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부 자녀의 태어날 권리

“내 아이가 태어났음”을 인정받으려면

  ‘미혼부 가정’은 미혼인 상태에서 태어난 아이를 아버지가 홀로 양육하는 가정을 말한다. 혼인 중에 낳은 아이를 이혼 등의 사유로 아버지가 양육하는 ‘싱글대디’ 가정과는 차이가 있다. 2021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미혼부 가정은 약 6,700가구다. 그러나 서류에 등록되지 않아 통계에 잡히지 않는 미혼부 가정은 더 많다. 아이를 직접 출생신고할 수 있는 미혼부 가정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미혼부는 출생신고를 못 하나요?

사진 설명 시작. 주민센터에서 촬영한 출생신고서. ‘혼인 외 출생자’와 ‘혼인 중 출생자’ 칸이 명확히 나뉘어 있다. 미혼부가 홀로 작성하여 제출한 출생신고서는 주민센터에서 받아주지 않는다. 사진 설명 끝.
▲ 미혼부가 홀로 작성한 '혼인외의 출생자' 신고서는 주민센터에서 받아주지 않는다.

  미혼부의 출생신고는 법적으로 제한된다. 가족관계등록법 제46조 제2항은 ‘혼인 외 출생자의 신고는 모가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어머니는 병원 기록을 통해 아이가 친자임을 인정받을 수 있지만, 아버지는 친자 여부를 법적으로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혼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를 아버지가 출생신고하는 것은 2015년 전까지 사실상 불가능했다. 정훈태 변호사는 미혼부가 출생신고를 하기 위해선 개인이 “출생신고와 관련된 각종 행정 절차를 조합하는 등 법조인도 제대로 알지 못할 정도로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했다”고 설명했다.

  2015년 미혼부의 출생신고가 가능하도록 가족관계등록법을 개정한 ‘사랑이법’이 만들어졌다. ‘사랑이법’은 2014년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사랑이’와 미혼부 아버지의 사연을 다룬 《궁금한 이야기 Y》 방송을 계기로 미혼부 출생신고 문제가 공론화되면서 제정됐다. ‘사랑이법’은 ‘어머니의 성명·등록기준지 및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는 경우’ 예외적으로 아버지의 출생신고를 인정한다. 

  그러나 실제로 ‘사랑이법’을 적용받아 홀로 출생신고를 할 수 있는 미혼부는 많지 않았다. 일부 법원에서 미혼부가 어머니의 인적사항을 완전히 모르는 경우에만 출생신고가 가능하다고 해석했기 때문이다. 미혼부가 어머니의 이름조차 몰라야 ‘사랑이법’에 따라 출생신고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외국인일 경우에도 ‘사랑이법’이 적용되지 않았다.   ‘아빠의품’ 김지환 대표는 “유학이나 취업을 위해 한국에 온 외국인이 한국인 아버지와 아이를 낳고 본국으로 돌아가 버리면 남겨진 아버지는 출생신고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2021년 3월 ‘사랑이법’의 입법 취지를 살리기 위해 미혼부의 출생신고 요건을 완화한 개정안이 통과됐다. 개정된 법에 따르면 미혼부가 어머니의 인적사항을 일부 알더라도 어머니가 출생신고에 협조하지 않으면 아버지가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 어머니와 연락이 닿지 않아 찾을 수 없거나, 출산 기록을 남기고 싶지 않아 출생신고에 협조하지 않는 경우 등이 미혼부 출생신고를 받아주는 상황에 포함된다. 정훈태 변호사는 “판사의 재량에 따라 법 해석이 달라졌던 이전과 달리, 개정된 조항은 완화된 미혼부 출생신고 조건이 구체적으로 명시됐다”며 이번 개정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개정된 ‘사랑이법’ 역시 절차가 지나치게 복잡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개정된 법이 적용되는 미혼부는 먼저 유전자검사 결과를 지참해 출생신고 확인을 신청을 진행해야 한다. 가정법원에서 출생신고 확인 신청이 승인돼야만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 출생신고 확인 신청에서 출생신고까지는 약 3개월 정도가 소요된다. 김지환 대표는 “기존보다는 법이 완화됐지만, 아이가 태어났다는 사실을 인정받기 위해 3개월씩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것은 여전히 문제”라고 말했다. 

  개정된 법안에서도 어머니가 법적으로 혼인한 상태거나 이혼한 지 300일이 되지 않아 아이가 태어난 경우 미혼부가 출생신고를 할 수 없다. 이런 경우 민법상 ‘친생자 추정 원칙’에 따라 아이가 혼인 관계에서 태어난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친생자 추정 원칙’은 ‘아내가 혼인 중에 임신한 자녀를 남편의 자녀로 추정한다’고 규정한다. 혼인 상태에 있는 여성이 다른 사람을 만나 아이를 낳으면 아이의 친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의 법적 남편이 아버지로 추정되는 것이다. 

  김지환 대표는 “미혼부 가정 중 아이 어머니가 실질적으로 이혼한 상태지만 법적으로 이혼 절차를 밟지 않고 아이를 낳아 친아버지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런 경우에는 먼저 어머니의 남편이 아이의 친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사랑이법’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 친부 증명을 거쳐 출생신고를 하려면 약 8개월 정도가 소요된다.

출생신고를 하지 못한 아이는 국적도, 주민등록번호도 없다. 주민등록이 되지 않으면 각종 복지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 유전자검사 등의 서류를 제출하면 건강보험 적용과 필수 예방접종은 가능하지만, 돌봄서비스 이용과 초등학교 입학을 위해선 주민등록번호가 필요하다.

사진 설명 시작.

아버지도 출생신고를 할 수 있으려면  모든 미혼부의 출생신고가 가능해지려면 출생신고의 자격을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동등하게 부여해야 한다. ‘사랑이법’을 통해 미혼부가 출생신고를 하려면 최소 3개월에서 8개월 동안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한다. 김지환 대표는 “어머니에게 원칙적으로 출생신고의 의무를 부여하는 가족관계등록법 제46조를 그대로 둔 채 예외 범위만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제46조를 개정해 아버지도 출생신고가 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전자검사 기술을 활용하면 ‘친생자 추정’ 원칙에 의해 출생신고가 제한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부자관계를 입증하기 어려웠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엔 유전자검사를 통해 미혼부가 아이의 친아버지임을 쉽게 증명할 수 있다. 정훈태 변호사는 “친자관계에 관한 소송을 거쳐야 하는 기존의 법제는 유전자검사 기술의 발전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며 “유전자검사를 의무화하고 그 서류를 제출하면 출생신고를 할 수 있게 절차를 간소화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올해 8월에는 가족관계등록법 제46조 제2항 자체가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이 제기됐다. 정훈태 변호사는 “헌법재판소가 현행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다면, 친생자 추정을 받는 경우에도 소송 전에 우선 출생신고부터 할 수 있게 법제가 개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위헌 결정이 내려지더라도 출생신고가 어려운 미혼부 가정이 구제를 받기까지는 갈 길이 아직 멀다. 헌법재판 후에도 구체적인 개정 내용을 결정하는 입법 과정이 지난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당장 미혼부 가정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미혼부에게 출생신고의 법적 절차를 안내하는 행정적 조치부터 마련돼야 한다. 미혼부 A씨는 출생신고를 위해 주민센터를 방문했을 때 “출생신고가 ‘안 된다’는 답변 외에 출생신고 방법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미혼부 개인이 복잡한 절차를 스스로 공부해 출생신고를 해야만 하는 것이다. A씨는 “현장에서 출생신고 업무를 맡고 있는 행정 직원들이 미혼부 출생신고의 어려움을 인지하고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출생신고를 하지 못한 아이들의 복지 공백을 최소화하는 보완책도 마련돼야 한다. 병원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병원장이 즉각 행정 기관에 알리게 하는 ‘출생통보제’가 도움이 될 수 있다. 정훈태 변호사는 “출생통보제를 시행하면 아이가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 의료보험 등 기본적인 복지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병원 밖에서 출산할 경우 출생통보제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김지환 대표는 “어머니가 출산 기록을 원치 않아 병원에 갈 수 없는 등의 ‘위기임신’ 상황에서 아이가 아버지에게 맡겨지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출생통보제의 혜택을 볼 수 있는 미혼부 가정이 많지 않은 것이다.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이라는 근본적인 해결과 더불어 보완책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필요한 이유다.태어날 권리 이후 남은 길  어렵게 출생신고에 성공하더라도 양육의 어려움이 뒤따른다. 미혼부 가정의 안정적인 경제활동을 위해서는 돌봄서비스가 필수적이다. 현재 양육 공백이 발생한 가정에 포괄적으로 지원되는 여성가족부의 아이돌봄서비스는 정기·긴급 돌봄이 필요한 경우 시간당 만 원 내외의 금액으로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급하게 아이를 맡겨야 하는 상황에서는 아이돌봄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할 때가 많다. 해당 시점에 응답 가능한 아이돌보미가 있어야 하는데, 야간이나 주말에 일할 수 있는 아이돌보미 수가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여성가족부는 아이돌봄서비스의 일환으로 긴급 돌봄이 필요한 경우 ‘일시연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일시연계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최소 네 시간 전에 신청을 해야 한다. 오후 10시에서 오전 6시 사이에는 신청이 제한된다. 제 시간에 신청을 하더라도 아이돌보미가 10분 안에 요청을 수락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취소된다. 긴급 돌봄을 위한 서비스라지만 사용이 쉽지 않은 것이다.  돌봄서비스의 지역 격차가 심한 것도 문제다. 2017년 경기도 영유아통계에 따르면 각 시군별 아이돌보미 수는 많게는 200명, 적게는 28명으로 천차만별이다. 도심 지역에서는 아이돌보미가 인당 약 2~3가구 정도를, 인구가 적은 지역에서는 인당 4~5가구를 지원한다. 김지환 대표는 “인구가 많은 도심지 위주로 서비스가 제공돼 돌봄 인력이 부족한 지역이 있다”며 “지역별로 수요에 맞춰 돌봄서비스 공급을 확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혼부 가정 자녀의 출생신고 보장과 양육 지원은 ‘혜택’이 아니라 생활의 필수 조건이다. A씨는 “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개인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문제는 해결돼야 한다”며 기본권 보장과 포괄적 인프라 구축을 요구했다. 이는 비단 미혼부 가정뿐만 아니라, 모든 가정을 위해 필요한 일이다. 누구에게나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려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주어져야 한다. 사랑하는 아이와 가정을 꾸리려는 아버지들의 행복이 좌절되지 않도록 법제 개선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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