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과 정치가 만났을 때

우리의 일상 속에 정치가 깃들려면

  여기, 각자 다른 영역에서 다양한 의제에 목소리를 내는 청년들이 있다. 누구보다 정치에 관심이 많은 그들이지만, 그들은 청년이 정치에 관심을 갖기 어렵다고 말한다. 청년들은 정치에 어떻게 참여하고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을까. 청년과 정치 사이의 벽을 허물고 있는 청년들을 만나 청년 정치의 현주소와 나아갈 길을 물었다. 

미래당 서울시당 이성윤 대표

  미래당 서울시당 이성윤 대표(27)가 정치에 처음 눈을 뜬 것은 2011년 대학생 반값 등록금 요구 촛불집회에서였다. 대학생들의 촛불집회 이후에도 등록금은 내려가지 않았다. 이성윤 대표는 등록금을 비롯한 청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가 정책결정과정에서 목소리를 내줄 청년 정치인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청년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그는 2014년 ‘새정치연합’의 대학생 위원으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청년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정당에 들어갔지만, 청년의 목소리에 누구도 진지하게 귀 기울이지 않는 현실에 이성윤 대표는 실망했다. 기성 정당의 한계를 느낀 그는 2017년 3명의 청년들과 함께 미래당을 공동창당했다. 정당의 이름에는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직접 만들자’는 의미가 녹아있다. 

 

청년의 목소리는 단일하지 않다

  미래당이 처음 창당되었을 때 내세운 정책은 청년독립이었다. 현재 미래당이 대변하는 청년의 목소리를 묻자 이성윤 대표는 ‘다양성’이라고 답했다. 586 세대의 공통적인 관심사가 ‘민주화’였다면, 오늘날 청년의 정체성은 단일한 의제로 묶이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 그 자체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청년들이 추구하는 목표는 흔히 청년 문제로 분류되는 일자리, 주거 문제뿐만 아니라 젠더, 기후 위기처럼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있다. 이성윤 대표는 “다원화된 청년의 목소리는 하나로 규합되기보다 있는 그대로 존중돼야 한다”고 말한다.  

  다양한 청년의 목소리는 정치권에 모이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이성윤 대표는 “청년 공약은 선거 때 ‘표심 잡기용’에 불과하다”며 청년이 겪고 있거나 관심을 갖는 문제가 거대 정당에서 중요한 의제로 다뤄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논의를 열어두고 다양한 의견을 나누기보다 독단과 갈등만 남은 정치를 보며 이성윤 대표는 다른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정치에 회의를 느낀다고 말했다. 

청년에게 만만한 정당 

  이성윤 대표는 청년들이 정치와 친해지기 위해선 정당이 만만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정당이 누구나 편하게 자신의 얘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성윤 대표는 ‘새정치연합’에서 대학생 위원으로 활동할 때 격식을 차리고 전문적인 얘기만 오가는 딱딱한 회의 분위기가 굉장히 낯설고 어렵게 느껴졌다고 회상했다. 평범한 청년들에게 정당 활동의 진입장벽이 높다보니 청년 정치인은 외부 영입되는 경우가 많다. 어렸을 때부터 정당 활동을 하며 정치적 경험을 쌓는 유럽과는 상반되는 모습이다. 

  경험과 전문성이 없다는 이유로 청년들은 정당 활동과 멀어지곤 하지만, 정당은 오히려 경험 없는 청년들이 함께 배우는 곳이 될 수 있다. 미래당 서울시당은 ‘가볍게 와서 놀 수 있는’ 정당 문화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기후위기 정책에 관해 깊이 있는 토론을 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기후 위기에 관한 다큐를 함께 보면서 정치적인 이야기를 가볍게 나누기도 한다. 이성윤 대표는 “아르바이트 시급에 관한 얘기를 하는 것도 정치와 연결된다”며 정당 활동이 일상과 가까워지는 것을 강조한다. 동아리처럼 격식 없는 모임에서 더 많은 청년들이 활동하다보면, 그 안에서 정당 내 중요한 직책을 맡게 되는 청년도 나올 수 있다.

  정치를 처음 접하는 사람은 나이, 경력과 상관없이 똑같은 정치 초보다. 이성윤 대표는 “처음부터 능숙한 상태로 정당에 들어오는 사람은 없다”며 경험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유독 청년의 발목을 잡는데 쓰인다고 말한다. 정치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발 딛기 쉬운 정당이 만들어질 때 청년의 일상이 정치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사진 설명 시작. 이성윤 대표가 국회의사당 앞에서 플랜카드를 들고 서 있다. 플랜카드에는

미래당 서울시당 이성윤 대표

민지현 상주시의원

  상주는 민지현 의원(30)이 평생을 살아온 고향이다. 지방소멸 위험도시에 해당하는 상주의 만 39세 이하 청년 비율은 2019년 기준 18.2%로, 점점 줄어들고 있다. 상주에 살면서 지역의 시설부터 정책에 이르기까지 청년에게 불편한 점들이 자연스럽게 민 의원의 눈에 띄었다.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공부하면서 정치에 관심이 생긴 민지현 의원은 상주시의회에서 의정 활동을 시작했다. 시의회가 상주시에 젊은 시선을 가장 효과적으로 대변할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상주에서 청년정책이 최초로 만들어지다

  상주시의회에 청년 의원이 생기면서 상주에는 처음 시도되는 것들이 많아졌다. 민지현 의원은 임기 동안에 또래 청년들이 떠나지 않을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2018년 시의원에 당선되자마자 민 의원은 청년기본조례를 발의했다. 청년정책을 위해 예산을 책정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청년기본조례가 통과되면서 청년기본실태조사, 청년정책위원회, 청년협의체 등 청년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창구들이 열렸다. 상주시는 청년기본실태조사에서 청년들을 위한 공간에 대한 수요가 크다는 것을 확인하고, 현재 청년지원센터를 설계 중이다. 

  의회와 긴밀히 연결된 상주시청에도 청년을 대하는 태도에 변화가 생겼다. 기존 상주시청에선 한 명의 담당자가 인구정책과 청년정책을 동시에 담당했다. 관심이 주로 인구정책에 맞춰지다보니, 청년정책은 도외시되는 경향이 있었다. 민 의원은 “의회에 청년을 대변할 수 있는 의원이 없을 때도 집행부인 시청에서 청년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유로 청년정책 전담부서를 주장했다. 그 결과 2021년 상주시청에 ‘일자리·청년정책팀’이 신설됐다. ‘일자리·청년정책팀’의 첫 성과로 상주시는 행정안전부가 주관하는 ‘청년마을 공모사업’에 지원해 선정됐다. 

  처음 시도되는 청년 정책에 대해 의회 내 반응은 다양하다. 청년정책의 필요성에 지지를 보내지만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의원이 있는 반면, 청년 정책이 꼭 필요한지 의문을 표하는 의원도 있었다. 민 의원이 다른 의원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한 결과, 청년기본조례 등 청년 정책에 필수적인 조례들이 의회에서 통과될 수 있었다. 

청년이기에 더 잘 해낼 수 있는 것들

  청년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청년 정책에만 도움이 된 것은 아니다. 민지현 의원은 청년의 시각으로 공공시설 개선을 위한 신선한 정책을 제안하기도 했다. 상주의 기존 버스 정류장에는 버스 시간표만 붙어있어 이주민이나 관광객들은 혼란스러워할 때가 많았다. 민 의원의 제안으로 버스 정류장마다 버스 노선도와 안내 시스템이 설치됐다. 민 의원은 자신을 비롯한 주변 지인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건물을 설계할 때 기저귀 교환대와 수유실을 만들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똑같은 예산을 투입하더라도 이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시각들을 청년이 제안할 수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청년 정치인이 의회 내 정치문화를 바꾸는 데 기여할 수도 있다. 소통의 부재, 의례적인 행사 참석 등 기성 정치권에 대해 청년들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모습을 동세대인 청년 정치인은 누구보다 잘 안다. 민 의원은 자신도 정치인의 그런 모습에 불만을 가지며 자라왔기 때문에 최대한 지양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청년정치인 주변에서 시작되는 관심 

  민 의원이 2018년 시의원에 당선됐을 때, 민 의원의 친구들은 민 의원이 무슨 일을 하게 되는 건지 물었다. 민 의원 역시 학교를 다닐 때 우리 지역의 정치인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지 제대로 배운 기억이 없다. 이렇듯 정치는 청년들의 삶과 동떨어져 있다. 민 의원은 “당장 사회에 자리를 잡기 바쁜 청년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기 힘든 것은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같은 또래가 정치를 하는 것을 보면서 정치에 대한 작은 관심이 시작될 수 있다. 민지현 의원이 주변 지인들과 만나서 얘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민 의원의 정치활동이 화제가 된다. 민 의원이 하는 활동을 보면서 기존에 몰랐던 상주의 정책을 알게 되기도 하고, 상주에 어떤 정책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오가기도 한다. 청년 정치인으로부터 주변 청년들에게 정치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는 것이다. 

사진 설명 시작. 민지현 의원이 상주시의회에서 발언대에 서 있다. 사진 설명 끝.

민지현 상주시의원

성공회대학교 총학생회 이훈 비상대책위원장 

  성공회대학교 총학생회 이훈 비상대책위원장(비대위장)(24)은 학내인권위원회로 학생회 활동을 시작했다. 인권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다양한 학내 인권 문제를 접했지만, 인권위원회 차원에서 폭넓은 대응이 힘들다는 한계가 종종 느껴졌다. 총학생회가 학내외 사안을 가장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조직이라는 생각에 그는 총학생회에 들어왔다. 

  학생회는 대학 공동체 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해서 학내 권력을 행사한다는 측면에서 일종의 ‘정치’기구다. 어쩌면 가장 일상과 밀접한 곳에서 정치를 하고 있는 이훈 비대위장은 자신을 비롯한 성공회대 학생들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총학생회 활동을 한다고 전했다. 

학생들의 더 나은 일상을 위해

  이훈 비대위장이 일하고 있는 성공회대 제36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에서 올해 가장 주력한 사업은 ‘모두의 화장실’ 설치 사업이다. ‘모두의 화장실’이란 성별, 인종, 장애, 성 정체성으로 공간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가 차별 없이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다. 학교에서 화장실을 편하게 이용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수업을 듣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화장실에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훈 비대위장은 화장실에 가고 싶은데도 참는 것이 습관이 된 친구가 방광염으로 응급실에 갔다는 얘기를 듣고 ‘모두의 화장실’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학내 구성원 모두가 ‘모두의 화장실’ 설치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었다. 성공회대 비대위는 약 4개월 동안 ‘모두의 화장실’을 잘 알지 못하거나 반대하는 학생들에게 사업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토론회 및 홍보 사업을 벌였다. 예산을 집행하는 학교 행정실과도 지속적으로 협의 중이다. 학교를 보다 적극적으로 설득하기 위해서 현재는 1인 시위와 발언을 계속하고 있다. 

  성공회대 비대위는 학교 바로 앞에 위치한 온수역 앞 횡단보도에 신호등 설치를 요구하는 활동도 진행 중이다. 2020년 1월 온수역 앞 횡단보도에서 한 시각장애인 학생이 교통사고를 당한 사건이 학내에 크게 알려졌다. 이훈 비대위장은 “모든 학생들의 등굣길을 안전하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최소한 학교에서 5분 거리에 있는 횡단보도는 안전하게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021년 6월 비대위는 학생 및 지역주민들의 서명이 담긴 신호등 설치요구안을 구로경찰서 교통과 담당자에게 전달하고, 구로구청에 민원을 접수했다. 

한 발자국의 변화를 만들 수 있다면

  이훈 비대위장은 점점 학생회에 관심을 갖지 않는 학생들이 많아지고 있음을 체감한다. 그는 청년이 정치권과 마찬가지로, 학내 정치에 무감각한 것이 아니라 무기력해진 것이라고 말한다. 많은 청년들이 세월호 사건과 박근혜 탄핵 당시 적극적으로 정치적 행동에 나섰지만, 당장 힘든 그들의 삶을 정치가 바꿔주진 못했다. 많은 학생들이 학생회를 위해 노력하지만, 학생회가 학생들이 겪는 문제들을 해결하기에 역부족일 때가 많다. 

  그럼에도 이훈 비대위장이 학생회 활동을 하는 것은, 학생들의 일상이 조금씩 변화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학생회는 지금 당장 어디에서 힘들어하는지 파악하고 대응하는 기구다. 이훈 비대위장은 “학생 대표자는 학생들의 의견을 듣는 자리”라고 인정하는 동시에, “학생회가 대응할 사안을 결정할 때 인기투표를 넘어서 취약한 상황에 처해있는 소수의 학우들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사업이나 문화사업 이외에도 학교 안팎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다. 교육의 장이자 정치의 장이기도 한 대학에서 청년 정치는 지금 시작될 수 있다.

사진 설명 시작. 이훈 비대위장이 성공회대 장애인 주차장에서 플랜카드를 들고 서 있다. 플랜카드에는

성공회대학교 총학생회 이훈 비상대책위원장

댓글 댓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Previous Post

친환경 패션은 ‘찐’ 환경일까?

Next Post

청년 정책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