묶을 결(結), 혼인 혼(婚) : 지금의 결혼은 어디에 묶여 있나

한국의 결혼을 만드는 결혼관과 가족문화
ⓒ이예지 기자

  “이에 주례는 이 혼인이 원만하게 이루어진 것을 여러분 앞에 엄숙하게 선언합니다.” 결혼이 성립됐음을 공표하는 성혼선언문의 마지막 구절이다. 한국의 일반적인 결혼식에서, 주례가 하객 앞에서 이 문장을 읽으면 두 사람은 부부가 된다. ‘혼인이 원만하게 이뤄짐’을 선언하기 위해 두 개인은 몇 달 동안의 ‘원만하지 않은’ 결혼 준비 과정을 거친다. 상견례, 예물 교환, 예단, 웨딩촬영, 예식…. 한국에서 결혼은 한 번의 예식으로 발생하는 사건이기보다 수많은 관문들로 이뤄진 과정에 가깝다. 그 관문들은 전통의 이름으로, 가족의 이름으로, 또 결혼식은 ‘인륜지대사’라는 이유로 당연시된다. 이 관문들을 대리해 주는 각종 업체들은 웨딩산업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만들어 천문학적 수익을 창출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규범적으로 절차화된 한국의 결혼문화는 결혼 당사자에게 부담과 압력을 준다. 이 같은 결혼문화가 유지되는 이유는 뭘까. 유교적 전통의 잔재나 부모의 희망사항, 웨딩산업의 호황 등 하나의 요소로만 설명하긴 어렵다. 결혼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선 우리 사회에서 결혼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부터 들여다봐야 한다. 한국의 결혼문화는 결혼식 너머에 있는 한국의 결혼관과 가족문화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누구의 결혼입니까?

  한국의 결혼문화엔 ‘혼주’라는 표현이 있다. 혼인의 주인이라는 뜻으로 신랑과 신부의 부모를 일컫는 말이다. 결혼의 주인이 신랑과 신부가 아니라 양가 부모라는 표현이 언뜻 이상해보이지만, 결혼의 중요한 의사결정에서 양가 부모는 신랑과 신부만큼이나 많은 몫을 차지한다. 한국의 결혼은 개인과 개인의 결합보다는 가족과 가족의 결합에 더 가깝다. 결혼에 수반되는 일련의 절차들이 가족 사이에 맺어지는 약속의 형태를 띠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예지 기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정헌목 교수(인류학전공)는 “기본적으로 한국의 결혼은 혼주의 행사”라고 요약했다, 한국의 결혼문화에서 결혼이 결혼 당사자만의 행사가 아니라는 의미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는 결혼 준비 과정에서 신랑과 신부가 주고받는 예물과 예단이다. 일반적으로 예물은 신랑이 신부에게, 예단은 신부 가족이 신랑 가족에게 선물하는 형식이다. 대개 신부 측에서 이불이나 옷 등의 현물예단과 지폐로 된 현금예단을 신랑 측에 보내면 신랑 측은 예물을 준비하고 봉채비(현금예단의 절반가량)를 신부 측에 돌려준다. 절차가 수행되는 구체적 방식을 막론하고, 이 교환 절차의 본질은 두 ‘친족집단’ 사이의 의례라는 것이 정 교수의 설명이다. 모든 의례는 필연적으로 절차를 수반하는데, 예물과 예단이라는 교환 의례 역시 불문율로 절차화돼있다.

  절차가 번거로운 만큼 ‘이왕 돌려줄 것이라면 애초에 받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물음이 생긴다. 하지만 이 절차들을 건너뛰기란 쉽지 않다. 결혼 과정에서 주고받는 예물과 예단, 이바지와 답바지 등의 교환 의례는 가족 대 가족 사이 지켜야 하는 약속의 의미를 갖는다. 예단과 예물, 집과 혼수의 문제는 양가가 서로를 어떻게 대우하느냐 하는 예절의 문제, 얼마만큼 대접받느냐 하는 가족의 자존심 문제와 연결된다. 결혼 준비 과정에서의 갈등이 집안 간의 갈등으로 비화하는 이유다.

  결혼식에서 하객맞이가 갖는 중요성에서도 결혼문화의 가족주의적 측면을 엿볼 수 있다. 정헌목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결혼은 양가 부모님들이 친족 간의 의무를 수행하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결혼이 친족집단을 형성하는 절차라는 점에 비춰볼 때, 결혼식은 새로운 구성원을 맞는 자리이자 초대와 참석을 주고받으며 친족 간 의무와 결속을 다지는 행사라는 뜻이다. 따라서 결혼식에 초대하는 친인척의 범위를 어느 정도까지로 할지, 어떤 방식으로 그들을 초대하고 환영할지가 모두 고려 대상이 된다. 예식장 입구에서 혼주가 친인척을 맞이하는 것, 하객들이 축의금을 내는 것 등은 모두 친족 간의 의무를 수행하는 과정이다.

  일각에선 근대로 접어들며 개인주의와 핵가족화로 인해 한국의 결혼문화에 내포된 가족주의가 이미 희석됐다고 말하기도 한다. 다만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장경섭 교수는 결혼을 포함한 개인의 생애에서 가족이 차지하는 위상은 근대사회 들어 더 커졌다고 본다. 장 교수는 “한국 사회는 서구 사회처럼 역사적인 근대화를 거치며 개인주의를 체화한 것이 아니라 단지 압축적으로 근대를 경험하며 개인들이 파편화됐을 뿐”이라며 개인주의화와 핵가족화가 가족주의를 약화했다는 일각의 주장에 이견을 표했다. 이 설명에 의하면 한국 사회는 여전히 결혼과 출산, 양육과 교육 등 경제적 생산과 사회재생산이 가족을 중심으로 운용되는 사회다. 그는 “자녀의 결혼에 필요한 자본을 부모가 절대적으로 부담하는 양상에서 알 수 있듯, 지금은 오히려 가족에 대한 의존이 강화되는 추세”라며 한국 결혼문화와 가족주의의 연결고리는 아직까지 공고하다고 말했다.

결혼하기, ‘시집’ 가기

  결혼이 가족과 가족의 결합이라고 해도, 결합의 주체인 신랑 측과 신부 측의 위치는 서로 동등하지 않다. 결혼을 준비할 때부터 예식 당일에 이르기까지 신랑과 신부, 신랑 측 가족과 신부 측 가족은 서로 다른 지위에서 서로 다른 규범을 따른다. 결혼 준비가 시작되는 순간 결혼 당사자 중 남성은 가부장적 가족제도에 따른 ‘예비 가장’이 된다. 신랑이 가장으로서 요구받는 책무는 대개 주거를 마련하는 것이다. 신부는 이에 상응하는 성의 표시를 해야 하는데, 이것이 곧 예단과 혼수다. 여성주의 연구활동가인 아름다운재단 이수연 팀장은 “한국 사회는 여전히 가족의 구성원 중 남성을 생계 부양자로, 여성을 생계 보조자로 보는 시선이 지배적”이라며 “가정 내에서 여성과 남성의 역할을 규정하는 젠더 규범이 결혼 과정에서도 ‘굵직한 자산’인 집은 남성이, 세간살이와 같은 ‘보조적 자산’은 여성이 준비해야 한다는 역할 분담을 만들어 낸 것”이라 해석했다. 남자는 집, 여자는 예단과 혼수를 마련해야 하는 역할구분은 한 가구의 가장을 남성으로 상정하는 한국 사회의 가족 모델에서 비롯됐다는 의미다.

  신랑 측에 신부가 표해야 하는 ‘성의’는 예단과 혼수 등 물질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신부에겐 시댁의 새 식구로서 예쁨 받는 며느리가 돼야 하는 이중 부담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예단은 단지 물질적 선물이기보다 딸을 ‘시집보내는’ 신부 측 부모가 ‘예쁘게 봐 달라’는 뜻으로 신랑 측 부모에 보내는 당부의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최근 10년 사이 웨딩업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상품으로 등장한 일명 ‘애교예단’은 신랑과 구별되는 신부의 입장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애교예단은 말 그대로 신부가 신랑 측 가족에게 ‘애교’로 보내는 예단인데, ‘예쁜 모습만 봐 달라’는 의미를 가진 손거울, ‘좋은 말만 들어 달라’는 의미의 귀이개 등으로 구성돼 있다. 예단과 예물, 폐백 등의 절차는 한국의 결혼이 여전히 여성이 신랑의 가족에 입적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던 과거의 혼인을 답습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웨딩업계에서 판매하는 애교예단 세트 구성품은 손거울, 귀이개, 팥주머니 등이다. ⓒ윤씨방

  이수연 연구활동가는 ‘딸 같은 며느리’라는 표현을 들어 신부가 지는 감정노동의 부담을 설명했다. 그는 “한국의 결혼 제도 안에서 여성은, 특히 며느리는 사적이고 가정적인 존재로서 집안 어른을 잘 모시는 역할을 하도록 기대받는다”며 “신부는 결혼 전부터 딸처럼 친근하고 ‘사근사근하게’ 행동해야 할 뿐 아니라 시부모를 모시고 받드는 고전적 역할 기대도 충족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부에겐 시댁 식구와 정서적인 교감을 할 수 있는 면모와 순종적인 며느리로서의 역할이 동시에 요구된다는 것이다. 이수연 활동가는 “(결혼 과정에서) 사위는 대접받아야 하는 처가의 손님으로 여겨지지만 며느리는 빠르게 신랑 측 가족으로 편입되는 양상에서부터 결혼문화 속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지위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신부가 신랑의 집안으로 편입되는 형태는 결혼예식을 통해서도 상징적으로 나타난다. 결혼식에서 신랑과 신부의 입장은 중요한 식순 중 하나다. 신랑이 먼저 단상으로 걸어가면 이후 신부는 느린 걸음으로 아버지의 손을 잡고 식장에 들어선다. 단상 앞에서 신부의 아버지는 잡고 있던 신부의 손을 신랑에게 ‘넘겨 준다.’ 신부가 ‘아버지’라는 가장의 집안에서 ‘남편’이라는 가장의 집안으로 옮겨 감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예식장에서 신부대기실의 존재 역시 신랑과 신부 사이의 젠더 규범을 암묵적으로 드러낸다. 어떤 예식장에도 ‘신랑대기실’은 없다. 혼주와 신랑이 예식장 입구에 서서 하객을 맞이하는 동안, 신부는 예식이 시작하기 전까지 하객들 앞에 나서지 않으며 신부대기실에서 자신을 찾아오는 하객만을 맞이한다. 정헌목 교수는 신부대기실 문화에 대해 “신부는 정해진 공간에 앉아서 수동적인 역할만을 하고, 신랑은 밖에서 부모님들과 함께 하객을 맞는 것이 당연시되는 것 자체가 성 역할 규범을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현상은 결국 예식의 실질적 주인이 남성이며 신부는 단지 수동적으로 대상화된 채 아름답게 존재하면 될 뿐임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결혼문화 기저에 있는 젠더 관념을 꼬집었다.

‘일생일대의 행사’라는데…

결혼 당사자들은 결혼식이 인생에 한 번뿐인 ‘일생일대의 행사’라는 이유로 번거롭고 찜찜한 결혼 준비 과정을 감내한다. 정헌목 교수는 결혼문화에 반영된 또 다른 요소로 한국의 ‘체면 문화’를 꼽았다. 결혼이 누군가에게 내보이는 행사인 만큼 다양한 측면의 체면이 작용해 결혼식의 규모와 방식에 대한 암묵적인 기준이 만들어지고, 이 기준이 오늘날의 결혼문화를 부풀렸다는 것이다. 결혼이 적어도 남들 하는 만큼은 갖춰야 ‘체면이 서는’ 행사가 된 것은 부모 세대와 결혼 당사자 세대 모두에서 결혼이 하나의 성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부모 세대에게 자녀의 결혼은 부모로서 완수하는 마지막 과제다. 결혼이 곧 ‘완전한 성인’으로의 성장을 의미하는 한국 사회에서 자녀의 결혼은 ‘부모 역할의 졸업’을 말한다. 즉 부모 세대에게 결혼은 양육의 결실인 자녀를 친인척 앞에 내보이고 자랑하는 행사다. 결혼식은 한 자리에 모인 양가 친척과  인들에게 사회적 연결망을 과시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정헌목 교수는 “결혼이 중요한 사회적 행사로 자리매김할수록, 부모의 사회적인 체면, 즉 ‘내 사회적 위치가 어느 정도인데 남들 하는 만큼은, 혹은 남부럽지 않게 결혼식을 해야지’하는 마음이 암묵적인 기준을 만들어 낸다”며 부모 세대의 체면과 결혼문화의 연관성을 설명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정헌목 교수

  결혼 당사자의 입장에서도 결혼은 중요하다. 다만 같은 결혼 당사자라도 결혼식은 신부와 신랑에게 각기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정헌목 교수는 “한국의 부계 가부장주의에서 남성이 결혼을 한다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며 “첫째는 완전한 어른이 됐음을 선언하는 것이고, 둘째는 독립된 가족을 이뤄 친족집단의 구성원으로 묶임으로써 모종의 의무를 수행해야 하는 위치가 됐음을 명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남성에게 결혼은 성인으로서의 독립이자 경조사와 제사 등 친족집단 간의 의무를 수행할 수 있는 지위를 얻는 통과의례다.

  여성의 생애에서 결혼이 갖는 의미는 조금 다르다. 남성의 결혼이 가족에 소속된 하위 구성원에서 ‘가장’으로서의 독립을 의미한다면 여성의 결혼은 미혼 여성에서 가정에 소속된 ‘아내’가 되는 의례라는 점이 강조된다. 결혼이 개인으로서의 독립이면서 여성으로서의 전환점이 되는 것이다. “결혼식의 주인공은 신부”라는 흔한 표현은 여성의 결혼식이 미혼 여성으로서의 삶을 끝내고 기혼 여성의 삶으로 진입하는 순간으로서 결혼식이 낭만화된 결과다. 역설적으로, 바로 그 지점에서 여성의 결혼은 ‘여자로서의 인생의 끝’을 의미하는 부정적 사건으로 의미화되기도 한다.

  결혼식이 이런 방식으로 의미화·낭만화되면서 ‘남들이 하는 만큼은’ 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하한선이 만들어졌다. 최근엔 기존 결혼 절차를 거부하는 ‘작은 결혼식(스몰 웨딩)’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지만, 이것이 한국의 결혼문화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이라고 보긴 어렵다. 정헌목 교수는 “작은 결혼식은 이왕 이뤄지는 결혼 중에서 기존의 결혼문화에 도전하는 형식적 변주로는 의미가 있을 수 있으나, 한국 사회의 가족문화와 결혼의 사회적 의미, 젠더 규범이 바뀌지 않는 이상 그 한계는 명확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작은 결혼식이 결혼문화의 대안이 되기 위해선 한국 사회에서 가족을 바라보는 인식 자체가 변화해야 한다”며 “다만 근본적인 가족문화의 변화가 선행된다면 작은 결혼식 풍조는 빠르게 확산될 것”이라 관측했다.

결혼‘식’은 해피엔딩이 아니다

  여기 다시, 성혼선언문의 마지막 문장이 있다. “주례는 이 혼인이 원만하게 이루어진 것을 여러분 앞에 엄숙하게 선언합니다.” 길고 어려운 결혼 과정을 거친 두 사람의 혼인이 원만하게 이뤄진 것을 하객 앞에 선언하고 나면 식은 끝난다. 하지만 원만한 혼인이 원만한 결혼생활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한국의 결혼을 지난하고 복잡한 과정으로 만든 근본적인 요소들은 결혼‘식’이 끝난 후에도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신랑이 ‘남편’으로, 신부가 ‘아내’이자 ‘며느리’로 그 명칭이 바뀌듯 한국 결혼문화의 기저에 있는 가부장적 가족주의와 성 역할 규범은 ‘가족문화’로 그 이름을 바꿔 결혼식 이후의 부부를짓누른다. 고부갈등, 가정 내 역할분담 갈등과 같은 결혼생활의 충돌은 모두 결혼 과정에서 맞닥뜨린 갈등의 변주다. 결혼과 가정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이 바뀌지 않는다면 결혼식 이후의 수많은 산들은 결코 낮아질 수 없다. 결혼과 가족에 대한 새롭고 평등한 시선만이 우리의 결혼을 해방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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