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그려내는 세계

  기자는 말을 듣는 사람이다. 하나의 기사에는 기자가 몸소 들은 살아있는 말들이 촘촘히 배열된다. 취재원의 말을 들으러 인터뷰에 가는 길에 내 머릿속은 내가 듣고 싶은 말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어떤 인터뷰도 그 기대에 들어맞지 않는다. 대신 내 머리를 스치지도 못한 얘기들이 귀를 채운다. 논문 10개를 읽고 가도, 취재원이 1시간가량 들려준 말들이 더 깊고, 섬세하고, 생생하다. 

  취재원의 말에는 그의 세계가 녹아있다. 불과 몇 주 전 내가 눈을 뜬 문제에 대해 지난 수년을 바쳐온 이들의 말을 듣다보면, 지금껏 그가 걸어온 길이 눈 앞에 펼쳐진다. 고민이 뒤섞인 나의 질문에 확신으로 답하기까지 그의 세계는 일상에서 마주하는 고민들로 수없이 흔들렸을 것이다. 내가 매일을 살아가는 나의 세계는 좁지만, 인터뷰를 통해 다른 세계들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한다. 

  ‘청년 정치’ 특집은 청년들의 말을 듣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시작됐다. 청년의 ‘진짜’ 목소리를 묻는 자리가 없다는 것이 처음의 문제의식이었다. 이러한 생각을 반증이라도 하듯, 정치에 대해 말하는 것에 익숙한 청년들을 주변에서 찾는 것은 생각보다도 어려웠다. 다행히, 우리는 정치를 일상의 것으로 끌어온 몇몇 청년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의 세계 안에서, 청년들의 일상이 정치의 장에서 대변되는 순간들을 들여다보았다. 

  하나의 세계가 담긴 말들을 듣고 난 뒤에는 그것을 기사의 딱딱한 글로 전해야 하는 부담스러운 과제가 기다린다. 말들을 되새기고, 잘라내고, 재배열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말을 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취재원들이 보여준 세계를 다시 나의 좁은 시야에 욱여넣게 되지 않을까 걱정한다. 내가 기사를 쓰면서 또다른 세계를 접했듯이, 부디 우리의 기사가 독자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전해듣는 창구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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