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환대는 나만의 몫이 아님을

  기자로 활동하면서 기꺼이 목소리를 들려주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에 놀랐다. 곳곳에 흩어진 말조각을 한데 모으고 이어 붙이는 일련의 과정은 나를 환대해준 취재원들 덕에 가능한 것이리라. 환대뿐인가. 날 믿고 응원해주는 목소리도 한가득 들었다. 좋은 기사 써줘서 고맙다는 학부생 취재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신촌으로 찾아뵌 교수님은 “그대가 대변하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기억하고 자부심을 가지라”고 조언까지 해주셨다. 유난히도 힘들었던 이번 취재에서 이 말을 몇 번을 되새겼는지.   취재 초반에 만나 뵀던 중앙대학교 성평등위원회 위원장님은 취재 요청이 들어왔을 때 기뻐하셨다고 한다. 좋은 언론이니 좋은 글을 써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면서. 대화 내내 미소를 잃지 않고 담담히 이야기를 풀어내주신 위원장님과의 시간은 아직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저녁 식사까지 함께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양질의 인터뷰를 따냈다는 생각에 스스로에 대한 효능감에 한껏 취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날 밤, 중앙대 성평위가 폐지된 운영위원회 녹화 영상을 봤다. 차디찬 zoom 화면을 뚫고 담대하게 울려퍼지는 위원장님의 마지막 발언을 몇 번이고 돌려봤다. 인터뷰 내내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던 그 분이 맞나 싶었다. 그때 조금은 깨달았던 것 같다. 취재원들이 그토록 내게 협조적이고 인터뷰가 매끄럽게 진행됐던 건 결코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서울대저널〉을 믿고 기꺼이 도와준 것임을. 그리고 내가 맡은 이 역할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첫 아이템 발제부터 기사가 발간되기까지, 게으른 기자를 일깨워주고 투박한 원고를 두고 함께 끙끙대며 고민해주는 수많은 이들의 노고가 고스란히 담긴 이 과정을 두 번 정도 겪고 난 지금은 더욱 잘 알고 있다. 취재원들의 응원과 환대는 오롯이 나만을 향한 게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갈망이 〈서울대저널〉에 투영되어 그 일부가 나에게까지 겨우 와닿아 온 것임을 깨달았다.  〈서울대저널〉이 세상을 더 나아지게 할 것이라는 신뢰를 바탕으로 그네들이 보내준 성원에 보답하고 싶다. 숱한 이들의 소망이 〈서울대저널〉에, 더 나아가 ‘나’라는 존재에 투영되는 지금, 내 어깨는 한층 더 무거워진다.

댓글 댓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Previous Post

시를 듣는 일

Next Post

‘도둑맞은’ 공론장을 찾습니다