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를_묶어_이름을_붙이다

오늘날의 사회운동, ‘해시태그 행동주의’
▲해시태그의 첫 사용 사례로 인정되는 트윗. 이 트윗의 작성자인 크리스 메시나(Chris Messina)는같은 주제에 대한 정보를 기호 ‘#’를 사용하여 묶을 것을 제안했다.

  올해 5월, 미국에선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의 죽음을 계기로 흑인 민권운동이 재점화됐다. 시민들은 인종차별에 대항해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라는 슬로건을 힘줘 외쳤다. 2017년엔 할리우드의 유명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Harvey Weinstein)의 성범죄 가해 사실 폭로를 시작으로 반성폭력 여성운동인 미투(MeToo) 운동이 전 세계를 뒤덮었다. 한국에서도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추행 폭로를 기폭제 삼아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피해를 공론화했다.

  두 운동은 계기도 목표도 다르지만 ‘해시태그’라는 도구를 통해 사회를 바꿀 힘을 얻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BlackLivesMatter, #MeToo라는 슬로건을 중심으로 사회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모였고, ‘#’ 기호에 뒤따른 문구가 사회운동의 이름이 됐다. 오늘날의 사회운동으로 새롭게 등장한 ‘해시태그 행동주의’의 면면을 살펴보고 그 명암을 들여다봤다.

‘#’, 새롭게 등장한 시민들의 무기

  사이버 공간에서의 사회운동은 그리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인터넷이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상용화된 90년대부터, 사이버 공간은 심심치 않게 정치운동의 장으로 활용돼왔다. 이 시기엔 인터넷 커뮤니티나 온라인 게시판, 뉴스 기사의 댓글란 등이 주무대였다. 사이버 공간에서 결집된 의견을 바탕으로 오프라인 시위·집회가 추진되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며 벌어진 2008년 광화문 촛불집회다. 최근의 온라인 사회운동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온라인 공간에서 의견을 나누고, 충분히 많은 목소리가 모이면 집단행동에 나서기도 한다. 다만, 지금 힘을 얻고 있는 온라인 사회운동은 SNS라는 새로운 공간을 무대로 한다는 데서 차이가 있다.

▲해시태그의 첫 사용 사례로 인정되는 트윗. 이 트윗의 작성자인 크리스 메시나(Chris Messina)는같은 주제에 대한 정보를 기호 ‘#’를 사용하여 묶을 것을 제안했다.

  해시태그(#)의 적극적 활용은 SNS를 통한 사회운동의 가장 큰 특징이다. 해시태그란 ‘#’ 모양의 기호로, SNS에서 원하는 정보를 더 쉽게 검색하기 위한 인덱스로 처음 등장했다. SNS에서 사용자들이 짧은 단어나 글 앞에 #를 붙이면 이 기호가 갈피 역할을 하여 추후에 그 단어에 대한 글이나 사진만을 모아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렇게 해시태그는 특정한 주제에 관한 데이터를 묶어내고 그 주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을 한데 모으는 기능을 수행한다.

  SNS 사용자들은 해시태그의 ‘묶음’ 기능에 착안해 이를 정치행동의 수단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BlackLivesMatter처럼 특정한 단어나 표어 앞에 해시태그를 붙여 공유함으로써 사회적 의제를 발굴하고 확산시키는 방식이다. 2010년대 초반 아랍 시민들이 #Egypt(이집트), #ArabSpring(아랍의 봄) 등의 해시태그를 적극적으로 공유해 민주화운동의 일부로 삼았던 것이 시초다.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해시태그의 생성과 공유, 그리고 확산을 통해 이루어지는 형태의 사회운동에 ‘해시태그 행동주의(Hashtag Activism)’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해시태그 행동주의는 2010년대의 사회운동 양상을 완전히 뒤바꿔놓은 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경희대학교 공공거버넌스연구소의 송경재 연구교수는 해시태그 행동주의가 힘을 얻을 수 있던 첫째 이유로 인터넷과 SNS의 파급력 강화를 꼽았다.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더 이상 인터넷이 현실정치를 보조하는 공간에 그치지 않고 역으로 현실정치에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담론장으로 부상한 것이다. 이렇게 성장한 온라인 공간에서 SNS의 위상 역시 빠르게 높아졌다. 송 교수는 SNS를 ‘개인화된 미디어’로 정의하며, “SNS의 등장으로 시민들 각각이 매체와 같은 영향력을 가지고 사회정치적인 의견을 개진할 수 있게 된 것이 해시태그 행동주의의 등장과 확산에 주요하게 작용했다”고 말한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정책전문대학원의 이광석 교수는 해시태그 행동주의의 힘을 ‘정서’에서 찾는다. 이 교수는 해시태그 행동주의를 “다양한 누리꾼들의 정서가 여러 플랫폼을 넘나들며 만들어낸 역동적인 정서의 흐름”으로 정의했다. 그는 “개별 주체들의 정서가 특정한 사회 이슈에 반응하면 트윗·댓글·리트윗·멘션·퍼나르기·공유 등의 방식을 통해 ‘감성 불꽃의 연쇄 꼬리’가 만들어지는데, 이것이 순간적이고도 격렬한 정동을 만들어낸다”고 설명했다. 특히 SNS에선 한 번의 클릭으로 손쉽게 글과 말을 공유할 수 있어 정치운동에 참여하는 데 드는 비용과 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었다. SNS라는 공간은 더 많은 사람들이 큰 부담을 감수하지 않고 모일 수 있는 공론장을 만들었고, 양적으로 증대된 논의는 ‘해시태그’라는 묶음의 기호를 만나면서 하나의 맥락 속에서 의미를 얻었다.

소수자의 목소리를 묶어내다

  해시태그 행동주의를 표방하는 개별 운동의 목표나 양상은 다양하다. 그중 하나는 해시태그를 현실정치에서의 의사표현 수단으로 사용하는 경우다. 특정 정치인을 비판·지지하거나 특정 정책의 입안을 촉구하는 형태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때의 해시태그 행동주의는 언론이나 기성정치가 이미 제시한 의제에 대해 시민사회 차원에서 의견을 모아 피드백을 표출한다는 사후적 특징을 갖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해시태그 행동주의가 지닌 가장 큰 힘은 수면 아래 있던 의제를 끌어올려 새롭게 이슈화하는 데 있다고 본다. 흑인 민권운동이나 여성운동이 해시태그를 활용해 큰 반향을 불러온 것처럼, 해시태그가 소수자들의 발화와 연대의 도구가 돼 가려진 목소리를 드러낸다는 설명이다. 이 과정에서 해시태그 행동주의가 사회적 관심을 얻게 되면, 사회 주변부로 미뤄져 있던 의제도 단숨에 기성정치의 중심으로 파고들 수 있는 추진력을 얻기도 한다. 

  이광석 교수는 여성운동을 예로 들며 해시태그 행동주의가 소수자 운동으로서 갖는 의의를 설명했다. 그는 “90년대의 온라인 여성운동이 검증되지 않은 일반 유저의 접근을 차단하는 폐쇄적 사이트를 중심으로 이뤄진 반면, 해시태그를 통한 2010년대의 여성운동은 오히려 억눌린 감각을 누적시켜 힘있게 바깥으로 알리고자 하는 발화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과거의 여성들이 ‘자기만의 방’에서 고백적이고 치유적인 글쓰기를 통해 여성혐오에 대응했다면, 이젠 해시태그를 통해 보다 공적인 공간에서 광범위한 독자층을 향해 여성혐오를 고발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이어서 그는 “(해시태그 행동주의는) 사회적 약자의 미디어 저항 방식이 점차 은폐된 현실의 부조리를 들춰내고 공론화하는 경로를 활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자기고백형·폭로형 글쓰기와 연대의 해시태그 행동주의는 사회적 소수자의 발화 방식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설명했다.

  2016년 한국에서 시작된 #OO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은 소수자 연대로서의 해시태그 행동주의가 힘을 얻는 과정을 보여준다. 2016년 10월, 문단 내 중견 작가인 모 시인의 성폭력을 고발하는 글이 트위터에 게시됐다. 폭로 이후 트위터에선 문단 내에서 자신이 겪은 성폭력을 고발하는 고백적 글쓰기가 줄을 이었고, 시인, 소설가, 평론가 등이 가해자로 지목됐다. 이 성폭력 사례들은 모두 ‘#문단_내_성폭력’이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공유됐다. 문단 내 만연해있던 위계에 의한 성폭력 문제가 낱낱이 알려지는 순간이었다.

  문단에서 시작된 폭로의 물결은 미술계와 공연예술계로 이어져, ‘#문단_내_성폭력’은 ‘#문화예술계_내_성폭력’으로 확장됐다. #OO_내_성폭력 운동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영역을 넓혀나갔다. ‘#직장_내_성폭력’이나 ‘#교육계_내_성폭력’, ‘#스포츠계_내_성폭력’ 등 사회 영역을 막론한 해시태그가 등장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OO_내_성폭력 운동은 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고발하는 광범위한 여성운동으로 발전했다.

  기성정치 세력과 언론은 #OO_내_성폭력 운동을 계기로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수많은 성폭력을 양산하고 묵인한 문화예술계의 위계구조에 대한 문제제기도 활발해졌다. 해시태그 운동이 촉발된 지 3개월 만에 국회에선 문화예술계의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문화예술계에 종사하는 여성 예술인들도 문화예술계 내부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힘을 모았다. 이들은 ‘페미라이터’,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 그리고 ‘여성문화예술연합’ 등의 연대체와 성폭력 피해자 상담기구를 자발적으로 조직했고, 이렇게 만들어진 연대체들은 한국작가회의 내부에 징계 위원회를 구성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등 현실정치에서 유효한 정치 행위자로 반성폭력 운동을 지속하고 있다.

▲2017년 1월 국회에서 열린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 대책 토론회 포스터

  여성문화예술연합의 신희주 활동가는 #OO_내_성폭력 운동을 회고하며 “불특정 다수의 예술계 종사자들이 해시태그를 통해 분야를 가로질러 유사한 피해 경험들을 공유했고, 이로써 예비 예술가와 신진작가가 취약할 수밖에 없는 문화예술계의 구조가 근본적 문제임을 파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문화예술계의 성폭력 고발은 개별 사건과 발화들이 서로 흩어진 채 잊히는 일의 반복이었지만, 일상적으로 억압되는 여성의 발화가 SNS의 익명성으로 인해 더욱 자유로워졌고 해시태그를 통해 개별적 경험이 집단의 경험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면서 단결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여성들은 #OO_내_성폭력이라는 해시태그에 기대 그동안 언어화하지 못했던 피해 경험을 공유했고, 이로써 개인들의 경험을 관통하는 권력과 관행 등의 거시적 문제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서로 연결된 목소리는 우리 사회가 오랜 시간 도외시해온 문제를 ‘해결해야 할 과제’로 전면화하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된다.

해시태그가 현실을 바꾸기까지

  #OO_내_성폭력 운동이 보여주듯, 해시태그 행동주의는 개개인의 참여로 특정한 의제를 발굴하고 화제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다. 많은 사람이 해시태그 행동주의에 참여할 수 있게 만드는 조건은 참여에 드는 비용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바로 이 측면에서 해시태그 행동주의의 강점과 한계를 동시에 관측한다. 손쉬운 업로드와 공유만으로 해시태그 행동주의에 참여할 수 있다면 ‘그 다음 실제 행동은 누가 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다는 지적이다.

  이광석 교수는 ‘슬랙티비즘(slacktivism)’이라는 개념을 토대로 해시태그 행동주의의 한계를 짚었다. 우리말로는 ‘클릭주의’라고 번역되는 이 단어는 게으름뱅이라는 뜻의 ‘slacker’와 행동주의를 가리키는 ‘activism’의 합성어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질적 노력을 기울이기보다 부담을 지지 않고 사회운동에 참여하려는 태도를 뜻한다. 이 교수는 “진정한 사회적 유대를 이끌어내기 위해선 현실사회로 나아가야 하는데, 해시태그 행동주의는 타자에게 직접 나아가지 못하고 온라인상에서의 유대감과 정서적 쾌감을 누리는 ‘클릭주의’에 그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지적했다. 해시태그 행동주의가 실질적인 사회변화를 위한 운동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일회성에 그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송경재 교수 역시 “애초에 온라인이라는 공간 자체가 소수의 의견이 과대 대표되거나 게으른 참여를 유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며 사이버 행동주의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문제점을 이야기하고 비판의 날을 세우기 전에 소수자의 목소리가 SNS라는 공간을 통해 터져나올 수밖에 없는 현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송 교수는 “핵심은 온라인이 아니라 오프라인”이라며 “사회의 목소리를 살피고 이를 아우르는 의제를 확립하는 것은 정당이나 언론의 역할인데, 지금의 정당과 언론이 오프라인에서 소수자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아내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소수자들이 SNS를 통한 사회운동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소수자의 목소리가 기성제도의 틀 안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회구조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신희주 활동가는 “운동의 배경과 의의에 대한 기록보다는 지나치게 평가에 급급한 것이 아닌가”라며 해시태그 운동이 담고 있는 문제의식 자체를 조명해줄 것을 촉구했다. 또한 해시태그 행동주의가 지속성을 결여했다는 비판에 대해선 “#OO_내_성폭력 운동은 제도적 사각지대를 밝혀내고 이에 대한 보완을 요구한 운동으로, 지금도 여성문화예술연합은 ‘예술인의 지위 및 권리보장에 관한 법률안’ 제정 등 정책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며 지속성을 확보한 해시태그 운동이 가능함을 역설했다.

  결국 전문가와 활동가들은 해시태그 행동주의가 가진 내재적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선 대중의 목소리로부터 제도적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촉매제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송경재 교수는 “온라인에서 터져나오는 사회의 목소리를 국가가 어떻게 수용할지, 또 그 방식을 어떻게 제도화할지를 고민해야 한다”며 사회 주변부의 목소리를 수용하기 위한 국회와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신희주 활동가 역시 “당사자의 노력만으로 제도적 차원의 해결을 이끌어나가는 것은 어렵다”며 “정부와 국회가 사회 곳곳의 이야기를 듣고 소수자들이 직접 정책을 제안할 수 있는 다양한 플랫폼과 사업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시태그 행동주의 이후에 그 유산을 어떻게 갈무리할 것인지도 중요하다. 이광석 교수는 ‘사회역사적 기록물’로서의 해시태그 행동주의에 주목했다. 그는 “연대의 해시태그를 통해 소수자들의 고통과 문제의식이 특정한 사회적 감각으로 응집되고 기록됐다면, 이젠 그로부터 생성된 ‘마이너리티 감수성’을 공공의 기억으로 받아들일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그는 성폭력, 인종박해, 약자혐오 등에 대한 폭로의 발화를 체계적으로 모으는 아카이빙 프로젝트를 제안하며, 소수자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공유함으로써 이를 사회적인 기억으로 확장하는 작업이 함께 진행돼야 해시태그 행동주의가 단순한 ‘불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해시태그는 ‘묶음’의 기호로 우리 앞에 등장했다. 해시태그는 서로 떨어져 있는 개인들의 목소리를 하나의 이름 아래 묶어냈고, ‘해결해야 할’ 수많은 과제를 던졌다. 이제 남은 것은 그렇게 이름을 얻은 수많은 ‘#’들이 공허한 외침으로 사라지지 않게 하는 일이다. 문제제기는 해시태그를 공유하는 ‘클릭’ 한 번으로도 할 수 있었지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이것만으로 충분치 않다. 해시태그 행동주의 이후에도 숙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국가와 시민사회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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