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아빠! 어디가?’에서 시작된 육아 예능의 유행은 약 10년간 안방극장을 지켜왔다. 육아 예능은 수많은 유행어와 ‘아기 스타’들을 탄생시키며 전국민적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현실과 동떨어진 작위적 연출과 설정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그 인기는 점점 사그라들었다. 평론가들은 육아 예능과 현실 육아의 괴리를 그 원인으로 꼽았다. 방송에서 육아와 어린이가 재현되는 방식을 살펴보고, 현실 육아와 어린이 인권이 육아 예능에서 어떻게 간과되고 있는지 짚어봤다.
대상화되는 어린이들
육아 예능은 양육자가 아이를 돌보고 키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관찰 프로그램을 가리킨다. 육아 예능의 주인공은 단연 어린이들이다.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는 “요즘처럼 주변에서 어린이를 찾아보기 어려운 사회에서 육아 예능은 어린이들의 모습을 담아내고 이들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는 거의 유일한 창구”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육아 예능 속 어린이들이 너무 ‘사랑스럽게’ 재현된다는 것이다. 육아 예능에 출연하는 어린이들은 지나치게 떼를 쓰거나 거친 행동을 하는 일이 없다. 현실의 어린이들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국제아동인권센터 엄문설 연구원은 “어린이들은 발달 특성상 성인처럼 가만히 자리에 앉아있거나 작은 소리로 대화하는 법을 아직 모르는데, 예능 속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며 예능에서 어린이의 모습이 단편적으로 재현된다고 지적했다. 김지은 평론가는 육아 예능이 “귀여움을 ‘어린이다움’의 전부인 양 포장하고, 어린이 출연자들을 성인 시청자들의 즐거움을 채우기 위한 대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방송을 통해 만들어진 ‘착하고 예쁜 어린이’라는 허구적인 이미지는 실제 어린이들의 자연스러운 행동을 부정적으로 보이게 할 가능성이 있다. 김지은 평론가는 “방송의 영향으로 우리 사회가 공공장소에서 말썽을 피우는 어린이를 유난스러운 존재로 생각하게 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육아 예능이 어린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막는다는 것이다.
어린이들을 어른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그려내는 육아 예능은 어린이들에게 특정 역할의 수행을 강요하기도 한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이하 ‘슈돌’)에 출연 중인 ‘나은이’는 ‘누나은’으로 불린다. 동생을 잘 보살피는 첫째 딸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슈돌’에서는 동생들에게 항상 양보하는 나은이의 모습에 자막이나 해설로 ‘대견하다’는 칭찬을 덧붙인다.

ⓒ 《슈퍼맨이 돌아왔다》 영상 캡처
그러나 엄문설 연구원은 “이런 첫째 역할에 고정되다 보면, 어린이들은 그 역할에서 벗어날 때 비난받을 것을 걱정하게 된다”고 말했다. 손아래 아동들을 돌봐야 한다는 책임이 손위 아동들의 행동을 제약한다는 것이다. 정석희 방송칼럼니스트는 “동생을 잘 챙기는 아이를 칭찬하는 방송 장면은 방송을 보는 아이들에게 성숙하게 행동할 것을 암묵적으로 강제한다”며 “이는 어린이들에게 부담감과 책임감을 줄 수 있다”고 비판했다.
어린이 출연자의 권리는 어디에
육아 예능에선 어린이 출연자의 일거수일투족이 기록된다. 문제는 사생활의 영역에서 촬영된 것들이 아이의 의사와 무관하게 방송 소재로 전시되고 소비된다는 것이다. 의사 능력이 부족한 어린이 출연자에게는 방송 출연에 대한 선택권이 처음부터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다. 정덕현 평론가는 “예능의 ‘관찰 카메라’ 도입은 육아 예능에서 시작됐는데, ‘도촬’(도둑촬영)에 대한 문제 제기를 피하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관찰 카메라를 통한 육아 예능의 기획에는 어린이도 자기결정권을 가진 독립적인 주체라는 인식이 부족했던 것이다.
최근에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채널A>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이하 ‘금쪽이’)의 경우 출연자 아동의 인권 침해에 대한 우려가 더욱 크다. 극단적인 문제 행동을 보이는 어린이를 주로 다루기 때문이다. 엄문설 연구원은 “어린이가 수치심을 느낄 만한 문제 행동을 예능에 내보내는 것은 이들의 사생활 보호 권리를 침해한다”고 설명했다. 정석희 칼럼니스트는 “‘금쪽이’가 방영되는 날이면 출연한 아이에 대한 이야기로 맘카페가 들썩일 정도다. 그중 어린이 출연자에 대한 비난도 매우 많다”고 전했다. 어린이 출연자가 공개에 동의하지 않은 모습들이 방송에 노출될뿐더러, 그로 인한 사회적 비판까지 받아내야 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어린이에게도 ‘잊혀질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잊혀질 권리는 자신과 관련된 각종 디지털 정보의 삭제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엄문설 연구원은 “어린이 출연자의 모습이 예능을 통해 한 번 방송되고 나면 온라인 공간에서 계속해서 공유된다”며 “그런데도 어린이의 잊혀질 권리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방송의 재미만 추구하다 어린이 출연자의 인권이 제대로 보호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2020년 3월, ‘슈돌’에서는 당시 27개월이던 ‘하오’의 아빠가 스파링 도중 아이 앞에서 기절하는 연기를 하는 장면이 송출됐다. 하오는 ‘아빠를 살려달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엄문설 연구원은 “이렇게 부모가 쓰러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연출은 어린이 출연자에게 자신을 지켜주는 안전망이 무너지는 불안과 공포를 경험하게 한다는 점에서 명백한 아동학대”라고 꼬집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해당 사안에 ‘어린이가 출연하는 방송 제작진에게는 어린이의 인권과 정서 보호가 제1조에 해당할 정도로 중요한 의미를 가짐에도 불구하고, 아이에게 트라우마가 될 수 있는 상황이 해당 방송에서 제대로 걸러지지 않았다’며 행정지도 상 권고 처분을 내렸다.

ⓒ 《슈퍼맨이 돌아왔다》 영상 캡처
그들만 사는 텔레비전 속 세상
‘슈돌’의 시청률은 한때 20%가 넘었지만 최근에는 5%를 간신히 넘기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정석희 칼럼니스트는 육아 예능이 시청자로부터 외면받게 된 이유를 “‘그들만의 육아 세상’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육아 예능을 보며 일반인 양육자들이 박탈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정덕현 평론가는 “연예인 가족의 주거 공간부터가 이른바 ‘서민’들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며 “부모들의 박탈감은 방송촬영 현장의 배경을 보는 것에서부터 발생한다”고 꼬집었다.
호화로운 집에서 고가의 ‘육아템’을 협찬받아 사용하는 연예인들의 육아를 보면서 일반 부모들의 부담감은 커진다. 김지은 평론가는 “육아 상품에 대한 구매를 은연중에 강요하는 육아 예능이 양육자들에게 ‘나는 내 아이에게 저런 것을 못 해줬다’는 식의 불필요한 죄책감을 유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엄문설 연구원 역시 “완벽한 육아를 해내고 싶지만 그렇게 해줄 수 없다는 현실로 인해 부모들이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고 주장했다.
방송에서의 육아는 여행이나 각종 체험 중심으로 채워진다. 육아 예능이 양육자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다. 김지은 평론가는 “육아는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존재를 24시간 보살피는 일상의 일이지만, 육아 예능에서의 육아는 ‘이벤트성’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육아 예능이 육아의 현실적인 고충을 감춘 채 육아를 낭만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육아 예능에 주어진 과제
앞으로의 육아 예능이 아동과 부모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방송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무엇이 달라져야 할까. 무엇보다도 육아 예능이 현실에 가까운 어린이의 모습과 육아 현장을 담아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지은 평론가는 “어린이와 그 부모가 실제로 육아를 하며 마주하는 건 자신들을 환대하지 않는 공동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텔레비전 육아에서는 아동 배제적인 한국 사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노키즈존은 아동을 배척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7살 아이를 키우고 있는 A씨는 “가족여행 중에 방문하려던 식당이 노키즈존이어서 들어가지 못한 적이 있다. 노키즈존이 아닌 곳이라 해도 아이가 떼를 쓰거나 큰 소리를 내면 눈총을 맞기 때문에 위축되는 건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김지은 평론가는 “육아 예능이 이런 현실에 등 돌리지 않을 때 육아 당사자들의 공감을 얻고, 나아가 아동친화적인 사회 형성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어린이 출연자의 권리 보호를 위해선 촬영 단계에서 전문가의 개입과 감독이 필요하다. 엄문설 연구원은 “촬영 전에 전문가들에게 원고를 검토받는 것과 더불어 촬영 중 돌발상황으로 아동이 심리정서적 어려움을 호소한다면, 반드시 아동심리전문가와 연계하는 등의 대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어린이와 관련된 모든 활동이 아이에게 가장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어린이 주변의 보호자들이 유의해야 한다는 ‘아동 최선의 이익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육아 예능 역시 이런 원칙에 맞춰 방송 기획‧연출이 아동의 존엄성과 건강한 발달에 해가 되지 않는 것을 최우선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육아 예능이 수행해온 긍정적인 기능도 있다. 김지은 평론가는 “어린이들과 관계 맺으며 살아갈 일이 없던 연예인 부모의 비양육자 동료들이 방송을 계기로 어린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비쳐진다”며 “육아 예능이 어른들의 환대 속에 자라나는 어린이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육아 예능이 건강한 사회적 양육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육아 예능은 비판을 수용하며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올해 3월 ‘슈돌’에는 비혼 출산 후 혼자 아이를 키우고 있는 방송인 사유리 씨가 합류했다. 정덕현 평론가는 사유리 씨의 출연에 대해 “새로운 것을 보여줌으로써 이목을 끌려 하는 예능의 특성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가족 모델을 대중에게 소개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연예인 이혼 가정의 육아를 다루는 ‘용감한 솔로 육아 – 내가 키운다’의 등장도 현실에 존재하는 다양한 가족을 조명하려는 육아 예능의 변화를 보여준다.
그동안 텔레비전 속의 육아는 현실의 육아와 어긋나왔다. 그러나 육아 예능은 어린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완전히 변화시킬 힘을 가지고 있다. 어린이를 너그럽게 대하지 않는 사회에서 육아 예능은 아동과 육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의 확산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