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속 성매매 여성의 생존권은 어디에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코로나19 아래 성매매 여성들의 어려움 짚어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코로나19 재난 속에 성매매 여성의 존재는 교묘히 가려졌다. 유흥업소 영업이 제한된 이후 업주들은 ‘생존권을 보장해달라’며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성매매 여성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은 29일 ‘사회적 재난과 성매매 – 코로나19 상황에서 성매매여성들이 겪는 어려움’ 토론회를 열고 “여성들은 감염의 주범이자 방역을 방해하는 사람으로 그려졌을 뿐”이라며 “성매매 여성의 생존권에 관한 논의는 진행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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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도 열악했던 성매매 여성의 경제적 상황은 코로나19로 인해 한층 악화됐다. 이룸이 지난해 5월 27일부터 6월 14일까지 성매매 여성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46명의 응답자 중 31명이 코로나19 상황에서 가장 어려운 점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꼽았다. 구체적인 요인으로는 월세나 휴대폰 비용 등의 고정지출(52.2%)이 가장 많았고, 일수와 대출 등 이자 상환(23.9%)과 가족 부양을 위한 비용(13%)이 뒤를 이었다. 

  재난 속에서 성매매 여성들이 이용할 수 있는 생계 대책은 전국민 재난지원금뿐이었다. 소득 감소나 고용형태를 증빙해야 하는 지원책은 무용지물이다. 유흥업소 종사자도 업소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증빙하면 ‘프리랜서 특별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지만, 업소 종사자라는 게 알려질 것이라는 두려움과 업주의 비협조 때문에 지원금 신청을 포기한 이들이 많았다는 게 이룸의 설명이다. 

  당장 생활비가 없는 성매매 여성들은 지역이나 업종을 옮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활동이 전체적으로 경직돼 식당과 카페 일을 알아보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룸과의 면담에 참여한 성매매 여성 A씨는 대출 상환 때문에 일을 그만둘 수 없어 룸살롱에서 오피스텔로, 이후엔 출장마사지로 업종을 옮겼다. 정부의 방역 조치를 피해서다. 여성들은 감염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성매매를 이어갈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린다.

대부업의 고리를 끊어야

  성매매 여성들의 생존 위협은 채무 위협으로 이어졌다. 이룸은 “여성들은 이미 제2·3금융권 대출, 사채와 일수, 선불금 등 채무화된 빈곤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매일 원금과 높은 이자를 갚아나가야 하는 일수의 압박은 코로나19로 일을 못 나가는 성매매 여성들에게 더욱 가혹하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당장 생활비가 빠듯한 여성들에게 사채는 유일한 선택지다. 성매매 여성 B씨는 “일을 나가지 못해 일수를 더 쓰게 되고, 몰래 여는 곳에 나가도 초이스 압박이 심해 돈 벌기 힘들다”고 말했다. 빚 상환이 어려워지거나 추심을 못 견뎌 더욱 고리의 대출로 ‘돌려막기’를 한 여성들도 있었다고 이룸은 말했다.

  C씨의 경우 “고금리 대신 저금리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업소 종사자도 4대 보험에 가입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출 지원 확대는 답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룸은 “정부의 대응은 공공자원을 통한 보편복지의 확대가 아니라 금융자본을 통해 개인의 채무를 증가시키는 방식에 국한된다”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덕성여자대학교 김주희 교수(차미리사교양대학)는 “정부의 (코로나19) 지원책은 경기부양책일 뿐만 아니라 신용 기반 정책”이라며 “성경제에서 신용 자체로 계산되는 여성들은 어떻게 지원 대상이 될 수 있겠냐”며 질문을 던졌다. 업주는 여성들이 성매매를 통해 빚(선불금)을 갚아낼 것이라고 계산하고, 여성들의 선불금 서류는 곧 업주의 신용이 된다(<서울대저널> 165호 ‘산업화된 성착취, 성매매의 민낯’ 기사 참조). 업주가 생존권을 요구하고 나선 지금, 업주가 정부의 대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건 감염 등의 위험을 무릅쓴 여성들의 성판매를 통해서라고 김 교수는 말했다.

  설문조사 결과 ‘모든 대부업 이자 및 추심 유예 조치’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23.9%(중복응답)로 드러났다. 이룸은 재난 상황에서 이자 동결이나 추심 금지 등 실질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면서도 궁극적으로는 대부업 산업을 규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부업으로 더욱 열악한 상황에 처하는 이들은 코로나19를 통해 극심한 위기에 처했을 뿐 재난 이전에도 늘 있었다”고 이룸은 설명했다.

성매매 여성을 향한 낙인을 넘어

  경제적 어려움 다음으로는 감염 위험과 동선 공개의 두려움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11명의 응답자는 동선이 공개될까 선별검진소를 방문하기도 어렵다고 답했다. “동선이 공개돼 욕을 듣고 병원에서는 업소녀라고 불법촬영 당할 것(D씨)”이라거나 “가만있어도 욕먹는 마당에 굶어 죽더라도 꼭꼭 숨어있고 싶다(E씨)”는 응답 결과가 나왔다. 

  성매매 업소에서 여성들은 코로나19 감염 위험에 그대로 노출된다. 김주희 교수는 ‘마스크 시민권’을 거론하며 “여성의 얼굴은 상품이 되기 때문에 업소 안에서 여성들은 자신의 의지로 마스크를 쓰거나 벗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룸은 성판매여성에게 어떤 통제권도 주어지지 않는 성매매 산업 내 권력관계를 문제 삼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성매매 여성들이 직면하는 혐오와 낙인은 코로나19 이전에도 이미 만연했다. 이번 토론회를 통해 기존 성매매 여성의 생존과 건강권의 위협, 높은 이자와 추심의 공포가 코로나19 상황 속에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는 진단이 나왔다. 이룸은 “재난 이전의 일상을 되찾는 게 아니라, 재난 이전의 일상에 이미 깊이 스며있던 문제들의 해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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