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도쿄 올림픽이 끝났다. 여성 스포츠선수들의 활약이 돋보인 한편, 이들을 둘러싼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올해 스포츠계에서 목격된 몇 가지 사건들을 필두로 운동과 여성이 만났을 때 벌어지는 모순적 상황과 여성의 몸을 바라보는 문제적 시선을 조명해봤다.
운동하는 여성이 마주하는 것들
지난 7월, 노르웨이 비치핸드볼 여자 대표팀이 스포츠계를 뜨겁게 달궜다. 유럽비치핸드볼선수권대회에서 비키니 하의 대신 반바지 유니폼을 입은 노르웨이 여자 대표팀에게 유럽핸드볼연맹(EHF) 측이 복장 위반으로 벌금을 부과했기 때문이다. EHF 규정에 따르면 비치핸드볼 여성 선수들은 ‘옆면이 10cm를 넘지 않는 하의’를 입어야 한다. 남성 선수들의 유니폼이 ‘무릎 위 10cm까지 오는 반바지’인 것과 대조적이다, 노르웨이핸드볼연맹 측은 “선수들이 편하게 느끼는 유니폼을 입을 수 있어야 한다”며 해당 규정을 비판했다.

여자 배구 국가대표 선수들 ⓒ국제올림픽위원회
뒤이어 개막한 도쿄 올림픽에서도 여성 선수 유니폼 문제가 불거졌다. ‘4강 신화’를 쓴 여자배구 경기에서 민소매 상의와 몸에 붙는 짧은 반바지 유니폼을 불편해하는 선수들의 모습이 포착된 것이다. 국내 배구 팬들은 해당 유니폼 규정이 남성 선수들이 입는 헐렁하고 긴 반바지와 비교된다며 여성 선수들이 편안하게 경기에 임할 수 있는 복장을 마련하라고 항의했다.
왜 여성 선수들에게만 노출이 심한 복장이 강요되는 걸까. 지난 8월 12일 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국가대표》는 스포츠계 성차별 문제를 전면으로 다루며 남녀 선수의 유니폼 차이를 문제시했다. 방송에서 박주미 스포츠 기자는 여성 선수들의 의상이나 몸매에 쏠리는 관심 이면에 ‘여자는 스포츠의 주인공이 아니다’라는 인식이 자리한다고 꼬집었다. 여성들이 스포츠에 참여하는 주체보다는 ‘눈요깃거리’로 인식되기에 여성 유니폼도 기능적인 관점에서 고려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는 프로 선수들에게만 국한된 얘기는 아니다. 레깅스, 스포츠브라 등 일반적인 여성 운동복의 디자인도 불필요한 성적 대상화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윤주 코치는 “몸에 붙는 옷은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아 동작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긴 하지만, 노골적으로 선정적인 디자인은 오히려 운동하는 신체를 제약한다”고 비판했다. 신체심리학자 한지영 씨는 “성별화된 운동복을 존재하게 하는 것은 ‘성애적인 요소’에 대한 욕구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 《다큐멘터리 국가대표》 영상 캡처
문제는 성적 대상화에서 그치지 않는다. 운동하는 여성에겐 유독 ‘여성스러운’ 외양과 태도가 요구된다.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 3관왕이 된 양궁 국가대표 안산 선수는 짧은 머리를 이유로 안티페미니즘 진영의 공격을 받았다. 《다큐멘터리 국가대표》에는 전 골프 국가대표 박세리 선수가 활동 당시 ‘혹시 경기를 웃으면서 할 수는 없냐’는 질문을 받는 장면이 담겼다. 두 선수는 각 종목에서 정상에 오른 실력자임에도 경기중 실력이 아닌 ‘여성스러움’을 기준으로 평가받은 것이다.
해시태그 속 운동하는 여자
여성을 운동에서 소외시키는 또 다른 문제는 획일화된 미의 기준이다. 인스타그램에서 해시태그 ‘#홈트’(홈트레이닝의 준말), ‘#운동하는여자’를 검색했을 때 나오는 사진 속 여성들은 마른 몸에 풍만한 중요 부위를 강조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아름답다’고 정의하는 여성의 몸매에 부합하는 모습이다. <한겨레> 젠더살롱에 칼럼을 연재 중인 하미나 작가는 “사회가 햇빛에 타지 않은, 근육질이 아닌, 마른 여성의 몸이 아름답다는 메시지를 계속해서 전달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메시지가 축적돼 여성들이 다양한 체형을 상상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홈트를 즐겨하는 대학생 박혜진(가명) 씨는 “운동하는 사진을 SNS에 올리기 위해 보정하는 사람도 많다”며 “운동하는 모습조차 남들에게 과시할 수 있는 예쁘고 아름다운 상태여야 한다는 유행은 문제”라고 말했다. 한지영 씨는 “지나치게 말랐으면서도 ‘볼륨감’을 가진 몸에 비현실적인 메이크업까지 더해진 상태의 운동 인증사진은 여성들로 하여금 운동 자체에 몰입하는 것을 막는다”고 비판했다. 운동과 자신의 몸에 있는 그대로 집중하지 못하고 어떻게 보이는지에만 집중하게 하기 때문이다.

‘운동할 때도 예뻐야 한다’는 인식은 ‘몸매 보정 레깅스’ 같은 운동복의 유행에서도 엿보인다. 이윤주 코치는 “그런 운동복은 이름만 운동복일 뿐 아무런 기능이 없다”고 강조했다. 해시태그 속 ‘운동하는 여자’가 가진 몸의 조건을 인위적으로 갖추려는 목적으로 제작된 옷이기 때문이다.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 운동복을 입으며 여성들은 예뻐 보여야 한다는 강박과 예쁘지 않은 몸을 가려야 한다는 강박을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하미나 작가는 여성 운동복을 입을 때 “이런 옷은 탄탄하고 갖춰진 몸을 가진 사람만 입어야 되는 게 아닌가” 고민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운동을 사회적 미의 기준에 부합하기 위한 행위로 변질시킨다. 아마추어 여자축구팀에서 활동 중인 김혼비 작가는 “축구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S라인’에 집착하고 종아리알이나 승모근 같은 근육이 몸에 붙을까 걱정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윤주 코치는 “최근 여자 운동의 트렌드가 가냘프게 말랐으면서도 위협적이지 않은 정도의 근육이 있는 몸 만들기에 경도되어 있다”며 “근육이 특정 부위에 특정 형태로만 있는 몸은 부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체력 증진이나 기능적 움직임 향상과 같은 운동의 근본적 목적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지적했다.
운동의 성별화와 운동공간의 남성중심성
이윤주 코치는 트레이너들 사이에서도 “여자 운동은 곧 다이어트”로 여기는 문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코치는 “여자들이 운동 상담을 오면 무조건 다이어트 목적으로 치부하고 그에 맞춰 응대하는 트레이너들이 많다”며 “여자는 근육이 붙으면 예쁘지 않으니 유산소로 살을 빼자는 식의 권유가 여성들을 근력 운동에서 배제한다”고 설명했다. 운동의 방식 자체가 성별화된 것이다.
운동의 성별화는 성차에 대한 믿음에 기반한다. 남녀의 몸이 다르니 운동 능력과 해야 하는 운동도 다르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하미나 작가는 “남녀가 생리적으로 다른 부분이 분명 있지만, 이를 이유로 여성들에게 웨이트 트레이닝을 아예 권하지 않는 것은 교묘한 성차별”이라고 설명했다. 성별화된 운동 문화가 운동에 대한 여성들의 선택지를 좁히기 때문이다.
여성이 할 수 있는 운동을 제한하는 것은 단순히 선택권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들의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윤주 코치는 “삶이 불편해질 정도로 몸이 아파져서 체육관을 찾아오는 여성들은 대부분 근력이 부족하다”며 여성들에게 다이어트 목적이 아닌 운동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속 가능한 수준의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해선 근력 훈련을 포함한 다양한 운동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한지영 씨는 다이어트 중심의 운동 문화는 “여성들을 골밀도와 근육 조직에서부터 허물어간다”며 우려를 표했다.
운동공간의 남성중심성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헬스장에서 여성의 몸을 향한 남성적 시선(Male gaze)과 운동하는 여성을 얕잡아보는 발언은 여성들의 자유로운 움직임을 제약한다. 하미나 작가는 “딱 붙는 운동복을 입은 나의 몸을 응시하는 무례한 눈길에 화가 난 적이 많다”고 털어놓았다. 이러한 심리적 위축에 대해 한지영 씨는 “레깅스나 스포츠브라를 입은 여성들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반응들 때문에 여성들이 운동에 기능적으로 집중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지영 씨는 “여성들이 운동을 하러 간 곳에서 남성 지도자나 회원에 의해 비하 발언 등을 접하게 되면 운동을 지속할 동력을 잃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윤주 코치가 여성 전용 체육관 ‘샤크짐’을 설립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 코치는 “여성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자유롭게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고자 했다”며 “어느 곳에서든 여자들이 편안하고 안전하게 운동할 수 있게 될 때까지는 ‘샤크짐’과 같은 곳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지금, 여성에겐 운동이 필요하다
운동과 여성의 만남은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고 통제하는 사회 구조에서 이뤄지고 있다. 한지영 씨는 “많은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규정된 ‘여성다움’을 장착했을 때 긍정적인 평가를 받게 되는데, 이는 여성들이 운동할 때조차 ‘보여지는’ 존재로서의 자신을 강하게 인식하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여성들이 자신의 신체를 긍정하며 자유롭게 운동하기 어려운 이유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이윤주 코치는 “여자가 하면 안 되는 운동도 없고, 여자가 되면 안 되는 몸도 없다는 것을 널리 알리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코치는 “선수든 일반인이든 살아있는 한평생 몸을 움직여야 한다면 운동을 평생의 동반자로 여겨야 한다”며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말고 운동을 통해 자신에게 맞는 건강한 몸을 만들어나갈 필요를 강조했다.
운동을 통해 몸의 기능적 측면에서 성취를 경험하는 일은 여성의 자존감과 직결된다. 김혼비 작가는 축구를 시작한 뒤 “체중이 조금 늘어도 좋으니 강한 몸을 갖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며 “허벅지가 굵어지는 등의 신체 변화를 아름다움으로 평가하기보다 기능적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하미나 작가는 “우리는 몸으로 이루어진 존재이기에 운동을 통해 얻는 자기효능감이 결국 자신감, 나 자신을 편안하게 느끼는 감각과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이 운동의 본질을 가리고 여성의 몸을 옥죄지만, 역설적으로 운동을 통해 그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운동하는 여성은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 서 있다. 운동장의 기울기는 성적 대상화와 품평을 통해 여성을 통제하는 권력에 의해 만들어진다. 이 운동장을 바로 잡고 운동과 여성의 관계를 새로 정립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