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에 여성의 자리가 있으려면

스포츠의 남성중심성 벗어나기

  아직 스포츠라는 영역에 여성의 자리는 협소하다. ‘운동하는 여자’의 모습은 제한적이고, 운동의 종류와 방식, 운동하는 공간은 성별에 따라 나뉘어 있다. 어떤 여성들은 학창 시절 이후 공을 발에 대 본 기억이 없다. 여성들은 왜 다양한 스포츠를 누릴 수 없게 됐을까. 여성이 스포츠와 관계 맺는 방식을 살펴보고 멀어진 거리를 좁힐 수 있는 방법을 짚어봤다. 

스포츠, 그리고 남성성

  오랫동안 스포츠는 남성의 영역으로 여겨져 왔다. 최초의 근대올림픽인 1896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여성 선수는 단 한 명도 출전할 수 없었다. 1900년 제2회 파리 올림픽부터 여성 선수의 참가가 허용됐고, 이후 여성이 출전 가능한 종목이 늘어나면서 올림픽의 ‘금녀의 벽’이 서서히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최초로 여성 선수가 모든 종목에 참여한 올림픽은 불과 8년 전인 런던 올림픽이다. 

  스포츠는 유독 성차별이 공고한 영역이다. ‘신체를 활용하는 영역은 남성이 더 어울린다’는 고정관념이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호서대 주종미 교수(사회체육학과)는 스포츠의 성격을 두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는 경쟁으로 다퉈서 이기는 것, 둘째는 경쟁 속에서 자신의 모든 가능성을 활용해 탁월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주 교수는 “이러한 스포츠의 본원적 특성이 남성의 신체와 경쟁력을 강조하고 표현하는 것과 연관돼왔다”고 설명했다. 이에 반해 여성의 신체는 남성의 신체와 대조되는 열등한 것으로 여겨진다. 

  여성은 스포츠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인식 때문에 여성 스포츠는 남성 스포츠의 주변부에 머물러야만 했다. 위밋업스포츠 양수안나 대표는 축구선수로 활동할 당시 “남자 선수 위주로 모든 게 이뤄졌다. 경기를 이겨도 (남자 선수와) 동반 우승했다는 식으로 들러리처럼 기사화됐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남자팀과 여자팀은 완전히 달랐기 때문에” 지원이나 대우가 달라도 차별을 익숙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사진 설명 시작. 실내 체육관의 농구 코트에서 여성들이 농구공으로 연습을 하고 있다. 가장 뒤에 농구골대가 있으며 그 앞에 강사로 보이는 여성이 공을 들고 서 있다. 나머지 여성 여섯 명은 손바닥으로 농구공을 튕기는 동작을 하고 있다. 사진 설명 끝.

위밋업스포츠 농구 클래스에 참여한 여성들 ⓒ위밋업스포츠

  스포츠에서의 성차별은 현재 진행형이다. ‘성평등한 올림픽’을 내건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는 여성과 남성 선수가 최초로 개막식 공동 기수로 나섰으며, 참가 선수단 중 여성 비율은 약 49%에 달했다. 하지만 IOC에 따르면 도쿄 올림픽에 참가한 코치진 중 여성의 비율은 13%에 불과하며, IOC 위원 중 여성 비율은 37.5%다. 주종미 교수는 “지금 스포츠 분야의 의사 결정권자 상당수가 남성 위주이며, 코치도 남성 위주”라며 문제를 꼬집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한 「2020년 여성 전문체육인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경기 단체에 등록한 전문 체육인 중 활동하는 여성 선수는 전체 중 22.3%, 여성 지도자는 17.8%를 차지했다. 이후 직장운동부와 프로팀 등 진로가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축구와 야구 같은 종목의 경우 여성 선수 비율이 각각 7.1%와 0.1%로 매우 낮고, 지도자 비율은 6.8%와 0.1%에 불과하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스포츠에의 진입, 경력, 진로 모든 과정에서 여성 차별이 드러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남자가 뛸 수 있는 리그가 더 많고, 남성 선수가 더 많으며, 그렇기에 남성 지도자가 더 많다. 

문제는 교육이다

  스포츠계 성차별의 뿌리는 일반 교과과정의 체육 교육에서부터 나타난다. 여성 프로 스포츠의 성장을 위해선 더 많은 여성 선수들을 육성해야 하지만, 여학생들이 체육에 흥미를 갖고 유입되기 어려운 환경이다. 위밋업스포츠 신혜미 대표는 “여자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다양한 스포츠 경험을 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어렵다”며 여성과 스포츠 사이에 장벽을 만든 원인으로 가장 먼저 교육을 지목했다. 

  여학생들이 체육 교육에서 긍정적인 경험을 하지 못하는 것은 고질적인 문제다. 김은희 씨(독어독문 19)는 “여학생들은 체육을 잘 안 하고 남학생들은 꼭 해야만 하는 분위기가 있다”며 “체육을 좋아하는 여학생이나 좋아하지 않는 남학생이 이상하게 여겨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여자는 운동을 못하거나 관심이 없고, 남자는 그 반대라는 성별 고정관념이 체육 교육 현장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성별을 구분하는 체육 교육은 이러한 고정관념을 반영하고 강화한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A교사는 “1학년부터 ‘여자는 남자보다 운동을 못한다’는 인식이 자리잡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남녀를 불문하고 발달 단계상 활동량이 많고 체육에 대한 관심이 높을 시기임에도 아이들이 ‘여자는 운동을 못한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A교사는 학교와 교사에 따라 수업 내용이 다르지만, 대부분의 수업이 ‘여학생들은 체육을 못하고 하기 싫어한다’는 가정하에 진행된다고 비판했다. 

  ‘여자아이들이 체육 기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여학생과 남학생을 분리해 수업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A교사는 이러한 수업은 여학생과 남학생이 체육활동을 완전히 다르게 경험하게 하고 여학생들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이 성차별적 인식을 내면화하게 되는 것도 문제다. A교사는 “여학생이 운동 지능이 높은 데도 의지가 없는 경우가 있다”며 “실체 없는 편견이 아이들의 성장을 저해한다”고 덧붙였다.

  2012년 학교체육진흥법이 제정되면서 학교 현장에 변화가 생기기도 했다. 학교체육진흥법 6조는 여학생 체육활동 활성화를 과제로 규정하고 있다. 해당 법에 따라 여학생 스포츠 클럽 등의 사업에 대한 재정적 지원도 증가하는 추세다. 그러나 아직 학교 현장에서 큰 변화는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광주 일곡중학교 김건우 체육교사는 “법·제도적으로 명시하고는 있지만 개별 학교나 교사의 노력에 의존하고 있어 그 이상의 지원은 미비하다”고 말했다. A교사 역시 “여학생 체육 활성화 관련 공문은 많이 오고, 여자 풋볼단, 야구단 등에 대한 지원이 있다”면서도 “강제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학교 선생님들이 관심도 없고, 있는 줄도 몰라서 예산을 제대로 신청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증언했다. 여학생 체육 활성화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이뤄지고 있어도 실제 활용은 전적으로 교사의 관심과 역량에 달려 있다는 지적이다.

사진 설명 시작. 실내 체육관에서 여성들이 주짓수를 배우고 있다. 각각 두 명씩 짝을 이뤄 총 여섯 쌍이 서로 몸을 격하게 맞대고 동작을 연습하고 있다. 모두 한 명은 누워 있고 다른 한 사람이 그 위에 올라가 있는 자세로 서로 공격하고 방어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가장 앞쪽에 위치한 두 사람 중 한 명은 밑에 있는 사람의 위에 올라 상대방의 상체를 두 팔로 힘껏 감아 안고 있고, 밑에 있는 사람은 제압을 풀기 위해 두 손을 모은 자세로 상대방의 머리와 목 부분을 밀어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진 설명 끝.

위밋업스포츠 주짓수 클래스에 참여한 여성들 ⓒ위밋업스포츠

모두가 참여하는 체육 수업을 위해

  체육 교육은 여성들이 스포츠에 첫발을 내딛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A교사는 “체육은 굳건하게 완전히 남성의 영역으로 인식돼 왔기 때문에, 체육이라는 영역에서부터 고정관념을 깨고 변화를 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성별로 나눠 체육 수업을 진행하지 않는 것이 우선이다. A교사는 체육 시간에 모든 학생이 같은 과제에 몰두하게 하며, 팀 경기를 할 때도 성별에 따라 나누지 않는다. 학기 초에 학생들의 체육 역량을 측정한 다음, 배우는 내용에 따라 성별이 아닌 개인의 특성을 고려하여 팀을 짠다.

  체육 수업의 교육적 측면에 대해 접근하는 관점도 달라져야 한다. 김건우 교사는 “과거에는 종목 중심으로 수업이 이뤄졌지만, 이제는 가치 중심 혹은 역량 중심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고 말한다. 특정 기술의 습득보다 건강 관리, 체력 증진과 같은 역량을 길러주는 게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A교사는 “타인과 내 몸이 스포츠를 통해서 어떻게 관계 맺는지 배우는 것도 체육 교육에서 가르쳐야 하는 요소”라고 덧붙였다. 김 교사는 “체육 교육의 궁극적 목표는 운동을 잘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을 좋아하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진 설명 시작. 광주 일곡중학교 여자 축구부 학생들이 잔디 위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가운데에는 지도 선생님으로 보이는 남성 두 명이 있고 그 주위에 파란색 유니폼을 입은 열댓명의 여학생들이 벌건 얼굴을 하고 앉아 있다. 그 중 가운데의 두 학생은 생수병을 들고 급히 물을 마시고 있다. 사진 설명 끝.

일곡중학교 여자 축구부 ⓒ김건우 교사 

  기술 중심의 수업에서는 소외되는 학생이 생길 수밖에 없다. 김건우 교사는 “학생들이 실패에 상처받고 또래에게 질책받는 경험이 반복되다 보면 아예 수업에 참여하지 않기도 한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는 여학생뿐만 아니라 경쟁에 적합한 운동 기능을 갖추지 못한 남학생들도 겪고 있는 문제다. 여학생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체육 수업은 곧 모두를 위한 체육 수업이 된다.

  더 많은 여성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A교사는 여성 체육 지도자의 유입이 여학생에게 교육적으로 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학생들이 여성 체육 교사를 보고 자신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고 그는 설명했다. 여학생들이 여성 교사의 지도를 편하게 느낄 뿐 아니라, 롤모델을 얻는 효과도 가진다는 의미다.

더 많은 운동하는 여자를 꿈꾸며

  체육 교육의 실질적인 변화를 위해선 정책적인 움직임도 동반돼야 한다. 성평등한 교육이 안정적으로 자리잡으려면 교사 개인의 능력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체계화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주종미 교수는 “실제 교육 과정과 현장에서 성평등이 실현될 수 있도록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주 교수는 운동부나 스포츠클럽 종목 수를 남녀 동등하게 선정하고, 선수 및 지도자 선발에서 남녀 수를 동등하게 선발 하는 등의 규정을 추가하고, 학교에서 이러한 규정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 제재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여성 선수와 여성 종목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대한체육회나 문화체육관광부 등의 유관기관들이다. 주종미 교수는 선수와 코치 채용 과정에서 성평등을 의무조항으로 규정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루니 룰(Rooney Rule)’은 미국 NFL(미식축구연맹)에서 코치나 감독을 고용할 때 인종적 소수자를 한 명 이상 면접 후보로 올리게 하는 제도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적극적 조치를 취하자는 목소리가 있다. 하지만 주 교수는 “일시적인 조치가 성차별을 보완할 수는 있지만, 아래로부터의 장기적인 변화가 우선적”이라고 덧붙였다. 학교 체육에서 시작해, 스포츠를 즐기는 일반 여성 및 선수가 많아지는 등 스포츠 영역 전반에서 여성의 자리를 넓혀가야 한다는 의미다. 

  여성과 운동 사이 벽을 허물기 위해선 사회 전반의 인프라 구축도 필요하다. 생활 체육 영역에선 여성들이 참여하는 종목이 한정돼 있다. 주종미 교수는 “(생활 체육 영역에) 여성이 진입할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생활 체육에서의 기회가 확대돼야 성인 여성들이 다양한 스포츠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A교사는 “농구를 배우고자 여성 농구 수업을 찾았으나 당시 성인 남성 대상의 수업이 대부분이었고, 성인 여성 농구 수업은 수도권에 단 하나 있었다”며 “여성이 원하는 운동을 배울 수 있는 곳이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 설명 시작. 예능 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의 한 장면이다. 초록 잔디로 된 축구 경기장에서 경기를 펼치고 있으며, 파란 유니폼을 입은 여성 세 명과 흰 유니폼을 입은 여성 세 명이 보인다. 가운데에 있는 파란 유니폼의 여성 선수가 공을 차기 위해 발을 들고 있고 그 바로 옆에 같은 팀의 선수가 있어 발을 움직이려고 하는 자세를 취한다. 이 두 여성 주변으로 흰 유니폼을 입은 상대 팀 선수들이 옆에 붙어 기회를 노리고 있다. 화면 하단 중앙부에 자막으로 ‘축구에 웃고 축구에 울던 시간’이라고 쓰여 있다. 사진 설명 끝.

 예능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 ⓒ유튜브 SBS NOW 캡쳐

  스포츠 전문가들은 미디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 운동하는 여성의 다양한 모습을 조명하는 미디어 콘텐츠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에서 방영 중인 예능프로그램 ‘노는 언니’는 다양한 종목의 여성 선수들이 나와 함께 운동하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의 ‘골 때리는 그녀들’에서는 여성 연예인들이 팀이 되어 축구 경기에 열중한다. 개그우먼 김민경 씨가 활약하는 <시켜서 한다 오늘부터 운동뚱>은 비만인 여성이 즐겁게 먹고 건강하게 운동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방송에서는 운동하는 여성의 다양한 모습을 접할 수 있다. 미디어를 통한 롤모델의 제시는 여성에게 용기와 도전정신을 불러일으킨다. 김은희 씨는 이런 방송을 보고 “예전에 비해 확실히 더 다양한 종목에 관심을 갖게 됐고, 배워 보면 ‘재밌겠다’,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지난달 ‘모든 국민이 스포츠 및 신체활동에서 차별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스포츠 활동에 참여하며 스포츠를 향유할 권리(스포츠권)를 가진다’고 규정하는 스포츠기본법이 제정됐다. 여성의 스포츠 기본권이 실현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시도가 계속해서 필요하다. 여성과 운동 사이의 거리를 좁혀 나가는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 여성에게도 운동의 권리가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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