터 소품들도 만나보실 수 있다.


Q2. 관악구 독립책방끼리는 어떻게 교류하는지?
관악구 인근에만 9-10개의 독립책방이 있는데, 이중 먼저 생긴 다섯 곳은 ‘책방지도’로 엮여 있고 관악구 예산을 지원받아 공동으로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서점에 비치된 관악구 책방지도를 들고 스탬프 투어를 마치면 엽서와 다섯 책방주인을 모티프로 한 만화책을 증정하는데 인기가 있다.


Q3. 이번 달의 ‘월간서가’를 소개한다면?
‘월간서가’는 매월 주제에 따라 큐레이션을 바꾸는 프로젝트인데, 8월에는 ‘너이면서 나이기도 한’이란 제목으로 여성서사를 다룬다. 여성끼리의 연대, 자매애, 유대감을 말하는 어떤 언니, 엄마, 할머니의이야기들로 서가를 채웠다. 개인의 서사가 결국 여성 공동체 전체의 문제로 확장되는 지점들을 목격하실 수 있을 거다. 그중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의 리더십을 다룬 여성주의 잡지 <우먼카인드(Womankind)>12호를 권하고 싶다. 빈칸에 ‘나’의 이야기를 함께 기록할 수 있는 독립서적물들도 비치돼 있다.

[엠프티폴더스]
주소: 서울특별시 관악구 봉천동 66-69번지 지층 1호
Instagram: emptyfolders
#3.‘하얀정원’의‘아름다움’
책방 ‘하얀정원’은 1인 출판사 ‘아름다움’ 직영 서점이면서 정원지기 자매의 특색있는 북 컬렉션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북카페다. 곳곳에서 갤러리이자 창작소, 복합예술공간으로 발돋움해 나가는 하얀정원의 정체성을 읽어낼 수 있다.


Q1. 하얀정원의 부제가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놀이공간’이다. 어떤 점에서 그런가?
이곳에선 ‘아름다움’ 출판이 펴낸 작품에 실린 삽화의 원본과 미대생들의 습작 원화가 전시되는데, 책 한 권 값으로 습작 예술품을 구매할 수 있다. 서점 뒤편 공간은 미니 드럼과 기타 등으로 작은 연습실처럼 꾸며놓았는데 실제 어쿠스틱 공연도 열린다.

(이어서) 현재 매주 열리는 시각예술 공부 모임과 격주로 열리는 ‘VD(Vivid Dreams) Members’ 독서 모임은 생생하게 꿈꾸고 그것을 창작 활동으로 실현할 수 있도록 참가자들을 지원하고 있다. 특히 시각예술 공부 모임은 행운동, 봉천동 일대 특유의 지역적 미감을 살려 올해 12월 관악 아트위크 기간에 선보일 팝업전시도 기획 중이다. 공부를 창작과공유로 확장하고 싶다면 언제든 환영한다.

Q2. 북카페이자 서점인 하얀정원의 큐레이팅과 추천도서가 궁금하다.
미술 도서관처럼 시각예술에 관련된 책과 도록이나 화집을 열람용으로 많이 들여놨다. 감각적인 작품들을 도록으로 감상할 수 있다. 그밖에 좋아하고 알고픈 작가들의 책을 모으는 편이다. 아름다움의 출판물은 문학 서적이 많은데, 동생 정원지기인 홍예린 시인의 시집 『토끼양초』와 『마블링』은 사랑을 테마로 변화하는 시인의 색채를 살펴볼 수 있는 햐안정원의 추천작이다. 갓 출판된 『중박잡문』은 국립중앙박물관의 유물들을 삽화와 함께 김혜린 작가 특유의 시선으로 풀어낸 소설집으로, 작가의 다른 책 『경주잡문』과 함께 주목해달라.


Q3. 오픈한 지 2년, 앞으로의 다짐이 있다면?
‘하얀정원’이 가진 서점이자 창작 공간으로서의 복합성을 정착시켜 더 많은 주제로 공부 모임을 꾸려가고 싶다. 공연이나 기획 전시를 위한 공간으로도 본격적으로 활용해나갈 계획이다.
[하얀정원]
주소: 서울특별시 관악구 봉천동 1671-35번지 신화로즈빌 1층 104호
Instagram: Jardin Blanc
#4. 꺼지지 않는 불씨, ‘그날이 오면’
잊을 수 없는 이름, 대학동 고시촌의 ‘그날이 오면’은 30년 역사를 자랑하는 인문사회과학 서점이다. 1988년 이래 해방사회를 꿈꾸는 서울대 학생들 곁에서 학문과 투쟁의 전초기지로서 대체불가한 고유명사가 됐다. 새 출발을 앞둔 ‘그날이 오면’엔 어제와 내일의 꿈들이 산다.

Q1. ‘그날이 오면’이 지켜온 철학이 있다면?
서점을 열기 전부터 (사회) 운동을 해왔고 서점운영도 운동의 연장선으로 생각하며 이어오고 있다. 처음 문을 연 당시엔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시대적 문제의식이 분명했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학생들의 의지가 강했다. 그래서 ‘그날이 오면’은 학생들에게 이론적 학습과 투쟁의 공간, 나아가 일상의 든든한 기지가 되고자 했고 학생들과 함께 호흡해왔다. 90년대가 지나며 그런 시대정신이 희석되고 학생사회의 분위기 역시 많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공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노력을 이어가는 학생들이 활동하고 연대할 수 있는 공간으로 계속 함께하고 싶다.


Q2. 30년간 ‘그날이 오면’을 운영한 원동력은?
서울대학교 근처 대부분의 인문사회과학 서점들이 문을 닫는 상황에서도 ‘그날이 오면’이 지속할 수 있었던건 다양한 사상과 가치관에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서점마다 배타적으로 책을 들여놓기도 했는데, 어떤 책을 선택하느냐는 독자의 몫이지 서점의 역할은 아니다. 다양한 의견과 사람을 품으려 했기에 많이들 찾아주신 것 같다.

(이어서) ‘그날이 오면’의 ‘오늘’은 수많은 분들의 손길로 엮여 있다. 서점 경영이 어려웠던 2006년 ‘그날이 오면 후원회’가 만들어졌고, 그동안 이곳을 아껴준 학생들과 다양한 분야의 인사들을 초청해 후원강연도 진행했다. 지금 ‘그날이 오면’의 간판을 써주신 신용복 선생님은 강연에서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그날이 오면’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셨다. 변화하는 시대를 헤쳐나가는 의지와 이곳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어 오늘의 ‘그날이 오면’이 있다.


Q3. 앞으로의 계획은?
내년 6월에 ‘그날이 오면’을 처음 시작한 곳으로 다시 이전할 계획이다. 이곳의 역사를 함께 했던 언론, 법조계, 학계 등 여러 분야의 사람들과 뜻을 모아 ‘그날이 오면’의 새 출발을 기념하는 행사를 진행한다.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를 올바로 인식하고 그에 대응하는 주체적 인간으로 거듭나는 것은 시대를 뛰어넘는 목표다. 인문사회과학의 정신이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보여주고 앞으로 그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큰 불길이 될 수 있도록 ‘그날이 올 때까지’ 맡은 역할을 다하겠다.

[그날이 오면]
주소: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로14길 26
홈페이지: www.gna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