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수는 198만 명이다. 여기에는 유학생, 결혼이주여성, 다문화가정, 외국국적동포 등이 포함된다. 이들은 이미 우리 사회 곳곳에서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이주배경 인구는 앞으로도 증가할 전망이다. 한국 사회는 다양한 문화적 배경의 구성원들과 공존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흔들리는 경계 위에서 누구나 피부색이나 국적과 상관없이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한반도의 도래를 위해 필요한 변화들을 살펴봤다.

2021년 8월 기준 한국에는 198만 명의 외국인이 체류하고 있다.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월보
누가 한국인인가
‘한국인’은 어떻게 규정될까. 한국에서 태어났거나 부모가 한국인이면 ‘한국인’인 것일까. 이주의 시대를 맞이한 지금, 민족과 국가의 경계가 흔들리면서 ‘한국인’이라는 지위와 정체성이 도전받고 있다. ‘한국인’의 경계에 서있는 디아스포라들의 정체성을 한국 사회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초등학교 3학년 도덕 교과서에는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어린이가 국적에 대해 질문받을 때 ‘저는 한국인입니다’라고 대답해야 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국사편찬위원회 이상록 편사연구관은 이러한 서술이 어린이가 “이러한 서술이 ‘순혈 한국인’을 보편적이고 정상적인 것으로 생각하게 만든다”며, 교과서가 ‘한국인’의 정체성을 비(非)한국인에 비해 우월하다고 여기는 시선을 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디아스포라는 세대를 거듭하면서 혈연적으로 다른 민족과 뒤섞여 다중적인 정체성을 지닐 수밖에 없는 존재”라며, “이들에게 ‘당당한 한국인’이 되라고 하거나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라고 호명하는 것은 배타적인 순혈주의이자 민족주의적 태도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한국의 이주민들은 비(非)한국인에 대한 편견과 제도적 차별을 겪으며 경계에 놓인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느끼기도 한다. 다문화 중도입국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서울국제학원 문민 원장은 “중국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한국에 들어오는 재외동포 3세들은 자신이 한국에서 직업을 갖는 데 제한이 있음을 알게 되면서 자신의 뿌리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된다”고 전했다. <동포세계신문> 김용필 편집장 역시 조선족을 예로 들며, “조선족 1세대는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이기에 한국인·한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한 반면, 2세대는 부모를 따라 오히려 한국에 와서 불법체류 생활을 경험하거나 조선인 혐오를 체감하면서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디아스포라의 눈으로 바라본 한국은 민족주의의 얼굴을 하고 있다. 경계를 오가는 존재들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거두기 위해 인식의 전환이 요구되는 이유다.
한국의 다문화감수성을 일깨우기
스웨덴의 제6차 세계가치관조사(World Values Survey) 결과를 살펴보면 한국 사회는 이주민과 경계인에게 여전히 배타적인 태도가 강한 것으로 나타난다. 해당 조사에서 ‘외국인 노동자와 이민자를 이웃으로 삼고 싶지 않다’에 동의한 한국인은 31.8%에 달했다.
친다문화적인 사회를 위해선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우선 다문화교육의 역할이 중요하다. 여성가족부 조사에 따르면 2018년을 기준으로 청소년의 다문화수용성은 71.22점, 성인의 다문화수용성은 52.81점이다. 한국다문화교육학회 성상환 회장은 청소년과 성인의 다문화수용성 격차가 “2010년대 이후 활발해진 다문화교육의 영향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과거 다문화교육은 다문화가정 자녀들에 대한 복지적, 시혜적 차원의 교육만을 의미했다. 하지만 이런 교육은 이주민을 한국인으로 동화시키려는 정책에 불과하다고 지적돼왔다. 성상환 회장은 “기존 다문화교육이 한국어 교육에만 치중하거나, ‘춘향전’을 가르치는 등 다문화가정 청소년의 실질적인 적응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 교육을 강제하는 식이었다”고 비판했다. 문민 원장 역시 “중도입국 청소년들에게만 제공되는 ‘특별교육’은 아이들을 하루빨리 한국인으로 동화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다문화 당사자들이 살아가는 사회 분위기를 변화시키는 데 큰 실효성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다문화교육은 상호이해교육, 선주민 대상의 인식개선 교육 등을 포괄하는 것으로 변화하는 추세다. 다음세대재단에서 2009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올리볼리’ 그림동화는 변화한 다문화교육의 영향력을 잘 보여준다. 올리볼리는 베트남, 태국, 몽골, 중국 등의 동화를 한국어 및 영어, 각국의 원어로 번역해 출판하는 문화다양성 사업이다. 올리볼리 사업 담당자 정회남 씨는 “평소 어린이들이 접하는 그림책이나 애니메이션이 주로 영미권 작품이라는 점에 착안해 아이들이 독서를 통해 더 다양한 나라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도록 그림동화 선택지를 늘리고자 했다”고 사업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올리볼리는 다양한 나라의 그림동화를 다문화, 평화, 성소수자 등의 주제로 나눠
교육자료로 제공하고 있다. ⓒ올리볼리 문화다양성 교육사례집
성상환 회장은 현행 다문화교육에도 개선할 지점이 있다며 초중등 교과서 개편을 촉구했다. 그는 “현재 사회문화 과목 등에 이주민이나 다문화에 대한 언급이 있지만,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이들과 어울려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피상적으로 강조할 뿐”이라며, “그보다는 교과서에서 한국이 수용한 난민들이나 한국 사람들의 해외 이주 역사를 소개하면서 ‘한국인’ 안에 있는 다양성을 드러내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학생들이 이주, 다문화, 디아스포라를 한국 사회가 당면한 중요한 이슈로 받아들일 때, 비(非)한국인에 대한 수용적 태도가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성상환 회장은 미래의 교사가 될 사범계열 학생들에게도 다문화교육이 필요하다며 독일을 예시로 들었다. 독일에서 예비 교사들은 전공과 상관없이 다문화가정 청소년들과 상담할 때 교사가 유념해야 할 점이나 외국에서 온 학생들이 독일어를 접할 때 겪는 어려움에 대해서 교육받는다. 이슬람권에서 온 청소년이 기독교문화를 기반으로 한 독일 학교에 적응하면서 힘들어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등을 교사에게 인식시키는 식이다. 성 회장은 “이러한 교육이 실제로 교육 현장에서 이주배경 아이들을 만났을 때 큰 차이를 가져온다”며 교사 연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코리안 디아스포라: 서로 다른 위치에서 완성하는 ‘한국인’의 정의
한인 중에도 경계에 서있는 이들이 있다. ‘코리안 디아스포라’라고도 불리는 이들은 법적으론 ‘재외동포’라고 규정된다. 2019년을 기준으로 재외동포는 약 750만 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들은 ‘한국인’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더라도 각자의 한인 정체성과 삶의 방식을 갖고 있다. 전후석 감독은 다큐멘터리 《헤로니모》를 통해 쿠바 한인들을 소개했다. 그는 “쿠바 한인들이 피부색, 언어, 문화 모든 것이 ‘전형적인 한국인’과 다르지만, 그들 나름의 코리안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었다”며, 세계 곳곳의 한인들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촉구했다.
코리안 디아스포라들을 민족주의적 시각에서만 바라봐선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이상록 편사연구관은 ‘재외동포’라는 단어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같은 배에서 나온 이들’이라는 의미의 ‘동포(同胞)’가 혈연적 민족주의를 전제한다”며, “‘핏줄’을 강조하면서 법적으로 규정된 재외동포들에 대한 포용정책을 강화할수록 재외동포와 비(非)동포를 가르는 경계선은 견고해진다”고 설명했다. 이주인권 활동가 박동찬 씨는 ‘한민족’을 강조하는 접근법이 “특정한 ‘한국인다움’이나 ‘한인 정체성’을 재외동포들에게 요구하고, 그 기준선에서 벗어난 코리안 디아스포라들을 이방인으로 배척해버릴 위험이 있다”고 꼬집었다.
세계 전역에 퍼져있는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혈연에 기반한 동포 범주에 의문을 제기함과 동시에, 한국인과 비(非)한국인 간 경계의 모호함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정진아 교수는 “여러 국적을 가진 코리안 디아스포라가 있듯, 한민족 역시 국제결혼 등을 통해 구성원의 다양성이 확대되고 있다”며, “이제는 폐쇄적인 단일민족 관점에서 벗어나 다양한 존재들과 함께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인’이라는 지위를 유연하게 상상하고 다양한 코리안 디아스포라와 한국 내의 이주민들을 모두 존중해야 한다는 얘기다.
코리안 디아스포라에 대한 폭넓은 이해는 한국사를 바라보는 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최근 역사학계에선 이산과 이주의 관점에서 역사를 다시 써야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이상록 편사연구관은 “세계 각처에 흩어져 형성된 디아스포라들의 혼종적이고 다중적인 정체성을 바탕으로 역사를 다시 써야한다”고 주장했다. 한반도라는 지리적 공간이나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벗어나 한국사를 봐야한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역사 교육과정 내에서 코리안 디아스포라들이 다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상록 편사연구관은 “현재 학생들에게 적용되는 2015 개정교육과정에는 ‘재외동포’나 ‘디아스포라’에 대한 설명이 아예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건국대 인문학연구원 정진아 교수 역시 “중·고등학교 교과서 13종에서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독립운동 혹은 일제 수탈의 피해와 관련해서만 등장한다”며, “이들의 이주배경, 일상적 삶의 모습, 강제 이주 이후의 주체적 정착과정 등은 조명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 교수는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교과서에서 가시화하는 과정에서 조선족, 고려인, 재일조선인 등의 당사자들이 역사 교과서 개편에 참여하는 것이 디아스포라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좋은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고등학교에서 사용 중인 한국사 교과서(금성출판사)에는
‘디아스포라’라는 용어가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디아스포라적 사유로부터 세계시민으로 나아가기
한국에서만 나고 자란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이 디아스포라와 관계없다고 느끼기 쉽다. 다문화사회에 접어든 오늘날에도 한국 사회에는 핏줄도 피부색도 같은 ‘한민족’을 상상하는 사고방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상록 편사연구관은 “한민족이 동질적인 공동체성을 장기간 유지해온 것은 맞지만, 단일민족설은 사실상 신화에 가까운 믿음”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전근대에도) 혈연적 뒤섞임이 있었으며, 근대 이후의 한국사 자체가 국경을 넘나들며 전개됐음을 상기해야 한다”고 덧붙이며, 디아스포라를 한민족과 한국사와 직결된 문제로 바라볼 것을 촉구했다.
디아스포라 문제에 대한 공감은 세계시민으로서의 의식의 출발점이다. 세계시민의식은 특정한 국가가 아닌 전 세계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권리와 책임을 인식하는 것을 가리킨다. 미국에서 난민, 이민자 출신 청소년들을 교육하는 비영리단체 ‘리제너레이션 무브먼트’를 운영하고 있는 최자현 대표는 “‘지역 이슈뿐 아니라 세계 이슈도 나의 문제’라고 여기는 세계시민적 가치관은 디아스포라에서 출발한다”고 강조했다. 최 대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국내외를 오가며 살고 있는지 상상하고 나 역시 언제든지 디아스포라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세계시민정신”이라고 설명했다.
이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경계를 오가며 언제든 디아스포라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 전후석 감독과 최자현 대표는 우리 모두 흔들리는 경계 위에 서있음을 인지하는 사고관을 ‘디아스포라적 사유’라 불렀다. 전 감독은 “이러한 사고방식을 통해 한국인과 비(非)한국인, 동포와 비(非)동포가 역지사지의 태도를 배운다면 국적에 의한 차별뿐만 아니라 성별, 나이, 장애 등에 의한 차별도 사라진 사회까지도 꿈꿀 수 있다”며 디아스포라적 사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021년의 한국은 이미 다문화사회다. 혈연에 기초한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세계시민의식을 겸비한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해야 할 때다. 다양한 국적, 민족,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이들과의 공존을 가능케 할 열쇠는 디아스포라적 사유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